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사냥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60/110)



〈 60화 〉사냥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면 새벽에 그곳에서 만나요.>

메시지를 강윤소에게 보내고 스마트폰을 얼른 감췄다.
최근에 나는 그녀와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게다가 마지막 일선까지 넘으며 몸까지 섞었다.

‘어쨌든 주아린에게 들키면 안 된다고.’

나는 슬쩍 사장실에 있는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다행히 아직 눈치챈 기색은 없어 보였다.
그녀의 동정을 살피고는 있지만, 양심에 거리끼는 부분은 없었다.
내가 주아린과 사귀며 양다리를 걸친 것도 아니니 말이다.
나는 분명 그녀에게 사귈 마음이 없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그녀도 그걸 받아들인 상태에서 나를 곁에 머무르게 했다.
하지만 연인이 생기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남이 갖는 것을 용납할 사람이 아니니.
그리고 분명 나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고 있지 않을 터였다.

[부-우우웅!]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또 어디서 연락이 온 거지?

‘서유진?’

예전에 나를 감시하기 위해서 ‘에이스 원’에서 붙였던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지?

“향기 씨?”

“유진 씨, 무슨 일이에요?”

“회사 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요.”

“심상치 않다니요?”

“신지혜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들쑤시기 시작했어요. 게다가 본사에서 직접 인력까지 파견했습니다. 아무래도 알고 있는 편이 좋으실 거 같아서요.”

데이트 신청이나 근황을 묻는 전화로 여겼다.
한동안 그녀와 만나지도 못했고, 몸을 섞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그녀가 슬슬 좀이 쑤실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들려온 소식은 뜻밖의 내용이었다.

‘본사라면 블랙 애로우?’

군사 분야에 거의 관심이 없는 나도 알고 있을 정도로 악명이 자자한 기업이었다.
민간인 학살이나 불법 무기 밀매, 각종 청부 폭력 등과 연관되어 있다는 추문이 무성한 민간 군사 기업이었다.
소문에는 ‘에이스 원’이 ‘블랙 애로우’의 자회사라는 소리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이다.

“향기 씨,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신지혜에게 무슨 물건이나 정보를 받은 적이 있나요?”

“그런 거 없어요.”

“어쨌든 너무 걱정돼서 전화를 했어요. 이 인간들 일하는 방식이 정말 악랄하다고요. 혼자 다니지 말고, 항상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다니세요. 이동은 꼭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하시고요.”

“알겠어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모르는 전화도 받지 마시고요. 아셨죠?”

“네. 그보다 유진 씨도 걱정이네요.”

“네?”

“이렇게 회사의 정보를 마구 알려줘도 되는 건가요?”

“아...”

나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이어서 말했다.

“제가 볼 때는 유진 씨에게는 험한 일은 어울리지 않아요.”

“처음에 입사할 때는 평범한 경호 회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런 일이 잦아지네요.”

“회사 나와서 도장이라도 차리는 건 어때요?”

“도장?”

“요즘 미모의 여관장이 운영하는 도장에는 수련생이 많이 몰린다고요.”

“미모라고 할 것도 없어요. 헤헤헤.”

그녀는 나의 에둘러 말하는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귀여운 웃음소리를 흘렸다.

“어쨌든 한번 생각해보세요. 분명히 지금 하는 일보다는 좋을 겁니다.”

'떡정'도 '정(情)'이라고 했던가?
나는 몸을 섞은 여자들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애틋한 감정은 강윤소에게만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다른 여자들에게 어떤 감흥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의 정은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이란 것을 빌어 말하자면 서유진이 몸담은 회사가 통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민간인 사찰이나 하고, 이상한 무기나 개발하고!
어쨌든 그녀의 신변이 걱정되었다.

“유진 씨도 몸조심하세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시고요.”

전화를 끊고 생각을 정리했다.
신문이나 인터넷, 대안 언론이나 잡지에서도  문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았다.
만약 신지혜가 제대로 이 사실을 폭로했다면 국내든 해외든 뭔가 반응이 있었어야 했다.

‘아직 폭로하지 못했다는 건데.’

상황이 이렇다면 신지혜가 아직 일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이러다가 정말 위험해지는  아니겠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주아린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별일 아닙니다. 사장님, 무슨 일이라도?”

“약속 시각이  되었어요. 괜찮아요?”

그러고 보니 오늘은 최종적으로 계약을 마무리하는 날이었다.
뭐, 고용도 그대로 승계하고, 기존의 거래처나 유통 방식도 유지한다.
그저 바뀌는 것은 사장이 마리나 자매라는 것.
그리고 이익에 대한 분배율이 조금 바뀌는 정도였다.

‘이것도 나 아니었으면 통째로 빼앗길 뻔했지.’

러시아의 대기업인 ‘볼쇼이 데레바’가 마피아와 군벌까지 끼고 이권에 개입한 사건이었다.
내가 적절하게 손을 쓰지 않았다면 사업영역 전체를 뺏겼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나는 페로몬의 힘을 이용해서 막아낸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는 대목이었다.

“오랜만이야.”
“쁘리벳(привет).”

회의실에 도착하자 마리나 자매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내가 웃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자 그녀들은 주위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나에게 안겨 왔다.

“어, 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오늘은 업무 차 만나는 자리로서...”

“우리는 그런 거 신경 안 써.”
“맞아. 상관없어 그딴 거.”

그녀들의 행동에 주아린은 눈을 치켜뜨며 입을 뻐끔거렸다.
그녀의 당황한 표정을 읽었는지 마리야가 선수를 쳤다.

“뭘 그렇게 놀라요? 당신 조향기와 사귀는 사이는 아니죠?”

“아니, 그렇기는 하지만...”

“그러면 아무 문제 없는 거잖아요?”

마리나는 더욱더 얄미운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주아린은 질투와 분노로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하지만 입은 애써 웃는 표정을 짓기 위해서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상상해 보라.
눈은 화가 난 상태에서 입만 웃고 있는 모습을.
그렇게 부들거리며 주아린은 간신히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만약 ‘혜성그룹’이 ‘볼쇼이 데레바’보다 돈이 많았다면, 또는 ‘혜성그룹’이 ‘볼쇼이 데레바’보다 막강한 무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주아린은 절대 참지 않고 그녀들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런 성격의 여자니까.

‘따갑네. 따가워.’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주아린은 계속 나를 노려봤다.
틈이  때마다 도끼눈을 만들면서 나에게 연신 레이저를 날렸다.
아마 지금쯤이면 눈치를 챘겠지.
내가 마리나 자매들과 잤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게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저렇게 화가 난 것일 것이다.

“좋아. 이 정도면 만족이야.”
“그러면 잘 부탁해.”

우리는 계약서를 교환하고 일을 마무리 지었다.

‘그걸 좀 물어볼까?’

주위를 정리하며 회의실을 나서려는 마리나 자매에게 나는 넌지시 물었다.

“혹시 ‘블랙 애로우’라는 회사를 알아?”

“응. 알아.”
“그래, 미친 용병들이지.”

소문대로 그다지 좋은 회사는 아닌 모양이다.
나는 눈을 빛내면서 흥미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흥미가 있다기보다는 나의 안전을 위해서 정보가 필요한 것이지만 말이다.

“혹시 그 회사와 엮인 거야?”
“그만두는 쪽이 좋아. 그것들은 우리보다 질이 안 좋아.”

“무슨 뜻이지?”

“우리 같은 상인들은 물질을 위해서 폭력을 이용해. 어디까지나 폭력이 도구지.”
“맞아. 폭력은 돈을 얻는 수단에 불과하지. 사실 돈을 얻는 방법은 달리 많으니까.”

그렇다.
그렇기에 기업들은 다양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놈들은 달라. 폭력을 도구로 보지 않아. 돈을 낳는 거위로 보지.”

“그게 그거 아니야?”

“아니, 달라. 우리는 더 쉽게 큰 부와 권력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 폭력조차 쉽게 포기할 수 있지. 하지만 놈들은 폭력을 돈으로 동일시하는 놈들이라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지.”
“맞아. 생산품을 팔거나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 전쟁을 하는 게 아니야. 다른 나라의 영토에 있는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서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니지. 그저 놈들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 단계, 전쟁을 수행하는 단계, 전쟁을 끝내고 전리품을 획득하는 모든 과정이 돈이 되는 거야.”

민간 군사 기업에 대해서 대충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세계 각국이 군사행동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민간으로 그 기능을 일부분 이전한 것이 그들이었다.
그들은 국가의 정규군이 수행하기 어려운 임무를 대신 수행하거나,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임무를 대신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상은 더욱더 심각했다.
그들은 의뢰받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병사들을 가혹한 전투로 내몰거나, 전장에서 더 쉽게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쓰면  되는 전술이나 무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게다가 마약이나 무기의 밀매에 손을 대고 있기도 했고, 국제 사회의 여론이 미치지 않는 외진 땅에서는 폭력을 이용해서 이권에 개입하기도 했다.

“그냥 단순한 용병회사가 아니다?”

“그렇지. 굳이 말하면 우리 같은 상인들은 목축업을 하는 낙농인이라고  수 있어. 민중들에게 돈을 짜내지만, 그들을 죽여서 돈을 벌려고 하지는 않아. 하지만 그들은 사냥꾼에 가깝지. 그들은 자신들 이외에는 전부 먹이로 보거든. 폭력은 단순한 수단이 아닌 그들이 살아가는 가치 자체가 되었지. 중세에 있었던 용병보다  천박한 게 현대의 민간 군수 기업이라고.”

역시이런 건 함부로 민간에 이관하면 안 된다.
국방이란 국가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분야이다.
얼마나 비용이 들어가든지 말이다.
모 천조국이 의료보험을 민영화했다가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겪었는가?
세상에는 국가나 공무원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분야가 있고, 민간에게 이관해도 좋을 분야가 따로 있는 법이다.
국가가 꼭 쥐고 있어야 할 부분을 민간에 이관시키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의료, 교육, 국방, 도로, 교통, 에너지  인간 삶의 바탕이 되는 것은 함부로 민간으로이관시키면 안 된다.
만약 그런 것들을 민간에 맡기면 어떻게 될까?
그것을 인질로 삼아서 착취하거나 무분별하게 권력을 휘두를 것이 뻔하다.
그런데 민간 군사 기업은 그중에서도 중요한 축에 속하는 ‘국방을 대행’하는 회사였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돈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회사에 맡긴 것이다.
정말 소름 끼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위험한 일에는 발을 들이지 않는 게 좋아.”

나는 그녀들에게 웃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한 일로 걱정을 시킬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직 그들이 나와 신지혜를 노리고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수상한 낌새가 있는 정도니까.
그저 조용히 지나갈 수도 있다.

‘어쨌든 최대한 몸조심하자.’

그들이 개발하던 물건이 지금 내 몸속에 있었다.
만약 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무슨 일을 벌일까?
상상도 하기 싫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떨리는 가슴을 애써 달랬다.

“그러면 나중에 또 뵙죠.”

나는 그녀들과 몇 가지 잡담을  나누고 헤어졌다.
마리나 자매가 사라지자 주아린이 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저년들이랑 했지?”

나의 멱살을 잡아채며 성난 목소리로 묻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길을 부드럽게 풀어내며 대답했다.

“그걸 말할 필요가 있어?”

“했네. 했어.”

그녀는 분한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나를 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쪼-오-오옥!]

그녀는 나의 입술을 억지로 범했다.
나는 그녀를 살며시 밀어내며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

“갑자기 꼴려? 그래서 지금 여기서 하자고?”

“저 년들이랑 사귀는 건 아니지?”

“응.”

“그러면 괜찮아.”

조금 전까지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던 주아린은 두 팔을 내 목에 두르며 안겨왔다.
그리고 연신 등을 어루만지며 다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어떤 여자와 몇 번을 뒹굴든 상관없어. 그저 마지막에 나를 선택해주면 그걸로 족해. 나도 그렇게 깨끗하고 착한 년은 아니니까. 많은   바래.”

그녀의 솔직한 말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녀는 매력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지금 강윤소와 사귀는 사이가 된 터였다.

‘이러면 말하기 더 어려워지는데...’

아무래도 주아린은 정말로 나에게 사랑을 느끼는 모양이다.
단순히 몸을 취하고 싶어서 날뛰는 거로 보였는데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던 걸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어떻게 회사에 취직도 하고, 여친도 생겼어. 그래서 모든 일이 잘 풀리나 했는데. 또 일이 꼬이고 있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주아린의 등을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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