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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2 전임 성주 제이브 (42/68)

00042  전임 성주 제이브  =========================================================================

                                    

42.

인형술사 제이브는 마리오네트를 소환해 상대를 공격하는 소환술사로 상대를 직접 공격할 마법 공격이 없었다.

그러나 누구도 제이브를 무시하지 못했다. 1초면 자리를 바꿀 수 있는 빠른 블링크와 한 번에 최대 300마리의 마리오네트를 소환할 수 있어 혼자서 수천 명의 적도 능히 상대할 수 있는 일인군단이었다.

이스트 성이 생긴 초창기 성이 안정되지 않았을 때 사방에서 밀려드는 몬스터를 혼자 막아낼 만큼 제이브는 다대다의 전투에선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나처럼 빠른 상대를 만나면 약점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마리오네트를 소환하기 위해선 주문을 외울 시간이 필요했다.

성주로 있을 땐 주변을 철통같이 지켜줄 근위기사들이 있어 다가서는 적을 막아줄 방패가 되어줬지만, 막아줄 부하가 없는 지금은 마리오네트도 소환하지 못한 채 죽어라 도망 다니는 일밖에 할 게 없었다.

블링크는 마력만 충분하면 쿨타임이 없이 밤새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지만, 텔레포트처럼 먼 거리를 이동할 순 없어 도망칠 수도, 멀리 떨어져 주문을 외울 수도 없었다.  

     

“으아악~”

피를 질질 흘리며 도망가는 제이브를 끈질기게 따라붙어 어깨와 옆구리에 칼침을 놓고, 마지막으로 오른쪽 다리를 무릎에서부터 도려냈다.

그래도 꼴에 영웅급이라고 팔이 잘린 상태에서도 끈질기게 도망쳤지만, 출혈량이 점점 많아지자 블링크의 속도도 떨어져 결국 오른쪽 다리와 팔이 잘린 채 바닥을 뒹굴었다. 

“이제 죽이고 유령초만 가지고 가면 되겠다. 안 그래?”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시면 피타스가 주기로 한 보상의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소환수 스티그마 전용 강화석을 주겠다고?”

“피타스가 정말 그걸 준다고 했습니까?” 

“그래!”

“거짓말입니다. 소환수 전용 강화석은 신화급 보스 몬스터 중에서도 전설적인 신수만 드롭하는 아이템입니다. 피타스가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닙니다.”

“어쨌든 주기로 했으니 그걸 두 개 주든지 아니면 죽든지 알아서 해.”

“그건 저도 구할 수 없습니다. 대신, 마리오네트 스티그마와 블링크 스티그마를 드리겠습니다.”

“그건 너 죽이고 빼앗아도 되는 거잖아. 장난해? 내가 코흘리개 아이로 보여?”

“그러면 강화석 3개와 상급 포션도 3병도 같이 드리겠습니다.”

“그냥 죽이고 유령초만 구해서 가는 게 낫겠다.”

“자.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가진 것을 전부 드리겠습니다.”

칼을 높이 들어 이마를 겨누자 놀란 제이브가 덜덜 떨리는 입으로 가진 것을 전부 토해내겠다고 했다. 

숨겨둔 아이템을 빼앗으려 살짝 겁을 주자 제이브는 전임 성주라는 닉네임이 아까울 만큼 떨었다.

죽음 앞에서 누구도 냉정해질 수 없어 제이브를 욕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잡히자마자 살려달라고 비는 모습은 긍지마저 잃어버린 것 같아 한편으로 불쌍했고, 한편으론 한심했다.   

“침대 밑에 숨겨진 금고가 있습니다. 거기에 든 상자에 제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어떻게 열어?”

“제가 가야 열 수 있습니다.”

“너 죽이고 내가 알아서 열게.”

“여.여기 여.열쇠 있습니다.”

“한 번만 더 잔머리를 굴리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근자근 토막 쳐서 죽인다. 알았어?”

“네.네.네. 알겠습니다.”

“소희야! 장화 신은 고양이 불러내.”

“네!” 

장화 신은 고양이를 소환해 제이브의 목에서 뜯어낸 열쇠를 들려 보물 상자가 있는 침실로 보냈다. 

침대를 밀자 바닥에 작은 홈이 있었고, 열쇠를 넣고 돌리자 바닥이 갈라지며 커다란 상자를 토해냈다.

“열어!”

“고양이가 가진 열쇠로 열면 됩니다.”

철컥

보물 상자 속에는 작은 반지 한 개와 가죽으로 만든 신발 한 켤레, 여성용 귀걸이 두 쌍, 강화석 다섯 개, 상급 포션 다섯 병, 100kg짜리 마법 지갑 한 개 그리고 병에 담긴 빛나는 풀 한 포기가 들어있었다.    

“반지는 이스트 성 성주의 인장입니다.”

“성주의 인장이면 이것만 있으면 성주가 되는 거야?”

“그랬다면 제가 이 꼴로 됐겠습니까?”

“그럼 뭐야?”

“이스트 성의 보물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그걸 피타스에게 가져다주시면 보물창고에서 원하는 아이템을 하나 대가로 줄 겁니다.”

바람의 정령왕 에리얼의 찬란한 가죽 부츠 : 힘+50 체력+50 민첩+100

 특수 옵션 – 블링크 : 5m~10m 순간이동, 쿨타임 없음  

사냥의 여신 디아나의 루비 귀걸이 : 시야 20% 향상

대도 유비니스의 산호 귀걸이 : 밤 시력 20% 향상  

100kg 마법 지갑

“에리얼의 가죽 부츠는 루시퍼께서 성주가 된 선물로 주신 레전드 아이템입니다. 스킬이 전부터 사용하던 블링크라서 상자에 처박아 두고 쓰지 않았습니다. 공격 스킬이 붙어있었다면 피타스에게 쫓겨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네 말대로 하면 세상에 죽을 놈 한 명도 없어.” 

“맞습니다. 다 핑계입니다. 무능한 제 잘못인데, 지금껏 남 탓만 하며 살았습니다. 자만심에 빠져 신발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귀걸이는 여자들이 쓰는 장신구라는 생각에 착용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놓고 피타스만 욕하고 있었으니 ...”

“이제라도 알게 됐으니 다행이라 생각해. 그래 봐야 이미 늦었지만 말이야.”

“저를 죽이실 겁니까?”

“살려둘 이유가 없잖아.”

“살려주시면 평생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성주까지 했던 사람이 너무 비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대로 죽기엔 피타스에 대한 원한이 너무 깊습니다. 원한을 갚을 기회를 주십시오.

“싫은데.”

“살려주시면 주인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지금 나보러 네놈 병수발 들라는 소리야?”

“팔다리가 없어서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직업이 인형술사입니다. 잘린 팔다리는 양철 나무꾼의 팔다리로 감쪽같이 만들 수 있습니다.”

“미안하지만, 눈동자를 사정없이 돌리는 놈 말은 믿을 수가 없어. 그런 놈은 생각이 많아 언제 배신할지 몰라서 불안해 곁에 둘 수가 없거든. 물건은 잘 쓸게. 고마워!”

“아닙니다.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살려 주십... 크억!”

툭! 데구르르르~

반듯하게 잘린 제이브의 목이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자기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지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었다. 

제이브를 부하로 거두면 중국과 일본을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었다. 마리오네트 처키와 공주가 강력한 소환수는 아니지만, 물량에는 장사 없다고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면 중국과 일본을 박살 내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쉴 새 없이 눈동자를 돌려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제이브를 믿을 수 없었다. 이런 놈은 기회만 주어지면 사정없이 등에 칼을 꽂았다.

눈알을 정신없이 굴리는 놈을 과거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났다. 백이면 백, 천이면 천 한결같이 뒤통수를 치는 놈들로 유령 동굴을 벗어나기도 전에 나와 유정, 소희를 죽이겠다고 난리 칠 게 확실했다.

친구는 가까이 두고 적은 더 가까이 두라는 말이 있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로 친구를 옆에 둬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국에 적을 옆에 두라니 죽으려고 환장한 짓이었다.

판게아에서 이 말을 실천하면 백이면 백 다 죽는다. 상대가 적이라는 확신이 들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심장에 칼을 박아야 했다. 

내가 상대를 적이라 느낀 순간 상대도 나를 적으로 인식하고 칼을 뽑았다. 선방 필승은 아이들만의 유치한 말이 아니다. 

웃으며 옆구리에 칼을 쑤시면 싸움은 그걸로 끝이었다. 뱃속에 커다란 칼을 품고 성난 멧돼지처럼 날뛸 수 있는 인간은 영화 속 주인공밖에 없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레젼드 아이템이구나! 스킬이 블링크라니... 진짜 끝내준다.”

“스킬도 끝내주지만, 민첩이 무려 100이야. 오늘 구한 강화석 다섯 개와 가방에 있는 강화석 세 개로 +8까지 강화하면 민첩만 816이다.”

“816? 컥!”

“복리 이자도 이런 복리이자는 없겠다. 정말 짱이다.”

“816이면 내 스탯에 아이템 스탯을 합친 것보다 높아. 이래서 사람들이 레전드 레전드 하는 거였구나.”

“누가 레전드 레전드 했어?”

“없어.”

“그럼 지금 한 말은 뭐야?”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으로 말한 거야.”

“실없기는... 그러고 보니 레전드 아이템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네. 유정아! 너는 들어봤어?”

“오빠가 말해주기 전에는 유니크가 있는지도 몰랐어.”

“이상하다.”

“뭐가 이상해?”

“오빠는 어떻게 유니크 위에 레전드 아이템이 있는지 아시는 거지? 이스트 성 영역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72군주와 영웅, 신화급 보스 몬스터가 있는 것도 아시고. 이상하네.”

“죽은 친구에게 들었다고 했어.”

“그 친구는 어떻게 알았지? 중국도 일본도 우리나라도 이스트 성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직접 경험해야 모든 걸 아는 거야? 책에서 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들을 수도 있잖아. 너는 모든 지식을 직접 경험해서 얻었어?”

“아니!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

“네가 만난 사람 중에 오빠의 발끝이라도 따라온 사람이 있었어? 없잖아. 매직 아이템이 뭔지, 레어 아이템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 속에 있었어. 그런데 그 안에서 72군주와 레전드 아이템 이름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 대체 뭐가 의심스러운 거야? 오빠가 우리와 같은 지구인이 아닐까 봐 그래? 72군주가 모습을 바꾸고 우리를 희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소희야! 오빠는 나와 부산행 기차 타고 가다가 판게아에 함께 왔어. 엄마가 편히 돌아가실 수 있게 도와주셨고, 무덤까지 만들어주셨어. 나를 구한 것도 오빠고, 너를 구한 것도 오빠고,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힘을 주신 분도 오빠야. 은혜로 따지면 천년만년 몸종으로 살아도 갚을 수 없어. 오빠만큼 널 사랑하고 믿어. 하지만 네가 오빠를 의심한다면 난 정말 참을 수 없어.”

“의심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궁금해서 그랬어. 내가 왜 오빠를 의심해? 절대 그런 거 아니야.”

“너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듣는 오빠 처지에선 의심한다고 생각할 거야. 작은 의심이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거 몰라? 그리고 의심할 걸 의심해야지 대체 뭘 의심하겠다는 거야?”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오빠가 나만의 남자야? 아니잖아. 너의 남자이기도 하잖아. 우리는 오빠를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해. 오빠가 있기에 우리가 있는 거야. 오빠가 없으면 우리도 없어.”

“알았어.”

볼일을 보고 오다 유정과 소희가 다투는 말을 들었다. 내 과거를 유정이 눈치챈 건 아닌지 순간 심장이 바짝 쪼그라들었다.

다행히 둘 다 만난 사람이 몇 명 없었고, 그들도 판게아에 관한 지식이 없다시피 해 의심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앞으로 몬스터, 72군주, 루시퍼에 관한 얘기는 일절 하지 말아야지. 소희가 나를 의심한 게 아니라 궁금해해서 그냥 넘어갔지 결정적인 말실수를 한다면 그때는 진짜 문제가 될 수도 있어.’

‘유정과 소희 둘 다 절대 놓칠 수 없어. 무려 55년 만에 찾아온 사랑이야.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사랑을 지킬 거야. 그게 신이라고 해도 내 사랑을 방해한다면 가만두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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