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9 모리아 =========================================================================
59. 모리아
“일을 시키면 대충대충 하는 놈들이 있어. 나는 그런 놈이 제일 싫어. 자네처럼 명확한 증거를 가져와야 시킨 사람도 믿을 수 있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일 처리가 아주 깔끔하군. 마음에 들어.”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놈을 처리해줬으니까. 바라는 걸 말하게. 들어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들어줄 테니.”
“없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 편하게 말해.”
“정말입니다. 없습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속이 음흉하구먼.”
“당장은 필요한 게 없어서 그럽니다.”
“정말 그럴까?”
“네?”
“정말 바라는 게 없냐고 물었네?”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좋아! 공적을 쌓아 큰 걸 달라고 하는 것도 나쁠 건 없지. 흐흐...”
피타스 성주의 음흉한 웃음에서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피타스 성주가 1,000년 넘게 성주 자리를 지킨 건 주변에 멍청이만 가득해서가 아니었다.
반란을 이겨낼 강력한 힘과 높은 정보력 그리고 사람들을 휘어잡을 카리스마,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강인한 정신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레네와 산다는 걸 알고 있어. 그리고 내가 모레네와 모리아를 달라고 할 거란 것도 짐작하고 있고. 내가 모레네와 함께 들어왔을 때부터 뒷조사했을 거야. 그 정도 내용을 알고 있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이상할 것도 없지.’
‘걱정할 거 없어. 피타스 성주는 실리를 추구하는 성격에 분별력이 있어 내가 자기가 하는 일에 도움되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급하며 계속 이용하려 들 거야.’
‘그리고 모레네와 모리아는 피타스 성주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어. 이용하려 들면 손해만 봤지 이득이 될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거야. 피타스 성주의 기분만 건드리지 않으면 서로 손해 볼 일은 없어.’
“공적은 공적이고 나를 위해 일을 했으니 선물은 하나 줘야지. 받게.”
“감사합니다.”
“어때? 마음에 드나?”
“아... 네!”
“내가 아껴놓은 물건을 특별히 주는 거니까 다른 사람 주지 말고 자네가 꼭 사용해야 하네. 알았지?”
“...예!”
[이스트 성 공적 500 : 스탯+1]
[100첩(妾)도 1첩(妾)부터 : 책 내용대로 따라 하면 체력 스텟 100 상승]
‘이런 걸 선물이라고 주다니... 이 새끼 또라이 아니야?’
“줄 건 줬고, 받을 것도 받았으니 다음 임무를 주겠네. 괜찮지?”
“네!”
“이스트 성 지하에 아주 골치 아픈 놈이 하나 있네. 처음에는 지하도에 사는 작은 검은 쥐(Rattus rattus)에 불과했는데, 이놈이 2,500년을 살자 사람보다 더 똑똑해져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됐네. 최근에는 머리까지 굵어져 이스트 성을 집어삼키기 위해 밖으로 나오려고 하고 있네. 처리해줄 수 있지?”
“알겠습니다.”
“시원시원해서 좋군. 하하하하~”
피타스 성주가 두 번째로 준 임무는 괴물 쥐 스플린터 처리였다. 이놈은 내가 판게아에 온 지 3년째 되던 해 성에 침입해 주민과 경비병, 이방인을 닥치는 대로 공격해 200명이 넘는 사람을 죽게 했었다.
신장은 150cm로 초등학생만 했고, 네 발이 아닌 사람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저주 마법과 독 마법을 사용했다.
“이번 일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처리해주게. 놈이 밤마다 지하도를 돌아다녀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네.”
“알겠습니다.”
오늘도 역시 피타스 성주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목소리도 심하게 변조해 생김새도 유추할 수 없었고, 몸에서도 냄새가 나지 않아 변장을 풀고 옆을 지나가도 피타스 성주라는 걸 알 수 없었다.
‘이토록 철저하게 모습을 감추는 이유가 뭘까?’ 이상하네.‘
“피타스 성주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책을 줬을까요?”
“글쎄?”
“오빠가 달라고 한 건 아니죠?”
“피타스 성주가 친구도 아니고 이런 책을 어떻게 달라고 해?”
“남자들은 포르노 테이프 서로 돌려보잖아요.”
“아주 친하지 않으면 안 그래. 그리고 인터넷 활성화되기 전에 하던 짓이야.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런 걸 돌려봐.”
“어쨌든 야한 거 돌려본 건 사실이잖아요.”
“여자들은 안 그래?”
“똑같죠. 한창 성에 눈뜰 나이니까요.”
“소희랑 둘이서 매일 포르노 봤구나?”
“저하고 소희가 본 건 원색적인 포르노가 아니라 예술영화인 에로영화였어요. 우리는 포르노 싫어했어요.”
“왜 싫어해? 그 좋은걸.”
“여자들은 좋아하는 부류와 싫어하는 부류로 극명하게 나뉘어요. 남자처럼 모두 좋아하지 않아요.”
피타스 성주가 준 100첩(妾)도 1첩(妾)부터는 여자를 다루고 정력을 키우는 지침서와는 거리가 먼 춘화도를 책으로 엮은 포르노 만화였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여자 넷을 데리고 30가지 이상의 자세를 바꿔가며 여자를 만족시키는 포르노 지침서였다.
“피타스 성주가 오빠와 저희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나 봐요. 그러니 이런 걸 줬겠죠.”
“걱정할 거 없어. 철저한 실리주의라 바보 같은 짓을 하진 않을 거야.”
“모레네 언니와 모리아 언니를 이용해 오빠에게 무리한 임무를 줄 수도 있잖아요?”
“지구라면 그랬겠지. 그러나 이곳은 판게아의 이스트 성이야. 이스트 성에서 여자의 가치는 아이를 많이 낳는 것,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 욕망을 해결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 그리고 내겐 너와 소희가 있다는 걸 성주도 알고 있어. 지구 여성도 아닌 이스트 여성에 생명을 건다고 생각하진 않을 거야.”
“그래도 걱정돼요. 피타스 성주는 천 년 넘게 이스트 성을 지배한 능구렁이에요. 이용할 수 있는 건 뭐든 이용하려 들 거예요.”
“조심하고 또 조심할게.”
“오빠! 약속 하나만 해주세요.”
“어떤 거?”
“위험한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줘요. 그게 저와 소희의 생명이 걸렸다고 해도 오빠가 다칠 수 있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유정이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 그러나 그런 약속은 할 수 없어. 그건 함께하는 연인, 부부가 할 약속은 아니야.”
“하셔야 해요. 안 그러면 우리가 모두 다쳐요.”
“혼자만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게 모두 다치는 일 아닐까?”
“오빠가 있어야 우리도 있어요. 오빠가 없으면 우리는 들판에 세워놓은 허수아비만도 못해요. 아시잖아요. 영웅 길드가 저와 소희를 노리면 그 날로 죽은 목숨이라는 거. 그리고 오빠가 없으면 저와 소희 살 수가 없어요. 모레네 언니도 마찬가지고요. 지옥 같은 판게아서 버틸 수 있었던 건 오빠가 있긴 때문이에요. 오빠가 없었다면 지금 옆에 있을 수도 없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예요. 오빠가 있어야 저도 살고 소희도 살고, 모레네 언니도 살아요.”
피타스 성주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자 유정이만 집에 남아 있었다. 모레네와 모리아 자매는 잠시 가게 문을 닫고 공방과 대장간에 아이템을 넘기러 갔고, 호기심 많은 소희는 자매를 따라 구경을 갔다.
돌아왔을 때 집에 아무도 없으면 내가 심심해할까 봐 유정이 홀로 남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둘만 있자 유정은 까불대던 모습이 사라지고 처음 만났을 때 사려 깊은 모습으로 돌아갔다.
소희를 만난 유정은 한동안 아이처럼 굴었다. 그것이 엄마를 잃은 슬픔을 이겨내려는 노력이란 걸 알기에 모른 척 내버려뒀다.
시간이 약이라고 상처 난 마음을 조금씩 추스르자 차츰 배려심 깊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금 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유정은 자신이 아닌 내 안전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했다.
‘입으론 우리라고 하면서 마음은 나부터 생각하고 있으니... 나보다 더 이기적인 놈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내가 생각해도 정말 나쁜 놈이다.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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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부는 저와 언니가 정말 예쁘다고 생각하세요?”
“응, 예뻐!”
“취향이 정말 독특하네요. 우리 자매를 예쁘다고 말할 사람은 세상에 형부가 처음이자 마지막일거예요. 호호호호~”
“내가 보기엔 이스트 성 남자들 눈이 삔 것 같아. 눈이 부셔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모레네와 모리아를 못생겼다고 하다니 눈이 모두 동태 눈깔이야. 그런 썩은 눈깔은 다 파내버려야 해.”
“호호호호~ 형부 유머 감각도 아주 뛰어나시네요.”
“아니야. 사실을 말한 거야.”
“그 얘기를 피타스 성주님이 듣는다면 형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피타스 성주님 부인들 하나같이 뚱뚱하고 엉덩이가 펑퍼짐하거든요.”
“그 양반 취향 참 고상하네. 나는 돈 주고 데려가라고 사정해도 절대 같이 안 살 거야.”
“저쪽 세상은 어떤지 몰라도 이쪽 세상에선 오빠가 이상한 거예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다면서요?”
“그렇지.”
“그것 봐요. 이스트 성 법을 따르지 않은 오빠가 이상한 거잖아요.”
“이상하면 어때? 우리만 좋으면 되지. 안 그래?”
“맞아요. 우리만 좋으면 돼요.”
첫날 모레네와 함께 별을 구경한 옥상에서 오늘은 모리아와 별을 구경하며 수다를 떨었다.
스탯북 100첩(妾)도 1첩(妾)부터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모리아가 필요했다. 무조건 4명의 여성을 상대로 질퍽한 정사를 벌어야만 스탯북이 원한 요건을 충족해 체력 100을 얻을 수 있었다.
스탯북 때문에 모리아를 내 것으로 만들려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이미 혼수목록에 포함돼 있어 부담은 없었다.
“모리아는 어떤 남자가 좋아?”
“어릴 적엔 피타스 성주님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었어요.”
“지금은?”
“형부 같은 남자요.”
“왜 바뀐 거야?”
“이스트 성 남자들은 형부처럼 다정다감하지 않아요. 이렇게 함께 옥상에 누워 별을 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집에 오면 씻고, 밥 먹고, 자기 할 일 하다가 욕심 채우고 지쳐서 자요. 다정하게 말 건네는 일도 없고요.”
“지구에서도 예전에 그런 사람 많았어. 밥 뭇나? 아는? 고마 자자! 이렇게 세 마디만 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드물지만 지금도 있을 거야.”
“그 남자 이스트 성에서 살아야겠네요. 성격이 여기랑 딱 맞네요.”
“무뚝뚝하다고 속마음까지 그런 건 아닐 거야.”
“오빠가 이스트 성 남자들을 잘 몰라서 그래요. 이스트 성은 여자가 남아돌아 사고로 죽으면 새 여자를 데려다가 살면 그만이에요. 항상 여자는 많고 남자는 적으니까요.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사람이 아닌 부속품 정도로 취급하죠.”
“거부하면 되잖아?”
“가부장제가 심해 혼사에 관한 결정은 아빠에게 있어요. 그리고 딸은 밥만 축내는 식충이라고 생각해 지참금만 내면 무조건 내주죠.”
“지참금?”
“몰랐어요? 이스트 성에서 여자를 데려가려면 지참금을 내야 해요. 오빠 봉 잡은 줄 아세요. 저와 모레네 언니를 날로 먹었잖아요.”
“얼마면 되는데? 얼마면 너를 살 수 있는데. 말해봐~ 원하는 만큼 줄 테니까!”
“호호호호~”
이스트 성에서 남자가 여자를 데려오려면 지참금을 줘야 했다. 자유민 기준으로 평균 30년으로 시간당 5,000원에 30년간 하루 8시간 노동하는 것으로 계산하면 4억 3,800만 원의 엄청난 거금이었다.
그러나 모레네 같은 완벽한 여자를 단돈 30년에 사 온다는 건 로또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영원한 생명을 가진 판게아에선 1,000년이고 10,000년이고 끝없이 부려먹을 수 있었고, 몸도 20대 초반의 파릇파릇한 육체라서 밤일도 질리지 않았다.
이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많이 남는 장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