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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 매지션즈-110화 (110/114)

〈 110화 〉 필리아의 고민 ­ 1

* * *

“드디어 일어났네. 잘 잤어? 크리스.”

“으으... 아!?”

어제, 마치 기절한 것 마냥 스르르 잠에 들었고, 깨어난 것도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눈이 스르르 뜨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아직 흐릿한 눈 앞을, 너무 아름답게 빛나는 은빛 물결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테사?”

“어제, 좋았어?”

“아...? 에? 그... 그게...”

난감한 질문이 훅 하고 들어와, 순간 잠기운이 싹 달아났다.

어제라... 메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몇 번이고 거사를 치른 뒤, 그대로 뻗어버렸다.

그래서 좋았다. 물론 좋았지만...

아무리 하렘을 차리겠다고 선언했다고 해도 면전에서 ‘다른 여자를 안아서 좋았다!’고 말하긴 좀 그렇잖아!?

“별로 안 좋았으면 내가 도와주고 싶지만, 한동안 해줄 수가 없어서 곤란하네.”

“무슨 일 있어?”

“응. 안타깝게도 마법에 걸려서.”

“마법? ......아! 그... 그렇구나...”

이해하는 데 한참 걸리고 말았다.

아니, 마법을 쓰는 사람들끼리 그런 은어를 쓰면...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하지!!!

...

절대 내가 센스가 없는 게 아니다!

“아쉬워? 대신 입으로 한 발 빼줄까?”

“아니, 괜찮아. 그보다 아프진 않아?”

“아랫배가 조금... 그래도 아쉽긴 하네. 크리스의 아기가 생겼으면 아플 일도 없었을 텐데. 그치?”

“아... 아하하...”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입에 가져다 대보이던 테사는, 말하는 것과는 달리 마치 아기가 있는 것처럼 양 손으로 자신의 아랫배를 살포시 감쌌다.

실제로, 라이디도 가끔 넌지시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얘기를 꺼내곤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이기에 적당히 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야 멀쩡한 직업도 없고, 돈도 없으니까...

기둥서방 짓이나 하고 있는 것 같아 내심 부끄럽다. 그렇기에 다시금 하루빨리 마법 아이템 제작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래서 나가서 놀다 올려구.”

“그럼 같이 갈까? 나도 오늘은 한가한데.”

“괜히 크리스한테 화풀이하기 싫어서 나가는 건데, 같이 가면 의미 없잖아? 괜찮아. 어디의 누구 씨처럼 여기저기 바람피고 다니진 않을 거니까 안심해도 돼.”

“으윽...”

얼마 전에 있었던 블레어와의 일, 마음에 담고 있는 건가?

방금 전까지 마법 아이템 제작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있었기에 괜스레 뻘줌해졌다.

...뭐, 예전의 매운맛 테사에 비하면 상당히 순해진 거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오전에 라이디로부터 내일 아침에 올 거라고 연락 왔었어.”

“흐... 흐응... 그... 래...? 다행이네.”

세 번이나 민망한 상황에 놓일 순 없으니까, 이번엔 정신 바짝 차리고 기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

하지만 너무 기쁘고!! 즐겁다!!!

며칠 못 본 것뿐이지만 이미 그리움 수치는 한계치를 아득히 넘기고 있었던 터였다.

비단 라이디 뿐만 아니라 테사나 필리아, 메이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떨어져 있으면 그리울 것 같다.

이젠 가족이나 마찬가지니까.

...

물론, 근래 들어 슬렌더한 맛을 많이 봤으니 다시금 아름답고 육덕진 그 몸을 탐하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걸로 크리스한테 알려줄 내용은 끝이네. 그럼 난 이만 나가볼 테니, 이따 저녁에 보자.”

“응, 조심히 다녀와, 테사.”

“오늘도 어제처럼 열심히 수고해~ 크리스!”

...뭘 수고하라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러려니 하고 받아넘기며

테사와 가볍게 입을 맞췄다.

***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주인님”

“응...”

거실에 내려갔더니, 오늘도 어김없이 청소를 하던 메이가 나를 반겨주었다.

평범한 메이드 복, 무표정한 얼굴... 그렇게 평소의 조신한 메이로 돌아왔지만...

뭔가 에로하게 보인다. 마치 그녀의 나신이 옷에 비쳐 보이는 것만 같아 시선을 둘 곳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피곤한 척하며 빠르게 소파에 앉았다.

이래서야 일상생활이 곤란한 수준이다. 그러니 일단 야한 거에 정신이 팔려 있는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메이도 잘 잤어?”

“주인님. 그러고보니 어제 꿈이라는 걸...”

“크~리~스~ 니임~! 정액 주세요!!!”

갑자기 펄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머리 너머로 순식간에 날아온 필리아가 나와 메이 사이를 가로막았다.

“음... 그게 말이지...”

“여기 있습니다. 필리아 님.”

“와아!! 고마워요, 크리스 님. 이거, 금방 짜낸 것 같네요. 냄새도, 색깔도 지극히 깔끔한 게 정말 신선해요!”

메이에게서 끈적하고 하얀 액체가 바닥에 깔려 있는 컵을 건네받는다는, 어딜 봐도 이상한 상황이지만...

필리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히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받아들었다.

으으...

냄새라던가 색깔이라던가 나로선 그런 걸 묘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거부감이 드는데... 서큐버스라는 종족에게는 정액이 그렇게나 맛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호기심이 들었다.

“그거, 먹는거야?”

“당연하죠! 크리스 님은 어디에 쓸 거라고 생각하신 건가요?”

“어...? 아! 아니아니, 여... 열량으로 따지자면 별거 없을 것 같아서...”

...괜히 물어봤다!!!

순수하게 궁금한 걸 물어봤을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굉장히 실례되는 말을 했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서큐버스에게는 필수 영양소 같은 거랍니다. 먹지 않는다고 당장 죽지는 않지만, 안 먹으면 건강에 해로운 거라고 할까요?”

“그럼 자주 먹어야 좋은 거 아니야?”

“아니에요. 정말 가끔 먹으면 되는 거에요. 그 외에는 기호식품을 먹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

“정말정말 맛있는지라 서큐버스들은 정액을 짜내는 데 혈안이 되곤 해요. 하지만 필리아는 자제력이 뛰어난 서큐버스이기에 가끔 필요한 만큼만 받아간답니다?”

...그냥 귀찮아서 그런게 아닌가 싶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방에 틀어박혀서 뒹굴 거리는 걸 좋아하는 거 보면 확실한 것 같은데...

아무튼, 나로서도 내일의 이벤트를 위해 정액을 아껴야 하는 건 사실이니까 나쁠 건 없다.

“흐응... 알았어. 그래도 신선한 걸로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긴 하네.”

“주... 주인님...”

메이는 내게 자신을 믿지 못하는 거냐는, 불만 가득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으음... 직접 말하기는 뭐하지만... 신선한 건 아니지 않나? 어젯밤에 나온 건데...

거사를 치르고 난 뒤 내 옆에 누워 있었으니 아마 아침까지는 그대로 있었을 거고, 그렇다는 건 밤새 자궁 안에 보관하고 있던 정액을...

컵에... 옮겨 담는...

게다가 그걸... 먹겠다고...

...

차근차근 생각을 이어나가다 보니 이제야 깨달았는데... 이거 엄청난 시츄에이션이잖아!?!? 이렇게 태연하게 이야기할 정도의 레벨이 아닌데???

“아니에요. 지금도 충분히 신선하답니다? 아무튼 잘 먹을 게요!”

필리아는 컵을 두 손으로 감싸 들곤 황급히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

솔직히, 약간은 피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필리아와 처음 만났을 때 당장 따먹히기 직전의 상황에 놓였을 정도였고, 이후로도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었을 정도인데 그럼에도 컵에다가 담아 주라니... 누가 보더라도 수상하다고 느낄 게 분명하다.

“주인님.”

“응?”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점심식사 준비해 두었습니다만.”

“어? 으...”

음... 식사라...

배는 고프지만... 밥을 먹으면서 머릿속으로 천천히 상황을 정리해 보고 싶기도 하지만...

필리아나 메이를 보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보니 여러모로 아랫도리가 ‘곤란'해졌기에 밥을 먹으러 가기가 곤란했다.

“조금 이따가 가서 먹을 게. 아직 잠이 덜 깨서.”

“알겠습니다.”

메이는 지긋이 날 바라보다가, 청소를 재개하기 위해 뒤돌아섰다.

그녀의 허리놀림에 맞춰 팔랑거리는 스커트는, 엉덩이의 굴곡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묘하게 꼴리는...

......‘곤란함’을 누그러뜨리는 거, 쉽지 않을 것 같다.

***

“주인님!! 어서 일어나보세요, 주인님!!!!”

“으... 아...!? 메이...?”

점심을 먹고 나니 나른해졌기에 소파에 누워 졸고 있었는데...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깨우는 메이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고 말았다.

“2층을 청소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피... 필리아 님이 아프신 것 같습니다.”

“뭐? 필리아가!?!?”

수심이 가득한 눈빛,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와 손, 다급한 외침...

잠결에 머릿속이 어질어질한 상황임에도, 진짜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단박에 읽어낼 수 있었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가 없었다. 그저 허겁지겁 계단을 올라갈 뿐이었고, 짧은 시간동안 만감이 교차했다.

너무 무신경했던 것 같다. 역시 아까 건네 준 정액이 상했던 걸까!? 겉보기와는 달리 주식을 못 먹은 지 오래 돼서 몸이 허약해져 있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무서운 친구분들이 그녀를 데려가기 위해 모종의 수를 쓴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테사도 라이디도 없는 상황에서 적절한 대처가 불가능할 텐데...

그러나, 결론을 내릴 새도 없이 어느샌가 나는 필리아의 방 앞에 도착해 있었고, 일말의 고민 없이 방문을 열어제꼈다.

“필리아!! 괜찮아!? ......아? 으앗!? 뭐야, 메이??? 뭐하는 거야? 문 열어!!!”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다시 나가려 했지만, 아마도 메이가 뒤에서 나를 밀어서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황급히 일어나 문을 열어 나가려고 했지만... 문고리를 꽉 붙잡고 있는 건지 몰라도 도저히 열 수가 없었다.

“아... 크리스 님...”

등 뒤로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퇴로는 막혔다. 더는 외면할 도리가 없다. 그렇기에 나는 필리아를...

정액이 들어 있던 컵을 얼굴에 가져다 댄 채 자위를 하고 있던 그녀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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