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랩 매지션즈-101화 (101/114)

〈 101화 〉 연장전 ­ 1

* * *

“테사, 라이디가 제도에 갔다고 했잖아? 혹시 무슨 일로 간 건지 얘기해 줬어?”

“몰라. 일 관련해서 엄마가 불렀다던가? 자세히는 알려주지 않았어.”

“제도까지 가는 거면 꽤 걸릴 텐데... 괜찮으려나?”

“그래서 벨마가 데려다준다고 같이 가더라고.”

“아... 흐응...”

집에 메이만 있길래 라이디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싶었는데, 뒤늦게 귀가한 테사로부터 그녀가 점심 즈음에 제도 힐베르트로 갔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한 때 전 세계를 아래에 두었던 라디안 제국의 수도이기도 한 힐베르트는 매지션즈의 오른편에 있지만, 그 사이에 거대한 산맥을 끼고 있어서 꽤나 돌아가야 하는 거리였다.

그러니 고맙게도 벨마가 텔레포트 포탈을 통해 데려다주겠다고 나선 거겠지만...

라디안 제국은 이미 쇠락한지 오래다. 수 차례의 독립전쟁으로 대부분의 영토를 잃고, 남은 거라곤 약간의 직할령들과 황제라는 타이틀뿐이었다.

겉으론 아직도 모든 국가를 속국으로 거느리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론 언제 합병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소국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라이디의 어머님께서 왜 라이디를 호출하셨는지, 그것도 굳이 힐베르트에서 만나자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한데...

“주인님, 음식이 식기 전에 어서 드시지요.”

“아! 알았어. 매번 이렇게 준비해 줘서 고마워, 메이.”

“집안일을 하는 것은 메이의 의무이자 즐거움입니다. 심려하지 마시고 마음껏 부려 주셨으면 합니다. 더하여 주인님의 밤시중을 위해 잘 정비해 둔 메이의 몸ㄷ...”

“아무튼, 잘 먹겠습니다!”

혼자 고민해봤자 답이 나올 리가 없긴 했다.

그래서 라이디, 벨마가 빠진 채로...

테사, 메이, 그리고 필리아와 함께 넷이서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

그렇다.

사실 라이디의 부재보다도, 오랜만에 방구석에 틀어박혀 살아가는 생활에서 벗어난 필리아가 더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애써 라이디쪽으로 화두를 돌리고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서, 그리고 무엇때문에 혼자 지내고 있었는지를 잘 모르는 상황이라

테사에게 말을 돌리며 줄곧 어떤 식으로 어색함을 풀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

열심히 시간을 벌어봤지만, 이 역시 딱히 고민한다고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으니... 그냥 정공법으로 밀어붙여야겠다.

“필리아,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그동안 잘 지냈어?”

“네! 필리아는 푹 쉬고 있었답니다! 그러는 크리스 님은 여러모로 바쁘셨나 보네요? 정기를 잔뜩 빨리셨는지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어 보이는데...”

“에...? 그... 그런것도 알 수 있는 거야!?”

“물론이죠! 필리아는 서큐버스니까요. 정액이 얼마나 남았나를 알아내는 건 마치 요리하기 전에 식자재가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의 난이도랍니다?”

“하... 하하...”

가끔 필리아가 ‘서큐버스’라고 불리는 존재라는 걸 잊고 단순히 엘프같은 이종족 정도로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 마법을 쓴 것도 아닌, 그저 본능적으로 감지해낼 수 있다니...

심지어 야한짓에만 잔뜩 몰아놓은 능력이라니... 보통 엉뚱한 종족이 아닌 것 같아.

“...호오? 크리스, 설마 도서관에 가서 몰래 폭딸치고 온거야? 딸감이 필요하면 조용히 부르지 그랬어. 노출 플레이는 언제나 환영인데.”

“하... 하하...”

눈을 게슴츠레 뜬 채 바라보며 묻는 테사.

얼핏 보기엔 평소처럼 놀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날 추궁하고 있다는 건 너무나도 자명했다.

후...

어차피 숨길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하렘을 차리겠다고까지 선언한 마당에, 이 정도의 해프닝을 말하지 못할 이유는 없잖아?

그래서 최대한 별거 아니었다는 투로, 그럼에도 엄청 위험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걸 강조하며 디앤, 블레어와 있을 때 벌어졌던 일들을 이실직고했다.

“...별 일이 다 있네.”

“그치? 정말 난처했다니까.”

“왜 항상 크리스 님한테는 여자들이 꼬이는 걸까요? 필리아는 궁금해요.”

“음... 그러게...”

내 생각에도 10년의 강제 금욕생활을 이세상이 보상해주는 걸까 싶을 정도로 미녀들과의 접점이 이상하리 만치 많은 것 같다.

덕분에 요즘 행복한 나날을 만끽하고 있지만... 체력이 달릴 정도라서 조금은 곤란하다.

아직 필리아가 참전하지 않은 상태고, 어리다는 핑계로 메이를 거부하고 있는데다, 혹여나 블레어가 계속 날 요구해 온다면...

다 받아주는 경우엔 몸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은데... 그때 가선 로테이션이라도 돌려야 하려나...?

”그래서 좋았어?”

“아니, 좋았다는 게 아니라, 그런 일이 있었다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거 알잖아?”

“흥! 뭐, 됐어.”

날 째려보며 매도한 테사는, 얼굴을 푹 숙인 채 음식을 깨작이기 시작했다.

“테사,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니까? 블레어의 제안을 거부하고 매지션즈에 끌려가는 걸 바라는 거야?”

“필리아는 크리스님이 잘못하셨다고 생각해요.”

“...내가? 뭘?”

필리아는 가볍게 웃음지어 보이곤, 내 질문엔 답하지 않은 채 식사를 이어갔다.

...

젠장!

디앤의 일은 리사가 맛있는 식사를 대접한다해서 속아넘어갔던 것뿐이었고, 블레어의 협박이야 말할 것도 없는데...

게다가 숨기지도 않았잖아? 모범적이고 당연한 선택을 했는데, 내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지당하십니다. 주인님은 여자의 마음을 너무 모르십니다.”

“메이, 넌 테사 말하는 게 아니잖아.”

“충분히 발달한 여성형 안드로이드의 인공지능은 인간 여성의 마음과 구별할 수 없습니다.”

탁­ 타닥...!

“깜짝이야!? ...테사?”

“...그만 먹을래. 잘 먹었어. 메이.”

거칠게 식기를 내려놓은 테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버렸다.

“나 잠깐 다녀올 게.”

“네에, 느긋하게 다녀오세요. 크리스 님~!”

“주인님과 테사님을 위해 야식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에, 이런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천하태평한 두 사람...

사람 비스무리한 존재들을 뒤로한 채, 재빨리 테사의 방으로 향했다.

덜컥­

“테사! 저기, 괜찮은 거... 어... 옷은 왜 벗는거야...?”

“이럴줄 알고 온 거잖아? 변태 크리스.”

“아니, 네가 기분 상한 것 같아서 온 것뿐인데...”

“정말? 나로는 이제 안서는 거야?”

“아니아니 그런건 아닌데... 힛!?”

갑자기 테사가 손으로 내 아랫도리를 꽉 쥐었고, 순간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내가 왜 화를 내겠어? 그저 나도 크리스랑 야한 짓 하고 싶어져서 애들을 떼어내고 싶은 것뿐이라구. 슬슬 눈치 챌 때도 되지 않았냐?”

“아... 알았으니까, 그... 아래쪽... 흣... 놔줘...!”

“엄살은. 안 부술거니까 걱정 마. 그보다 블레어라는 년이 얼마나 쥐어짰는지, 확실히 크리스의 아기씨 주머니가 작아진 것 같네... 그래도 할 수 있지? 세울 수 있지? 하아... 크리스으...”

하하...

복잡한 심경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면서 올라왔더니, 야한짓 하고 싶어서 장난치는 거였다니...

그래도 마음 한켠에 왠지 미안한 마음도 있는지라 가급적이면 테사의 응석에 따라주고 싶긴 하지만...

“...테사, 미안한데 정말 너무 힘들어서... 내일 하면 안 될까? 그래, 아침에 해도 괜찮으니까...”

“당장 해야돼. 재밌는 걸 구했는데, 지금이 아니면 쓸 수 없을지도 모르는거란 말야.”

“...뭔데?”

“짜잔!”

“어... 에? 이... 이건!?”

테사의 손에 들려있는 건, 전에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는..

붉은 빛을 머금은 기다란 창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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