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둘 만의 데이트 1
* * *
꿀꺽
드디어...
정말 어른의 계단을 오르는 건가...?
마른 침을 삼키며, 콩닥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라이디는 비키니 팬티 옆의 끈까지 풀더니, 래시가드와 함께 스르륵 벗어버렸다.
그리고,
이내 드러난...
노을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예쁘게 정리된 털...
그리고 허벅지 사이로 보이는... 일자로 살짝 갈라진...
"하아... 크리스도 저랑 하고 싶은 거죠? 섹스... 그러니까... 크리스한테 걸린 저주... 여기서 풀어버리지 않을래요?"
"그게, 그러니까... 그건... 라이디가 내게... 그걸 말하는 거지?"
"부끄럽지만... 네, 맞아요..."
"하지만, 없는데?"
"...에?"
그녀의 치부에 고정되어 있는 내 시선을 따라
무슨 말인지 파악하느라 잠깐 멍때리던 라이디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하더니...
"어라? 어째서!?"
"크리스~! 괜찮아? 다친 덴 없어!?"
그리고, 갑자기 라이디의 것이 아닌, 그러나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내 저 멀리서...
아니, 순식간에 내 앞까지 필리아가, 그리고 그녀에게 안겨있던 테사가 날아왔다.
"어... 응. 구해주러 오길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어."
"바보, 멍청이!! 또 납치당했나 싶어서 걱정했잖아!!!"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치며 소리치던 테사는, 돌연 나를 와락 끌어안았고...
조금은 어리둥절했지만,
진심으로 날 걱정한 그의 마음이 느껴져서, 조용히 그의 등을 토닥여 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필리아... 예상과는 달리, 우릴 꽤 일찍 찾았네요."
"그... 그게... 테사 님이 둘을 꼭 찾아야만 한다고 협ㅂ... 협조를 구해서... 필리아는... 필리아느은... 최선을..."
"라이디! 팬티..."
"에? 히얏!?"
보기 좋긴 하지만, 그래도 눈에 계속 거슬리는데...
그렇다고 알려주지 않고 가만히 있자니 왠지 죄를 짓는 것만 같아서 알려줬더니, 라이디는 얼굴을 붉히며 급히 손으로 다리 사이를 가렸다.
그 후, 우린 필리아를 통해 섬을 탈출할 수 있었다.
셋을 한꺼번에 안고 날아오르는 그녀의 완력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섬에서도, 해변에 도착해서도, 여관의 식당에서 자리에 앉기 직전까지
테사가 계속, 아무 말없이 날 끌어안고 있어서 상당히 곤란했다.
하지만 나도, 아마 라이디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테사에게 괜히 뭐라 할 순 없었기에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낭자애가 붙어 있다고 생각하면 괜히 불쾌해지니까, 대신 속으로 '테사는 여자다'고 열심히 되뇌며 스스로를 속일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날 밤, 필리아는 조용히 테사의 방으로 향했다.
"테사 님, 필리아에게 부탁할 게 있으시다구요?"
"응."
침대 끝자락에 살포시 걸터앉아 있던 테사는, 필리아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분명 저번에 라이디를 착정할 기회를 얻었지? 그거 써서, 내일 오전까지 라이디를 재워줬으면 해."
"으음... 필리아, 아직 배고프지 않은데요..."
"어제, 분명 라이디를 도와준 거잖아? 그러니까 나도 도와줘."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야. 더 이상 라이디를 방해하는 것도 염치없고, 전력을 다해 부딪혀도 안 통하면 정말 포기할 거니까..."
"..."
필리아는 조심스레 테사의 옆에 앉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괜찮겠어요? 테사 님, 만약 크리스 님이 거절하면..."
"...상관없어. 크리스와는 가족과도 같은 관계니까... 그가 나를 사... 사라... 사랑하지 않더라도, 내가 가족을 버릴 리가 없잖아?"
짐짓 태연하게 말하려고 노력한 테사였지만,
어느샌가 그녀의 뺨에는 두 줄기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테사 님..."
그래서, 필리아는 그녀를 끌어안아 다독여 주었다.
어젯밤, 섬에서 라이디와 표류하던 중,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자연스럽게 라이디와 거사를 치를 뻔했지만...
하루가 지나고 나니 역시 무서웠다.
직접 본 건 아니지만...
내 팔이랑 비슷한 크기인 것 같은데...
그런 걸 넣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절대 무리!!!
그래서, 예전부터 고민해 오던...
가능할 것 같은 해결법 중 하나를 실행에 옮겨보기로 결심했다.
이건 필리아에게도 들키긴 싫으니 목걸이를 풀어 책상 위에 고이 놓았다.
혼자 나서려니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재빨리 사러 갔다 오면 되니까...
끼익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슬금슬금 나가...
"어디가?"
"힉!? 테... 테사!? 왜 내 방문 앞에 서 있는 거야?"
"몰라. 그보다 어디 가냐고."
"어... 아, 그게... 그래, 옷. 옷 좀 보고 오려고..."
"그럼 같이 가자."
젠장! 어떡하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떼어놓고 다녀와야 하는데...
"아냐, 가볍게 입을 셔츠만 빠르게 사 올 거니까 굳이 따라오지 않아도 돼. 금방 다녀올게."
"그래도 같이 가고 싶어."
"별로 재미없을 거야. 그러지 말고, 내가 다녀오면 같이 도서관이나 가자. 어때?"
"그래도..."
...
하아...
설득을 해도 넘어갈 것 같지 않아서, 결국 몰래 나갔다 오려던 건 어쩔 수 없이 포기해버렸다.
"후...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결국, 방에 다시 들어가 목걸이를 차고 나왔다.
그래...
다음 기회가 분명 있겠지...
결국, 테사와 함께 여성복 매장에 들어갔다.
그는 옷들을 둘러보며 이것저것 대보고 있었고, 나는...
"테사, 나는 남성복 매장에 가고 싶었는데?"
"안타깝고 아쉽겠지만, 지금의 크리스는 남성복이 어울리지 않을 거야."
"하지만... 테사, 넌 여자 옷 입는 거... 거부감 들지 않는 거야?"
"나? 왜?"
"응? 왜냐니..."
물어볼 여지가 있는 건가?
남성이 여성복을 입는데, 아무리 낭자 애라도 처음엔 거부감이 드는 게 당연하잖아?
"그보다 이거 입어보고 싶어. 같이 들어가자."
"응? 같이?"
"뭐 어때, 누가 보더라도 여자 끼리라고 생각할 텐데."
"우악!?"
돌연 테사가 날 끌어당겨서 탈의실에 함께 들어가 버리고 말았고,
덜컥 스륵, 스르륵
문을 잠근 테사가 망설임 없이 웃옷을 벗길래, 나는 황급히 뒤돌아섰다.
"크리스, 이거 입는 거 도와줘."
"혼자서는 못 입어?"
"혼자서 입기 불편하니까 같이 들어온 거지, 왜 데리고 들어왔겠어?"
"그... 그치만..."
"도와주기 싫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럼... 라이디가 아니면 싫은 거야?"
작게 떨리는 목소리.
그건 활달하고 공격적인 테사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도 간절하고 안타까운 목소리여서,
마치 마지막 자존심을 긁어모아 쥐어 짜내는 것만 같이 들려서...
어쩔 수 없이 나는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자, 팔 쪽 옷자락부터 내려주면 돼."
옷을 낀 채 양팔을 들고 있는 테사.
매끈한 겨드랑이부터 작게 솟아오른 가슴까지의, 부드럽게 이어지는 라인이 확연히 드러났다.
게다가 라이디만큼 강렬하진 않아도 은은하게 여성스러운 냄새가 풍겨온다.
흐으...
마법이겠지?
이건 테사가 마법으로 장난치고 있는 거겠지?
...
에잇!
어제부터 줄곧 신경 쓰여서 더는 버티질 못하겠다.
이렇게 된 거, 그냥 직접 물어봐야겠다!
"그...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가슴... 마법 걸고 있는 거야?"
"가슴? 마법?"
"아... 아무것도 아냐."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이길래, 문득 테사는 자길 여자라고 여긴다는 점이 떠올라서 대충 얼버무렸다.
"잠깐, 마법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별거 아냐."
"무슨 뜻이냐니까?"
"그게... 가슴이 여자애처럼 나와 있어서... 낭자애로 오래 살면 그렇게 되는 건가 싶다가도... 혹시 마법을 쓴 걸까 싶어서..."
"나, 여자라고 했잖아?”
“응? 그건 낭자애로서 암컷이 되어버렸다는 뜻이...”
“하아? 설마... 크리스, 지금까지 날... 낭자애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