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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5 바니걸(Bunny Girl) (45/68)

00045  바니걸(Bunny Girl)   =========================================================================

                                    

45.

“아윽~”

“많이 아파요?”

“흐윽~ 아니에요. 참을 수 있어요.”

“미안합니다!”

“뭐가요?”

“모레네님이 경험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무례하게 대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좀 섭섭하네요. 저는 100년 만에 처음 찾아온 떨림이라고 말했는데.”

“미안합니다.”

“실망했어요? 처음이라서.”

“아닙니다. 기분 정말 좋습니다. 모레네님이 내 여자가 된 것 같아서.”

내 여자가 된 것 같다는 말에 기분이 풀렸는지 입술을 빨며 커다란 가슴이 터지도록 꽉 끌어안았다. 

“만수님은 때가 되면 이스트 성을 떠나겠죠?”

“그래야겠죠.”

“그럼 우리의 인연도 끝나겠네요?”

“같이 가면 되죠.”

“피타스 성주의 허락 없이는 이스트 성을 벗어날 수 없어요.”

“혹시... 노예 신분이십니까?”

“아니요. 자유민이에요. 그러나 이름만 다를 뿐 피타스 성주 허락 없이는 성을 떠날 수 없는 건 노예나 자유민이나 마찬가지에요.”

‘개척마을을 빼앗으면 마을 주민을 모두 부하로 거느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구나.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분명 노예의 낙인이 찍혀 있을 거야. 그래서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는 거야.’

판게아는 왕이 없는 대신 각 성과 지역을 차지한 군주와 성주가 봉건영주 신분으로 주민들을 다스렸다.

봉건제도 아래에서 주민은 노예나 다름없어 성주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반란죄로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도 모두 죽였다.

노예가 아닌 자유민도 마찬가지로 고되고 궂은일만 하지 않을 뿐 몸이 묶인 건 마찬가지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던 우리가 보기엔 매우 불합리한 짓이었지만, 이곳은 판게아였고 이미 우리도 거기에 길들여져 살고 있었다.

“유령 동굴에서 만난 제이브가 자신을 전임 성주라고 하더군요. 맞습니까?”

“네, 맞아요.”

“이스트 성의 보물창고 열쇠라며 성주의 인장을 줬습니다. 이걸 피타스 성주에게 가져다주면 보물창고에 있는 보물 중 원하는 걸 한 가지 가질 수 있게 해준다고 하더군요. 보물 대신 모레네님을 달라고 하겠습니다.”     

      

“보물보다 제가 더 좋으세요?”

“네! 좋습니다.”

“흐응~ 세상에 태어나 오늘만큼 기분 좋은 날은 없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내일 아침 성주를 만나 담판을 짓겠습니다.”

“만수님은 정말 좋은 분이세요. 만수님과 영원토록 함께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성주가 만수님의 요구를 들어주지도 않겠지만, 들어준다고 해도 제가 그럴 수가 없어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저 혼자 살겠다고 여동생을 죽게 할 순 없어요. 제가 떠나면 이방인에게 협조했다는 죄목을 씌워 여동생을 죽일 거예요. 그것도 편안한 죽음이 아닌 팽자나 유탕, 유폐형에 처해질지도 몰라요.”

팽자(烹炙)는 죄인을 솥에 넣고 삶아 죽이는 형벌이었고, 유탕(油湯)은 기름에 튀겨 죽이는 형벌이었다.

유폐(幽閉)는 여성의 성기인 질구를 실로 꿰매거나 망치로 하복부를 두들겨 자궁을 꺼내는 가장 잔인한 형벌 중 하나였다. 

“모레네님과 동생분을 구할 방법이 없는 겁니까?”

“지금은 떠오르는 게 없네요. 만수님!”

“네.”

“우리 골치 아픈 얘기는 내일 해요. 지금은 만수님의 뜨거운 사랑만 느끼고 싶어요.” 

성주를 만나 담판을 짓겠다고 한 것도 사랑이 아닌 모레네를 더 많이 이용할 생각에서였다.

이스트 성 보물 창고에 어떤 보물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퀘스트 한 번에 +8 바람의 정령왕 에리얼의 찬란한 부츠를 얻었다.

내가 원하는 아이템을 고를 수 없어도 모레네를 이용하면 값진 보물을 몇 배로 얻을 수 있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모레네는 여왕개미 베르베르의 치명적인 로브에 속아 진실한 마음으로 내 사랑을 갈구했다.

‘여자의 순정을 이렇게 짓밟아도 되는 건가?’

   

“더 빨리요. 더 거칠게 사랑해주세요. 아흑~”

낯짝도 두껍게 모레네의 입술을 빨며 연약한 음부에 욕망으로 똘똘 뭉친 커다란 성기를 거칠게 쑤셔댔다.

강철같이 딱딱한 성기가 연약한 속살을 파고들 때마다 칼로 후벼 파는 지독한 고통에 모레네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러나 모레네의 얼굴은 진정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다는 생각에 한없이 밝기만 했다.

파렴치한 짓을 하고도 욕정을 참지 못해 허리를 흔드는 내 모습이 악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쾌감은 평소와 다름없이, 아니 파괴의 욕구에 젖어 미쳐 날뛰며 가녀린 영혼을 짓밟았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 기분 좋았어요. 좀 아프긴 했지만, 만수님이 제 몸속에 들어와 격렬하게 움직일 때마다 뜨거운 심장이 느껴져 몸이 타는 것 같이 좋았어요.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제가 살아있다는 것도 확인했고요. 매일 반복되는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좋았던 건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이란 게 뭔지 알게 됐다는 거예요. 지금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어요. 히히~”

“그랬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만수님! 아니 만수씨! 이제 편하게 대해주세요. 그래야 제가 만수씨 여자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계속 불편하게 존칭을 쓰시면 저를 밀어내는 것처럼 느낄 것 같아요.”

“... 알았어.”

내 여자가 될 수 있게 말을 놓아달라는 모레네의 부탁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찔렀다. 

나는 모레네에게 사랑이란 감정이 없었다. 멋진 몸매와 예쁜 외모 그리고 퀘스트에 혹한 것이지 모레네를 있는 그대로, 여자로 좋아한 게 아니었다.     

“내일부터 우리 집에 같이 살아요.”

“내겐 여자가 있어.”

“알아요. 같이 오신 두 분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그렇죠?”

“응.”

“그분들만 좋다면 제집을 만수씨의 집처럼 이용하세요.”

“많이 불편할 거야.”

“만수씨가 제 옆에 있으면 어떤 불편도 다 감수할 수 있어요.”

‘이쪽 동네 여자들은 모두 모레네처럼 순정파인가? 몸 한 번 섞었다고 다 주려고 그러네. 적당히 이용하자고 한 일이 너무 커져 버렸어. 이러면 데리고 놀다가 버릴 수도 없잖아. 하아~’

‘무슨 상관이야? 내 꿈이 지구 여자, 판게아의 여자 가리지 않고 모두 모아 하렘 왕국을 만드는 거잖아. 좋다고 하면 데리고 살면 되는 것이지 따지긴 왜 따져.’

‘그리고 이스트 성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방법은 찾으면 되는 거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어. 걱정할 거 없어. 다 잘 될 거야.’

“오늘은 이만 가볼게.”

“내일 점심때 오실 거죠? 같이 점심 먹으며 아까 하던 얘기마저 해야죠.”

“방법이 있는 거야?”

“그건 내일 점심 먹으며 알려드릴게요.”

“알았어. 내일 점심때 봐.”   

“그냥 갈 거예요?”

“추윱!”

문밖까지 따라 나온 모레네를 꼭 끌어안고 찐한 키스로 헤어지기 싫어하는 마음을 달래줬다.

품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 해 10분 넘게 길거리에 서서 찐한 프렌치키스와 뜨거운 포옹을 해야 했다.

날이 저물며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 낯 뜨거운 모습을 사람들에게 걸리진 않았다. 

내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모레네는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이 마음을 더욱 무거워졌다.

유정과 소희가 기다리는 행복한 나무 호텔까지 걸어가는 내내 지독한 죄책감에 술에 취한 것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가신 일은 잘됐어요?”

“보상으로 뭘 줬어요?”

“힘과 민첩을 각각 100 올려주는 스탯북을 줬어.”

“스탯북이요?”

“그런 것도 있어요?”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

“보상 정말 끝내주네요.”

“앞으로 퀘스트만 해도 스탯이 팍팍 오르겠어요.”

“전임 성주를 잡아 보상이 크다고 봐야지. 앞으로 이런 보상을 얻기는 쉽지 않을 거야.”

퀘스트가 처음이라 앞으로 어떤 보상을 받게 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스탯을 한꺼번에 200이나 올려주는 퀘스트가 흔하지 않다는 건 확실히 알았다.

타임슬립 전 내가 퀘스트가 있다는 걸 몰랐다고 다른 사람도 퀘스트가 있는 걸 몰랐다는 뜻은 아니다. 

누군가는 분명 퀘스트를 통해 다양한 아이템과 스탯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얻은 것보다 좋은 보상은 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강자가 출현했을 것이다. 그렇지 못했다는 건 보상이 크지 않았거나 완료하기 어려운 퀘스트일 가능성이 컸다.

‘판게아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는 게 좆도 없었어. 이건 마치 새로운 게임에 접속해 튜토리얼을 건너뛰고, 시스템 매뉴얼도 읽지 않은 채 필드로 나가 몹만 죽도록 때려잡은 꼴이잖아.’

‘20년간 대체 뭐하면서 산 건지 이해가 안 되네. 그러고도 살아남은 게 정말 용하다. 하하하하~ 나는 오직 몹만 때려잡아. 다른 건 몰라도 돼. 이러며 게임에서 1등 먹은 놈하고 똑같잖아.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이라더니 내가 바로 그놈이었네. 에고!’        

“모레네와는 좀 더 친해졌어요?”

“시간이 오래 걸린 거 보니까 많이 친해진 것 같은데. 제 말이 맞죠?”

“아주 많이 친해졌어. 내일부터 자기 집에서 같이 살자고 하네.”

“네에?”

“뭐라고요?”

아내나 다름없는 유정과 소희에게 다른 여자와 그 짓을 하고 왔다는 것을 당당하게 말한다는 건 너무나도 뻔뻔한 짓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여자가 생기면 속이지 않고 말해주기로 약속했다. 유정과 소희가 원한 것으로 속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끊임없이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때마다 미안하고 부끄러워한다면 그때는 서로를 배려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기만하는 행동처럼 보일 게 확실했다.

많이 섭섭하고 화가 나겠지만, 당당하게 말해 면역력을 키워주는 것이 서로를 위한 일이었다. 

“모레네 집에 들어갈 거예요?”

“고민 중이야.”

“모레네가 마음에 드세요?”

“사랑하느냐고 물어본 거라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 그러나 육체가 탐나느냐고 물어본 거라면 맞다고 대답할 거야.”

“그렇게 몸이 예뻐요?”

“응.”

“저하고 소희보다 더 예뻐요?”

“그렇진 않아. 서로 매력이 다른 것이지 더 낫다 못 하다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내 취향은 딱 너하고 소희야. 나는 글래머보다 날씬한 타입을 좋아해.”

“그렇게 취향이 정확하신 분이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와요?”

“흐흐흐흐~”

“오빠! 빨리 목욕탕으로 오세요.”

“왜?”

“씻어야 같이 잘 거 아니에요.”

“내 몸이 더러워?”

“우리가 다른 남자 품에 안겼다가 왔다고 생각해보세요. 오빠 그 상태로 안을 수 있어요? 옆에 올 수나 있겠어요?”

“미안!”

소희의 칼 같은 비유에 할 말이 없었다. 유정과 소희가 다른 남자 품에 안긴다는 건 상상할 수도, 상상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간절히 바라고 바라던 유정과 소희를 얻자 둘을 잃는다는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화가 솟구쳐 참을 수가 없는데, 정말 그런 일이 생기면 피에 미친 광인이 되어 미쳐 날뛸게 확실했다.  

그걸 아는 소희가 그런 심한 비유를 한 건 내 행동을 비꼰 것이었다. 다른 여자와 찐하게 논 후 흔적을 지우지도 않고 돌아와 유정과 소희에게 다른 여성의 체취를 맡게 하는 건 최소한의 에티켓도 지키지 않는 몰상식한 짓의 끝판 왕이었다.

다른 여자를 안는 걸 허락했다고 다른 여성의 체취까지 묻혀 들어와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유정과 소희처럼 한 침대를 사용하는 사이라면 모를까 생판 모르는 여성의 땀과 체액을 묻혀 오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만약 상황이 반대라면... 으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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