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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화 〉92화 (92/270)



〈 92화 〉92화

마트에서 오렌지를 산 지왕은 다시 지혜의 자취집으로 왔다. 지혜는 아까 지왕에게 땀을 좍 빼는 섹스치료(?)를 받은 후 지쳐서 곤히 자고 있었다. 하지만 지왕이 현관문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릴 듣고는 귀를 쫑긋 세우며 눈을 번쩍 떴다.


“응?”


그리고 지왕이 문을 열고 들어옴과 동시에 벌떡 일어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지왕이 왔다~! 어서 와~!”

지왕은 지혜의 애교에 픽 웃음이 나왔다.


“나 참. 머리는 사자처럼 해갖고는.”

지혜는 입을 삐죽이며  뜬 머리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칫. 샛별이 집에 다녀왔어?”

“어.”


“어때? 괜찮아?”

“뭐, 괜찮아졌지.”

지혜는 얼떨떨했다.


“괜찮아졌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많이 아팠어?”

“아니. 너랑 비슷한 정도였는데 내가 땀  빼줘서 괜찮아졌어.”

지헤는 어리둥절했다.

"땀을 빼주다니?"

지왕은 허리를 섹스하듯 돌리며 말했다.

"이거."

지혜는 입을 삐죽였다.


"칫. 근데 걔네 부모님 안 계셨어?”


“어. 마침 잠깐 외출 중이셨어.”

지혜는 괜히 샘이 났다.

“에이씨, 하필이면.”

“왜? 질투 나냐?”

“흥,  나.”

“얼굴 보니 잔뜩 났구만.”


“안 났다니까!”


“어? 이제 완전 다 나았나보네? 그럼 오렌지는 내가 가져간다?”


“히잉, 맨날 그런 식이야.”


“후후, 자.”

지왕은 그러면서 봉지에서 오렌지를 하나 꺼내 지혜의 품에다 툭 던져주었다. 지혜는 깜짝 놀라며 오렌지를 품으로 받았다.


“앗!”


시계를 보니 벌써 6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저녁은 어떡할래? 그냥 죽 먹을래?”


“아니, 밥 먹고 싶어. 배고파. 밥해줘.”


“싫어.”


지혜는 입이 쑥 나왔다.

“왜~?”

“오늘 여기저기 돌아다녔더니 피곤해. 그리고 어제 엠티도 갔다왔잖아? 이러다 내가 몸살 나겠다.”

게다가 죽집에서 나오다 마주쳤던 여자애(지왕을 놀라게 했던 개의 주인)도 조교했었고.


지혜는 지왕의 몸살 나겠다는 말에 바로 쑥 나왔던 입을 도로 집어넣었다.

“아, 그럼 안 되지~.  생과부 될라.”

지왕은 피식 웃었다.


“나 참. 아무튼 아프니깐 나가긴 좀 그럴 테고,  시켜 먹을까?”

그러자 지혜는 바로 신나서 대답했다.


“응! 난 유부초밥!”

지왕은 어이가 없었다.

“미리 생각해두고 있던 거냐?”


“어. 유부초밥 먹는 꿈 꿨어. 따끈한 우동이랑. 그리고 넌 떡볶이랑 김밥, 순대를 먹어야 돼.”

“뭐?”


“헤헷.”


“얼씨구?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거냐?”


“어. 나 예쁘잖아.  예뻐?”

“어, 예뻐. 샛별이보다 조금 모자라게.”


“뭐어?! 야!”

“버릇없이 굴면  간다?”

“씨잉... 나쁜 놈...”

“후후.”


“그런데  아까 섹스하고 안 씻었지?”

그러자 지혜는 마치 남편의 애기를 배서 행복해하는 여자처럼 제 배를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어. 니가 싸준 정액 아직  안에 있어. 착하지?”

지왕은 픽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착하다. 그래도 이젠  씻어. 방에 정액 냄새가 가득해. 열도 내렸잖아?”

“응. 알았어. 그럼 배달 주문해놔.”

“어.”


그렇게 지혜는 씻으러 욕실로 들어가고, 지왕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며 폰으로 저녁에 먹을 것들을 주문했다. 잠시 후 지혜가 샤워를 하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알몸으로 욕실에서 나왔다.


“짠~! 다 씻었어. 닦아줘.”


그러나 지왕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니가 닦아.”


“나 아프단 말이야. 환자잖아? 그러니까 얼른 닦아줘~.”

“으이구, 거참 감기 좀 걸린 것 같고 엄청 칭얼대네. 자꾸 그러면 화낸다.”

“칫, 사랑이 식었어.”


지혜는 그러면서 입이  나와갖곤 투덜대며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았다. 그러곤 침대에 누워서 폰질을 하고 있는 지왕의 품으로 와서 꼭 안겼다.


“아~, 따뜻해.”


그러나 지왕은 역시나 시큰둥했다.

“옷 입어. 감기 걸려.”

“니가 안아줘~.”

그러나 지왕은 픽 웃으며 이불만 덮어줬다. 그러나 지혜는 이렇게 샛별이 없이 지왕을 혼자 독차지하는 것만으로도 좋기만 했다.


“히힛.”

잠시 후 배달한 음식들이 왔다. 지왕은 음식을 식탁에 차리면서 거듭 말했다.

“진짜 티라도 걸쳐. 감기 걸린다니까.”


지혜는 그제야 서랍에서 팬티와 티를 꺼내 입었다.

“알았어.”


그러곤 식탁에 지왕과 마주보고 앉았다.

“먹어.”

“응.  먹겠습니다~.”


“애교는.”

“칫.”

하지만 지혜는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유부초밥을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지왕의 입에다 내밀었다.

“아~.”

지왕은 괜히 멋쩍어하며 입을 아 벌려 받아먹었다.


“아... (우물 우물)”


“맛있어?”

“어, 맛있어. 너도 먹어.”

“응.”

그제야 지혜는 자기도 먹기 시작했다.


“앙~... (오물오물)”

그러다 은근슬쩍 지왕에게 물었다.

“오늘 여기서 자고 가면 안 돼?”

그간 지왕은 주말에 샛별이나 지혜와 약속이 없으면 그냥 자기 자취집에서 혼자 쉬었었다. 마음만 먹으면 지혜를 자기 자취방으로 부르던지, 아니면 자기가 지혜의 자취집에 가서 놀거나 잘 수 있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었다. 가끔은 그냥 혼자 집에서 게임도 하고 밀린 과제도 하면서 푹 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겉으론 부모님과 같이 살아서 외박을 하기 어려운 샛별이를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지혜가 자기랑 주말에 같이 지내려는 걸 원천차단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샛별이가 지혜를 질투하는 것도 막고 지혜가 자기를 독차지하면서 샛별이에 대해 기고만장해지는 걸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더불어 자기가 그렇게  사이에서 공평한 태도를 취하는  보여줌으로써 둘에 대한 관리를 원활히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지혜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안 돼.”

지혜는 입이 쑥 나왔다.

“왜~? 또 샛별이 때문에?”

“어. 당연한 걸 왜 물어?”


“칫. 아, 그럼 내가 샛별이한테 허락받을까?”

“뭐?”


“그렇게 하면 너도 부담 없이 여기서 자고  수 있잖아?”

그러더니 진짜로 샛별이한테 톡을 보내려 했다. 지왕은 지혜의 폰을  뺐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혼나기 싫으면.”


지혜는 또 입이 쑥 나왓다.

“히잉...”


“그리고 내가 여기서 안 자는 건 샛별이를 배려해서 그러는 거지 샛별이가 허락을 안 해줘서 그러는 게 아냐. 착각하지 마.”

“칫, 센 척은.”


“입 조심해.”

지왕은 그러면서 지혜를 찌릿 째려봤다. 지혜는 대번에 기가 껌뻑 죽어 눈을 내리 깔았다.

“히잉...”


그리고 이후 밥을 다 먹을 때까지 힐끔힐끔 지왕의 눈치를 봤다.

“...”


지왕은 그런 지혜가 귀여워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일부러 근엄한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밥을 먹었다. 그리고 밥을  먹은 뒤 지혜에게 말했다.


“이제 별로  아픈  같으니까 니가 치워.”

지혜는 잔뜩 쫄은 얼굴로 대답했다.


“응...”

지왕은 일어나 침대에 누웠다.

“후우, 배부르다.”


그러곤 폰으로 게임을 했다. 지혜는 얼른 식탁을 치우고 지왕의 옆으로 가  끌어안으며 누웠다.

“...”

하지만 지왕의 눈치를 보느라 선뜻 애교를 부리지 못하였다. 지왕은 품에 안겨 있는 지혜를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게임을 계속했다.

“...”


지혜는 지왕을 꼭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

‘칫, 진짜 화났나?’

그런데 그러고 있다 보니 어느  식곤증이 겹쳐 스르륵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지왕은 한참 게임을 하다 뒤늦게 지혜가 자길 안고 잠들어 있는 걸 발견하곤 픽 웃었다.

“훗. 그럼 나도 좀 자볼까나~...”


그러고는 지혜와 함께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후우... 피곤하다... 가끔은 이렇게 상을 주는 것도 복종심 관리에 도움이 되겠지. 후후... 쿠울...”

Zzzz...

그러다 밤이 깊었을  지왕의 폰에 톡이 왔다.


- 자?


샛별이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러나 폰의 스피커 부분이 이불에 막혀 있어서 알림음이 아주 작게 들리는 바람에 지왕과 지혜 모두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으음... Zzzz...”


“쿠울... Zzzz”


샛별이는 조금 실망했다.

‘자나? 하긴 시험 끝나고 엠티 다녀온 지 하루도 안 됐는데 나랑 언니 병문안까지 다니느라 많이 피곤했겠지... 내일 연락해야겠다.’

그러고는 낮에 실컷 자서 잠이 안 오는 탓에 밤을 꼴딱 세다가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반면 지왕과 지혜는 반대로 새벽에 잠이 깼다. 지혜는 지왕이 자기 집에 안 가고 옆에서 같이 자주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그래서 새벽부터 몸과 마음을 다해 지왕에게 정성껏 보답했다.

아침 해가 떴을 때 지왕은 자기의 자취집으로 돌아가 등교할 준비를 했고 지혜도 좀 쉬었다가 편의점으로 출근했다. 샛별이는... 늦잠을 자다 화장도 제대로 못한 채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그렇게 셋의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리나, 그러니까 과에서 샛별이 다음 가는 퀸카로 엠티  샛별이한테 싸움을 걸었다가 되레 지왕에게 조교를 받고 육변기가 돼 버린 ‘채리나’도 떨리는 마음으로 등교를 하고 있었다. 오늘 첫 수업이 지왕과 함께 듣는 수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지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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