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랩 매지션즈-95화 (95/114)

〈 95화 〉 친구 ­ 2

* * *

“아직도 기분이 안 풀렸어? 미안해. 언니 얼굴 봐서 한 번만 용서해줘~ 응?”

하아...

식사 대접을 해준다고 하길래, 지친 몸을 이끌고 도서관을 떠나 함께 테레즈 시내로 나왔다.

신성한 독서시간을 방해한 그녀­ 리사가 도와달라며 시킨 일은... 다른 남자애들을 꼬시는 거였다!

딱 한 번만 도와달라며 사정하는데 죽어도 하기 싫었지만, 소득 없인 절대 떠날 것 같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나섰고

분명 ‘한 번’이라던 부탁은, 자꾸 꼬시는 데 실패하는 바람에 여러 번이 되고 말았다.

...

따지자면 실패하진 않았었다. 내가 말을 걸면 헤벌레 하며 따라 나서다가, 리사를 보곤 기겁하여 도망치는 것의 반복이었으니까... 반쯤 성공이긴 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동네 남자애들이 전부 도망가나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점점 남자애들을 꼬시는 내 모습이 한심해서... 거기에 넘어온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몰려온 지라 심신을 더욱 피곤하게 했다.

...

그래도 바깥공기를 쐬니 괜찮아졌다.

오랜만에 그... ‘가족’ 외의 사람과 대화하는 거라 나름 즐겁기도 했고, 사글사글한 리사의 성격 덕분에 그다지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괜찮아요. 그보다 리사, 남자라며 고른 사람들... 너무 어린애들 아니에요?”

“쳇, 하지만 귀여운 소년이 좋은 걸... 나도 이렇게 태어나고 싶진 않았다고. 그럼 넌 어떤 남자가 취향인데?”

“에? 어... 그러니까...”

순간 말문이 막혔다.

라이디를 남자라고 생각하고 말해볼까 했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다. 여러모로 곤란해질 지도 모르고,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상황 자체가 싫으니까

그래서 다시금 ‘사실’만을... 마치 테사처럼 교묘하게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솔직히, 전 여자가 좋아요.”

“아... 레즈...? 그... 나는... 하지만...”

“제 취향도 아니고, 이미 여자친구 여럿 있으니까 리사 차례까지 갈 일도 없어요.”

“그래? 휴...”

“풉, 역으로 잡아먹히는 줄 알았어요?”

“응. 지금까지의 일들이 전부 계획한 건가 싶어서 깜짝 놀랐잖아...”

다시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리사. 다행히 잘 넘어간 듯하다.

“아무튼 지금은 말할 힘도 없어요. 밥 사준다면서요?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 건가요?”

“으응? 아냐, 먹으러 가는 거지.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힘내~ 크리스!”

...

‘거의 다 왔다’는 곳에 ‘몇 분’정도 걸어서 도착한 곳은, 테레즈 내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으리으리한 대저택이었다.

건물만으로도 거의 벨마의 저택에 맞먹을 정도인데, 정문부터 건물까지 아담한 정원이 있고... 시내에 자리 잡을 만한 체급이 아니잖아!?

“어... 여... 여기서 사시는 거예요?”

“아니, 친구네 집이야.”

“하... 하하...”

이 누나... 남의 집에서 먹을 거면서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나한테 생색을 낸 거야!?

뭐, 이 정도의 저택의 식사라면 굉장할 게 분명하지만...

“리사 님.”

어떤 음식이 나올지 상상을 하며 멍하니 리사를 따라 걷고 있었더니, 어느새 정원을 관리하던 집사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 잘 있었어? 이쪽은 일행이야. 같이 들어가도 되지?”

“물론입니다. 허나 아가씨는 지금 바쁘신 와중이기에...”

“그래? 어우~ 대낮부터 엄청나네. 체력도 좋아!”

“... 그러니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응. 알아서 가 있을게. 할일 해.”

집사는 문을 열어주고, 우리가 들어가는 걸 본 후 목례를 하고 돌아갔다.

눈 앞에 펼쳐진 건 웅장하고 넓은 로비... 특히나 좌우로 커다란 아치형의 계단이 나 있는 게 저택의 크기를 다시금 실감하게 했다.

“조금 기다려야겠네. 크리스, 저쪽으로 가서 앉아있자.”

“저기 리사... 리사 님은 귀족이신가요?”

“음... 들켜버렸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아... 아으아!?”

“푸흡, 나는 평민이야.”

“아앗! 놀리지 마요!!”

”미안미안. 그보다 의외네. 크리스는 그런 거 신경 쓰는 편인가봐?”

“아, 아니에요. 별로 상관없지만...”

이 동네에선 귀족의 권위라고 해봐야 별 게 없긴 했다. 무례를 범하지 말아야 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제국에서 강제로 떨어져 나온 데다 타지의 귀족들을 꽂아 둔 여파이기도 했고, 바로 위에 있는 루트 공화국과 경제적으로 엮이다 보니 자연스레 탈권위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도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 사는 데가 다 그렇듯 여전히 귀족을 깍듯이 예우해야 한다는 부류도 있고, 같은 인간일 뿐이라며 대놓고 무시하는 부류도 존재한다. 리사가 물어본 것은 이 부분이겠지.

나는 귀족에 대해선 별다른 감정이 없지만, 매지션즈에서 보낸 시간이 많다 보니 아직 귀족이라는 존재가 낮설어서 가급적이면 조심하는 편이다.

“그럼 귀족 보러 갈래?”

“...에?”

“크리스는 야한 거 좋아해?”

“갑자기 무슨...”

“야한 거 싫어?”

”싫어하진 않는데...”

마치 동물원의 토끼 보러 가자는 듯한 느낌으로 귀족 보러 가자는 것도 모자라 뜬금없이 야한 거 좋아하냐고 물어서 당황스럽다.

누가 저주라도 걸었나? 왜 이렇게 마이페이스적인 사람들과 엮이게 되는 거야!?

“좋아, 여기서 따분하게 기다리고 있을 필욘 없잖아? 가자!”

“에... 으읏!?”

리사는 내 팔을 붙잡은 채 우측의 계단을 올라갔다.

2층에 올라서자 마자 가장 멀리 있는 방으로 직행했고...

“역시 여기였네!”

“으악!?”

그곳에선... ‘들박’이라고 하던가?

검은 머리의 여성이 근육질 남자의 손에 들려

온 몸이 허공에 뜬 채로 무자비하게 박혀대고 있었다!

“휘유~ 몇 번을 봐도 굉장하긴 하네! 내 취향은 전혀 아니지만.”

“아으아... 리사!”

깜짝 놀라서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가, 살짝 벌려서 봤다. 다른 사람이 섹스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니까.

암튼, 방이 꽤나 넓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은 딱 봐도 야성미 넘치게, 과격하게...

불편한 자세일 텐데도, 남성은 엄청 격렬하게 움직이며 여성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저걸 버틸 수 있는 건가? 아플 것 같은데... 그보다 기절하는 거 아냐?

“누님, 왔어?”

“응. 오늘은 네가 마지막인가 보네. 그보다 내 쪽이 한참 어린데, 누가 누님이야?”

“하하, 누가 보더라도 누님이라고 믿을걸? 그보다 이쪽의 아가씨는?”

“으아악!?”

“아, 미안합니다. 여기선 벗고 있는 게 너무 당연해져서. 하하...”

앞의 상황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바로 옆에 구릿빛의 떡대가 있다는 걸 알아채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게다가... 그는 알몸이었고, 자연스럽게 아래쪽에 시선이 가서...

뜬금없이 핏줄이 바짝 서 있는, 단단하게 발기된 페니스가 당장 눈 앞에 나타나니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았다!

...

놀란 마음을 추스리고 보니 라이디 거보단 작긴 한데...

남성의 평균치는 훨씬 상회할 것 같고, 체격이나 근육이 있어 더욱 우람하게 보이는 것 같긴 하다...

“이 친구는 레즈니까 신경 끄셔.앤하고 밥 먹으러 온 거야.”

“정말 예쁜데, 아쉽네... 아가씨, 남자가 그리우면 얘기해요.”

“아... 으... 네...”

연락할 리가 있겠냐!?

우리 집의 페니스 지분은 나와 라이디 만으로도 이미 가득 찼단 말이다!

“그보다 식사 대접한다는 핑계로 이런 데에 데려오다니, 꽤나 악취미군요 누님.”

“역시 그런가? ...조금 심했지? 크리스, 돌아갈까?”

“...저는 괜찮아요. 자책하지 않아도 돼요, 리사. 정말 괜찮으니까.”

갑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한 걸 후회하는 리사가 조금은 안쓰러웠다.

나야 물론 깜짝 놀라긴 했지만, 덕분에 좋은 구경을 할 수 있었기에 딱히 상관은 없었는데.

“그럼 모처럼이니 가까이서 관람하세요. 아가씨도 보여지는 걸 좋아하시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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