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3화 〉93화 (93/270)



〈 93화 〉93화

월요일.

지난 주말 엠티를 다녀온 이후 처음 맞는 등교일이었다. 지왕은 노곤한 몸을 이끌고 첫 오전 수업이 있는 강의실에 도착해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아무래도 좀 졸릴 것 같아서 여차하면 잘까 생각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강의 시작 5분 전, 리나가 강의실로 들어왔다. 과에서 샛별이 다음 가는 퀸카로 엠티  샛별이한테 싸움을 걸었다가 되레 지왕에게 조교를 받고 육변기가 돼 버렸던 바로 그 ‘채리나’였다. 지왕은 그제야  강의를 리나와 같이 들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그랬었지?’


그렇지만 딱히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샛별이와 지혜를 의식해서 리나보고 자기가 허락할  빼놓고는 절대로 친한 척을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뒀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해놓고 지난 엠티  샛별이와 지혜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자지를 입에 물리고 정액을 싸주긴 했었다.


마찬가지로 리나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왕이 한 말 때문에 딱히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론 지왕을 엄청 의식하고 있었다.


‘...’


그러면서 지왕에게서 조금 떨어진 앞자리에 앉았다.

“...”


그런데 지왕은 좀 이상함을 느꼈다. 다른 애들이 리나와 거리를 두고 앉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뭐지?’

심지어 평소 리나와 가깝게 지내던 애들마저 지왕과는 인사를 할 지언정 리나에겐 일부러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마치 학창 시절 때 왕따, 은따를 당했던 지왕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물론 리나가 엠티 때 지왕에게 조교를 당한 후 육변기가 돼서 화장실에서 애들이 다 보고 있는데도 변기에 앉아 다리를 벌린 채 자위를 했었고 그 이후에도 창수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하다 지왕에게 구해진 일도 있었기 때문에 애들과 잠시 서먹해지긴 했었지만,  이후 샛별이와 지혜의 도움으로 애들과 어느 정도 다시 친해졌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하지만 곧 자신의 학창시절 때의 경험이 떠오르며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지왕이 중고등학교 시절 웃긴 이름 때문에 왕따를 당할 때 딱히 지왕을 싫어하거나 괴롭히지 않았던 애들까지도 지왕과 가까이 지내면 괜히 같이 부류로 낙인이 찍혀서 따돌림을 당할까봐 두려워 은근히 거리를 뒀었던 일이 떠오른 것이었다.

리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엠티 때야 지혜와 샛별이의 친화력과 도움으로 애들과 다시 조금 어울릴 수 있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애들이 괜히 리나와 친한 척 어울렸다가 자기까지도 같이 따돌림 당할까봐 두려워 슬슬 거리를 두게  것이었다.


물론 리나가 이렇게 된  자업자득이라고 지왕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불쌍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자꾸 왕따를 당하던 학창시절이 떠올라 기분이 꿀꿀해졌다.

‘쳇, 신경 쓰이게 하네.’

그로인해 잠이 달아나 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업 내용이 귀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1시간이 훌쩍 지나 강의가 끝났다. 하지만 지왕은 애들이 다 강의실을 빠져나감에도 계속 앉아 있었다. 샛별이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아직 1시간이 남아 있었고, 지금 시간엔 이 강의실도 수업이 없어서 굳이 다른 볼일이 있지 않는 한 나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앞에 앉아 있던 리나도 강의실에서 나가질 않았다. 가방은 다 챙겼는데도 일어나거나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은 뒤에 있는 지왕을 엄청 신경 쓰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


결국 지왕이 먼저 말을 걸었다.


“안 나가?”

그러자 리나는 화들짝 놀라며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앗, 미안. 지금 나가...”

그러고선 허둥지둥 강의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지왕은 어처구니없어 하며 리나를 불러세웠다.

“억지로 나갈 필요 없어. 그냥 물어본 거니까.”


그러자 리나는 멈칫하며 섰다.

“...”

하지만 선뜻 다시 앉거나 지왕 쪽을 돌아보지 못하였다. 그저 지왕을 등진 채로 머뭇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

지왕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완전 바보 다 됐네.”

그 말에 리나는 또 화들짝 놀라며 사과했다.


“미안...”

“됐으니까 이리 와 봐.”


리나는 그제야 돌아서서 머뭇머뭇 지왕에게로 다가왔다. 하지만 또 자리에 앉거나 하지 못하고 멍청히 앞에 서서 지왕의 눈치를 살폈다.

“...”

“앉아.”


“고마워...”


리나는 그러면서 지왕의 옆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

지왕은 한숨을  쉬고는 물었다.

“갈 데가 없어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러나 리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게...”

자기도 왜 그러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지왕이 다시 물었다.

“둘 다야?”


리나는 머뭇머뭇 대답했다.

“그런 가봐...”

지왕은 어이가 없었다.


“그런 가봐는 또 뭐야? 그러면 그런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리나는  사과했다.

“미안...”

“어휴,  터져.”

지왕의 정액 속에 포함된 매혹 성분은 어떤 여자든 복종시키는 강력한 효과를 가졌지만, 복종의 형태는 여자의 체질이나 성격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튜터리얼에 나와 있었다.

샛별이의 경우엔 별다른 조교를 하지 않고 평범한 섹스로 정액을 자궁 속에 싸줘서 그런지 지왕에게 복종하게 된 것만 빼고는 셩격이 매혹 성분을 흡수하기 전과 후가 크게 차이가 없었다. 물론 매혹 성분 흡수 이후 지왕이 시키는 플레이는 어떤 것이든 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예전 성격이 남아 있어서 항상 부끄러워했다.

지혜의 경우엔 매혹 성분 흡수 이전엔 리나 못지않게 콧대가 높고 성격도 더러웠지만, 강압적으로 조교를 하지 않고 흥분 발작을 치료해준다는 명목으로 살살 꼬드기며 조교를 해서 그런지 성격은 좋아졌지만 예전의 발칙함도 어느 정도 남아 있어서 데리고 노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지혜와 성격이 비슷했던 리나는 강압적이고 수치스런 조교를 하며 정액을 먹여서 그런지 매혹 성분 흡수 후에 완전 소심한 애가 돼 버렸다.

그렇다는 건 여자애의 성격이나 체질 못지않게 어떻게 조교를 하면서 정액을 먹였느냐에 따라 복종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얘기인가?

‘흐음... 하긴 어제 걔는 개처럼 굴렸더니 정액 먹고 나서도 개처럼 굴긴 하더라.’

그러고 보니 지혜가 일하는 편의점 사장인 진수진과 과외를 해주고 있는 이슬기와 그 애의 새엄마인 윤정아, 그리고  강의  지왕에게 조교를 당했던 교수 민소연 등도 정액을 먹일 당시에 어떤 조교 방식을 택했었냐에 따라 그 이후의 성격 변화가 영향을 받은  같았다.

‘그랬었군. 앞으로 잘 참고해야겠다. 그나저나 이 녀석은 어떡하지?’

왠지 그냥 내버려두기엔 과거에 자신이 왕따를 당하던 일이 생각나 자꾸만 눈에 밟혔다. 하지만 샛별이랑 지혜  녀석을 데리고 다니기에도 벅찬데... 그리고 지혜야 다른 애들한테 사촌인척 둘러대서 샛별이와 같이 다녀도 셋이 사귄다는 의심을 피할  있었지만 리나는 그런 식으로 둘러대는 것도 불가능했다.


게다가 딱히 리나를 샛별이나 지혜처럼 데리고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예쁘기는 해도 여친으론 삼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상대, 다시 말해 육변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자꾸 눈에 밝히냐고! 씨팔! 으이구, 골치 아파! 왜 엮여가지고. 쳇.


지왕은 툴툴대며 말했다.


“난 12시 되면 나갈 거야. 넌 알아서 해. 나가든가 계속 있던가.”

리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응...”


그러곤 그냥 책상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

지왕은 책상에 풀썩 엎드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에이, 몰라! 잠이나 자자!’

그러다 12시가 되었다. 수업이 끝난 샛별이는 지왕에게 톡을 했다.

 수업 끝났어. 어디야? 강의실?

지왕은 바로 아래층에 있는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거기서 자길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리 물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왕은 답이 없었다. 여전히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까 강의 시간에 폰을 진동으로 바꿔놓고 주머니에 넣어놓은 걸 깜박하고 다시 벨소리로 돌려놓지 않았었기 때문에 짧게 떨린 톡 진동음을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샛별이는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지왕이 아래층 강의실에서 자고 있을 것 같아서 그냥 내려가서 깨우기로 했다. 전에도 종종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의실 문을 열었을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지왕의 옆에 리나가 있는  보고는 깜짝 놀랐다.

“리나야?”


리나도 깜짝 놀라며 멋쩍게 손을 흔들었다.


“어... 안녕...?”


샛별이는 얼떨떨했다.

“어... 뭐 해?”


“그냥...”

샛별이는 리나의 눈치를 보며 지왕을 흔들어 깨웠다.

“지왕아...”

지왕은 그제야 움찔하며 잠에서 깼다.

“어... 왔어?”


“어...”

샛별이는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옆에 있는 리나를 힐끔 쳐다봤다. 리나는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고개를 푹 숙였다.


“...”


지왕은 일부러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일어나며 샛별이에게 말했다.

“가자.”


“어... 근데...”

“왜?”

“리나는? 너랑 같이 있었던 거 아냐?”


“아냐. 그냥 할 일 없어서 앉아 있었던 것뿐이야.”

“그래?”

하지만 샛별이는 리나가 못내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조심히 말을 걸었다.

“약속 있어?”


리나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럼 우리랑 같이 박 먹으러 갈래?”


리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그러면서 동시에 지왕을 쳐다봤다. 지왕 또한 적잖이 당황한 얼굴로 샛별이에게 물었다.

“왜?”

“그냥. 왠지 밥 먹을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그거야 쟤 사정이지. 가자.”

“그치만...”


샛별이는 그러면서 선뜻 지왕을 따라나서지 못했다. 지왕은 결국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았어. 가.”

샛별이는 그제야 얼굴이 환해져서 리나의 손을 붙잡았다.

“지왕이가 가도 된대. 가자.”

리나는 얼떨떨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하지만 얼굴엔 금세 기쁨이 가득해졌다.

‘헤헷.’

셋은 그렇게 같이 학생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가는 동안 셋과 마주친 애들은 리나가 샛별이와 손을 잡고 지왕과 같이 가고 있는 걸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식당에서도 셋이 같이 밥을 먹는 걸 보고는 다들 한 번씩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러나 지왕과 샛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만 멋쩍게 인사만 했을 뿐 같이 앉아서 먹으려 하지 않고 일행 핑계를 대며 다른 자리에 가서 먹었다.

샛별이는 애들이  그러는지 짐작이 갔다. 그래서 리나가   돼 보였다. 비록 엠티 때 리나가 자기와 지혜, 지왕을 욕보이고 심지어 그것 때문에 자기와 머리채를 붙잡고 싸우기까진 했었지만 그래도 착한 천성 탓에 리나를 차갑게 대할 수가 없었다.

지왕 또한 샛별이의 그런 착한 마음씨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뭐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 또한 리나가 좀 안 돼보였기도 했고.

리나는 샛별이가 계속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자 주눅 들어 있던 표정이 한결 밝게 변했다. 그리고 점점 말도 많아졌다. 밥을  먹을 때 즈음엔 지왕도 어느 새 둘의 대화에 조금씩 끼어들고 있었다.


식당에서 나온 샛별이는 지왕에게 팔짱을 끼며 리나에게 말했다.

“그럼 다음에  봐. 우린 수업이 있어서.”


리나도 아까보다 한결 밝아진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응. 나도 수업 있어서 가봐야 해. 그럼 다음에 또 봐.”

“그래, 잘 가.”

지왕도 일부러 건성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가.”


하지만 리나는 지왕이 그렇게라도 인사를 해주는  너무 기뻤다. 그래서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응! 너도 잘 가! 안녕~!”


그러곤 수줍어하며 돌아서서는 들뜬 발걸음으로 다음 수업이 있는 강의실로 향했다.

‘지왕이가 인사를 해줬어! 헤헷!’

샛별이는 그런 리나가 의아했다.

‘뭐지? 갑자기 신이 나서는...’

지왕은 샛별이에게 말했다.


“가자. 15분밖에  남았어.”

“어...”


하지만 샛별이는 마지막 헤어질 때 좋아하던 리나의 표정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떠나지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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