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랩 매지션즈-74화 (74/114)

〈 74화 〉 메이 ­ 2

* * *

뇌가 있거나 피가 흐르는 건 아니었기에 징그럽거나 기괴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다만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그녀를 떨쳐내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팔을 꽉 붙잡은 채 놓아주질 않았다.

"꺅!? 이게 무슨..."

"이건... 안드로이드네요."

"안드로이드?"

"기계... 인공의... 그러니까..."

깜짝 놀란 라이디에게 설명을 하려던 필리아는, 계속 말을 더듬다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 설명하기 너무 어려워요! 인간들이 만들어낸 인간의 모조품? 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제 지식으론 당시엔 이런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구상 정도였는데, 이건 엄청난 수준의 안드로이드인 것 같아요."

"그럼 머리가 이만큼이나 날아갔는데도 살아있는 건가요?"

"아니요, 살아있는 건 아닌데... 그러니까... 하아, 후... 네. 아직 살아있는 것 같아요."

잘 모르겠지만, 설명을 포기했는지 필리아가 한숨을 푹 쉰다.

그건 그렇고, 살아 있는 거라면 응급 처치라도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려나?

"라이디, 미안하지만 구급상자를 가져오고 테사를 불러와 줄래?"

"알겠어요."

"저... 메... 메이ㄷ... 메... 메이..."

"말할 수 있는 거야? 이름이 메이라는 건가?"

그녀의 머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동의하는 건지, 아니면 부정하는 건지 확실하진 않았다.

"머리가 부서져서 고장 난 것 같네요."

"흠... 붕대로 감아야 할까요?"

"하하... 그러게..."

전력으로 달려갔다 왔는지, 어느새 내 옆으로 돌아온 라이디는 구급상자를 든 채 난감해하고 있었다.

하긴, 저렇게 크게 구멍이 나 있는데 아무 조치도 없이 둘둘 싸매는 것도 이상하다.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응. 일단 감아보자."

"다친 사람이 있다더니, 뭐야 이건?"

테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드로이드? 라는데 잘 모르겠어."

"이러고도 살아 있는 거라고?"

"필리아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는데?"

"흐응... 잠깐 비켜봐."

테사는 메이에게 붕대를 감아주려던 라이디를 밀어내고, 그대로 손을 가져다 대더니...

"머리가 날아간 건 착각이야. 넌 다치지 않았단다?"

메이의 머리에 무언가 마법을 걸어버렸다!

"아앗!? 그래도 되는 걸까요?"

"어떻게든 되겠지. 안 통하면 말고."

"드... 드드... 드르..."

"테사! 메이가 아파하잖아!? 어떻게 할 거야!"

"왜 호들갑이야? 마법이야 안 통하면 풀면 되지."

그래서 테사는 퉁명스럽게 손을 뻗어 마법을 풀려고 했는데...

"드... 등록 완료되었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새 주인님."

메이가 제대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거봐, 잘 됐잖아?"

...

쳇,

매번 이상한 짓을 하는데, 묘하게 도움이 되는 게 괜스레 얄밉다.

"주인님, 메이의 인공지능 코어의 절반을 망실했습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모든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더하여 알 수 없는 이유로 통신 모듈도 복구되었습니다."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다행이네."

나를 주인으로 지칭하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괜찮다고는 해도 머리를 다친 사람에게 이것저것 물을 계제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메이드들과 연락이 닿았고, 5초 후 메이의 전 주인님이 찾아오실 겁니다."

"응?"

갑자기 하늘에서 세 명이 뚝 떨어져 내려왔다.

두 사람은 메이드복 차림, 그리고 그 둘에게 들려

"4호! 괜찮니?"

라고 말하며 달려오는 하얀 가운을 입은 갈색 머리의 여성

"전 주인님, 주인님의 허락 없이 만지는 건 삼가십시오."

"4호...?"

"4호가 아닙니다. 메이의 코드명은 메이로 변경되었습니다."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고 있는 거니?"

"무슨 문제라도...?"

"코어에 문제가 생긴 건가... 알았으니까 검사부터 하자"

"허가가 필요합니다."

갑작스레 등장한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메이는,

"주인님,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내 쪽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

"네."

내가 주인님이라니...

여전히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주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메이를 치료해 줄 수 있는 것 같은 분위기다.

"검사받고 싶은거지?"

"주인님께 성심성의껏 봉사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그럼 다녀와."

"감사합니다."

그래서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장단에 맞춰 주었다.

"흠, 말투는 조금 이상한데, 어떻게 보면 정상인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들어가서 확인해 보자꾸나."

"저... 저기요..."

"아? ...아! 편하게 앤이라고 부르렴. 자세한 건 들어가서 얘기하지."

앤이 손을 건네기에, 얼떨결에 악수했다.

그리고,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데려온 메이드들과 함께 우리 집에 들어가 버렸다.

"앤님은 테사 님을 넘어서는 지독한 마이페이스인 것 같네요."

"나? 내가 왜?"

의문을 표하는 테사,

거기에 우리 셋은 허허하고 웃어 보일 뿐이었다.

* * *

"신기하네, 분명 인공지능 코어의 반이 날아갔는데 주인을 새로 등록한 것 외에는 정상 작동한다니... 2호, 4호를 수리하고 오렴. 내부는 교체하지 말고, 외관만 덮어주면 좋겠어."

"4호가 아니라 메이입니다. 표현의 정정을 부탁드립니다."

"그래, 메이. 고쳐주려고 하는 거니까 얌전히 다녀오렴."

메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나한테 허락을 구한 후 '2호'라고 불린 메이드를 따라 마당으로 나섰다.

그리고, 드디어 앤에게 이 상황에 관해 물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굳이 토를 달다니, 확실히 이상하네."

"저기요..."

"너희, 메이에게 무언가 손을 댔니?"

"아? 사실은... 끄아아아그아!!!"

큭!

테사가 옆구리를 세게 꼬집어서,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쳇, 찔리는 구석이 있을 것 같으면 이상한 짓을 하질 말던가...

아무튼, 앤은 이런 날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다른 메이드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 메이는 어떻게 된 건가요? 괜찮을까요?"

"안드로이드니까 걱정하지 마. 다만 겉보기엔 정상 같은데, 말이나 행동거지가 뭔가 이상한데..."

"당연한 겁니다, 전 주인님. 메이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니까요."

"아하하! 반응이 재밌네. 다른 애들도 까칠한 성격으로 바꿔볼까나?"

현관문을 열고 다시 들어오며 말한 메이.

얼굴은 말끔하게 돌아와 있었고, 옷도 갈아입어 드디어 그녀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밝은 연두색의 단발. 곱게 땋아 올린 채 프릴이 달린 카츄샤를 쓴 머리가 인상적이다.

옆의 메이드와 같은 복장으로, 군청색의 메이드복과 구두, 하얀 앞치마와 스타킹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키는 상당히 작은 편이어서 견습 메이드 소녀 같은 느낌이 강한 편이다.

반면 가늘게 뜬 보라색 눈동자는 어른스러운 느낌을 물씬 풍겨, 전체적으로 마치 애어른 같은 독특한 느낌이 있다.

메이는 그런 미묘한 갭이 있는, 그러나 그게 신기하게도 잘 어울리는.

어여쁘고 귀여우면서도 농익은 듯한 매력을 지닌 소녀였다.

"주인님, 메이의 수복이 완료되었습니다."

"고생했어. 앤님, 메이를 낫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크게 다친 것 같아 걱정하고 있었는데, 동료분의 치료 능력이 대단하네요."

"하하, 생판 남인데도 걱정하다니 꽤 상냥하구나. 하지만 난 나쁜 사람이라서 감사할 대상이 되질 못 한단다. 그보다 메이, 어쩌다가 다쳤는지는 기억이 나니?"

"..."

메이는 입을 굳게 다물었고, 앤이 지긋이 내 쪽을 쳐다본다.

...

그 뜻을 이해하는 덴 조금 시간이 걸렸다.

"메이, 머리는 어디서 다쳤던 거야?"

"죄송하지만,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

맥빠지는 답변이 돌아왔지만, 앤은 이미 예상하던 바였는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이제 메이를 데려가실 건가요?"

"아니. 평소였다면 데려가서 여기저기 점검하고 실험해보고 싶었겠지만, 아마 메이가 거부할 것 같네. 뭐, 메이드 안드로이드라면 많이 있으니까, 그냥 네가 가지렴. 대신 메이의 상태를 보기 위해 가끔 찾아올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고."

...

자꾸 사람을 소유물처럼 말하는 게 불편한데, 그래도 메이를 낫게 해 준 사람이기에 불만은 속으로 삼켰다.

메이를 앤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우리가 한동안 잘 대해주고 혼자 독립하게 도와주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기에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전 주인님, 현 주인님을 모시기 위해 추가 모듈이 필요합니다."

"그래? 어떤 걸 가져올까?"

"1형 전투 모듈, 생활 서비스 모듈, 그리고 생식 모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생식 모듈? 어째서?"

"그건, 제 주인님은..."

"그래. 잘 모르겠지만 메이가 필요하다면 필요한 거겠지. 다음에 찾아올 때 가져올게. 그때 보자?"

"알겠습니다."

"저기..."

앤에게 말을 걸려고 했는데, 그녀는 메이와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듣지도 않고 나가버렸다.

"잠깐 빌린 집이라는 걸 얘기해 주려 했는데..."

너무나 급작스럽게 일이 흘러갔다 보니, 정신 사납게 몰아붙이던 앤이 떠나버리자

남겨진 다섯의 사이로 한동안 적막이 흘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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