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서큐버스 필리아 2
* * *
"마법 아이템이라는 게 정확히 뭔가요?"
우리가 있는 곳은 올리비에 시내에 있는 한 마법 아이템 상점.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하려고 찾아왔다.
뒤늦게 들어온 라이디는 처음 보는 것들이 신기한지 이것저것 둘러보며 물어봤다.
"마법에는 여러 부류가 있어. 그중에서 마법의 일종으로 마술이 있는데, 7속성 외의 마법을 다루기 위해 외부의 도움을 받아 완성해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어. 마력을 주입하는 등 마법이 개입해야 할 여지가 많지만, 그 비중이 크진 않아서 처음엔 능력이 부족한 마법사들이 주로 연구했었는데..."
"아하... 이거 예쁘네요!"
"......거기 가격표 밑에 써진 능력이 있는 거야."
그녀의 '정확한' 마법 아이템에 대한 관심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가 버렸나 보다.
마법 아이템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 자체는 크게 비싸지 않지만, 운용하기 위해서는 마력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아이템을 사용할 때 마법사나 마녀가 아닌 이상 '마력석'이라는 마력을 지닐 수 있는 보석을 이용해야 한다.
마력석은 가격도 비싼 데다, 마력이 고갈되면 충전을 해야 하는데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
결국 마법 아이템은 국가 단위로, 혹은 부호들 사이에서나 쓰이는 고가의 편의 도구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마법 아이템의 수요나 공급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마녀들의 생활 형편이 나빠지다 보니 푼돈을 받고 마력석 충전이나 하는 마녀들이 늘어났고, 그 여파로 이쪽 산업도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한다.
"보기보다 똑똑한데? 책에 나온 내용 그대로 읊네."
"내가 보이는 게 어때서?"
"범생이처럼 생기진 않았지. 오히려 싸가지없게 생겼다고 할까?"
"아니거든? 공부 잘 할 거같이 잘생겼거든!"
"풉, 예쁘장하게 생긴 걸 잘못 말한 건 아니고?"
"쳇..."
"오구오구, 화나쪄요? 이러케 말해주는 게 조아요?"
테사가 라이디의 말투를 따라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길래 저 멀리 피해버렸다.
공부라...
어지간한 이론은 다 익혔다. 다만 매지션즈에서 더 발전할 방법이 없어서 탈출했을 뿐이다.
아니, 방법은 있지만 너무 오래 걸린다.
초장부터 마법을 포기하는 놈들이 너무 많아서, 싹수가 보이지 않으면 스승을 붙여주질 않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
그렇다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빨리 배울 수 있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스승이 생기는 기준이 재능이 넘치는 경우 15년, 보통 20년 정도라고 했다.
그 얘길 듣자마자 매지션즈에서 마법을 배우는 걸 포기해 버렸다.
예쁜 여인들을 잔뜩 꾀려고 마법을 익히려던 거였는데...
내 청춘을 마법을 배우기 위해, 그것도 기다리는 데에만 낭비해버릴 순 없으니까!
하지만 마술에 대해선 자세히 아는 편은 아니었다. 다만 요즘 흥미가 생겨서 공부해 보고 싶긴 했다.
라이디는 기사로 임관할 테니,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업으로 이런 거나 만들까?
수입도 짭짤할 것 같고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난 살 거 보러 갈 테니까, 이상한 생각 그만하고 필요한 거 있는가 얼른 봐둬."
내 반응이 재미없었는지, 테사는 퉁명스럽게 말하곤 좌측의 진열장으로 가버렸다.
혼자 남겨진 나는 마법 상점을 둘러봤다.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가게 안이지만, 분야별로 잘 정리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대충 봐도 여긴 전투에 도움이 되는 것, 저기엔 마법 보조용 도구가 있고, 저 멀리엔 생활용품 등...
흐음...
앗! 성인용품도 있잖아?
"오... 호오..."
직접 보기는 부끄러우니 멀리서 흘깃흘깃 쳐다봤다.
진동 기능이 있는 것도 있고, 남성의 그것을 본따 만든 것도 있고, 이건 성감을 증대시켜주는 효과가 있다라... 진짜 효과가 있는 건가?
전체적으로 여성용이 많은 것 같지만, 성인용 장난감부터 소모품까지 흥미로운 게 엄청 많다.
역시 인간의 상상력은 위대해! 나도 이런걸...
"뭐 하고 있냐?"
"깜짝이야! 벌써 다 샀어?"
"당연하지. 난 완벽하니까, 빠진 거 하나 없이 빠르게 골랐지."
별로 궁금하지 않은 자랑까지 곁들이는 테사.
"라이디는?"
"저기 있잖아."
테사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봤다. 라이디는 카운터의 진열장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필요한 거 있어?"
"나? 어... 없어."
여행에 필요한 건 딱히 없다. 테사가 알아서 잘 골라서 샀을 터.
그보다 나중에 돈 많이 벌고, 혼자 와서 잔뜩 사 가야지! 아니면 직접 만들던가.
물론 성인용 마법 아이템 얘기다. 라이디에게 써보고 싶은 게 많다. 크흐흐...
"크리스, 이쪽으로 와봐요."
마침 라이디가 나를 호출했다.
"왜?"
"뒤로 돌아봐요."
얌전히 뒤로 돌았다.
이내 목 근처에서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이건...
"짠!"
고개를 내려보니, 붉은 사각형의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아직 놀라긴 일러요. 여길 보세요!"
라이디의 시선을 따라갔더니, 그녀의 팔목에 같은 보석이 박힌 팔찌가 채워져 있는 게 보였다.
"커플 장신구에요. 예쁘죠?"
"이거... 정말 받아도 돼?"
"물론이죠. 크리스를 위한 소소한 선물이에요. 부디 받아주세요."
"고마워. 다음에 돈 벌면, 가장 먼저 라이디한테 멋진 선물 사 줄게!"
"후훗, 기대하고 있을게요."
조금 여성스러운 선물이긴 하지만, 아무튼 라이디가 처음 준 선물이라서 그런지 너무 예쁘고 소중하다.
"사족이지만 난 필요 없어."
"테사에게는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치?"
라이디가 나에게 뭘 사주면 기뻐할까 고민하던 그 시간에, 그녀에게 어떤 야한 짓을 할까 생각하고 있던 나 자신이 문득 한심해진다.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오늘의 나를 반성해 본다. 그리고 다짐을 했다.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염소 뿔이 달린 사람?"
"수상하죠? 마녀일 것 같죠!"
"글쎄... 마녀가 굳이 뿔을 달고 있을 이유가 있을까?"
마법 아이템 상점을 나온 후, 우리는 술집이나 상가 등지를 돌면서 조용히 살아가는 마녀가 있는지에 관한 소문을 모았다.
그리고 여관에 모여서 가져온 정보들을 공유했다.
별 소득이 없는 와중에 그나마 건진 게 라이디가 알아 온, 염소 뿔이 달린 사람에 관한 소문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무섭게 생겼지만, 그저 지켜만 보고 사라진대요. 위험하진 않을 것 같으니까 알아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뭐, 그렇다면 찾아가 볼까? 테사 넌 어떻게 생각해?"
"어디로 가야 하는데?”
"올리비에 호수 뒤편의..."
"그럼 산에 올라야 하는 거잖아? 힘들 거 같아서 싫어. 그냥 루이스로 가자.”
격하게 싫어하는 테사.
이유가 참 저렴하다.
"숨어있는 마법사를 찾기가 쉽지 않잖아요. 이런 기회를 날리기는 아쉬운데..."
"정 가야 한다면, 난 여기에 있을 테니 너희들이 다녀와."
"그럼... 크리스, 둘이서... 다녀올까요?"
라이디와 야밤의 둘만의 데이트!
너무 좋을 것 같지만 걱정이 앞선다.
테사가 있어서 참고 있는 거지, 둘만 남으면 아무리 생각해도 선을 넘을 것만 같다.
일전의 마을에서도 도망치다가 서로 흥분해서 일 치르기 직전까지 몰렸으니까.
물론, 라이디와 농밀한 하룻밤을 보내는 게 싫은 건 아닌데...
남자의 자존심이...
조금...
…
작아서...
이건 낭자애로 개조당하면서 생긴 부작용인 게 분명하니까! 내가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지만!
가급적이면 남자다운 모습을 되찾을 때까지는 참고 싶은데...
...
그리고 테사 녀석이 고생하는 꼴을 보고 싶다.
"테사가 안 가면 나도 안 갈래."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거절했다.
"히잉... 테사, 이번엔 짐을 두고 가면 되니까 괜찮을 거에요. 같이 가봐요."
"..."
"가다가 힘들다고 하면 업어 줄게요."
"...얼음물도 챙겨 주면 갈게."
"좋아요. 그럼 크리스도 얼른 채비를 갖춰요."
"응? 내일 가는 거 아니었어?"
"주로 밤에 출몰한다고 했으니까, 지금 가야죠! 푹 쉬었으니까 괜찮잖아요? 얼음물 사러 다녀올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요!"
말을 마치자마자 라이디는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마녀 찾는데 저렇게 신날 이유가 있나?"
"그러게. 도서관에 가는 것도 아니고 말야."
하아...
전생에 도서관 가려다가 억울하게 죽었나?
정말이지 그놈의 도서관에 한없이 진지한 녀석이다.
결국, 마녀를 찾기 위해 근처의 산을 올랐다.
산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염소 뿔이 달린 사람이 출몰하는 곳은 야트막한 산이었다.
"잠깐 쉬었다 가자."
그렇게 말하고, 탁 트인 언덕 위로 올라 아래를 내려다봤다.
올리비에 시와 근처의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경관.
달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모습이 다채롭다.
"라이디, 여기 오길 잘 한 거 같아."
"그쵸? 사실 정말 아름다운 경치라고 해서, 크리스랑 같이 오고 싶었던 것도 있었어요. 올리비에 호수는 직접 봐도 아름답지만, 위에서 내려다볼 때가 더욱 아름답다고 해요."
"그... 라이디가..."
"네?"
"라이디가 더 아름다워."
"..."
부끄러운지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라이디.
이렇게까지나 반응을 해 주니 기쁘기는 한데, 평소에도 이 정도 말은 하지 않았던가?
"나는? 나는??"
"......너도 아름다워."
"히히... 드디어 인정하는 거야?"
여기까지 불평 않고 올라온 그 정신이 아름다우니, 그냥 바라는 대로 칭찬해줬다.
"그럼 쉬고 있어. 나는 볼일 보고 올게."
"여기서 싸도 괜찮아요."
"......뭐?"
"에? 제가 무슨 말 했어요?"
"분명 '여기서 싸도 괜찮아요'라고 들었는데?"
"기분 탓이겠죠. 다녀와요. 크리스."
…
수상하다. 왠지 둘이서 장난을 칠 것만 같다.
수치 플레이는 한 번으로 족하다.
라이디에게 만져져서 사이즈를 측정 당하는 굴욕을 맛봤는데, 두 번 당할 순 없다.
이건 내 원래 크기가 아닐 거니까, 올바르지 않은 민감한 정보가 전달되는 건 억울해!
아무튼, 아무래도 따라와서 장난칠 것만 같으니까, 조금 멀리 떨어진 곳까지 걸어가 볼일을 보려고 했다.
치마를 살짝 올리고, 바지를 내리고...
혹시 누가 있진 않겠지 싶어 앞을 바라봤다가...
마주치고 말았다.
검은 인영, 거대한 날개, 붉은 눈동자...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