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61화
셋이 나란히 팔짱을 낀 채 도로변으로 나가니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샛별이는 그들의 눈치가 보여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지왕에게 껌딱지처럼 꼭 붙어 걷고 있었다.
“...”
지혜는 그런 샛별이가 너무 웃겼다.
“나 참. 야, 어깨 펴. 고개도 들고. 그러고 있으면 더 의심스럽다구.”
더 의심스럽다는 말에 샛별이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엣?!’
지왕도 좀 멋쩍긴 했지만 지혜의 보증(?)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 샛별이를 다독여주었다.
“그래. 사람들도 그냥 몇 명이 힐끔 힐끔 보고 말잖아. 그냥 당당하게 언니 동생하면서 얘기하고 걸어가면 사람들도 아 그냥 좀 비현실적으로 친한 남매 사이인가보다 한다구. 아님 친한 친척이거나.”
“그럴까...?”
“그럼.”
“알았어... 그렇게 할게요 언니...”
“그래. 그럼 훨씬 덜 의심스럽잖아.”
“네...”
다행히 샛별이는 지혜가 말한 레스토랑으로 가는 동안 처음보단 많이 적응이 되었다. 그래서 레스토랑에 거의 다 왔을 무렵엔 조금씩 편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까지 되었다.
“저기죠?”
“어.”
가게 외관은 동네 중국집이 아닌 꼭 세련된 와인바 같았다. 지왕은 그제야 의심을 거두고 마음을 놓았다.
“괜찮아 보이네.”
지왕의 말에 지혜는 기뻐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치? 얼른 들어가자. 안에는 더 예뻐. 진짜 와인바 같애.”
“그래.”
그렇게 셋은 차이나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고 다행히 하나 남은 룸에 자리를 잡았다. 지왕은 룸이 있다는 게 썩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쓰리썸 사이를 숨기지 않고 대화하려면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음, 좋네.”
샛별이도 좋아했다.
“진짜. 무슨 와인바에서 룸 잡아 노는 것 같애. 근데 좀 비싸지 않을까?”
그러자 지혜가 직원이 놓고 간 메뉴판을 펼쳐서 보여주며 말했다.
“안 그래. 그냥 보통 패밀리 레스토랑 수준이야. 세트 메뉴 시키고 요리 하나 정도 추가하면 셋이 싸게 먹을 수 있어.”
그 말에 지왕은 괜히 으스대며 거만을 떨었다.
“아, 세트메뉴 필요 없어. 그냥 먹고 싶은 메뉴들 하나 씩 골라.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그런데 샛별이보다 지혜가 먼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안 돼. 돈 아껴야지.”
샛별이도 따라서 맞장구를 쳤다.
“그래. 너무 무리하지 마.”
지왕은 샛별이는 그렇다 쳐도 지혜까지 똑같이 구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 참, 언제부터 남자 돈 걱정했다고. 꽃뱀 주제에.”
지난 번 편의점에서 처음 만났을 때 물건 값을 건네는 지왕에게 손이 닿았다면서 성추행으로 신고한다고 협박해 돈을 뜯어낸 것을 비아냥거린 것이었다. 지왕의 꽃뱀이라는 말에 샛별이는 깜짝 놀라 지혜를 쳐다봤다.
“뭐?!”
지혜는 입을 삐죽거렸다.
“칫. 그건 옛날이잖아. 이미 개과천선했다구.”
그러나 지왕은 계속 비아냥거렸다.
“옛날 좋아하시네. 넌 3일 전도 옛날이냐?”
지혜는 픽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마음속으로 옛날이면 옛날인 거야. 흥.”
“나 참.”
샛별이는 둘의 대화가 너무 당황스러웠다.
‘뭐야? 언니 진짜 꽃뱀이었던 거야? 하긴... 아까 날 덮칠 때도 엄청 자연스러웠던 것 같은...’
지혜는 그제야 샛별이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버벅거리고 있는 걸 발견하고 피식 웃었다.
“얘 진짜 놀랐나 보네?”
“그야...”
“괜찮아. 이젠 옛날이니까.”
하지만 샛별이는 그 말이 더 놀라왔다.
“그럼 진짜...”
“어. 내가 남자들 등골 좀 빼먹었지.”
지왕은 흥 콧방귀를 뀌며 비아냥거렸다.
“그게 등골이냐? 통수지.”
지혜는 픽 입을 삐죽였다.
“그거나 그거나.”
그러고는 샛별이한테 말했다.
“아무튼 지금은 얘한테 치료 받고 개과천선했어. 그래서 얘 돈 걱정해주고 그러잖아.”
하지만 샛별이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치료라뇨?”
“아, 뭐 꽃뱀 증후군이래나 뭐래나, 그것 때문에 흥분발작이 일어나서 얘한테 치료받았었거든.”
샛별이는 ‘흥분 발작’이라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흥분발작이요?”
지혜는 얼떨떨했다.
“그거 알아?”
샛별이는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그거 걸려서 지왕이한테 치료받았었거든요.”
“그래?”
지혜와 샛별이는 같이 놀라서 지왕을 쳐다봤다. 지왕은 뜨끔했다.
‘설마 눈치 챘나?’
물론 자기들을 흥분시킨 갤낚시 폰의 존재까지야 알아내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뭔가 있을 거란 의심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애써 당혹감을 감추며 시선을 딴 곳으로 피했다.
“뭐, 뭘 봐?”
지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아니 비아냥거렸다.
“훗, 어쩐지.”
지왕은 얼떨떨했다.
“뭐가?”
지혜는 샛별이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얘 얼굴로 꼬셨다며?”
지난번에 지왕이 여친 생겼다며 자랑할 때 허세를 떨었던 걸 비아냥거리는 것이었다. 지왕은 샛별이 보기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그건...”
샛별이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피식 웃음이 터졌다.
“킥. 정말이야? 날 얼굴로 꼬셨다고 했었어?”
지왕은 선뜻 뭐라 대꾸를 하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아, 아니 그게... 마음으로...”
지혜는 책상을 손바닥으로 탁 내려치며 버럭 쏘아붙였다.
“웃기시네! 얼굴로 꼬셨다고 한 거 내가 똑똑히 들었거든?”
지왕은 결국 더 뭐라 하지 못하고 말문이 막혀버렸다.
“으...”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귀까지 빨개졌다.
‘씨팔! 쪽팔려!’
그때 샛별이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난 얼굴 따윈 신경 안 쓰니까. 그날 사귀기로 한 것도 날 아껴주는 마음이 좋아서 그랬던 거야.”
그러나 지왕은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너도 내 얼굴이 별로라는 뜻이잖아! 으, 씨팔.’
또 ‘자궁 속에 싸준 정액 안에 매혹 성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잖아!’라고도 말하고 싶었지만 애초에 믿지도 않을 거고 또 믿는다 해도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냥 속으로만 삭혔다.
그런데 지혜는 샛별이의 말을 듣고 샘을 내며 입을 삐죽거렸다.
“칫, 난 막 다뤘었는데.”
샛별이는 얼떨떨했다.
“그게 무슨...”
지혜는 툴툴대며 말했다.
“치료해준답시고 막 거칠게 다뤘었거든. 마치 창녀처럼.”
그 말에 샛별이는 놀라서 지왕을 쳐다봤다.
“네?!”
지왕은 당황해서 막 손사래를 쳤다.
“아냐! 그냥 꽃뱀 짓 한 거 혼내려고 그랬던 것뿐이야. 대신 치료는 확실히 해줬다구!”
그러나 샛별이는 막 진지해져서 지왕에게 훈계하듯 말했다.
“그래도 그러면 안 돼. 여자는 아껴줘야 한다구.”
그러자 지혜는 이때다 싶어 얼른 샛별이 편에 붙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맞아.”
지왕은 울컥해서 지헤를 콱 쏘아붙였다.
“가만 안 있을래? 죽는다!”
그러자 지혜는 막 겁먹은 척을 하며 샛별이의 품에 안겨 훌쩍거리는 연기를 했다.
“히잉~, 또 무섭게 굴어~. 흑.”
샛별이는 그런 지혜를 진심으로 불쌍해하며 안고 다독거려줬다.
“울지마요. 그리고 지왕이 너, 언니한테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애. 그러지 마.”
지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야, 저거 다 연기야!”
지혜는 샛별이의 품에서 지왕 쪽을 힐끔 쳐다보며 혀를 메롱 내밀었다.
‘붸~!’
그걸 본 지왕은 울컥해서 막 버벅거렸다.
“야이씨! 너 정말!”
그러자 지혜는 더 대성통곡을 하는 척 하며 샛별이한테 꼭 안겼다.
“으앙~! 지왕이 화났어~! 무서워~! 으앙~!”
지왕은 얼척이 없어 헛웃음이 다 나왔다.
“나 참, 여우같은 년.”
그러자 샛별이가 더 정색을 하며 지왕에게 훈계하듯 말했다.
“그러지 말라니까.”
지왕은 결국 손사래를 치며 포기해 버렸다.
“알았어, 알았어. 안 할게.”
그러나 눈은 지혜를 찌릿 째려보고 있었다.
‘두고 봐. 완전 혼구녕을 내줄 테다!’
그러나 지혜는 샛별이의 품에서 지왕을 약올리듯 쳐다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히힛. 메~롱.’
샛별이는 지혜를 다독이며 말했다.
“언니, 언니가 메뉴 골라주세요. 어떤 게 맛있어요?”
지혜는 그제야 울음을 그치는 척을 하며 메뉴판을 살폈다.
“응, 그게...”
그러면서 지왕 쪽을 힐끔 쳐다보며 배싯 눈웃음을 지었다.
“헤헷.”
그 모습을 본 지왕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화도 안 났다.
“흥, 나 참.”
그런데 왠지 모르게 입가에 피식피식 웃음이 번졌다.
“훗.”
그러자 지혜가 바로 좋아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 웃었다!”
지왕은 어처구니가 없어 빈정거렸다.
“그래서 좋냐?”
지혜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아! 엄~청 좋아!”
지왕은 흥 콧방귀를 뀌었다.
“끼 부리기는. 얼른 시키기나 해. 맛없으면 죽을 줄 알아.”
“응~, 걱정 마. 헤헷.”
샛별이는 둘이 자기 덕분에 화해한 것 같아서 마음이 흐뭇해졌다.
‘다행이다.’
잠시 후 지혜가 시킨 음식들이 나왔다. 셋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샛별이와 지혜도 이젠 서로를 전혀 의식하거나 견제하지 않고 친자매처럼 편하게 지냈다. 지왕은 그런 둘을 보며 속으로 흐뭇해했다.
‘그냥 여우인 줄 알았더만 알고 보니 완전 백여시였네. 샛별이를 저렇게 완벽하게 홀려놓다니. 훗, 덕분에 걱정 하나 줄었다.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