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친구야, 나랑 사업하자
“장례는 잘 끝냈어. 시신은 화장했고.”
“네. 고생하셨어요.”
“언제쯤 볼 수 있니?”
“머지않아서요. 그때까지 건강히 지내세요.”
그렇게 통화를 마무리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나의 목소리를 쫓으며 쉽게 전화를 끊지 못하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내가 먼저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렇다.
치러진 장례는 나의 것이었다.
‘조향기’의 장례식이었다.
바다에서 나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우리 가족은 유류품을 토대로 그 시신을 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둘러장례를 치렀다.
주 회장이 손을 썼는지 언론과 경찰도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부검이 의무가 아닌 건 참 다행이야.’
보통 신원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부패한 시신은 유전자 검사나 부검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류품이 확실하고 가족이 원하지 않으면 별도의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걸 악용해서 산 사람을 죽은 것으로 위장하거나, 죽은 사람을 산 사람으로 위장하는 사례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사자에 대한 예우를 중시하는 동양 문화권이라서 그런 것일까?
일단 시신에 대한 권리는 가족에게 우선권이 있었다.
사인을 밝히는 것을 중시하는 다른 나라처럼 부검을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의 경우에는 이걸 적절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시신도 화장했고. 이걸로 나는 완전히 사라진 거네.’
이제 ‘조향기’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나의 새로운 신분인 ‘이정혁’만 남았다.
‘이제 어떻게 한다?’
비로소 세상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주 회장이 건네준 통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업을 하면 너무 눈에 띌 수도 있겠지만, 물건을 감추려면 숲에 감추라는 말도 있으니.’
조용히 사는 것도 방법이었다.
하지만 지은 죄도 없이 평생 숨어 살 생각은 없었다.
처음에 마음먹은 대로 내 사업을 하고 싶었고, 가능하면 ‘블랙 애로우’도 쳐부수고 싶었다.
‘좋아. 일단 녀석을 만나 보자.’
사실 생각해둔 사업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지는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봐야 확실해질 듯했다.
나는 물건을 챙겨서 별장을 나섰다.
“여보세요?”
“영훈이냐? 잠시 나 좀 만날 수 있냐?”
“그래, 그렇지 않아도네가 무사한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서울로 이동했다.
그리고 서로 자주 만나던 카페로 녀석을 불러냈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그는 약속한 시각에 나타나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단번에 나를 찾아내지 못하고 헤매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아차! 그걸 모르는구나. 저 녀석은.
‘모습이 바뀌었으니...’
그랬다.
지금의 나는 전과 외모가 크게 달라진 상태였다.
마치 성형수술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쉽사리 알아보지 못하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나는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그렇게 나의 존재를 알렸다.
그는 달라진 내 모습에 놀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가 풍기는 분위기와 미소로 내가 ‘조향기’라는 걸 알아본 듯했다.
그는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네 모습이?”
“그렇게 되었다.”
“얼마나 위험한 일에 엮였으면 성형수술까지 한 거냐?”
“말해주면 해결해줄 수는 있고?”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지. 어쨌든 덕분에 살아있는 친구의 장례식도 가보고 내가 별 희한한 경험을 다 해본다.”
“쉿! 누가 들을 수도 있으니까 그 부분은 조심 좀...”
내가 살아있는 것이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었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만 알려야 했다.
나는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가며 그가 더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주의를 시켰다.
그러자 그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끄덕였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나는 이제 이정혁이야. 그렇게 되었어.”
나는 그에게 새로운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것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집에는 언제 돌아가려고?”
그는 내가 외모를 바꾸고 새로운 신분을 얻었으니 안전이 확보된 거로 여기는 듯했다.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머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뭐, 그러고 싶지만 지금은 안 된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심각해.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아직 불안하다.”
“그 정도냐...”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자 그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애꿎은 커피만 휘젓기 시작했다.
아차! 지금 이런 우울한 이야기만 하려고 온 게 아니었지?
“전에 말했던 연구는 잘되고 있어?”
“어, 그럭저럭 갑자기 그건 왜?”
“사실 이번에 내가 돈이 좀 생겼거든. 그래서 사업을 해보려고.”
나는 슬쩍 그에게 통장을 보여줬다.
그는 통장의 금액을 확인하고는 놀라서 입과 눈이 커졌다.
그리고는 숨을 죽이고는 입을 뻥긋거렸다.
‘50억?!!’
‘응.’
그는 통장과 나를 몇 번이고 번갈아 보면서 경악의 시선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진정이 되었는지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내가 기발한 발견을 했어. 아직 교수님에게도 말하지 않은 건데.”
오호? 뭔가 대박의 냄새가 난다.
나는 그에게 바짝 다가갔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몇 가지 문서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연구한 ‘전고체 전지’에 관한 내용과 우연히 발견한 물질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거 확실한 거야?”
“어, 몇 번이고 실험했는데 안정성도 좋고, 에너지 효율도 좋아. 이 물질을 쓰면 분명히 전지의 수명과 용량이 대폭 늘어날 거다. 다만 이걸 교수님께 보고하는 게 좋은지 아니면 내가 따로 개발해서 특허를 내는 게 좋은지 몰라서 말이야. 그동안 고민하고 있었거든.”
이런 순진한 양반을 봤나?
교수에게 보고한다고?
그렇다면 그 연구 성과를 누가 가져가겠는가?
교수가 자신의 업적으로 학계에 발표하거나 산학협력으로 지정된 회사에 특허를 공여하는 꼴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좋은 아이디어가 그런 식으로 대기업에 빨렸던가?
‘이래서 공부만 한 것들은...’
나는 혀를 차면서 입을 열었다.
“야,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이거 아는 사람 너밖에 없는 거 확실하지?”
“응. 혼자 있을 때 실험한 거라서. 이거 알고 있는 사람은 아직 나뿐이다.”
“이 아이템은 우리가 쓰자.”
“뭐?”
“사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사업이 있거든.”
그동안 별장에서 지내면서 생각한 사업이 있었다.
주아린이 말했던 사람들이 꼭 쓸 수밖에 없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스마트폰’이었다.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생필품처럼 정부의 규제를 심하게 받는 항목도 아니었다.
약간의 여유만 있어도 누구나 사용하는 물건이 ‘스마트폰’이었다.
바야흐로 현대인의 필수품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스마트 기기’나 ‘통신망’사업에 뛰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기에는 50억은 너무 푼돈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 고민 속에서 떠오른 것이 ‘최영훈의 연구’였다.
그가 전기자동차나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사용하기 위해서 개발하는 ‘전고체 전지’가 떠오른 것이다.
‘스마트폰에도 전지는 들어가니까.’
내가 생각해도 기막힌 아이디어였다.
보조배터리가개발되면서 잠시 주춤해진 스마트폰용배터리 시장에 다시 활기가 돌게 될 것이다.
만약 업계 최초로 엄청난 용량을 자랑하는 배터리를 개발해내면 어떻게 될까?
소비자들은 가볍고 두께도 얇으면서 폭발할 위험성도 없는 대용량 배터리에 열광할 것이다.
회사들은 또 어떨까?
스마트 기기를 개발하는 회사들이나 통신회사들은 우리의 배터리를 사용하고 싶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몰려들 것이다.
이런 나의 구상을 최영훈에게 설명했다.
“...”
“어때? 학교 때려치우고 나와서 같이 해볼래?”
“그래도 완전히 무에서 유를 창조한 건 아니거든. 학교에 있는 시설을 이용해서 발견한 내용이야. 학교 측이나 회사에서 권리를 요구하면 어떻게 하지?”
“그러니까 학교를 때려치워야지. 그리고 순수하게 네가 발견한 모양새를 취한 후에 사업에 들어가면 되잖아.”
이 답답한 인간은 아직도 학교에 미련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것에 졸업장이나 학계의 논리가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교수라도 할 생각이라면 모를까 그런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스티브 O스나 빌 게O츠에게 박사학위가 있었나?
없었다.
일단 좋은 것을 발견하면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사적인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빨리 세상에 공표해서 공익을 추구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전기자동차의 핵심기술을 공개한 테O라의 엘O 머스크처럼.
학교나 조직에 몸을 담는 것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아직도 자신의 학업에 악영향이 있을까 봐서 걱정하는 눈치였다.
이런 미련한 친구를 봤나.
순진한 건지 겁이 많은 건지.
“너 학교 다닐 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뭐든지 다 잘하는 놈이었다고.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싸움이면 싸움. 게다가 마음씨도 착하고 여자한테 인기도 있었다. 나는 너를 보면 완벽한 초인이라고 생각했어.”
“무슨 말을 하려고 비행기를 이렇게 심하게 태워?”
“그런데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을 봐라. 그놈의 학교에 연연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발견을 했는지도 모르고 있어. 너는 배터리의 역사를 새로 쓴 거라고!”
그는 고민하는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이게 고민할 거리인가?
나는 그의 앞에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50대 50!”
“뭐?”
“내가 가지게 될 모든 이득을 너와 똑같이 나누겠다는 거다. 뭐, 앞으로 사업이 커지면 이것저것 나갈 돈도 많아져서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만. 모든 특허에 대한 권리는 너에게 귀속되도록 하겠어. 그리고 사업을 영위하면서 취득한 수입은 정확히 반으로 나누자는 거지.”
보통 연구실에서 아무리 위대한 발견을 해도 특허가 개인에게 귀속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현대에 와서는 특히나 더 그렇다.
대부분 기업으로 귀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놈의 연구개발비 투자라는 명목으로!
그리고 집단연구라는 명목으로!
하지만 나는 그에게 모든 특허의 권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스마트폰에 쓰려면 소형화에 대한 실험도 해봐야겠어.”
내 말에 설득이 된 모양이었다.
그는 각오를 다진 목소리로 턱을 쓰다듬으며 저 너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후후, 아무렴. 그래야 최영훈이지.
“어쨌든 가까운 시일 내에 시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볼게. 너는 바로 특허 등록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정리해둬.”
“알았어.”
나는 그에게 새로운 스마트폰의 번호를 알려주고는 자리를 정리했다.
예전처럼 놀러 다니며 정겨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마음이 급했다.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은이상, 블랙 애로우에게 한 방 먹여주기로 마음먹은 이상 발을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비서를 하면서 이것저것 배운 깜냥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나를 확실하게 밀어줄 아군이 필요해.’
먼저 떠오른 사람은 주아린과 주 회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곧 머리를 흔들며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설정에 따르면 나는 혜성그룹에서 퇴사를 한 몸이었다.
그것도 주식이 대박이 났다는 이유로.
그런 사람이 사업을 하겠다며 박차고 나온 회사에 도움을 요청하는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일까?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밖에 없지.’
나는 마리나 자매의 연락처를 새로운 스마트폰에 입력했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까? 아니면 기뻐할까?’
통화버튼으로 향하는 손가락에 망설임이 느껴졌다.
바로 알리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들을 믿지 못하고 몸을 사린 자신에 대한 한심함 때문일까?
어쨌든 그녀들에게 아쉬울 때만 연락하는 나의 모습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쩌랴?
지금 상황이 이런 것을.
나는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이며 그녀들의 반응을 상상했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화를 낼까?
아니면 기뻐할까?
그것도 아니면 나를 밀어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