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랩 매지션즈-60화 (60/114)

〈 60화 〉 되고 싶었던 것 ­ 4

* * *

"후후, 내 스토리텔링 어때? 나쁘지 않지?"

"휴... 이거, 전부 꿈이었던 거야?"

"응. 나랑 필리아의 작품이었지롱!"

눈을 떠 보니 내 방의 침대 위였다.

코앞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는, 금빛이 도는 갈색의 예쁜 눈동자를 보고 깜짝 놀랐지만...

얼굴이 화악 달아오른 것을 빼고는 애써 태연함을 유지했다.

"어서 와요, 크리스. 답은 찾았나요?"

"라이디... 라이디!!!"

그녀는 의자에 앉아 날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서, 와락 안겼다.

"나, 줄곧 신경 쓰고 있었어. 라이디가 내 여성스러운 외모에 반한 건 아닐까, 여성스러운 모습만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고... 그래서 남자로 돌아가고 싶었어."

"크리스..."

"이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모든 걸 받아들일 거야. 앞으로도 남자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할지도 모르지만... 혹시 남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상관하지 않을래. 라이디와 함께라면 완전한 낭자애가 되어도... 설령 무슨 일이 생겨서 여자가 되더라도... 난 행복할 테니까!"

"알았어요. 저도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누가 방해하더라도 크리스의 곁을 떠나지 않을 거랍니다? 당신의 옆에 있는 게 가장 행복하니까요!"

"라이디...!"

포근함, 따뜻함...

걱정과 불만이 모두 날아가는 것만 같은 아늑함...

꿈속이라도 이걸 버리고 떠날 생각을 하다니, 끔찍하다!

...

그런데, 그런 즐거움을 잔뜩 누리고 있었는데...

라이디의 팔 안쪽 작은 틈 사이로 씁쓸한 표정의 필리아가 눈에 들어왔다.

"필리아, 무슨 일 있어?"

지긋이 침대 쪽을...

아마도 테사를 바라보던 필리아는, 내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별 일 아니에요. 필리아, 테사 님을 통해 크리스 님의 꿈을 구현하느라 너무 지쳤어요. 그래서 '크리스 님의 발기부전이 나으면 엄청나게 가져가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큼... 필리아, 발기부전이라니!"

이 나이에 어울릴 리가 없는, 직설적인 표현으로 들으니 참 억울하다.

게다가 틀린 말은 아니라서 더욱더 억울하다!

"그래? 나도 지쳤는데, 크리스 거 엄청 가져가 버릴까?"

"하하..."

끔찍한 농담이 들어와서...

그냥 웃어넘겼다.

낭자애를 좋아하겠다고 선언한 건 아니니까...

아무리 테사가 예쁘게 생겼다고 해도, 아름다운 여인들을 두고 굳이?

꼭 '생체 딜도'가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그땐 라이디가 있고...

"그보다 필리아, 이리 와봐."

"에? ...꺅! 뭐 하시는 거예요, 크리스 님! 물론 안되는 건 아니지만..."

"음... 똑같네..."

라이디로는 확신을 할 수 없으니 혹시나 싶어 필리아의 가슴에도 얼굴을 파묻어봤지만, 여전히 서질 않는다.

"필리아의 생각엔 무언가 다른 조건이 있는 것 같아요. 그건 아마..."

"잠깐!"

"읍...!"

황급히 필리아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건 루트 공화국에 가서 알아볼 거야. 거긴 의술이 발달한 곳이니까, 거기서도 안된다고 하면 그때 얘기하자."

'조건'이라는 거...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선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라이디와 사귄다면 언젠가는...

이라고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아무리 전향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니까.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이 안 될 때를 위한 최후의 수로 삼고 싶다.

그래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이 잡혀서 조금은 기운이 난다.

"그... 다른 조건에 대해서 꼭 얘기하고 싶은데요..."

"응? 라이디?"

"크리스만큼 엄청 곤란한 일은 아니지만... 저도 사소한 문제가 생겨서... 아니,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데..."

라이디가 쭈뼛쭈뼛 몸을 꼬며 말을 이어간다.

"모두의 앞에서 말하기는 부끄러우니까... 먼저 크리스하고 상담을 해도 괜찮을까요?"

­­­

"자, 들어오세요."

"실례할게."

그리하여 라이디의 방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렇게 단둘이 있던 적이 있었던가?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것만 같고, 괜히 심장의 두근거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진정해, 크리스! 별일 없을 거니까! 그저 대화를 할 뿐이니까!!!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라이디에게 물었다.

"저기... 라이디, 상담할 게 있다고 했지?"

"네. 그게... 그러니까..."

침대에 걸터앉으며 답을 하려는 라이디... 였지만,

그보다 책장에 걸쳐져 있는, 예사롭지 않은 것 같은 물건이 눈에 띄었다.

언뜻 본 기억이 있는,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창.

전투용은 아닌 건지 날이 서 있진 않았다.

"잠깐! 크리스, 그거 만지지 말아줘요!"

"왜?"

라이디가 만류했지만...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손이 가고 말았다.

"하읏...! 흐으..."

"앗! 미안... 해...?"

창을 만졌을 뿐인데...

돌연 라이디가 신음을 냈다!

"그... 알자스와의 전투 도중 튕겨 나갈 때... 그러니까..."

라이디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망설이다가, 눈을 꾹 감고 입을 열었다.

"제 페니스가 없어졌어요. 직후에 알자스가 제게 창을 던졌는데... 그래서 뭔가 관련이 있는 건 확실해 보이는데..."

"호오... 그래?"

"창을 만지면 그... 느낌이... 쾌감이 올라와 버려요. 크리스, 어떻게 생각해요?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나요?"

"그거참 큰일이네..."

갑자기 페니스가 없어지고 창이 생겨나는 그런 기이한 현상, 마법사라고 알 턱이 없다.

그보다도...

왠지 이 창으로 라이디를 괴롭히고 싶어졌다.

항상 라이디한테 당하기만 했으니까, 작지만 야한 복수를 하고 싶달까?

"그럼, 이렇게 하면 기분 좋은 거야?"

마치 페니스를 문지르듯, 창대를 쥐고 앞뒤로 흔들어 봤다.

"꺅! 읏!? 무슨... 하응... 멈춰... 아윽... 요!"

"알았어."

창대를 문지르는 걸 멈추고, 이번엔 혀로 살짝 핥았다.

혹시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금속의 살짝 씁쓸한 맛이 날 뿐이었다.

"그... 만, 읍... 이런... 거... 핫... 으햐... 이상해요...!"

창날과 창대가 마주하는 곳을 핥으니, 라이디는 다리 사이를 손으로 가린 채 온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더 위쪽을 만져줬으면 하는 거지?"

계속 핥으면서, 손으로 창날을 사정없이 만지작거렸다.

"읏! 흐아앙! 하으윽... 하으..."

직접 만지고 있지도 않은데도, 그녀의 허리가 크게 휘었다.

결국 자극을 버티지 못하고 침대에 몸을 맡기는 라이디.

그래서 이번엔 창날을 허벅지에 끼고 문질러버렸다.

"하앙?! 으... 아으...!"

"그렇게나 좋아?"

"흐윽... 좋아, 좋아요...! 하..극... 하지만 멈춰... 읏... 아응...!"

"하지만, 나는 알고 있어. 라이디는 이런 것도 좋아하겠지만... 거칠게 하는 게 취향인 거지?"

사실 취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괴롭히고 싶으니까 명분으로 둘러댔다.

그리고, 창을 바닥에 떨구고 맨발로 밟아버렸다.

"끅... 흐앙... 으극... 가요, 가버려요!!!"

라이디가 크게 신음했지만, 난 발을 멈추지 않고 더 세게, 꾹꾹 누르며 창날을 문질렀다.

"아..! 으..그으... 에으... 아아...!"

라이디의 온몸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바지에서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와

침대와 바닥을 찬찬히 적셔가기 시작했다.

...

가버리는 모습이라는 거,

이렇게 꼴리는 거였나?

야릇한 신음소리, 아름다운 얼굴에 피어난 홍조, 온몸으로 표현하는 오르가즘의 기쁨...

그런 것들도 물론 좋았지만,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김이 서려오는 그녀의 다리 사이가 가장 고혹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순식간에 저질러 버리고 싶다는, 라이디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워버렸다.

라이디라면...

허락해 주겠지...?

그래서 속바지를 벗어버리려고, 앞에 손을 넣고 살짝 들췄는데...

당연히 풀발기 상태였어야 할 그것은 온데간데없고...

저런 꼴릿한 모습을 보고도 무슨 일 있냐는 듯 미동도 하지 않는 작은 번데기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

젠장!

결국 애써 태연한 척, 아무 생각 없었던 척 얌전히 서서

라이디가 정신을 차리길 기다렸다.

"크리스! 무슨 짓이에요!?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도, 아무 때나 야한 짓을 해도 되는 건 아니라구요! 게다가 크리스의 앞에서... 실례를... 흑..."

"하하...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아무래도 이럴 거 같아서 줄곧 고민한 건데! 역시나 크리스... 는... 으... 에...?"

"라이디, 왜 그래?"

"그게... 돌아왔어요."

"뭐가?"

"뭐겠어요? 당연히 그... 그거죠!"

라이디가 손으로 고간을 가리며 말했다.

그래서 급히 바닥을 확인해 보았는데, 역시나 붉은 창은 없었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창이 라이디의 페니스였던 건 확실해 보인다.

"하아...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슬퍼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복잡미묘한 표정의 라이디

그녀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 것 같다.

여자가 되고 싶었겠지.

완전한 여자가 될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겠지...

잘 풀리지 않아서 아쉬울 것이다. 나도 라이디가 여자가 되지 못해서 아쉽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건 같이 천천히 고민해 보자. 어느 쪽의 라이디라도 난 받아들일 거니까 걱정하지 마."

"크리스..."

은은한 눈빛으로 날 올려다보는 그녀의 어깨를 두들기다가...

"음... 바닥이 축축하네..."

"크리스!!!"

정말 오랜만인 것 같은 기분으로, 라이디와 가볍게 아옹다옹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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