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66 주아 (66/68)

00066  주아  =========================================================================

                                    

66.

“나는 판게아 대륙 이스트 성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길드 중 영웅 길드의 길마 김영웅이다. 여러분의 판게아 입소를 진심으로 환영한다.”

‘미친 새끼! 군발이 티 내는 것도 아니고 입소가 뭐야? 그리고 환영이라니. 갑자기 끌려와 불안해 미치려는 사람들에게 환영이라니, 머리 나쁘면 손발이 고생이라고 했는데... 부하들 뺑이 치는 게 눈에 선하다. 병신 새끼!’

“새로운 환경에 얼떨떨하다는 거 안다. 그러나 넋 놓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너희 왼팔에 새겨진 숫자는 장난이 아니다. 숫자가 모두 영이 되면 너희는 싸늘한 시체로 변한다.”

웅성웅성 

“이스트 성에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다.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너희 팔목에 있는 숫자, 시간을 빼앗고 죽이려할 것이다. 두 달 전에도 일본의 침략에 많은 사람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영웅과 환인, 고구려 길드가 일본의 야욕을 깨고 대한민국을 지켰다. 너희도 그 일에 동참해 이곳 판게아에 대한민국의 깃발을 높이 세우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웅성웅성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판게아에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우도록 선택돼 이곳에 오게 됐다. 자랑스러워해라. 너희는 단군에게 선택받은 위대한 사람이다. 이곳은 영원한 생명, 영원한 젊음이 존재하는 판게아다.”

김영웅이 미친놈처럼 두서없이 말을 지껄였다. 연설문으로 지면 낙제점으로 판게아에 대해 알지 못하는 신입생들에겐 자다 봉창 터지는 소리로밖엔 들리지 않았다.

“오빠! 저 새끼 초등학교는 졸업했어요?”

“갑자기 학교는 왜?”

“말 더럽게 못 하잖아요.”

“장교면 육사나 학사 출신 아닌가?”

“말하는 꼴을 보면 대학이 아니라 중학교도 졸업 못 한 것 같네요. 저놈 초퇴 아닌가요.”

“초퇴? 초등학교 퇴학?”

“네.”

“하하하하~”

김영웅의 뒤를 이어 환인 최민순과 고구려 이용호도 자기 자랑을 한껏 늘어놓은 후 길드에 가입해야 할 당위성과 사명감 그리고 길드가 대한민국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개소리를 지껄였다.

놈들을 보고 있자 초등학교 조회시간 생각이 났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 교장은 매주 월요일 조회 때마다 기본 한 시간은 주둥이를 놀려댔다.

어린아이들 세워놓고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카세트도 아니고 했던 말을 무한 반복했다.

내용의 절반은 자기 자랑이었고, 나머지는 가족 자랑, 자식 자랑,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예절 교육이었다.

쪽발이 사상을 머리가 터지도록 욱여넣었는지 단어만 틀렸지 내선일체를 부르짖던 일제 앞잡이처럼 국가에 충성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성은 손이고 생긴 건 일본원숭이 닮았다고 손오공이라 불렸던 교장으로 물값 아껴야 한다면서 볼일은 집에서 보고오라고 했고, 운동장에 잡초가 나지 않도록 뿌린다며 소금을 잔뜩 걷어 선생들만 사용하는 테니스장에 왕창 묻기도 했다.  

당시 선생 중에는 학생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놈들이 많았다. 점심시간에 술 처먹고 들어와 아이들 귀싸대기를 마구 날리는 놈도 있었고, 묻는 말에 올바른 답을 못했다고 몽둥이로 손등과 무릎을 신나게 조지는 놈도 있었다.

신입생들을 상대로 어깨에 힘을 꽉 주고 말하는 김영웅과 최민순, 이용호의 모습이 그때 늙은 교장과 교사들의 모습처럼 보였다.   

이스트 성 경비대가 부서진 차량에서 사람들을 빼내고 간단한 주의사항을 알려준 후 해산한 때가 밤 8시 10분이었다. 

시간이 많이 늦었지만, 그때는 마법 등불로 주위를 환하게 밝혀 크게 어둡지 않았다.

그러나 영웅과 환인, 고구려 길마가 나서자 환한 마법 등불 대신 길드원들이 횃불로 주위를 밝혀 잘 보이지도 않았고, 1시간 넘게 헛소리를 지껄여대는 통에 어둠이 짙게 깔리며 음산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놈들은 지치고 다친 사람들의 상태는 안중에도 없었고, 신입생들을 자기 길드로 끌어들이는 일이만 관심을 보였다.

“9차까지는 천국이었네요. 치료도 해주고 3일간 쉴 수 있게 돌봐도 주고 했으니까요. 그때는 그게 그렇게 고마운 일인 줄 몰랐는데, 저 사람들 보니까 피타스 성주가 한없이 고맙네요.”

“피타스 성주가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면 보내주실 거예요?”

“아니!”

“그런데 왜 물어봤어요?”

“관심 있는 것 같아서.”

“오빠 소유욕은 하늘을 찌르네요. 도움 준 걸 고맙다고 관심 있다고 물어보다니... 그것도 조강지처에게. 너무한 거 아니에요?”

“농담이야.”

“무슨 농담을 그렇게 살벌하게 해요. 사람 서운하게.”

“그러면 다시는 내 앞에서 다른 남자 칭찬하지 마. 기분 나빠!”

“농담 아니죠? 그렇죠?”

“몰라!”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질투하는 사람은 세상천지에 오빠밖에 없을 거예요. 킥킥킥킥~”

유정이 피타스 성주를 칭찬하자 이해할 수 없는 질투심이 활화산처럼 피어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호감이 간다는 말도, 좋아한다는 말도 아니었다. 벌벌 떠는 이방인들을 보며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질투심을 참지 못하고 입을 놀리고 말았다. 창피했지만, 화가 가시지 않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세상에서 커플을 갈라놓는 가장 무서운 병이 집착이었다. 집착은 상대를 지나치게 간섭하고 감시하고 의심하게 만드는 병으로 적당한 관심은 사랑을 깊어지게 하지만, 지나친 관심은 일본 에로영화 완전한 사육과 같은 미친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었다.

나는 그 정도로 상태가 심각한 건 아니라서 사사건건 간섭하고 옭아매려 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정말 싫었다. 

이건 판게아에서 생긴 병이 아니었다. 10년 넘게 된장년들을 따라다니며 생긴 트라우마로 비싼 밥에 명품 가방을 챙긴 된장년들은 언제나 보란 듯이 멋진 남자를 만나 내 속을 까맣게 태웠다.

그것이 화인처럼 가슴에 깊이 남아 내 여자가 다른 남자를 칭찬하고 좋게 얘기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왜 이런지 말하면 옹졸하다고 말하겠지? 아니야! 바보 같다고 말할 거야. 내가 생각해도 형편없는데, 유정이는 어떻겠어? 한심함의 끝이겠지. 박만수! 그동안 대체 무슨 짓을 하며 산 거냐? 에휴~’

“오빠! 무슨 생각하세요?”

“어? 아.아니야! 왜 불렀어?”

“신입생들 숙소로 출발했어요.”

“지금 몇 시야?”

“9시 40분이요. 시간이 없어 천막으로 이동한 다음 길드에 가입시키려는 것 같아요.”

“가자!”

“네!”

영웅과 환인, 고구려 길드가 신입생들을 강제로 길드에 가입시키려는 한 것은 시간 회귀 전에도 했었던 짓이었다. 

이번에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전쟁이 끝난 후 강압적으로 길드에 가입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1년이 지난 후 전쟁이 일어나 시기적으로 몇 달 앞당겨진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무섭게 성장한 대한제국까지 대형 길드가 4개라 서로 신경전이 지금보다 배는 심해 대놓고 노골적으로 가입을 강요하진 않았다.

‘이러면 대한제국 길드도 나타나지 않을 수 있겠네? 아닌가? 큰 흐름은 바뀐 적이 없었어. 자잘한 것들만 변했어. 그렇다면 이스트 성에 한 획을 그은 대한제국도 분명 생겨날 거야. 12차 때 김동규가 넘어오면 많이 시끄럽겠네.’

두 줄로 늘어선 사람들이 불안한 눈으로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남문을 통과해 우측에 있는 코리아타운으로 이동했다.

낯선 환경으로 인한 두려움과 착륙할 때 다친 상처로 인해 상태가 모두 엉망이었지만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신입생들 옆으론 날카로운 칼을 툭툭 치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 3대 길드원과 그 뒤를 따르며 기회를 노리는 중소 길드원들이 살벌한 눈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불평불만을 입에 올린다는 건 내가 본보기로 졸라 맞겠다는 선언과 같았다.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이럴 땐 납작 엎드려 있는 게 상책이었다.    

주아는 젊은 여자들만 따로 모아놓은 천막에 들어갔다. 영웅과 환인, 고구려 길드는 신입생들을 남녀로 분리한 후 다시 연령별로 10대와 20대, 30대와 40대, 50대 이상으로 분류해 천막을 배정했다.

단, 초등학생과 갓난아이와 함께 온 여성은 아이가 울고불고 난리를 쳐대 같이 있게 했다. 

이외에는 부부, 형제자매, 연인에 상관없이 분류 규칙에 따라 지정한 천막에 강제로 밀어 넣었다.

이 과정에서 여자 친구와 떨어지지 않으려 항의하던 용기(?) 있는 남자가 나타났다. 

안 그래도 본보기가 필요하던 시점에서 때 마쳐 나타나 준 고마운 남자를 영웅 길드원들이 반가운 마음으로 환영해줬다.

남자는 신입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빨이 몽땅 뽑히고 팔다리가 부러져 인사불성이 된 채로 시간을 빼앗기는 잔인한 모습까지 보여주며 동기생 중 첫 번째로 목숨을 잃었다.

죽은 남자의 여자 친구는 자신을 위해 항변한 남자친구를 위해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은 채 몸만 부들부들 떨어댔다.  

사실 남자는 여자 친구와 떨어지는 것에 거칠게 항의한 것도 아니었다. 같이 있으면 안 되냐고 한마디 물어본 것을 트집 잡아 아작낸 것이었다.

본보기로 보여주자 신입생들은 군기 바짝 든 신병처럼 손가락만 까닥해도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여기 아우슈비츠(Auschwitz) 아니죠? 제가 아는 코리아타운이죠?”

“아우슈비츠면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 강제 수용소 말한 거야?”

“맞아요.”

“그렇게 보여?”

“금방이라도 가스실에 넣을 것 같은 분위기잖아요.”

“그건 너무 심했다.”

“사실이 그렇잖아요. 표정들 보세요. 죽으러 가는 표정이에요.”

“그렇다고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비유하는 건 너무 심했지.”

유정의 말처럼 사람들을 분류해 강제로 천막에 밀어 넣는 모습은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강제 수용소에 수용하는 모습과 판박이처럼 같았다.

옷을 벗기고 죄수복으로 갈아입히지만 않았을 뿐 두려움에 벌벌 떠는 사람들의 표정은 쉰들러 리스트에서 봤던 그 모습과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오빠!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가 유대인만 학살한 곳이라고 알고 있어요?”

“쉰들러 리스트에서 그렇게 나온 것 같은데... 아니었어?”

“그 영화 만든 스티븐 앨런 스필버그 감독이 유대인이에요. 그래서인지 실제 내용과 많은 부분이 달라요.”

“그래?”

“네! 가장 많은 희생자가 유대인일 가능성은 크지만, 폴란드인과 소련군 포로, 집시 등도 많이 죽었어요. 영화에서처럼 유대인만 죽은 게 아니에요.”

“그럼 사기 친 거야?”

“전혀 없는 내용은 아니니 사기라고 할 순 없지만, 자기들만 죽은 것처럼 과장해 유대인이 피해자라는 생각을 전 세계에 심으려 한 건 분명해요. 연합군이 나치가 포로수용소에서 죽였다고 발표한 유대인 수는 유럽에 사는 유대인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았어요. 말도 안 되는 얘기죠. 나치는 유대인보다 집시와 장애인, 공산주의자들을 더 많이 죽였는데, 이들은 TV와 신문에도 몇 명 거론되지 않았죠.” 

유정이를 통해 아우슈비츠의 진실을 알게 되자 나도 언론에 속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전쟁 영화에는 미국인과 소련인,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일본인 등이 주인공과 군인으로 주로 출연했다.   

많이 참전한 나라 군인이 많이 나오는 건 이상할 게 없지만, 아홉 번째로 많은 군인이 참전한 인도는 화면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만 명도 아니고 십만 명도 아닌 무려 2,393,891명이 전쟁에 참전했지만, 이들은 가물에 콩 나듯 한 번 터번(Turban) 쓴 모습이 보일 뿐이었고, 나와도 엑스트라로 죽은 장면만 스치듯 지나갔다.

“오빠는 바보같이 TV에 나오는 대로 믿었는데... 나보다 유정이가 백배는 똑똑하네.” 

“그렇지 않아요. 저도 인터넷 뒤지다가 우연히 알게 된 거라 깊이 있게 알진 못해요.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아요.”

“진실을 알고 있다는 건 엄청난 일이야. 잘못 알고 있는 나에 비하면 백배는 훌륭해. 멋져! 짱이야!!”

“헤헷~”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