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0화 〉80화 (80/270)



〈 80화 〉80화

전화를 끊은 지왕은 세수를 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계속 샛별이가 마음에 걸렸다. 똑같이 아픈데 지혜만 병문안을 가는 게 못내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이따 잠깐이라도 들려볼까?”

왠지 자기 얼굴이라도 보여주면 샛별이가 조금이라도  힘을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지왕은 불쑥 픽 웃음이 났다.

“훗. 나도 참, 내 얼굴을 보고 힘을 낼 거라고 생각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좀 아니다. 킥킥. 일단 지혜한테나 가보자.”


집을 나선 지왕은 근처에 있는 약국에서 감기약을   그 옆에 있는  체인점 ‘코박죽’으로 갔다.

“어서오세요~.”

지왕은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보며 죽을 골랐다.

“뭐가 좋으려나... 전복죽?”

그러다 제일 가격이 쎈 ‘코박죽 스페셜’이란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죽 이름 밑에 작은 글씨로  설명을 보니 전복, 쇠고기, 야채 등이 골고루 들어간 모듬 죽 같은 것인 듯했다.


“저걸로 하자. 여기 코박죽 스페셜 하나 포장이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잠시  주문한 죽이 쇼핑백에 담겨져 나왔다.

“만원입니다.”


“여기요.”


“네, 감사합니다.”

지왕은 죽이 든 쇼핑백을 들고 문을 열며 가게를 나섰다. 그런데 돌연 그 앞을 지나가던 송아지만한 대형견이 지왕을 보고 느닷없이 막 짖어댔다.


월월월월월!


지왕은 기겁해 멈칫했다.


“우왁!”

개는 놀라는 지왕을 보고  지랄하며 짖어댔다.

월월월월월!

이젠 아예 앞발까지 들고 지왕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주인이 목줄을 잡고 있지 않았다면 지왕은 진즉에 목이 물어 뜯겨 뒤졌을 것이다.


지왕은 다리가 와들와들 떨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겨우 주춤주춤 다시 가게 안으로 문을 닫고 들어갔다. 그러고 나니 그제야 개 주인이 눈에 들어왔다.


개 주인은 20대 중반 쯤의 건강한 몸매를 가진 리나급 미모의 여자였다. 몸에 딱 붙는 운동용 타이즈를 입고 있는 것과 매끈하게 잘 빠진 엉덩이와 골반의 라인, 그리고 봉긋하게 솟은 젖가슴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아마 헬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산책이나 조깅으로 꾸준히 운동을 해오며 몸매를 가꾼 여자 같았다.

그런데  주인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했다. 개의 힘을 통제 못해 목줄을 쥐고 쩔쩔 매고 있으면서도 당황하는 모습보단 지왕을 보며 입꼬리를 보일듯말듯 히죽히죽 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후후.’

지왕은 잘못 봤나 싶어 여자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봤다.


‘뭐야?’


역시나 여자는 웃고 있었다. 이 상황이 마치 재밌다는 듯이.

‘설마...’


그러다 여자는 개가 진정이 되자 지왕에게 사과의 말이나 눈빛 없이 오히려 씩 비웃음을 날리고는 가던 길을 유유히 갔다. 지왕은 비로소 확신했다.  여자가 쓸데없이 대형견을 끌고 다니면서 사람들이 자길 두려워하는 걸 즐기는 년이라는 것을.

그러고 나니 쪽팔림이 뒤늦게 확 몰려오면서 울화통이 터졌다.

“씨팔!”


그래서 바로 복수하려고 문을 열고 달려 나가 여자의 뒷모습을 갤낚시 폰으로 찍었다. 그런데 여자가 문득 뒤를 돌아보더니 지왕이 폰을 자신을 향해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발끈해 버럭 쏘아붙였다.


“뭐야?  지금 사진 찍었지? 변태 새끼! 당장 폰 이리 내!”

그러곤 막 지왕에게 달려왔다. 몰카를 찍는 거라 생각한 것이었다. 뭐 엄밀히 따지면 몰카가 맞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왕은 쫄지 않고 당당히 반박했다.

“신고하려고 그러는 거거든!”


그 말은 여자를 더욱 자극했다.

“신고?”


“그래! 똥개 입마개 안 시켰잖아! 법 바뀐 거 몰라?”


“뭐어 똥개?! 이씨! 너 죽어 볼래!”

그러다 그만 개목줄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자  그래도 지왕과 여자의 다툼에 흥분해있던 개가 미친듯이 짖어대며 지왕을 향해 달려갔다.


컹! 컹!


지왕은 기겁했다.


“우왁!”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혼비백산하며 달아났다.

“꺅!”

“우왁!”


여자도 당황했다.

“앗!”

개로 사람들 겁주는  즐기는 성격이긴 했지만 그러다 정말로 상처를 입히거나 죽일 경우엔 사단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자기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일이었기에 결코 바라는 결과가 아니었다.

지왕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리고 발도 본드를 붙인 것처럼 바닥에 딱 붙어 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다리에 힘이 쭉 빠져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으으, 시팔. 좃댔다...”


그러다 문득 방금 전 갤낚시 폰으로 여자의 뒷모습을 찍을  개도 같이 찍혔던 것도 생각이 났다.



‘혹시?’

그래서 얼른 폰 화면에 방금 전 찍은 사진을 불러내 사진 속 개의 똥구멍과 생식기를 손가락 끝으로 마구 문질렀다.

“우와악! 제발!”

그러는 사이 어느 새 바로 앞까지 달려온 개가 펄쩍 뛰어오르며 지왕을 덮치려 했다.


컹! 컹!

“우왁! 제발!”

그 순간 개가 바로 고꾸라지듯 바닥에 나뒹굴며 깨갱거렸다.

깨갱... 깽...


바닥에서 막 빌빌대며 움찔 움찔 거리는 게 마치 똥침이라도 당한  같은 모습이었다. 지왕은 아직도 놀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 모습을 부들부들 떨며 바라보고 있었다.


“으으...”


효과가... 있는 거?!


그래서 얼른 개가 다시 일어날세라 개의 생식기와 똥구멍에다가 자동 흥분 모드를 최대 세기의 자극으로 걸어놓았다. 개는 계속 낑낑대며 이젠 아예 진짜 발정난 개처럼 침을 질질 흘려댔다.

깨갱... 끼깅...


지왕은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좃됄 뻔 했네.”

주변에서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던 사람들도 지왕이 무사한 것과 개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걸 보고 얼떨떨해하며 하나둘 숨었던 곳에서 나왔다.


“뭐야?”

“뭐지?”

오직 단 한명, 개 주인인 여자만이 당황스러워하며 자기 개를 끌어안고 호들갑을 떨었다.

“제니,  그래? 어디 아파? 왜 그러냐구!”


그러더니 돌연 지왕을 확 쏘아보며 지랄을 했다.

“너 뭐야? 제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당장 원래대로 돌려놔!”

지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게 진짜 돌았나? 사과부터 해야 하는 거 아냐?”

“무슨 사과?”

“니 개 때문에 내가 죽을 뻔 했잖아!”

“안 죽었잖아!”


“뭐?”

지왕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씨팔 뭐 이런 게 다 있어?’

심지어 여자는 막 눈물까지 글썽이며 자기 개를  끌어안은 채 통곡했다.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이 새끼가 너한테 무슨 짓 했어? 어? 말 좀 해봐!”


지왕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도 안 나왔다.

“나 참, 아주 드라마를 찍어라.”


“뭐?”

여자는 그러면서 지왕을 잡아먹을 것처럼 쏘아봤다. 그러나 지왕은 픽 웃으며 보란듯이 여자의 정면 사진을 갤낚시 폰으로 다시  번 찍었다. 여자는 발끈해서 지왕의 폰을 뺏으려 들었다.

“너!”


그러나 지왕은 재빨리  발 물러나며 방금 찍은 사진을 폰 화면에 불러내 사진  여자의 젖가슴을 손가락 끝으로 슥 터치했다. 그러자 여자는 대번에 흥분에 휩싸여  젖가슴을 움켜쥐며 멈칫했다.


“아흣!”


여자는 얼굴이 빨개져서 지왕을 쳐다봤다.

“이게 무슨...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러나 지왕은 씩 웃으며 이번엔 사진 속 여자의 반대쪽 젖꼭지를 손가락 끝으로 띡 터치했다. 그러자 여자는 나머지 젖가슴도 같이 콱 움켜잡으며 파르르 경련했다.

“아항~!”


그러곤 다리가 풀려 더 서 있질 못하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하흐응~...”

지왕은 여자의 양쪽 젖꼭지에 자동 흥분 모드를 걸어놓고 여자 옆에 쭈그려 앉아 걱정스럽게 살피는 척을 했다.

“왜 그래? 어디 이상해?”

여자는 얼굴이 빨개져서 숨을 헐떡거렸다.

“그게... 하흐응~!”

지왕은 매번 쓰던 레파토리대로 짐짓 아는 척을 하며 능청을 떨었다.


“이 증상은 설마 흥분 발작?”

여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흥분 발작 이라니? 그게 무슨...”


“주로 대형견의 몸 속에 있는 ‘퍼킹미’라는 기생충에 감염되면 발병하는 질병이야.”

지왕은 그러고선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네이밍 센스에 속으로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씨팔, Fucking Me라니. 큭큭.’


그러나 여자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미처 이상함을 깨닫지 못하고 지왕의 말을 그대로 믿어 버렸다.


“어떻게 그런...”

지왕은 계속 심각한 척 말했다.

“이건 치료약도 없는데. 큰일이네.”

“뭐?”


“지금 막 가슴이 간질간질 찌릿찌릿하고 몸이 뜨겁지?”


“어... 하흐응~...”


“그건  기생충이 몸의 신경을 따라 퍼지기 때문이야. 그래서 신경이 많이 모여 있는 성감대 부위에서 주로 첫 증상이 나타나지. 좀 있으면 사타구니에도 흥분 발작이 일어날 거야.”

지왕은 그러면서 등 뒤에 숨긴 폰을 몰래 조작해 사진  여자의 보지에도 슥 터치를 했다. 그러자 여자는 대번에 움찔 흥분에 휩싸이며 파르르 경련했다.

“히윽! 아항~!”

지왕은 짐짓 의외라는 식으로 말했다.

“설마 벌써...”

여자는 사타구니를 움켜쥔 채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었다.


“하흐응~...”

지왕은 계속 심각한 척 말했다.

“이거 생각보다 악화되는 속도가 빠른 걸? 이러다 온몸에 열이  오르면...”


여자는 가슴이 철렁해 물었다.


“어떻게 되는데? 죽어? 하흐응~!”

지왕은 짐짓 난처하다는 식으로 뜸을 들이며 말했다.

“그게 바로 죽진 않지만 그 전에 몸의 열을 못 이기고 옷을 막 벗어던지게 돼. 그리고 마치 광견병에 걸린 것처럼 이상한 짓을 하고...”


“이상한 짓이라니?”


“막 자위를 한다든가  그런 변태짓을 하게 돼.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뭐?!”

여자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지왕은 속으로 키득 웃으며 옆에서 낑낑대고 있는 개의 발을 여자의 허벅지 위에 올렸다.

“이거 어떡하지?”


그러자 여자는 언제 개를 걱정하며 오열(?)했냐는 듯이 기겁하며 개의 발을 제 허벅지에서 털어냈다.


“꺅! 저리 가!”

 때문에 ‘퍼킹미’라는 기생충이  옮을까봐 겁이  것이었다. 지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 참, 방금 전까지 없으면  살 것처럼 굴더니. 간사한 년.’

지왕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선심 쓰듯 말했다.

“흐음, 치료약은 없어도 치료법이 있기는 한데...”

여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그래. 근데  아까부터 계속 말이 짧다?”

여자는 흠칫 놀랐다.

“그건...”

그러더니 결국 존댓말로 비굴하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용서해주세요... 하앙~! 그리고 제발 치료법을...”


지왕은 쌀쌀맞게 말했다.

“그 치료법은 나밖에 몰라. 그리고 별도의 치료실이 필요해. 거기 갈래?”

여자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지왕에게 매달렸다.

“네! 제발 치료해주세요!”


“아까는 변태라며? 그런 날 따라가도 되겠어?”

“그건...”

“훗, 간사한 년. 알았어. 한번 봐줄게.  관대하니까. 후후.”


“감사합니다... 흐으흥~!”

그러나 여자는 속으로 앙심을 품고 있었다.


‘발작만 치료돼 봐. 가만  둘 테니까.’

지왕은 여자의 팔을 붙잡고 부축해 일으켰다. 여자는 지왕이 자기 몸에 손대는  싫었지만 자칫 비위를 거슬렀다간 발작을 치료 안해준다고 할까봐 꾹 참았다.


“...”


지왕은 이어서 옆에서 낑낑대고 있는 개도 목줄을 잡고서 여자와 함께 인적이 드문 골목 쪽으로 데려갔다. 지왕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두고 봐. 아주 개처럼 다뤄줄 테니까.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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