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105화
중간시험도 끝나고 엠티도 갔다오고 나니 어느 새 학교 축제 시즌이 되었다. 지왕과 샛별이는 특별히 따로 가입한 동아리도 없었기 때문에 과에서 하는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과에서 하기로 한 행사는 흔하디 흔한 일일주점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남자애들은 캠퍼스 한 쪽에 천막을 치고 테이블을 갖다놓으며 주점을 차렸고 여자애들은 판매할 메뉴를 정하고 레시피를 점검하느라 분주했다.
그 여자애들 틈엔 지혜도 섞여 있었다. 편의점 알바를 하루 쉬고 주점 알바를 하러 온 것이었다. 이미 지난 번 엠티 때 지왕의 사촌 누나라고 속이고서 애들과 잘 어울려 논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지혜의 참여를 껄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영했다.
반면 리나, 그러니까 지난번 엠티 때 샛별이를 도발해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웠다가 숙소 화장실 변기에서 지왕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갤낚시 모텔로 끌려가 조교를 당한 끝에 육변기화 됐던 채리나는 애들과 잘 섞이지 못하였다.
샛별이와 지혜가 애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이끌어주긴 했지만 어쩐지 계속 겉돌기만 했다. 하지만 정작 리나는 그런 자신의 처지가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리나의 신경은 오로지 지왕에게로만 쏠려 있을 뿐이었다. 지왕이 자신을 봐주기만 한다면 다른 애들이야 어떻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지왕은 샛별이와 지혜에게 눈치가 보여 리나의 그런 시선을 껄끄러워하며 일부러 못 본 척 하고 있었다. 그때 지왕의 폰으로 톡이 왔다.
- 선생님, ○○대학 △△학과 맞죠?
과외를 해주고 있는 이슬기로부터 온 것이었다. 지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답톡을 보냈다.
- 어. 왜?
- 그냥 물어봤어요. 신경쓰지 마세요.
‘싱겁기는.’
그때 지혜와 샛별이가 방금 부친 따끈따끈한 김치전이 담긴 접시와 골뱅이무침이 담긴 접시를 들고 왔다.
“지왕아, 맛 좀 봐줘.”
“내 것도.”
샛별이는 김치전을, 지혜는 골뱅이 무침을 들고 있었다. 지혜가 먼저 소면을 돌돌 감은 골뱅이를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지왕의 입에 넣어줬다.
“어때? 맛있어?”
“음... 맛있네.”
샛별이도 자신이 부친 김치전을 젓가락으로 한 조각 뜯어 지왕의 입에 넣어줬다.
“뜨거우니까 조심해.”
“어... 앙~... (우물우물)”
“어때? 맛있어?”
그러나 지왕은 일부러 오래 씹으며 뜸을 들였다.
“음... (우물우물)”
샛별이는 조바심이 났다.
“왜? 짜? 아님 싱거워? 설마 안 익었어?”
그러나 지왕은 여전히 전을 우물우물 씹으며 뜸을 들였다.
“으음...”
샛별이는 속이 다 타들어갔다. 이러다 정말 울 것 같은 표정...
‘왜...’
지왕은 그제야 피식 웃으며 답을 해줬다.
“맛있어. 잘 부치는데?”
샛별이는 막 투덜대며 징징거렸다.
“뭐야, 걱정했잖아? 칫.”
“하하, 미안. 그치만 걱정하는 니 모습이 귀엽잖아?”
“나빴어.”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다른 남자애들이 툴툴대며 핀잔을 줬다.
“이거 누구 애인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야, 너 그거 공금으로 만든 거니까 돈 내고 먹어.”
그 말에 지혜가 생긋 웃는 얼굴로 애교를 부리며 툴툴대는 남자애들의 입에다가 골뱅이 무침을 한입씩 넣어줬다.
“아잉, 그러지 말고 너희들도 먹어~.”
샛별이도 얼굴이 빨개져서는 남자애들에게 김치전이 담긴 접시와 젓가락을 내주었다.
“여기 이것도...”
지혜는 골뱅이를 먹은 애들에게 생긋 웃으며 물었다.
“어때? 맛있어?”
애들은 하나같이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맛있어요. 이거 소스 누나가 직접 만든 거예요?”
“어, 맛있지?”
“네, 엄청 맛있어요. 잘 팔리겠는데?”
칭찬을 받은 지혜는 기분이 좋아져서 선심 쓰듯 말했다.
“이따 또 만들어줄게~.”
“네.”
샛별이는 애들에게 맛있다고 칭찬을 받는 지혜를 보고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김치전을 먹은 애들이 아무도 맛있다고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야? 맛이 없나? 지왕이가 그냥 나 좋으라고 거짓말 한 건가?’
하지만 그건 샛별이의 오해였다. 남자애들은 지혜의 애교에 정신이 팔려 이야기를 하느라 미처 샛별이의 김치전 맛을 품평할 여유가 없었던 것일 뿐이었다. 시무룩해진 샛별이를 본 지혜가 센스 있게 남자애들에게 대신 물어봐줬다.
“김치전은 어때? 괜찮지?”
애들은 그제야 김치전의 맛도 이야기했다.
“네, 맛있어요. 이건 샛별이가 부친 거죠?”
“어.”
샛별이는 그제야 얼굴에 수줍게 미소가 번졌다.
‘언니, 고마워요.’
그리고 점심때가 되자 드디어 일일주점이 정식 개장하였다. 지혜는 샛별이와 리나를 데리고 주점 앞 길목에서 점심을 먹으러 가는 축제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호객행위를 했다. 아니 그냥 웃으며 서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지혜만 웃음으로 지나가는 남자들을 꼬시고 있었고, 샛별이는 그 옆에서 주점 안내판을 들고 창피한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리나는 그냥 지혜가 시켜서 샛별이 옆에 멀뚱멀뚱 서 있었다.
그러나 그러는 것만으로도 손님이 하나둘 꼬이기 시작했다. 미인계가 먹힌 것이었다. 지혜는 아주 신이 나서 손님들을 안내했다.
“어서오세요~, 저기 저쪽에 앉으세요. 여기 주문 받아라~!”
지왕은 처음엔 그런 모습이 재미있었다가도 지혜가 남자 손님들한테 팔짱까지 끼며 호객행위를 하자 기분이 좀 그래졌다. 그래서 뭐라 한 마디 하려고 했는데... 선뜻 그렇게 하질 못했다.
‘괜히 속 좁게 보이려나? 알고 보면 다 우리를 위해서 그러는 건데...’
하지만 한번 그런 마음이 들고 나니 샛별이가 주점 앞에서 푯말을 든 채 창피해하며 서 있는 모습마저도 영 마음에 들지않아졌다. 그래서 샛별이에게 가 푯말을 뺏어서 옆에 있는 리나에게 주었다.
“이거 니가 들고 있어.”
그러고는 샛별이의 손을 잡고 요리를 만드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샛별이는 얼떨떨해하며 지왕에게 손이 잡혀 끌려갔다.
“지왕아, 왜...”
“넌 여기서 요리나 해. 밖으로 나오지 말고.”
“그치만...”
“그렇게 하라면 그렇게 해. 안 그럼 혼날 줄 알아. 알았어?”
결국 샛별이는 시키는 대로 대답했다.
“응... 알았어...”
지혜는 그 모습을 보고 불쑥 샘이 났다.
‘칫.’
지왕이 자기한테는 질투 안하고 샛별이한테만 질투하는 게 짜증이 난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도 리나에게 호객 행위를 떠맡기고서 샛별이 옆으로 가 버렸다.
“넌 여기 계속 있어.”
리나는 당황스러웠지만 결국 시키는 대로 했다.
“네...”
그러곤 주점 앞에 푯말을 든 채 수줍게 서 있었다. 하지만 리나 또한 연예인 뺨치게 생긴 퀸카급이었기 때문에 혼자만으로도 손님들이 계속 제법 꼬였다. 지왕은 그제야 좀 마음이 놓였다.
‘흠.’
그때 웬 여자 둘이 리나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가 ○○학과 주점 맞죠?”
리나는 수줍어하며 대답했다.
“네... 들어오시게요?”
그러자 리나에게 말을 걸었던 여자는 기뻐하며 일행에게 말했다.
“여기가 맞대요.”
그러더니 다시 리나에게 물었다.
“여기 지왕 선생님 계시죠? 지금 안 계세요?”
리나는 얼떨떨했다.
“지왕... 선생님이요?”
“네. 제 과외 선생님이세요.”
“아...”
그랬다. 그 둘은 이슬기와 슬기의 새엄마 윤정아였다. 지왕은 둘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응? 뭐야? 이씨.’
실은 지난 번 과외를 갔을 때 슬기가 축제 구경시켜달라고 졸랐지만 지왕은 단칼에 거절했었다. 괜히 학교에 어슬렁거렸다가 샛별이 눈에 띄면 골치 아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혜는 괜찮았다. 지난번 지왕이 편의점에서 여사장 진수진의 똥꼬를 딸 때 그 둘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지혜와 슬기 모녀는 지왕이 수진의 똥꼬를 따는 걸 도와줬었다.
하지만 지왕은 샛별이에겐 슬기와 정아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 샛별이는 지혜와는 달리 지혜 외의 딴 여자의 존재를 알게 되면 충격을 받을 게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더라도 샛별이는 이미 정액 속에 포함된 매혹 성분을 듬뿍 흡수한 상태였기 때문에 결국엔 다른 여자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될 거라고 지왕은 자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굳이 긁어서 부스럼 만들기가 싫었다. 귀찮으니까.
그래서 지혜한테도 절대 슬기나 정아, 수진의 존재를 샛별이에게 말하지 말라고 정색한 얼굴로 엄포를 놨었다. 그런데 기어이 찾아오다니... 오면 죽인다고 엄포까지 놨었는데, 씨팔... 게다가 정아까지...
그때 슬기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 저기 계신다! 선생님~!”
슬기는 그러더니 후다닥 달려와 지왕의 품에 와락 안겼다.
“저희 왔어요!”
지왕은 애들이 보고 있어 화는 못 내고 몰래 작은 소리로 쏘아붙였다.
“왜 왔어? 오지 말랬잖아!”
그러나 슬기는 능청스럽게 웃기만 했다.
“헤헤.”
“으, 씨팔.”
지왕은 정아를 찌릿 째려봤다.
‘왜 너까지 부화뇌동해서 왔냐?’는 뜻이었다. 그러나 정아 또한 오늘따라 간댕이가 부었는지 태연하게 학부모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왕은 어이가 없었다.
‘씨팔, 이것들이 정말 오늘 단체로 미쳤나?’
샛별이는 얼떨떨해하며 지왕에게 물었다.
“누구...”
그러자 옆에 있던 지혜가 대신 대답했다.
“얘 과외 하는 애. 그리고 저분은 얘의 엄마.”
샛별이는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근데 언닌 만난 적이 있어요?”
“어. 지난번에 편의점에 왔었거든. 지왕이 차 태워준다고.”
“아... 네...”
하지만 샛별인 뭔가 찜찜했다. 일단 슬기가 엄청 예뻤다. 거의 리나급? 게다가 보자마자 사람들 많은 데서 끌어안을 정도로 친근하게 구는 것도 그랬고... 게다가 딸이 과외 선생님과 저렇게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하는데도 웃고만 있는 엄마는... 심지어 엄마 또한 엄청난 미인. 게다가 젊어! 진짜 엄마 맞아?
지혜는 샛별이가 슬기와 정아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의아해하자 왜 그러는지 이유를 짐작하고 둘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친엄마가 아니라 새엄마야.”
“아...”
슬기는 지왕에게 팔짱을 기며 좋아하다 지혜를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 언니.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이예요.”
지혜는 떨떠름해하며 대답했다.
“어. 근데 그 팔짱 좀 풀고 얘기하지?”
그러나 슬기는 지혜의 말엔 대꾸하지 않고 지혜의 옆에 있는 샛별이를 보고서 깜짝 놀라며 말했다.
“설마, 선생님 여자 친구분?”
샛별인 얼굴이 빨개져서 버벅거렸다.
“그, 그게...”
슬기와 정아는 샛별이의 얼굴을 몰랐지만 존재는 알고 있었다. 지난번에 지왕이 슬기모녀와 쓰리썸을 할 때 샛별이와도 영상통화를 하며 폰섹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샛별이는 자기 방에서 잠옷차림으로 다리를 벌린 채 자위를 했었다.
슬기는 샛별이 앞에 다가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세히 살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와아, 예쁘다. 선생님 능력 좋으시네?”
샛별이는 귀까지 빨개져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
주변의 다른 애들도 도대체 이게 뭔 일인가 하고 하던 일까지 멈추고 죄다 지왕과 슬기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왕은 얼굴이 빨개져 버벅거렸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집에 가. 그리고 정아 너도...”
그러다 애들이 놀란 얼굴로 자길 보고 있는 걸 깨닫고 뒤늦게 아차 싶어서 말을 바꿨다.
“아니 어머님도 슬기 데리고 가세요...”
그런데 정아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러지 마시고 일부러 기분전환도 할겸 놀러왔는데 같이 축제를 좀 둘러보면 안 될까요?”
지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네?”
하지만 학부모가 저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애들이 보는 앞에서 딱 거절하기가 뭐했다. 그러자 슬기 때문에 당황하고 있던 샛별이가 얼떨결에 정아에게 말을 보탰다.
“그래, 그렇게 해. 일부러 어머님까지 찾아오셨는데...”
지왕은 당황해 선뜻 뭐라 하질 못했다.
“그치만...”
지왕과 눈이 마주친 지혜는 이젠 나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원래 요리를 하던 장소로 돌아가 버렸다.
“어휴... 나도 이젠 몰라.”
결국 지왕은 슬기한테 져 버리고 말았다.
“알았어. 대신 잠깐만이야.”
슬기는 좋아라하며 지왕에게 다시 팔짱을 끼었다.
“네~! 와아~, 신난다!”
그러곤 바로 지왕의 팔을 샛별이에게 보란듯이 잡아끌었다.
“어서 가요~. 그럼 언니, 선생님 좀 잠깐 빌릴게요~.”
샛별이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아도 슬기한테 눈인사를 하고 지왕과 슬기를 따라나섰다. 슬기는 가면서 지왕에게 교태를 부리며 속삭였다.
“선생님, 저 벌써 젖었어요~. 하앙~.”
지왕은 짜증이 나서 툭 쏘아붙였다.
“어쩌라구?”
슬기는 삐져서 입을 삐죽거렸다.
“칫. 그래도 오늘 저랑 엄마한테 싸주시기 전엔 절대 여친에게 못 돌아가세요.”
지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 어휴, 이게 정말.”
“헤헤.”
그때 지왕의 폰에 톡이 왔다.
섹톡!
지왕은 설마 샛별이에게서 온 건가 싶어 몰래 내용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건 갤낚시 모텔의 여직원 ‘대쥬리’에게서 온 것이었다.
- 갤낚시 동아리에서 축제 기념으로 ‘성고문 전시희’를 열고 있습니다. 꼭 보러 오세요!
지왕은 대번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