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8화 〉내가 우리 회사의 '힐러'다! (88/110)



〈 88화 〉내가 우리 회사의 '힐러'다!

언론과 재계 그리고 학계에서 가해지던 압박은 결국 사라졌다.
우리를 설득하던 정부 쪽 사람들도 잠잠해졌다.
그들이 우리보다 자본이 부족한 것도,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기술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가 시장에서 일으킨 돌풍이 거셌으며 대중이 보내는 지지가 압도적이었다.
이제는 그들은 대중의 시선이 두려워서라도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처지가  것이다.

‘잠을 언제 잤더라?’

나는 연일 몽롱한 기분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밀려드는 물량에 맞추기 위해서 생산 규모를 늘리는 것에 여념이 없었고, 다른 기업과 협력하는 것도 정신이없을 지경이었다.

‘언제 이렇게 사람이 늘어났어?’

나는 몽롱한 눈빛으로 사무실을 둘러봤다.
처음에는 사무직 3명에 연구직 2명, 생산직 25명으로 시작했던 단출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금세 기세를 타더니 날마다 사람을 뽑아야 할 정도가  것이다.
금방 성장할 것은알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이제 익숙한 얼굴보다 모르는 얼굴이 더 많을 지경이 되었다.

‘조만간 사무실을 더 큰 곳으로 옮겨야 할지도 모르겠군.’

피로감에 미간은 찌푸려지고 있었지만, 입술은 기쁨에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마 누가 보면 참으로 기묘한 표정이라고 할 것이다.
어쨌든 나는 피로와 기쁨이 뒤섞인 얼굴로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사...사장님, 사...람...사람 더 뽑아야 해요!”
“으~~!!! 어째서! 일이 줄어들지를 않는 거야! 어째서!!”
“사...살려줘!!”

사무직이 이 정도였다.
그들은 업무에 깔려서 괴로운 신음을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업무에서 손을 떼지는 않았다.
진정한 프로들이었다.

‘여기가 이 정도면...’

아마 생산파트는 더 지옥일 것이다.
나는 뻐근한 몸을 풀면서 기지개를 켰다.
그러다가 실수로 곁에 있는 화분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챙-그-랑!!!!]

[[“!!!”]]

바닥에 떨어진 화분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깨졌다.
그러자 업무에 집중하던 사람들은 원수를 만난 무사의 얼굴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살기와 원망이 뒤섞인 표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은 금세 프로의 얼굴로 돌아가며 자신의 업무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더 뽑아야지. 이러다가 사고 나겠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천천히 깨진 화분을 치우기 시작했다.
초인으로 변한 내가 견디기 버거울 정도의 업무였다.
다른 사람들은 오죽이나 힘들까?
그렇게 화분을 치우고 있을 때였다.
뭔가 묘한 생각이 뇌를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 이것도 되려나?’

그렇다.
궁지에 몰리자 또 떠오른 것은 ‘페로몬’이었다.
나는 암시를 걸어서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끼던 파트너의 힘을 회복시킨 적이 있었다.
비록 지금은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신에게 암시를 보냈다.

‘나의 피로가 사라진다. 그리고 힘이 넘치게 된다.’

심호흡하면서 페로몬을 발하는 감각으로 암시를 걸었다.
그렇게 자신에게  번이고암시를 보냈다.
그러자 신기하게 몸에 활력이 생기며 피로감이 가시는 것이었다.

‘역시! 된다! 힘이 넘친다!’

나는 사라진 피로감에 놀라워하며 자신의 몸을 살폈다.
정말 이제는 뭐든  되는 모양이다.

[꼬르르르르르르륵~~!!!!!]

하지만 에너지를 과하게 끌어온 탓일까?
나의 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허기를 알렸다.
그러자 업무에 집중하던 프로들은 다시 살기가 서린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연신 고개를 꾸벅였다.
미안해요. 모두.

‘이거 다른 사람들에게도 먹히려나?’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서 사무실을 돌기 시작했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천천히 사무실을 돌았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암시를 보냈다.

‘몸에 있는 모든 피로감과 짜증은 사라진다. 힘이 넘친다.’

그러자 피로와 짜증에 찌든 사람들의 얼굴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뭐지? 이게 ‘러너스 하이’란 건가? 몸이 상쾌하네?”
“힘들 때 과로는 독약이고, 좋을  과로는 보약이라는 소리도 있으니까.”
“어라? 감기 기운도 사라졌어.”
“갑자기 뭐지? 사장님 우리 공기청정기 바꿨어요?”

회복된 체력과 상쾌함을 맛본 사람들은 저마다 감상을 하나씩 늘어놨다.
그러면서도 손에서 일을 놓지는 않았다.
이변에 놀라면서도 몰려드는 일을 해치우기 위해서 손을 끊임없이 움직였다.
과연 나와 최영훈이 심사숙고해서 뽑은 정예 중의 정예다.

[[꼬르르르르르르르르륵---!!!!!!!!!!!!]]

그들의 피로감을 없애고 체력을 회복시킬 수는 있었다.
하지만 없는 에너지를 만들어 줄 수는 없었다.
당연히 그들의 배도 나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공복을 호소할 수밖에.

“흠, 흠. 간식이나 밥 먹으면서 일하세요. 먹고 싶은 거 마음껏 주문하셔도 됩니다. 나중에 영수증만 받아놓으세요.”

나는 법인카드를 맡기고는 얼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발걸음을 공장으로 향했다.

‘좋아. 된다. 그러면 생산파트에 있는 분들 피로도 풀어드려야지!’

그렇게 공장을 돌면서 사람들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내가처리해야 할 일도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초인이 된 내가 이렇게 힘들 정도면 평범한 사람의 체력으로는 더한 부담을 느낄 것이 분명했다.
밀린 일은 잠을 줄여서 처리하면 된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더 걱정이었다.

“뭐야? 지금 다른 직원들은 뭐가 빠지라 일하고 있는데 사장이라는 놈이 농땡이를 쳐?”

“그런  아니다. 나도 일하고  거라고.”

그렇다.
게임으로 치자면 나는 ‘힐러’가 되어 열심히 사냥하는 ‘파티원’들에게 힐을 주고 돌아다닌 것이다.
아무도 힐러에게 놀았다고 하지는 않지 않는가?
물론 이런 수고를 알아줄 사람은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나는 사장실에 들어온 최영훈에게 턱짓하면서 말했다.
눈의 다크서클이 거의 턱까지 내려온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너 요즘 거의 못 잤지? 그러다가쓰러진다?”

“사돈 남 말 하고 있네. 네가 더 심각해 보여.”

나는 슬며시 최영훈을 회복시켰다.
그러자 그는 잠시 눈을 끔뻑이며 놀란 표정을 짓더니 금세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나는 원래 과로가 체질인 모양이다. 갑자기 기력이 회복되는 거 있지?”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고 오셨나? 연구원 더 뽑아줘?”

“어, 그것도 필요하지. 그런데 너 잠은 제대로 자고 있냐?”

“괜찮아. 계속 사람을 뽑고 있으니까조만간 괜찮아질 거다.”

내 말에 최영훈은 나의 안색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어루만졌다.
아무래도  건강이 걱정돼서 찾아온 모양이었다.
짜식! 자신도 힘들면서.

“이거 금방 사그라질 열기가 아니다. 방심하지 말고 돈이 돌면 바로 사람부터 뽑아야 한다고. 안 그러면 진짜 송장 여럿 치우게 될 거다.”

최영훈은 우리 회사의 성장에 두려움마저 느끼는 모양이었다.
나도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말은 긍정적으로 내뱉었지만, 언제 열기가 식을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니 말이다.

“윤소 씨가  살아있는 건 알고 있지?”

“응. 그런데 그건 왜?”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아서 하는 소리지.”

나의 안색을 살피던 그는 뭔가를 나에게 내밀었다.
임시로 만든 ‘홍보팀’에서 작성한 ‘광고계획서’였다.

‘우리 제품의 모델로 강윤소를?’

TV 광고에 대한 내용이었다.
우리 제품인 S3B the monster의 모델로 강윤소를 채용해서 광고를 촬영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서류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이 계획서 말이다. 네 입김이 엄청나게 들어간모양이다?”

“당연하지. 형님이 네 녀석과 윤소 씨를 만나게 해주려고 머리 좀 굴렸다.”

“이걸 핑계로 그녀를 만나라고?”

“그렇지. 눈치는 살아있네.”

둘이서 ‘소형화’와 ‘시제품’에 매달릴 때였다.
나도 모르게 그녀와의 관계를 밝혔다.
무의식중에 흘리듯이 말하고 말았던 것이다.
피곤함 때문이었을까?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나의 입에서 비밀이 튀어나와 버렸다.
당시에 나는 놀라서 얼버무리려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에서 최영훈은 내가 거짓이 아닌 사실을 말한 것으로 확신하는 듯했다.

‘확실히 지금이 아니면 만나기 어려울 수도 있어.’

그녀도 다름대로 스케쥴이 바쁜 스타였다.
전에 만날 때도 짬을 내서 만났었다.
이렇게 일을 핑계로 접근하지 않으면 얼굴 보기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 어떻게 그녀를 지금까지 만나지 않은 거지?’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전화로 사정을설명했다고 해도 말이다.
새로운 신분을 얻었을 때 그녀를 바로 만나러 갔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사업에 뛰어드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그녀를 잊고 있었다.
마음으로는 그렇게 그리워하면서.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놈의 야망이 문제였는지.’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인지, 너무 바뀌어버린 모습을 보여주기가 두려웠는지는  수가 없었다.
어떤 마음이 나를 그렇게 움직인 것인지는 정확히 뭐라고 표현할 길은 없었다.
어쩌면 생존과 성공에 가장 최적화된 행동을 하도록 진화된 나의 뇌가 이끈 것일지도 모르지.
어쨌든 급한 마음에 발만 바쁘게 움직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알았어. 그러면 이 계획서대로 처리해.”

“오케이. 덕분에 연예인을 가까이에서  수 있겠네.”

최영훈은 광고를 핑계로 강윤소를 가까이에서 볼  있다는 사실에 꽤 들뜨는 모양이었다.
하하하, 나도 전에 그랬었지.
하지만 연예인도 사람이더라?
나는 은근히 들뜨는 기색을 비치는 그를 바라보며 그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안 왔나?’

며칠 후에 광고를 촬영하게 되었다.
그녀가 다음 곡의 구상을 위해서 해외로 출국하기 전에 급하게 시간을 잡을 수 있었다.
만약 뭉그적거렸다면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몇 달을 보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와 최영훈은 촬영장에 도착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이고, 저희가 좀 늦었습니다. 남은 일정이 좀 많아서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희보다 스텝들이 고생이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강윤소와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매니저는 짐짓 미안한지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말하는 것이었다.
나와 최영훈은 그에게 손사래를 치면서 괜찮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 저희는 준비 좀 하겠습니다.”

강윤소와 일행들은 얼른 의상실로 향했다.
의상과 화장을 광고의 콘셉트에 맞게 바꾸려는 거겠지.
그들이 사라지자 최영훈은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와, 강윤소 엄청나게 예쁘다!!”

“그렇지?”

“그런데 너를  알아보는 거 같던데?”

“이 모습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니까.”

“야, 괜찮아?”

그는 나의 미세한 떨림을 느끼고는 내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나는 웃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오늘 내가 온다는  그녀는 모른다.”

“뭐?”

“이 자리를 만든  나라는 것도 모르고, 내가 이정혁이라는 것도 그녀는 몰라.”

내 말에 최영훈은 의아한 눈빛을 띠면서 말했다.

“연락 안 했어? 왜?”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어서.”

최영훈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자들 은근히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싫어한다고 하더라. 괜히 놀라게 했다가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지.”

나도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저 나는 그녀에게 지금의 모습과 사정을 설명하기가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를 기다리며 촬영장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그녀에게 어떻게 말을 건네면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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