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상이군인
“컴 인사이드! 퍽 미 베이비! 컴온! (cum inside! fuck me baby! come on!)"
여자의 도발적인 교성이 높아질수록 나의 쾌감도 점점 높아졌다.
“아!! 오 마이 갓! 퍽! (ah! oh, my god! fuck!)"
여자가 절정에 이르자 나도 사정감이 몰려왔다.
천천히 움직이던 손을 더욱더 빠르게 용두질 쳤다.
왜 허리가 아니고 손이냐고?
그건 지금 내가 하는 행위가 성교가 아닌 자위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현실의 여성을 탐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화면에 비치는 영상을 보며 허무한 쾌락을 추구했을 뿐.
“으-윽!”
화면 속의 여성이 절정에 몸을 뒤트는 타이밍에 맞춰서 나도 뜨거운 정액을 배출했다.
나의 씨앗이 사방으로 튀어서 주위를 더럽히지 않도록 휴지로 틀어막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절정을 맛보며 욕정을 휴지 위에 토해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건지.’
행위를 끝내자 극심한 현자타임이 몰려왔다.
남자란 참 가련한 생물이다.
그렇게 끓어오르던 열정도 정액의 배출과 함께 식어버리니 말이다.
나는 방금까지 몰입해서 시청하던 영상을 다시 훑어봤다.
그 영상은 과할 정도로 가슴이 탐스러운 금발의 여성과 근육질 남성이 몸을 섞는 내용이었다.
남성은 여성에게 다가가서 거칠게 입술을 탐하고는 바로 찢듯이옷을 벗겼다.
그리고 약간의 애무를 거친 후에 바로 여인의 몸에 자신의 거근을 삽입했다.
처음에는 후배위로 여인을 탐닉하던 남성은 성에 차지 않는지 여인의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고는 ‘가위치기 자세’로 계속 허리를 움직였다.
그리고 끝으로 여인의 질에 사정하는 것으로 행위를 끝마쳤다.
나는 영상을 끄고는 뒤처리를 하는데 사용한 휴지를 돌돌 말면서 생각했다.
‘성공하기 전까지 모든 쾌락은 뒤로 미뤄두기로 했는데.’
하지만 그런 다짐과 다르게 지금의 나는 단순한 ‘딸쟁이’가 되어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간단하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놀고먹으며 자위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이게 다 군대 때문이야!’
행위를 끝내고 찾아오는허무감과 함께 늘 같이 찾아오는 녀석이 있다.
바로 분노!
나는 슬그머니 머리를 내미는 분노에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 흥분과 쾌감에 잊고 있던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퍽킹 코리아! 퍽킹 아미!’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다리에 난 상처를 어루만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상처 하나 없이 튼튼했던 다리였다.
하지만 군대에서 사고를 당한 후에 내 오른쪽 다리는 화상과 흉터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 나이에 절름발이라니!’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입대했다.
어차피 맞을 매라면 일찍 맞는 것이 좋겠다는 심정으로 지원한 것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원하는 시기에 입대할 수 있었다.
행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좋은 선임과 후임, 간부를 만난 덕에 별 어려움 없이 군 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행운이 계속되지는 않았다.
제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사고에 휘말린 것이다.
야산에 묻힌 불발탄을 거둬들이는 임무 중에 그만 일이 벌어진 것이다.
모든 안전수칙과 장비를 갖추고 차분히 진행했지만, 불행의 여신은 나를 보고 윙크를 한 것이다.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같이 있던 부사관과 장교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 몸까지 날렸다.
덕분에 그분들도 나 못지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운이 없었을 뿐.
‘씨발!’
뒤처리에 사용한 휴지를 치우기 위해서 몸을 일으켰다.
여지없이 시큰한 통증이 엄습했다.
나는 절뚝거리며 휴지를 들고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이 짧은 거리를 움직이는 것도 고역이다.
그렇게 분노와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였다.
“여~브라더~. 뭐하냐?”
갑자기 문을 열고 형이 나타났다.
불행 중 다행이다.
한창 흥을 올리고 있을 때 나타났다면 또 엄청 놀려댔을 것이다.
“에휴~. 냄새! 밤꽃 냄새가 진동하네.”
이런 건 또 기가 막히게 알아낸다.
그는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아댔다.
그리고는 곁에 다가와서 손가락으로 나를 찔러대며 말했다.
“딸만 치면 뼈 삭는다. 뼈 삭아!”
“딸만 친 거 아니거든.”
“그럼 뭐 했는데?”
“이렇게 보여도 일 알아보고 있어.”
그렇다.
다리가 이 지경이 된 후로도 나는 꿈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사장님이 돼서 돈을 벌겠다는 소박한 야심을 아직도 가슴에 품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과 다르게 세상은 제법 야박했다.
다리가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사회는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야박한 구석이 있었다.
그저 내게 벌어진 특별한 일이라면 장시간 서 있지 못한다는 것과 걸을 때 약간 다리를 절룩거린다는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면서 나를 거절하기 시작했다.
어떤 작업장에서는 신체적으로 고된 노동이 필요한데 견디지 못할 것 같다며 나를 쳐냈고, 어떤 사업장은 다리를 절룩거리는 모습이 고객과 직원들에게 좋지 않다며 나를 거절했다.
‘고졸에 절름발이.’
젊은 나이에 빨리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진학을 포기했다.
사회적으로 가해지는 페널티를 각오하며 취업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페널티까지 덤으로 얻어졌다.
그러자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예상과 다른 인생의 흐름은 나를 당황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며 일자리를 구하기를 몇 개월!
어느덧 나는 21살이 되었고, 주특기는 집을 지키며 자위하는 것이 되었다.
한심한 일이다.
“야, 그러면 이 일은 어떠냐? 아는 사람이 소개해줬는데 사장님이 괜찮아.”
나를 놀려대던 형은 어느새 진지한 표정으로 뭔가를 내밀었다.
편의점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내용의 광고였다.
그런데 특이한 항목이 있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먼저 채용한다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이건 뭐야?”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형은 옅은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그거? 그분도 다리가 불편하다고 하더라고. 소아마비를 겪고 계신다나? 어쨌든 그런 부분에 관심이 많은 분이고, 안 좋은 조건에도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야. 네가 배울 점도 많을 거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한창 돈을 벌어야 할 시기였다.
다리만 멀쩡했다면 주말도 반납하고 바짝 돈을 벌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모처럼 마음이 동하는 제안을 들고 온 형이 기특해 보였다.
이 인간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때도 있다니.
“내가 이거 줬다는 소리는 하지 마라.”
형은 손가락을 입술로 가져가며 눈을 찡긋거렸다.
사실 내 몸이 이렇게 되고 나서 나보다 가족들이 더 힘들어했다.
거기에 쉽게 일자리도 구해지지 않자 다시 진로 문제가 부모님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몸 쓰는 일은 이제 힘들지 않겠니? 천천히 공무원 시험이라도 준비해 보는 건 어떻겠니?”
업무 중 재해가 인정돼서 나는 상이군인 판정을 받았다.
정확하게는 상이 7등급에 국가유공자 등록까지 되었다.
다달이 나가는 진통제와 화상치료제 때문에 걱정이많았는데 한 시름 덜 수가 있었다.
게다가 운 좋게 피부 이식도 성공해서 지금은 화상 흉터와 약간의 통증만 남은 상태였다.
일상생활에 거의 지장이 없을 정도로.
하지만 그렇다고 강도가 높은 업무를 소화할 정도로 몸 상태가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이 다리는 남았으니까.
“어머니, 마음은 이해하지만 저는 일해서 돈 벌고 싶어요. 그래서 나중에 제 사업할거예요.”
“유공자면 시험과목도 줄여준다고 하지 않니? 가산점도 준다고 하고. 마음잡고 공부해보면 안 될까?”
아무래도 어머니는 내가 다시 공부하기를 원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럴 뜻이 없음을 확실히 했다.
왠지 그런 식으로 공직에 나가는 건 반칙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공무원이 되면 철밥통이기는 하지만 큰 부를 이루기는 어렵다.
내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내가 일하지 않아도 알아서 돈이 벌리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다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사업을 일구고 확고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닌 돈의 지배자가 되는 것!
그것이 나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그렇다면 공무원이 돼서는 안 된다.
공무원은 돈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는 있지만, 돈을 지배할 수 있는 길은 아니기때문이다.
‘어머니의 마음은 알겠지만 저는 제 방식대로 해보겠습니다.’
나는 머리를 흔들며 상념을 털어냈다.
그리고 다시 광고지로 시선을 옮겼다.
“어쨌든 고마워. 한번 가볼게.”
공무원 시험도 좋지만, 나에게는 이런 제안이 더 의미가 있었다.
뜬구름을 쫓는 일보다는 훨씬 마음에 와 닿는다.
물론 부모님은 이렇게 앞으로 달려가려고만 하는 내 모습이 못내 불안하게 느껴지실 것이다.
그걸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을 부모님께서 바라는 대로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내 인생은 온전히 내 것이다.
잘되어도 내 탓이요, 못 되어도 내 탓이다.
조언과 충고에 귀를 기울이기는 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일의 실행과 그 결과는 온전히 내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다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것!
며칠 후에 나는 형이 소개해준 편의점으로 향했다.
연락을 받았는지 사장은 미리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게. 이야기는 들었어. 오느라고 고생이 많았지?”
“아닙니다. 이제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걸요.”
“자, 그러면 면접을 시작해 볼까?”
사장은 작은 체구에 선한 인상의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몸 상태에 대해서도 물었다.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대답했다.
군 생활에 있었던 일부터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관한 이야기까지 털어놨다.
젊은 놈이 꿈만 거창하다는 소리를 들을 각오하고 최대한 솔직한 언어를 쏟아냈다.
하지만 사장은 다른 사람들과 반응이 달랐다.
진지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좋네. 성실해 보이니 그대로 채용하겠네.”
사장은 내가 마음에들었는지 바로 채용을 결정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에 다른 사람에게 동정이 아닌 인정을 받았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고등학교 이후로 실로 오랜만에 듣는 칭찬과 긍정의 목소리였다.
[딸랑]
그때였다.
누군가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영 씨, 왔어요? 여기 인사해요.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될 향기 씨야.”
나는 사장의 소개에 맞춰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조향기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저는 권아영입니다.”
그녀는 퉁명스럽게 고개를 숙이고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시선이 묘했다.
분명 뭔가 호기심이나 호감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호의가 담겨있지 않은 시선은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며 외면했다.
“향기 씨는 다리가 불편하니까 아영 씨가 많이 도와주세요.”
사장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굳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만의 착각일까?
분명 미묘한 불쾌감이 그녀의 얼굴에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