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0 금강부동(金剛不動) 철무동 =========================================================================
50. 금강부동(金剛不動) 철무동
“뭘 잡고 있어?”
“아이스 트롤이요.”
“구성은 어떻게 되는데?”
“탱커 셋, 밀리 셋, 궁수가 넷, 마법사 둘이요. 이 중 남자가 열 명이고, 여자는 둘이었어요.”
“얼음 성채로 들어가는 다른 길은 없어?”
“없어요. 입구가 정문 하나에요.”
“들어갈 것 같아?”
“곧장 정문으로 가며 사냥하는 것으로 보아 얼음 성채를 노리는 것 같아요.”
“실력은?”
“서너 명은 제가 상대할 수 있어요.”
“서너 명이나?”
“네!”
자신감 붙은 소희의 말에 삐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삼켰다. 전쟁 전까지만 해도 코흘리개 아이 수준이었는데, 스탯과 경험이 늘자 제법 호기롭게 말했다.
지나친 자신감은 자기는 물론 주위 사람도 피해를 주는 몹시 나쁜 행동이었지만, 적당한 자신감은 동기를 부여해 빠른 성취를 가져다주는 좋은 자세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자존감과 함께 사람이 꼭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었다.
현재 유정과 소희의 스탯과 아이템이면 각국을 대표하는 길마만 아니면 무난히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과 싸워본 경험이 많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우위를 점한다고 단정할 순 없었다.
단순히 장비와 스탯만으로 실력이 뛰어나다고 할 순 없었다. 상대가 만만해 보여도 직접 싸우면 구경하는 것과는 크게 달랐다.
그건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모르고 상대를 얕잡아본데서 생긴 오류이자 상대의 속임수에 걸려든 것이었다.
고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모두 드러내지 않았다. 적당히 보여줄 것만 보여줘 상대로 하여금 실력을 오판하게 했다.
“놈들을 죽이지 않고 잡을 자신 있어?”
“네!”
“자신감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
“그렇지 않아요. 저 정말 열심히 훈련했어요. 저보다 오빠가 더 잘 아시잖아요.”
“알지.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은 자만심이야. 자만심은 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어.”
“자만심 아니에요. 정말 잘할 수 있어요.”
“알았어. 유정아! 너는 어때? 소희만큼 잘할 수 있어?”
“소희보다 더 잘할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자만심은 금물이라고 분명 말했는데, 벌써 잊었어?”
“저도 자만심 아니에요.”
“좋아! 둘 다 믿어보겠어. 하지만 자신이 한 말을 지키지 못하면 그에 따른 벌도 있다는 걸 명심해.”
“걱정하지 마세요. 깔끔하게 처리할게요.”
“저도 잘할 자신이 있어요.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드릴게요.”
자신감이 지나치면 자만심이라고 두 번이나 강조했지만,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변한 유정과 소희는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푸닥거리할 때가 온 것 같네. 어쩔 수 없지. 할 때가 되면 해야지.’
“유정이는 데스나이트와 함께 궁수 넷을 맡아. 소희는 마법사 둘을 처리하고 밀리들을 공격해. 탱커들은 펜리르가 잡을 거야. 나는 뒤에서 지켜만 볼 거야. 정말 잘할 수 있지?”
“네에~”
“최대한 살려서 잡는 게 목표지만,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어 죽여. 중요한 건 다치지 않고 일을 끝내는 거야. 시간을 빼앗는 건 그다음이야. 알았어?”
“네에~”
단단히 주의를 준 후 얼음 성채 입구로 다가갔다. 얼음 성채는 호드 종족인 얼음 송곳니 아이스 트롤 부족이 차지한 지역으로 성채는 던전이 아닌 부족의 집이자 근거지였다.
족장은 서리 법사 카라이진으로 암흑신전의 검은 달 오크종족의 족장 오르도보다 수준이 한 단계 높았다.
부하들 역시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트롤답게 검은 달 오크보다 훨씬 뛰어나 이스트 성 영역의 던전 중에선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힘든 사냥터였다.
‘역시 한자리하던 놈은 시작부터 다른가 보네. 벌써 얼음 성채를 다 오고.’
아이스 트롤을 사냥하는 중국인 사냥팀에서 아주 반가운(?)은 얼굴을 발견했다. 한 자루 대도를 귀신같이 쓴다고 도황(刀皇)이란 별명을 얻어 십대천황에 든 포용목이었다.
포용목이 팀의 리더인지 놈이 내리는 명령에 따라 11명이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윰직이며 아이스 트롤을 사냥하고 있었다.
트롤은 목을 자르기 전에는 잘 죽지 않는 괴물로 만화처럼 잘린 팔이 다시 생기진 않았지만, 칼에 베인 상처는 중급 포션을 마신 것처럼 금세 아물었다.
이런 엄청난 재생력과 치유력 때문에 사람들이 가장 꺼려하는 몬스터 중 하나로 얼음 성채는 아이템이 비교적 잘 나오는 편이었지만, 아이스 트롤의 거점이라 인기가 없었다.
‘한 놈 더 있었네. 아 맞다. 두 놈은 언제나 같이 다녔지. 한방에 두 놈을 잡다니 오늘 운수대통이네. 흐흐흐흐~’
도황 포용목 앞에서 커다란 방패로 아이스 트롤을 막는 커다란 덩치의 남자는 십대신장 중 한 명인 금강부동(金剛不動) 철무동이었다.
금강부동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방어의 귀재로 커다란 강철 방패를 자기 팔보다 더 능숙하게 다뤘다.
둘 다 판게아 초창기부터 명성이 자자했던 인물들로 중국을 이끌어가는 주요핵심 인사였다.
“저기 큰 칼 든 놈하고, 방패 유난히 큰 거 든 두 놈은 내가 잡을게.”
“왜요?”
“너희가 잡기엔 위험해 보여서.”
“그게 한눈에 보여요?”
“싸움은 주먹이 아니라 눈으로 시작하는 거야. 상대가 나보다 강한지 약한지 알아보는 눈이 없으면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달려들게 돼. 너희도 상대의 몸놀림을 유심히 보고 자기보다 강한지 약한지 파악해야 해. 그런 눈이 없으면 절대 대성할 수 없어.”
“저희에겐 오빠가 있잖아요.”
“유정아!”
“네?”
“볼기짝 피나게 맞을래?”
“잘못했어요.”
소희가 몸을 숨기고 가장 후미에 있는 마법사에게 다가가 자리를 잡자 유정이 궁수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피웅피웅!
연달아 날아간 두 발의 화살이 궁수에 도달하기 직전 소희가 휘두른 투탕카멘의 빛나는 망고슈와 오크 전사 샤크먼의 빛나는 강철 단검이 아이스 트롤을 공격하던 두 마법사의 오른팔과 왼쪽 다리를 하나씩 잘라냈다.
“으아아악~”
“크악~”
잘려진 팔과 다리를 부여잡고 마법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눈밭을 뒹구는 순간 아이스 트롤을 견제하던 궁수 두 명도 어깨와 허벅지에 화살을 맞고 눈밭에 모질게 처박혔다.
“암습이다. 뒤를 조심... 컥! 우엑~”
도황 모용목이 암습이라 소리치는 순간 복부에 큰 충격을 받고 쓰러져 점심때 먹은 것을 모두 게워냈다.
쾅!
금강부동 철무동은 펜리르의 앞발에 맞아 30m나 날아가 바닥에 엎어지며 기절했고, 옆에 있던 탱커 둘도 나란 하늘을 날아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한 놈은 재수 없게 목이 부러져 즉사했고, 한 놈은 아이스 트롤들 사이에 떨어져 사지가 찢겨 죽었다.
‘저놈의 자식! 조심하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일부러 그런 거야. 머리 커졌다고 반항하는 게 틀림없어. 삶아 먹을 없고... 나쁜놈!’
격수 둘은 마법사를 처리한 소희가 다시 몸을 숨기고 번개같이 뒤로 돌아가 아킬레스건을 동시에 잘라낸 후 턱을 걷어차 기절시켰다.
12명을 순식간에 제압한 건 우리 실력이 놈들보다 월등히 앞서는 것이 이유였지만, 아이스 트롤 세 마리를 사냥하며 몰래 다가오는 우리를 발견하지 못해 뒤치기를 당한 것도 컸다.
뒤치기가 무서운 이유가 바로 이 점이었다. 몬스터를 사냥하며 정신을 집중한 사이 뒤로 다가와 칼을 쑤시면 10명 중 9명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더 큰 문제는 한 번 피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템과 시간을 노리는 놈은 끝도 없이 많아 하루에 100번도 당할 수 있었다.
한두 번은 잘 막아내도 계속된 암습을 막아낼 수 있는 사냥꾼은 없었다. 암습에 대비해 예비대를 편성하든지, 우리처럼 사람이 오지 않는 던전에 콕 처박혀 사냥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사주경계가 확실한 소환수를 키우든지 방법을 강구하지 않는 한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살려주세요. 저희는 포용목, 철무동에 붙잡혀 어쩔 수 없이 같이 다니는 것이지 한패가 아니에요. 살려주세요.”
“정말이에요. 제 남자친구가 포용목에게 죽었어요. 저도 놈을 죽이고 싶지만, 힘이 없어 이렇게 끌려다니며 낮에는 몬스터를 사냥하고 잠에는 놈들의 노리개가 되어 죽지 못해 살고 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흑흑...”
“알았으니 조용히 해. 이놈들 말 들어보고 결정할 테니까. 둘 다 입 막아.”
“네!”
“정말이에요. 우리는 이들과 아무런 관련이...”
“살려주세요. 살려주시면 무슨 짓이든 다 할게여. 살려만 주...”
입을 막으라고 하자 유정과 소희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여성의 발에서 양말을 벗겨 한쪽은 입에 쑤셔 넣고, 나머지 한쪽으로 입을 단단히 묶었다.
몇 번 해보자 손에 익은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손발을 묶고, 입에 재갈을 물리는 등 깔끔하게 처리했다.
더욱 고무적인 건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여성의 모습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무토막 다루듯 한다는 것이었다.
펜리르 던전에서 처리한 무사시 길드원 중 10%가 여자였다. 이 중 10명은 산 채로 잡혀 시간을 빼앗기고 죽었다.
사람이 죽음에 직면하면 100이면 100 모두 살려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한다. 그 모습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차마 바라볼 수 없는 잔인한 모습이었다.
특히 여성의 우는 모습은 남성보다 측은지심을 더욱 불러일으켜 남자인 나로선 손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유정과 소희는 여자의 눈물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처리는 언제나 내가 해 마음의 짐이 덜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는 남자보다 우는 여자의 모습에 더욱 담담하게 대했다.
‘정말 남자보다 여자가 더 잔인한 걸까?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건 사람마다 다른 거야. 괜한 선입견으로 유정과 소희를 보면 안 돼.’
‘잔인하기로 따지면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어. 인육을 먹고, 여자를 강간한 적은 없지만, 천 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어. 그중에 고문해 죽인 사람도 100명이 넘어.’
‘내가 진짜 잔인한 희대의 살인마야! 유정과 소희는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었어. 내가 진정한 이 시대의 악의 축이야.’
12명 중 2명은 펜리르의 과격한 행동에 날아가 죽고, 2명은 명사수인 유정의 형편없는 활 솜씨에 심장과 대가리가 뚫려 죽었다.
살아남은 8명을 유정과 소희가 손발을 묶어 한 곳에 모으고 무기와 방어구, 액세서리를 챙기는 동안 펜리르와 함께 아이스 트롤들을 정리하고 죽은 놈들이 사용하던 아이템을 수거했다.
정리가 끝나자 얼음 성채에서 한참 떨어진 외딴 동굴로 놈들을 끌고 갔다. 주변에 놈들 일행이 있을 수도 있었고, 다른 놈들이 얼음 성채를 공략하기 위해 올 수도 있어 자리를 옮겨야 했다.
판게아에선 언제나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했다. 그래야 오래도록 생명을 보전할 수 있었다.
“포용목! 여자들 말이 사실이야?”
“모두 거짓말입니다. 두 년 모두 자발적으로 조직에 들어왔습니다. 먹을 것을 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면서 제 발로 찾아왔습니다.”
“진짜야?”
“네! 저는 거지 같은 년들을 입혀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며 시간까지 줘 인간으로 살 수 있게 해줬습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저 여자들 돌아가면서 데리고 잔 건 사실이지?”
“그건 저년들이 그 조건으로 우리 조직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자를 어찌나 밝히는지 하루에 서너 명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달라붙어 그 짓을 요구했습니다. 우리가 싫다고 해도 아랫도리를 잡고 늘어졌습니다. 정말입니다.”
“으으으으~”
“흐으으응~”
포용목이 여자들을 욕하자 입에 양말이 물린 두 여자가 고개를 흔들며 사실이 아니라고 으으댔다.
눈물까지 흘리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흔드는 모습이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안쓰러움은 깊은 연못에 던져진 돌처럼 금세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