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랩 매지션즈-78화 (78/114)

〈 78화 〉 암컷타락!? ­ 2

* * *

결국 로레인은 내 고민에 대한 해답이라며 알약이 가득 든 작은 병 하나를 건네주었고,

그녀의 둥지에서 돌아온 나는 집으로 향하지 않고 곧장 테레즈 시내로 갔다.

왜냐면 아무리 드래곤이 준 거라고 해도, 진짜 효과가 있는지 의심스러웠으니까.

게다가 애초에 이 상황까지 몰린 건 그녀의 또 다른 분신 ­ 알자스가 내게 이상한 마법을 걸어서인데, 아직은 쉬이 믿을 수 없어!

그래서 또다시, 몇 번이고 들어가지 못했던 성인용품 상점을 홀로 찾아갔다.

"호오... 이런 식으로 되어있구나..."

음침한 분위기일 거로 생각했는데, 가게 내부는 생각보다 개방적이고 산뜻했다.

성인용품들이 노골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깔끔한 잡화상점 정도로 느껴진다고 할까?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주변을 둘러보는 척하며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챘는지, 이내 점원이 살갑게 맞이해 주었다.

...

과하게 친절한 것 같아서 괜히 주눅 드는데...

그래도 얼른 볼일을 보고 돌아가고 싶으니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저기... 미셸 있나요?"

"오호? 흠... 후후... 흑발에 여자아이같이 생긴... 당신이 '그 아이'군요?"

"네? 아... 저..."

"마침 오늘은 미셸이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날이예요. 곧 올 때가 됐으니 방에 들어가서 기다리시겠어요? 저쪽 복도에서 가장 앞에 있는 방으로 가세요."

"앗! 감사합니다. 그리고, 목이 마른 데... 음료수..."

"물을 가져다드릴게요."

"그... 죄송합니다만... 주스로..."

"호호, 괜찮아요. 주스로 가져다드릴게요. 미셸의 친구분인데 죄송할 것 없어요. 부디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성인용품점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부끄러운데, 여성 점원과 대화하려니 괜스레 더욱더 부끄럽다!

그래서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고, 벌게졌을 게 분명한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푹 떨군 채 잽싸게 안내받은 방으로 향했다.

* * *

"크리스! 드디어 저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은 건가요?"

큰 침대와 작은 테이블, 두 개의 의자만 배치되어 있는 작은 방.

별 감흥이 들만한 요소는 없어서 의자에 앉아 멍하니 기다렸고, 잠시 후 미셸이 요란을 떨며 들어왔다.

"아니, 그건 아니고 인퀴지터 일로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일단 앉아 주세요."

"아하... 그런가요..."

"밖은 덥나 봐요?"

"네. 천천히 걸었는데도 땀이 꽤 나네요... 앗! 마침 목이 마르던 차였는데, 고마워요!"

자연스럽게 주스를 건네줬더니 미셸은 망설이지 않고 받아들었다.

그리고 쭈욱 들이켜 순식간에 잔을 비워버렸다.

얼굴을 살짝 치켜든 덕에 완연히 드러난 새하얀 목덜미,

작은 입으로 전부 담기는 어려웠는지, 붉은 입술로부터 흘러내리는 한 방울의 주스.

그러한 모습들은 지극히 아름답고 여성스러운 데다 심지어 핥아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지만...

안타깝게도 미셸은 여성이 아니다.

"인퀴지터 일로 상담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죠?"

"저... 괜찮아요?"

"네?"

으으... 아무런 반응이 없다니...

...

아!!!

큰일 났다!!!

미셸에게 딱히 물어보고 싶은 건 없었는데...

효과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해서, 효과가 없을 때 어떻게 할지 전혀 고려를 안 하고 있었다!!!

"아,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게... 알자스가 제게 건 마법이 풀리면, 미셸은 절 붙잡으려고 할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그... 그렇다면 역시 알자스의 행동을 보고..."

"그것도 아니에요."

돌연 미셸은 내 손을 붙잡았고,

"당신을 좋아해요. 크리스."

"...에?"

"오늘부터 전 크리스의 것이 될 거예요. 그러니 인퀴지터의 일 따위론 붙잡지 않을 거예요. 크리스도 조금은 마음이 있어서 찾아온 게 아닌가요? 당신을 원해요. 어서 제 안타까움을 해결해 주세요, 크리스..."

"미셸, 잠깐... 진정해요! 이건 그러니까... 그래, 약 때문이에요. 지금 제정신이 아닌 상태니까!"

"아니, 그렇지 않아요. 이미 전 여성은 끌리지 않는 몸이 되어버렸어요. 그렇다고 남성을 좋아하고 싶지도 않고, 지옥 같은 매지션즈로 돌아갈 생각도 없어요."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로레인이 준 건 ‘일정 시간동안 암컷이 되는 약’이지, 누군가를 좋아하게 만드는 사랑의 묘약이 아니었다.

약의 효과로 인해 내 몸을 원하는 거라면 몰라도, 날 좋아한다고 할 이유가...!?

예상치 못한 전개에 혼란을 겪고 있었는데, 어느새 손을 놓아준 미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겐 크리스뿐이에요. 너무나 마음에 든 사람에게 배신당했다고 여겨 몹쓸 짓을 했는데, 너무 지나쳤었죠? 괴롭혀서, 아프게 해서 미안해요. 원한다면 몇 번이고 제게 갚아줘도 괜찮아요. 그리고 매지션즈가 찾지 못하도록 숨겨줄게요. 아니면 같이 도피를 하자고 해도 받아들일게요. 그러니까 제발..."

"하... 하지만 미셸은..."

"낭자애라는 게 마음에 걸리시나요? 하지만 크리스는 라이디를 사랑해 주고 있잖아요. 넓게 보자면, 저도 라이디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미셸은 양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짚더니, 순식간에 원피스를 벗어버렸다.

"더는 못 참겠어요. 당신의 뜻대로 뭐든 할게요. 크리스가 도저히 낭자애의 몸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진정한 여성이 되라고 하면 될게요. 그러니 제발, 제발 저를 버리지 말아줘요..."

좁은 어깨, 약간 솟아있는 가슴,

땀에 젖어 윤기가 흐르는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

가냘픈 허리에 대조되는 테사에 비견할 만큼 넓은 골반, 레이스가 잔뜩 달린 검은 팬티,

그리고 그사이엔...

"아으... 으아아!"

...

도망쳤다.

더는 지켜볼 수가 없어서...

왠지 이대로라면 미셸에게 넘어가 버릴 것만 같아서 애써 눈을 꾹 감고 문밖으로 내달렸다.

"꺅!? 무슨 ㅇ..."

물건을 정리하다 놀란 기색의 점원을 지나쳤지만 애써 무시한 채, 나는 그대로 가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저번처럼 마법으로 붙잡으려 하면 다시금 필리아를 불러 도망치려 했는데, 다행히도 미셸은 쫓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달려서, 가게에서 멀리 떨어진 으슥한 골목에 도착하고 나서야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허억... 헉... 하..."

[ 크리스 님, 정말 미셸 님을 저대로 두고 가도 괜찮은 걸까요? ]

"미셸이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잖아? 당해도 싸."

[ 하지만... ]

"그만, 혼자 있게 해줘. 나도 심란하단 말이야."

[ ... ]

목걸이 안에서 말하던 필리아는 이내 조용해졌고, 나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 미셸에게 이 정도의 괴롭힘은 별거 아니다.

당했던 것에 비하면 사소한 복수일 뿐이니까.

물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내게 좋아한다고... 함께하고 싶다고 사정하는 미셸을 보니 조금 찝찝하긴 하다.

낭자애라는 이유만으로 혐오하고 있었는데, 막상 벗은 몸을 보니 달려 있는 것만 제외하면 여성스러운 얼굴에 짐짓 어울리는 상당히 아름다운 굴곡이...

...

큼... 크흠...

게다가 미셸 자신이 라이디와 비슷한 처지라는 것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

또한 나마저도 매지션즈에서 탈출할 때 테사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이런 몸으로 아름다운 여성들과 함께한다는 꿈은 무리였을 거고...

...

......

으아!!!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어!

미셸 일은 이미 지나가 버린 거고, 내게 남은 건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

방금의 일로 인해, 그리고 오늘 저녁에 분명 라이디에게 저런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일 나를 무심코 상상한 것 때문에

터질 것처럼 두근대는 가슴께를 부여잡은 채, 나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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