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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 매지션즈-1화 (프롤로그)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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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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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허억, 하아..."

나무 뒤로 급히 몸을 숨긴다.

일순 다리에서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그들은 예상보다 빨리 쫓아왔다.

야밤을 틈타 바위 마법으로 인영을 만들어가며 추격자들을 따돌리려 했다.

하지만 우연히 밖에 나와 있던 인원들과 연락이 닿은 건지, 불현듯 추격자들이 정면에서도 나타났다.

황급히 몸을 숨겨서 들키지는 않았지만, 계획에 없던 일이라 당황스럽다.

포위되어 가고 있는 게 자명하다. 빠르게 측면으로 움직여야만 한다.

"젠장..."

붙잡힐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후들거리는 다리를 원망하며, 나무를 붙들고 일어선다.

뒤에서도 추격자들이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최대한 멀리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

"크윽!"

누군가 갑자기 뒤에서 몸을 부딪쳐와, 다시 넘어지고 말았다.

"이거 놔!"

"쉿. 조용히 해."

몸을 돌려 밀쳐내려 했더니 온몸으로 눌러온다.

작은 손바닥이 내 입을 막았다. 뿌리치려고 손목을 잡았지만, 이상하게도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읍읍!"

"알았어. 도와줄 테니까 가만히 있어."

상대가 더욱 밀착해 온다.

어슴푸레한 새벽이지만, 달빛을 받아 은은한 색을 내뿜는 하얀 머리카락이 내려와 얼굴을 간지럽힌다.

금빛이 살짝 감도는 갈색 눈동자는 나를 지긋이 응시하고 있다.

체구는 작은 것 같은데 나보다도 훨씬 큰 눈. 얼핏 무감정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 진지함이 한껏 묻어나고 있다.

귀여움을 한껏 지녔으면서도, 예쁘게 생긴 이목구비를 숨길 수 없는 은발의 미소녀...

... 일 리가 없지.

"그러니까, 넌..."

매지션즈, 그러니까 내가 방금 탈출한 곳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아마 나한테 피규어를 받아 갈 때 자기소개 했던 것 같은데...

"너한테 피규어를 받아 갈 때, 자기소개 했던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솔직히 1/1 스케일의 미소녀 피규어 받아 가는 오카마들 이름 따위 기억할 리가 없잖아!

하지만 내가 여기서 탈출하느냐의 여부는 이 녀석한테 달린 게 분명하다. 저자세로 나갈 수밖에.

"쉿, 들키고 싶어?

"......"

"... 테사. 다음에도 기억 못 하면 죽일 거야."

아, 그래.

어떤 성격인지는 확실히 파악했다.

"크리스, 맞지?"

"그게 본명은 아... 아니, 맞아, 맞아요."

매섭게 쳐다보길래 그냥 납득했다.

크리스.

매지션즈에 들어간 후, 이름이 너무 남성스럽다고 강제로 개명 당해 붙여진 이름이다.

탈출하는 즉시 버리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조금 더 써야 할 것 같다.

"어디 가는 거야?"

"네?"

"두 번 묻게 하지 마."

테사는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매지션즈 내에서 난리가 났을 텐데, 어째서?

"음... 그게......"

"..."

"그러니까..."

"......"

점점 테사의 표정이 '몹시 불만족스럽다'로 바뀌어간다.

거짓말을 해 봤자 통하지 않을 것 같으니 정공법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매지션즈에서 나가고 싶어서 탈출했어요."

"왜?"

마법에 통달한 선생님들과 동료들,

매 끼니 제공되는 호화로운 식사,

아늑하고 넓은 개인 공간.

게다가 이게 전부 평생 무상 지원.

마법사들이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데는 최상의 환경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곳을 뛰쳐나왔다.

왜냐고?

"남자이고 싶으니까요."

"매지션즈의 사람들은 모두 남자인데?"

"생물학적인 남자가 아니고, 진짜 남자! 낭자애가 아니고 남자애이고 싶다고!"

낭자애가 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

매지션즈.

먼 과거, 권력 집단의 중심에 서서 이익을 독점하던 남성 마법사들이, 새로이 자리를 위협하는 여성 마법사들에게 대항하기 위한 연구 모임에서 출발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들은 남성 마법사만의 권리 독점을 주장했지만, 끝내 무너졌다.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후, 근시일 내의 권력 재창출을 꿈꾸며 쌓아두었던 막대한 자산을 모아 이 연구 모임을 확대 발전 시켜 나갔다. 수도 근처의 동굴에 거점을 마련하고 마법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다분히 권위주의적이었던데다 당장의 손해로 인해 피해 의식에 찌들었던 그들은, 다음과 같은 행동 강령을 배포했다.

­ 모든 마법사는 매지션즈에 속해 일생을 바쳐야 한다.

­ 여성은 마법사라는 호칭을 쓸 수 없다.

­ 행동 강령을 어길 경우 전력을 다해 응징한다.

어딜 보더라도 차별의 여지가 다분하지만,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마법사의 절반이 사라져 준다고 하니 여성 마법사들 ­ 이젠 마녀라고 지칭하는 존재들은 자신의 몸값을 올릴 수 있었기에 호칭 따위로 뒤끝을 보이는 것 정도는 쿨하게 받아넘겼다.

남성 마법사들에게는 처음부터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편안하게 자신의 실력을 쌓을 기회가 생겼다. 게다가 한때 높은 지위에 군림했던 분들과 함께 다시 그 자리에 오르는 꿈을 준비할 수 있었다.

국가들의 입장에선 그들을 대체할 마녀들이 충분히 있었고, 매지션즈가 딱히 주변에 피해를 주는 것도 없으니 별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매지션즈는 태어나, 행동 강령을 철저히 지키며 고립되어 갔다.

권력을 되찾는다는 꿈은 대를 거치며 점차 희석되어 갔고, 순수하게 마법 연구를 하는 집단으로 굳어져 갔다.매지션즈에 속해야 한다는 행동 강령은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는 것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록이 남아 있진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법사들을 강제로 낭자애로 만드는 전통이 생겨났다!

매지션즈 내 도서관에서 모든 역사책을 훑어본 바, 분명 설립 당시에는 이런 전통 따위 없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전통을 넘어 행동 강령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를 철저히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문화 속에서 다들 강제로 낭자애가 되어갔다.

어릴 적의 나는 마법을 알려주고, 진정한 남자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에 속아 순순히 매지션즈에 들어왔고

낭자애로 개조당해 살아간 지 어느덧 10년.

수많은 치욕을 견디며 탈출을 준비했다.

남자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수많은 미녀와 함께하는 미래를 되찾기 위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매지션즈에서 떠나고 싶다는 거지?"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그보다 슬슬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요."

"걱정 마, 내 마법 알잖아."

"아... 그렇네요."

이름도 몰랐는데 어떤 마법을 쓰는지 알 턱이 없다.

하지만 아까 반응에 비추어 봤을 때, 모른다고 이실직고하면 이 자리에서 죽임을 당할 것 같으니 적당히 넘겼다.

나중에 또 물어보면 1/7 확률로 도박을 해야 할 판인데... 기회가 되는 대로 스스로 마법을 쓰도록 유도해 봐야 하나?

"그리고 이제 말 놓지? 언제부터 존댓말 하는 사이였다고 그러는 거야?"

"그... 알았어. 아무튼 저들부터 따돌리고 얘기하면 안 될까?"

고개를 끄덕이곤 손을 내미는 테사.

이 녀석의 마법이 얼마나 대단한진 몰라도, 지금은 뾰족한 수가 없다.

그저 믿고 나아가야만 한다.

­­­

"조금 쉬었다 가자."

말하며 나무 그늘에 등을 기대는 테사. 그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테사와 마주친 이후, 그저 테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나아가기에 불안했지만 별수 없었다. 추격자들에게 들킬 뻔한 상황도 여럿 있었지만, 운이 좋았는지 결과적으론 한 번도 발각되진 않았다.

"쟤네 포기한 것 같지?"

"그런 것 같아. 고마워 테사."

"별말씀을."

다들 지쳐서 돌아갔겠지.

골방에 갇혀서 낭자애로 강제개조 당하는 마법사들의 체력이라고 해봤자 별것 없을 수 밖에.

실력 있는 마법사들이 나섰다면 곤란할 뻔했지만, 그들은 이 정도 일론 나서지 않았다.

이미 속세에 초월한 자들과 행동 강령을 지키며 틀어박혀 살아가는 꼰대 낭자애들 뿐.

이것이 매지션즈의 현실이다.

그리고 지금, 추격을 따돌리고 매지션즈 소굴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도로에 도착했다.

굳이 깊게 쫓아오진 않을 것이다. 절차상 뒷일은 인퀴지터에게 맡길 테니, 앞으론 인퀴지터에게 발각되지 않는 선에서 행동하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제, 바깥세상에서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은...

"크리스, 이제 남자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뭐야, 어떻게 알았어?"

"실실 웃고 있으니까, 변태."

속마음을 읽는 마법 뭐 그런 건가?

"이제 와서 그게 가능할까? 그리고 그렇게나 남자로 살고 싶었으면 마법을 포기하면 됐잖아."

"그건 안돼."

"왜?"

"그, 그러니까..."

가진 것도 없는데, 마법까지 없으면 '마법을 배워 인기 있는 상남자가 되어 아름다운 여인들과 함께한다'는 원대한 계획의 초장부터 무너지는 거니까.

비록 아직은 여성형 피규어 만드는 거밖에 할 줄 모르지만... 그것도 내 의지가 아니다. 망할 매지션즈 때문이다!

아무튼 사실대로 말할 순 없다.

"마법을 배우고 싶어서 매지션즈에 들어갔던 거니까."

"그래? 그럼 마법을 배우러 가면 되겠네."

"응?"

"매지션즈 밖에서 마법사로 살아가려면 인퀴지터 정도는 박살 낼 수 있어야지."

"흐음......"

일리는 있다.

하지만 더 늦어지면 되돌릴 수 없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고, 10년이나 강제로 낭자애로 살아왔기에 하루빨리 남자애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리고 만일의 상황에서 마법을 써야 한다면, 여자애처럼 보이는 편이 낫잖아? 마녀인 척 할 수 있으니까."

"오... 그렇긴 하네."

"바보 크리스. 그러니까 내 이름도 까먹지!"

"네네. 테사 님, 바보라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되돌릴 수 없게 된다면 이미 10년이 지나서겠지, 몇 년이 더 추가되더라도 별 차이는 없을 것 같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내 최종 목표를 위해서도 마법을 익히긴 해야 하니까, 테사의 말대로 해야 할 것 같다.

......

자꾸 테사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 같은데...

뭐, 상관없나.

"매지션즈 탈출도 별거 없었네. 크리스, 출발할까?"

몸을 일으키는 테사.

저 녀석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별 탈 없이 매지션즈를 빠져나오긴 했다.

...

아니 잠깐,

테사는 어떻게 매지션즈에서 탈출한 거지?

"그러고 보니 너는 어떻게 나왔냐?"

"나? 걸어서 나왔는데?"

"응?"

"혹시 몰라서 인퀴지터 등록도 해놓고 나왔지만, 필요 없더라."

"뭐라고? 너 설마..."

인퀴지터

아까도 테사가 언급했었지만, 행동 강령을 지키기 위해 매지션즈 밖에서 행동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에 매지션즈로부터 위임을 받은 자들의 호칭이다. 주로 마법사들이지만, 능력이 뛰어나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기사나 용병 같은 자들이 임명되기도 한다.

이는 마법사들이 매지션즈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테사가 인퀴지터로 등록했다는 건...

"보험이야. 애초에 잡아갈 거면 도와줄 이유가 없잖아?"

"하지만..."

"나도 마법을 배우려고 매지션즈에 들어왔는데, 알다시피 내부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까."

확실히, 매지션즈의 내부는 썩을 대로 썩어 있다.

무엇이든 배움에 있어서 환경이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겉으로는 매지션즈가 마법사들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마법사이기만 하면 가만히 있기만 해도 의식주를 해결해주니, 방탕하고 게을러지기 딱 좋은 환경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마법사들이 호의호식하며 여생을 낭비하고 있고, 그저 단 하나뿐인 문제의 해결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성이 없다'는 것.

매지션즈에서는 위대한 연구 업적을 남긴 대마법사들 외에는 후손을 남길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 정도의 수준까지 도달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리 빨라 봐야 50대 즈음에나 가능한 일이다.

결국 대다수의 마법사들은 대를 거쳐 가며 어떻게 성욕을 풀지 고민을 거듭했고, 이 문제를 다양한 방식을 통해 내부에서 해결하려고 시도한 것 같다.

마법사들을 낭자애로 만드는 행동 강령이 조용히 추가된 것도 아마 이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또한 내가 10년 동안 피규어를 찍어내야 했던 원흉이기도 했다.

"정말 잡아가지 않는 거 맞아? 스파이 같은 건 아니지?"

"크리스, 피규어나 만드는 낭자애 주제에 자의식이 높네."

"큭..."

약간 의심스럽긴 하지만, 이번에도 믿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자, 목표가 같은 것도 알았으니 어서 출발하자구."

"어디로 가려고? 길은 아는 거야?"

"어디든 일단 가보면 알겠지. 크리스, 얼른 와!"

좌측의 길로 인도하는 테사.

아아, 정말 매지션즈를 떠나는 거라는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반드시 마법을 마스터하고, 상남자로 돌아가 아름다운 여인들과 함께하는 삶을 되찾고 말 거다!

"맞아, 마지막으로 정정할 게 있어. 나도 매지션즈에서 나왔지만,"

"응?"

"난 여자야."

하아...

이 녀석,

이미 남자로서의 인생은 끝나 버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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