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5 대를 이은 충성 =========================================================================
55.
“우물에 독을 타기로 했다고?”
“네, 그렇습니다.”
“벌써 탄 거야?”
“아직 아닙니다.”
“그러면 언제 타는데?”
“잠시 후 새벽 4시에 독을 풀기로 했습니다.”
“우물을 지키는 사람이 있어 다가가기 쉽지 않을 텐데? 아니었나? 혹시... 내부자가 푸는 거야?”
“맞습니다.”
“누군데?”
“영웅 길드 부길마 권울헌이 풀기로 했습니다.”
“영웅 길드 부길마가 왜? 시간으로 매수했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놈을 매수한 거야?”
“매수한 게 아닙니다. 처음부터 우리 편이었습니다.”
“뭐라고? 한국에 유학 온 일본인이야? 아니면 귀화한 일본인?”
“권울헌은 토종 한국인입니다.”
“토종 한국인이 왜 한국사람 먹는 우물에 독을 타? 무슨 이유로?”
“권울헌은 한국에서 을사오적이라 부르는 권XX의 3대손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한국을 벌해야 한다고 이번 일을 계획했습니다.”
“정말 대단하네. 대를 이어 충성하네. 뼈대 있는 가문이야. 멋지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번 전쟁도 권울헌의 머리에서 나온 겁니다. 영웅 길드 길마 김영웅에게 싸우면 무주건 이긴다고 꼬드겨 전쟁을 선포하게 했습니다.”
“뭐라고 꼬드겼는데?”
“영웅 길드가 무사시 길드와 전쟁에 돌입하면 야마토 길드가 무사시 길드의 배후를 치기로 했습니다.”
“김영웅이 그 말을 믿었어?”
“전쟁을 선포하기 전 야마토 길드 길마 키타노 히로이키님과 김영웅이 은밀히 만나 동맹을 맺었습니다.”
“동맹 조건이 뭔데?”
“일본과 한국을 차지한 후 중국을 나눠 먹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아닙니다. 김영웅을 끌어들여 한국을 집어삼킨 후 세력을 불려 중국을 타도하고 이스트 성을 일본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최종 목적입니다.”
“김영웅도 지금쯤은 잘못된 것을 알 텐데, 권울헌은 어떻게 무사할 수 있지?”
“김영웅은 아직도 동맹관계라고 믿고 있습니다. 기타노 히로이키님이 김영웅을 계속 이용할 목적으로 죽은 무사시 길드 길마 오노 준이치의 애첩 둘을 선물로 보냈습니다.”
“병신 새끼!”
김영웅은 귀가 얇고 과시욕이 매우 심한 인물이었다. 이로 인해 누가 떠받들어주면 사지분간을 못하고 들떠 날뛰었다.
이번에도 분명 키타노 히로이키가 김영웅을 진짜 영웅인 것처럼 치켜세우며 듣고 싶은 얘기만 해줬을 것이다.
그 말을 홀딱 믿은 김영웅은 환인과 고구려 길드를 흡수하고 중국마저 집어삼킬 수 있다는 동상이몽에 빠져 전쟁을 시작했다.
‘시방새! 내 덕분에 목숨 건진 걸 알기나 할까?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지? 개놈의 새끼! 내가 살려준 목숨이니까 언젠가 내 손으로 꼭 거둔다. 그때까지 제발 죽지 말고 기다려라.’
“권울헌은 대가도 없이 그런 일을 한 거야?”
“야마토 길드 부길마 자리를 주기로 했습니다.”
“진짜 주는 거야?”
“이름이야 갖다 붙이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 그 말이 맞네.”
‘이 새끼 나 들으라고 하는 말 아니야? 표정이 비웃는 것 같은데. 너 조금 이따가 보자.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그러고 보니 1차 일본과의 전쟁 마지막 날에도 우물을 마시고 5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어. 독개구리가 잘못 들어가 죽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권울헌이 고의로 집어넣은 거였군. 개놈의 새끼!’
‘미래가 변해도 나쁜 놈은 변하지 않고 초지일관 나쁜 짓을 하네. 올곧은 놈이라고 해야 하는 거야? 아니면 뼛속까지 썩은 놈이라고 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이름을 처음 들어보네. 하긴 내가 바닥이라 당시 영웅 길드 부길마를 쳐다볼 처지가 아니었지. 그리고 놈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도 아니었고.‘
우물에 독개구리가 빠진 걸 모르고 우물물을 마신 사람 3,000명 중 500명 이상이 복통과 탈수 증상으로 사망했다.
권울헌이 푼 독은 먹은 지 2~3시간이 지난 후 발열과 함께 심한 복통과 구토 증상을 일으켜 사람을 죽게 하는 독으로 그나마 우물에 희석되며 피해가 조금 줄었다.
우물은 이스트 성 경비대가 해독 포션을 부어 다음 날 바로 사용할 수 있어 추가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죽자 공포로 인해 한동안 우물물을 기피하는 사람이 속출해 동남아시아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파는 놈들이 떼돈... 떼시간을 벌었다.
“제가 아는 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말씀드렸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정말 아는 거 다 말한 거야?”
“원하시면 제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일본에 두고 온 마누라 몸에 난 점까지 모두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새끼가 미쳤나? 더럽게.”
“죄송합니다.”
“뭐하나 묻자.”
“말씀하십시오.”
“사무라이는 무사도라고 해서 주군에게 충성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니야? 키타노 히로이키의 비밀을 다 폭로하고 살려달라는 건 무사도에 어긋나는 일이잖아.”
“다 옛날 말입니다. 세상이 변한 지 오래입니다. 일본에도 무사도를 따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무라이가 아닙니다. 그냥 동네 양아치일 뿐입니다.”
“야쿠자도 무사 흉내 내는 집단 아니었어?”
“저는 말단으로 조직에 이름을 올릴 수준도 안 됩니다. 심부름이나 하는 그런 건달입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시면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고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잡아온 4명 중 야마토 길드 행동대 부장 한 놈이 겁에 질려 물어보지도 않은 것까지 알아서 술술 불었다.
덕분에 우물물 독 살포 사건의 전말과 영웅 길드가 무사시 길드의 전쟁을 받아들인 이유를 알게 됐다.
나머지 놈들도 아는 것이 있는지 족치자 그동안 납치한 한국, 중국, 동남아 여성들에 관한 얘기와 마약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 등 열 가지도 넘는 비밀을 술술 불었다.
납치와 강간, 살해는 워낙 광범위하게 일어난 일이었고, 나도 만만치 않게 사람을 납치해 죽여 말하면 내 얼굴에 똥칠하는 짓이라 캐묻지도 않았다.
단, 마약은 예전에도 여러 번 문제가 돼 자세하게 파고들었다. 마약은 시나노 길드가 개발 중으로 미친 광대 버섯돌이가 뿜어내는 하얀 가루를 주원료로 식물에서 채취한 성분을 배합해 헤로인과 비슷한 성분의 마약을 개발 중이었다.
현재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잡아다가 약효를 실험 중으로 헤로인만큼 환각작용이 심해 중독되면 벗어나기 어려웠다.
“내가 살려준다고 말한 적 있었어?”
“네?”
“내가 살려준다고 말한 적 있었냐고 물어봤잖아. 내 말이 우스워? 씹는 거야?”
“아.아닙니다.”
“말해봐. 내가 그런 말 한적 있어? 없어?”
“그게... 한 것도 같고, 안 한 것도 같습니다.”
“죽을 때가 되니까 환청이 들리지?”
“살려주십시오. 집에 늦은 노모와 아내, 자식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집에 갈 방법이 있어? 있으면 알려줘. 그러면 살려줄게.”
“그건 저도 잘...”
“이 새끼가 장난하네.”
퍽!
“으어억~”
“내가 물어봤어? 네가 혼자 떠든 거잖아. 혼자 떠들어 놓고 왜 살려달라는 거야? 네가 혼자 떠들면 내가 살려줘야 해? 세상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퍽퍽퍽퍽퍽~
자신의 이름을 기시 노바슈케라고 말한 야마토 길드 행동대 부장을 팔다리가 조각조각 부서질 때까지 두들겼다.
나머지 놈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으로 잔인하게 대할수록 남아 있는 놈들은 말을 잘 들어 일이 빨리 끝났다.
박만수 309:109:10:33:41
권소희 120:088:23:10:09
4명을 족쳐서 빼앗은 시간이 248년밖에 안 됐고, 20%밖에 빼앗을 수 없는 소희는 더욱 심해 28명을 잡고도 84년밖에 구하지 못했다.
시간도 형편없었지만, 아이템은 더욱 가관으로 가장 좋은 게 매직이었고, 스티그마도 달랑 3개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쓰레기라 집 개조비용도 안 나왔다.
“어쩌실 거예요?”
“처리해야지.”
“그럼 제가 죽일게요.”
“얼굴도 모르는데 누군지 알고 죽이려고?”
“아! 그걸 생각 못 했네요. 오빠는 아세요?”
“나도 몰라.”
“그럼 어쩌죠?”
“잠입해서 권울헌이 누군지 알아봐. 우물에 접근할 때까지 찾지 못하면 뒤로 빠져. 그때는 내가 잡을 테니까.”
“오빠! 제가 잡을게요. 석궁보다 활로 잡는 거 멀리서 잡을 수 있어요.”
“어두운데 잡을 수 있겠어?”
“오빠보다 제가 시력 더 좋아요. 그리고 소희에게 전설의 대도 유비니스의 산호 귀걸이 빌리면 문제없어요.”
“알았어.”
경비병들의 절도 있는 경계를 받으며 코리아타운으로 스며들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가장 먼저 내린 조치가 우물 통제였다.
우물에 독을 탈 것을 염려해 내린 조치로 아주 잘한 행동이었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신입들과 힘없는 노인, 아이, 여자들에게 돌아갔다.
가뜩이나 우물물을 팔아 돈을 챙기며 사람들의 고혈을 빨던 길드들이 전쟁 기금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물값과 빵값을 올려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여기저기 세금 붙이는 능력은 지구나 판게아나 아주 탁월하네요. 사람들 고혈 짜는 능력으로 나라를 발전시켰으면 대한민국도 1등, 판게아의 코리아타운도 1등 했을 거예요.”
“나쁜 머리와 좋은 머리는 함께 하지 않아. 몰랐어?”
“학교 교육으론 알 수가 없죠.”
“지금은 인터넷이 있어 알려고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잖아. TV 보면 자기 소신을 밝히는 학생들도 많던데.”
“대부분은 불이익을 당할까 봐 납작 엎드려 있어요. 내신과 면접이 전가의 보도처럼 무섭거든요.”
“대가리가 썩으니 안 썩은 곳이 없네.”
“그러게 말이에요.”
소희가 영웅 길드로 잠입한 지 30분이 지났다. 시계는 배신자 기시 노바슈케가 말한 4시를 향해 빠르게 흘러 3시 57분 12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빠! 남자 두 명이 우물로 다가서고 있어요.”
“두 명?”
“네!”
“보자기나 상자든 놈 있어?”
“아니요.”
“젠장!”
횃불이 켜진 우물에는 영웅과 환인, 고구려 길드에서 파견한 보초 8명이 잡담을 늘어놓으며 졸음의 무게를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
“어떻게 하죠?”
“둘 다 잡아.”
“지금요?”
“그래!”
화살통에서 추가로 화살 한 발을 꺼내 입에 문 유정이 시위에 걸린 화살을 왼쪽 놈에게 조준했다.
두 발이 동시에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첫발은 시위를 적당히 당겼다 놓았다. 첫발이 날아가자 입에 문 화살을 재빨리 시위에 걸어 강하게 시위를 튕겼다.
티잉
“크아악~”
“케엑!”
“침입자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비상! 비상! 비상~~~”
“가자!”
“네!
활 실력이 일취월장한 유정이 100m 밖에서 우물에 접근한 두 남자의 가슴을 정확히 꿰뚫었다.
화살에는 스티그마 얼음의 차가운 향기까지 더해져 화살이 관통한 자리를 중심으로 하얀 얼음이 퍼져나갔다.
권울헌이 죽었는지 확인해야 했지만, 심장이 얼어붙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두려움에 쫓아오지도 못한 채 비명만 질러대는 보초들을 뒤로하고 소희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유유히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