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1화
자지왕. 별명이 아니다. 이름이다. 전국에 ‘자’ 씨는 300명도 안 된다던데 그게 왜 하필이면 내 성이냐고! 성만 ‘자’ 씨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왕’으로 그럭저럭 평범했을 이름인데.
지왕은 오늘도 그렇게 푸념하며 새벽에 편의점에 가고 있었다. 이름만 자지왕이지 자지의 스펙은 형편없었다.
10센티.
자지의 길이다. 꼬무룩할 때의 길이가 아니다. 섰을 때의 최대길이였다. 심지어 굵기도 손가락만큼 얇았다. 몸은 비만인 주제에.
그렇다고 얼굴이 잘난 것도 아니었다. 흔히 생각하는 덕후의 이미지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난 얼굴이었다. 덕분에 모쏠아다는 태어날 때부터 당첨 예약. 씨뎅.
이름과 외모 콜라보에 자지까지 형편없는 덕분에 성격까지 절로 소심해져서 학창 시낼 내내 혼자였다. 여친은 물론 여자사람친구도 당연히 없고 남자친구도 없었다.
간혹 빵셔틀이나 데이터셔틀 같은 것을 하긴 했었지만 크게 돈을 뜯긴다거나 얻어맞거나 하는 수준의 심한 괴롭힘은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것도 지왕이 공부를 좀 한 덕분이었다. 지왕은 찐따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나름 틈틈이 공부를 했다. 그래도 공부를 좀 하면 선생님이 좀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애들도 그런 선생님을 의식해서 크게 괴롭히진 않으니까. 그 덕분에 나름 서울에서 ‘중중’상위권 대학에 입학할 수가 있었다.
사실 어제가 대학에 입학하고 첫 정식 등교일, 즉 개강날이었다. 그러나 OT 기간 내내 밥 먹을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한 지왕은 오늘 수업이 없다는 핑계로 학교에 가질 않았다.
개강파티도 당연히 패스. 그래서 모든 걸 잊으려고 초저녁에 소주 한 병 까고 일찍 잠들었었는데 짜증나게 새벽 2시에 깨 버렸다.
못 먹는 술, 아니 처음 먹는 술을 거의 쌩 소주 수준으로 깠더니 속이 쓰렸다. 그래서 지금 해장용 라면을 사러 근처 편의점에 가는 중이었다.
‘후우, 서글프다. 대학엘 와도 달라지는 게 없구나...’
그렇게 신세 한탄을 하는 사이 편의점에 도착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알바녀가 있었다.
‘응? 새로 왔나? 예쁜데?’
성격은 좀 까칠해보였지만 얘랑 사귈 수 있다면 발가락도 빨아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상당한 미인이었다. 그러나 저 눈빛. 지왕을 바라보는 눈빛이 다른 여자들이 지왕을 볼 때의 눈빛과 똑같았다. 가까이 하기 싫다는 경멸의 눈빛. 지왕은 절로 한숨이 푹 나왔다.
‘휴우... 컵라면 2개를 사고...’
고민 끝에 소주랑 맥주도 또 샀다. 맥주 4캔에 만원. 해장라면 사러 와서 또 술이라니. 제길.
계산대에 라면과 술을 올려놓았다. 알바녀는 말없이 바코드를 찍은 뒤 말했다.
“14,500원입니다.”
쌀쌀맞고 건조한 목소리. 지왕은 익숙하지만 기분 나빴다. 그래도 손님인데, 목소리라도 좀 밝게 하면 어디가 덧 나냐?
지왕은 할인이 되는 통신사 카드와 2만원을 건넸다.
“봉지에 담아주세요.”
휴대폰이 꾸져서 S페이 같은 건 안 되었다. 알바녀는 돈을 받고 봉지를 하나 카운터 위에 꺼내 놓았다.
‘나보고 담으라는 소리겠지? 쳇.’
지왕은 그러면서 익숙하게 술과 라면을 봉지에 담았다. 그 사이 알바녀는 거스름돈을 꺼내 지왕에게 건네주었다. 지왕은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내밀어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알바녀가 기겁하며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꺅! 뭐 하는 거예요!”
지왕은 얼떨떨했다.
“네?”
“방금 제 손을 더듬으셨잖아요!”
“네에?!”
지왕은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솔직히 손이 닿았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났다. 전혀 의식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설령 닿았다고 해도 돈 주고 받는데 손이 잠깐 닿는 것쯤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게다가 닿았는지 안 닿았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그런데 그게 더 문제였다. 기억이 안 나니 지왕은 선뜻 강하게 부인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게 무슨...”
그러자 알바녀는 더 버럭 하며 지왕을 쏘아붙였다.
“방금 이렇게 돈 받는 척 하면서 제 손바닥을 손끝으로 슥 더듬으셨잖아요!”
“그게, 전 기억이...”
“기억 안 난다고 하면 다예요? 그럼 사람 죽여 놓고 기억 안 난다고 하면 다 무죄겠네.”
씨발, 그게 뭔 소리야?
하지만 지왕은 말문이 막혀 그저 계속 버벅거리만 했다.
“그...”
알바녀는 더욱 신이 나서... 그래, 분명 신이 난 표정이었다. 절대 성추행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냥 ‘기분도 꿀꿀한데 이 녀석 잘 걸렸다’ 뭐 이런 표정이었다. 아무튼 신이 나서 지왕을 계속 쏘아붙였다.
“안 되겠네? 용서를 빌면 봐주려고 했더니. 거기 꼼짝 말고 있어요! 경찰 부를 테니까.”
알바녀는 그러면서 카운테 밑에 부착돼 있는 파출소와 연결된 긴급호출벨을 누르려고 했다. 지왕은 깜짝 놀라 알바녀를 제지했다.
“자, 잠깐만요!”
알바녀는 지왕을 찌릿 째려봤다.
“왜요?”
결국 지왕은 굴복했다.
“미,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닿았나 봐요.”
정말 억울했다. 그렇지만 경찰을 부른다는 얘기에 지왕은 잔뜩 쫄아 있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 얼굴이 유죄였으니까. 경찰 앞에서 자기가 무죄라고 증명할 자신이 없었다. 알바녀는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웃었다.
“훗.”
그러나 곧 다시 표독스런 얼굴이 돼서 지왕을 쏘아붙였다.
“미안하다고만 하면 다예요?”
지왕은 얼떨떨했다.
“네?”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면 다냐구요! 손해배상을 해줘야지!”
“손해배상이요?”
이건 또 뭔 소리?
그러나 알바녀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술술 읊어댔다.
“방금 댁 때문에 나빠진 기분 전환시켜야 하니까 야식 사 먹을 돈 내놔요.”
“네에?!”
씨팔, 이거 완전 꽃뱀이잖아?
그러나 지왕은 차마 따지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뭐 먹을 건데요...?”
“그걸 댁이 알아서 뭐 하게요? 돈이나 내놔요! 5만원!”
지왕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5만원이요? 치킨도 2만원이면 되는데...”
“족발 먹을 거예요.”
씨팔! 5만원이면 대(大)자인데, 집에라도 싸가려고 그러냐!
“그게, 제가 가진 돈이 4만원 뿐이라...”
“그럼 맥주 환불해요.”
“네에?!”
씨팔, 열라 알뜰한 년.
“싫어요? 그럼 경찰 부른던가.”
“아, 아니요. 그렇게 할게요...”
씨팔...
결국 지왕은 맥주를 도로 환불하고 알바녀에게 5만원을 뜯긴 채 소주와 컵라면만 봉지에 담아서 나왔다.
“씨팔, 이게 뭐야?”
울고 싶었다. 아니 진짜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무 억울해서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수를 할 엄두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억울했다. 억울했고, 억울했다.
그렇지만 정작 고개를 돌려 편의점 안의 알바녀를 째려볼 용기조차 나질 않았다. 괜히 눈 마주쳤다가 진짜로 경찰을 부를 것 같아서. 그래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뗐는데...
“그냥 가시게요?”
웬 젋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는 어느 새 지왕의 옆에 와서 서 있었다. 서른 살 전후에 차림새는 말쑥했지만 왠지 얍씰하게 보이는 게 별로 신뢰가 가는 얼굴은 아니었다. 솔직히 약간 사기꾼 같은 느낌도 났다.
“누구...”
그는 지왕에게 웬 폰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화면을 켰다. 화면엔 방금 전 지왕이 알바녀에게 당하고 있을 때의 사진이 떠 있었다. 지왕은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이건...”
사내는 사진 속의 알바녀 부분을 확대하며 말했다.
“여자의 가슴을 만져 보시죠.”
“네?”
이건 또 뭐... 그러나 지왕은 엉겁결에 사내가 시키는 대로 화면 속 알바녀의 가슴을 손가락 끝으로 슥 터치했다. 그러자 카운터에 서 있던 알바녀가 갑자기 제 젖가슴을 콱 움켜쥐며 움찔 흥분했다.
“아흣!”
편의점 유리를 통해서 그 모습을 본 지왕은 대번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엥?!”
그래서 혹시 잘못봤나 싶어 사진 속 알바녀의 젖가슴을 손가락 끝으로 더 슥슥 문질러보았다. 그러자 알바녀는 마치 젖이라도 빨리고 있는 것처럼 가슴을 움켜잡고 계속 파르르 파르르 떨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하으읏! 하흐앙~!”
하마터면 다리가 풀려 휘청하고 주저앉을 뻔 했을 정도였다.
“헉... 이게 무슨...”
알바녀는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왕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놀라서 사내를 쳐다봤다. 사내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것만 있으면 어떤 여자든 스스로 팬티를 내리게 할 수 있죠.”
“네?!”
지왕은 저도 모르게 침이 꿀꺽 삼켜졌다. 사내는 또 말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육변기로 만들 수도 있고요.”
육변기라니... 지왕은 막 심장이 떨렸다. 사내는 지왕에게 폰을 건네주었다. 때깔이 그럴 듯 했다. S사의 신상폰 뺨치는 디자인이었다. 그런데 화면을 켜보니 바탕화면에 ‘Gal낚시 Sex 노트 II’라는 로고가 표시돼 있었다.
“갈낚시 섹스 노트 투(2)?”
S사의 폰 이름과 비슷하지만 심히 짝퉁스러운 이름. 지왕은 확 깼다.
‘뭐야 중국산 짝퉁인가?’
사내는 웃으며 말했다.
“‘갤낚시 섹스 노트 2’라고 읽는 것입니다.”
“갤낚시 섹스 노트 2요?”
“네. Gal은 ‘Girl’을 뜻하는 영어지요.”
“아...”
무슨 여자를 낚는 폰이라도 된다는 뜻인가?
사내는 지왕에게 말했다.
“쓰고 계시는 폰을 잠시 줘 보시겠습니까?”
지왕은 얼떨결에 자기의 구닥다리 폰을 사내에게 건네주었다.
“여기요.”
사내는 폰을 끄더니 거기서 유심을 빼 갤낚시 폰에 꽂아 다시 부팅시켰다. 부팅이 완료되길 기다리던 지왕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런데 이게 투(2)면, 원(1)도 있단 얘긴가요?”
“네, 있었죠.”
“있었다면...”
“소지하신 분이 잠적해버렸어요.”
“네? 왜요?”
“그야 저도 모르죠. 아, 그 폰을 가졌던 사람의 이름도 자지왕이었어요.”
“네에? 앗, 어떻게 제 이름을...”
사내는 씩 웃었다.
“그 이름을 가진 사람만 이 폰 시리즈를 가질 수 있거든요.”
“그게 무슨...”
그때 갤낚시 폰이 완전히 부팅되었다. 사내는 그걸 지왕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그럼 자세한 건 튜토리얼을 통해 익히시면 됩니다.”
“네?”
그러나 지왕이 고개를 들었을 때 사내는 이미 냅다 튀고 있었다. 지왕의 원래 폰을 들고. 지왕은 깜짝 놀라 사내를 뒤쫓았다.
“야! 내 폰 내놔! 이 폰팔이 새꺄!”
사내는 마치 지왕을 조롱하듯 정말 해맑게 웃으며 계속 신나게 튀었다.
“이건 제가 가져갑니다! 기기반납조건으로 갤낚시 폰은 무료입니다!”
“야! 누가 산대? 안 사! 내 놔! 야! 이 새꺄!”
“걱정마세요! 우린 곧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요!”
“만나긴 무슨! 야! 거기 서! 야!”
“하하하!”
씨팔! 웃어?
사내는 모퉁이를 돌아 계속 도망쳤다. 지왕도 얼른 모통이를 돌았다. 사내가 웬 상가건물의 벽에 난 문을 열고 안으로 도망쳐 들어가고 있었다. 지왕은 냅다 달려갔다.
“시팔! 넌 독안에 든 쥐다!”
그리고 막 문을 확 잡아 열려고 했는데... 갑자기 문이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지왕은 얼떨떨했다.
“어?!”
문은 온데간데없고 그냥 건물 벽만 남아 있었다.
“뭐야?”
완전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황급히 건물 현관으로 들어가 안쪽을 살펴봤지만 문이 있었던 안쪽엔 사람이 들어간 만한 공간이 없었다. 그냥 두꺼운 벽과 기둥만 있을 뿐이었다.
“씨팔, 무슨 포털이 생겼다 사라진 것도 아니고...”
졸지에 알바녀에게 돈 뜯기고 수상한 폰팔이에게 멀쩡한(물론 구닥다리인) 폰까지 뺏긴 지왕은 황당한 표정으로 폰팔이가 준 갤낚시 폰을 쳐다봤다.
“씨팔, 오늘 무슨 날이야? 계속 통수만 맞고.”
그러다 별안간 폰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꾹 들어갔다. 뭔가 불쑥 각오를 한 표정.
지왕은 돌아섰다. 그리고 아까 그 편의점으로 향했다.
가면서 갤낚시 폰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바탕화면에 몇 개의 기본 앱이 깔려있었는데 그 중 제일 먼저 ‘튜토리얼 앱’에 눈이 갔다.
실행해보니 간단한 폰 사용법이 나왔다. 뭐 사용법은 아까 폰팔이 새끼가 가르쳐준 게 거의 다였다. 여자의 사진을 찍은 뒤 사진 속 여자의 신체 부위를 터치하거나 문지르면 현실의 여자가 마치 그 부분을 애무당한 것처럼 극도의 흥분을 느끼게 된다는 식.
더불어 두 번 연속으로 터치를 하면 흥분이 계속 유지되게 할 수 있었고 흥분의 강도도 조절할 수 있었다. 다시 흥분이 중단되게 하려면 해당 부위를 똑같이 두 번 터치를 하면 되었다.
‘뭐 간단하네.’
그러다 지왕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응?!’
튜토리얼에 이런 문구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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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