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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화 〉111화 (111/270)



〈 111화 〉111화

그때 샛별이가 오더니 슬기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같이 가요!”


슬기와 정아는 얼떨떨했다.

“네?”

“그치만...”

그러면서 지왕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지왕은 어처구니 없어하며 샛별이를 말렸다.

“아냐. 쟤는 집에 가서 공부해야 돼.”

샛별이는 바로 반짝반짝 눈빛 공격을 하며 지왕을 졸랐다.

“그러지 말구 같이 놀자. 응?”

결국 지왕은 샛별이의 눈빛 공격에 져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에휴, 알았어. 맘대로 해.”

샛별이는 슬기의 손을 잡고 뛸 듯이 기뻐하며 방방 뛰었다.


“헤헷! 지왕이가 같이 가도  대요. 가요.”

슬기는 얼떨떨해하며 대답했다.


“네...”

정아도 옆에서 얼떨떨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선생님 여친의 힘...?’

자기들과 샛별이의 차이가 뼈저리게 느껴졌다. 지왕의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지혜도 지왕이 샛별이의 눈빛 공격에 쉽게 무너져버리는 모습에 괜히 샘이 났다.

‘칫.’


하지만 정작 슬기와 정아는 지혜도 방금 전에 지왕이 안 데려간다고 했었다가 지혜가 애교를 부리자 바로 마음을 바꿔 허락했던 것을 보고서 자기들과 지혜의 차이도 어마어마하다는 걸 깨닫고 주눅이 들어 있었다.

‘우린 아직 멀었구나...’

‘부럽다...’

샛별이는 슬기의 손을 잡고 반대쪽 팔로는 지왕에게 팔짱을 끼었다. 지왕은 그렇게 양쪽에서 지혜와 샛별이와 팔짱을 끼고 축제 구경을 하러 갔다.

슬기와 정아도 처음엔 자기들과 샛별이의 격차에 서운함을 느끼고 쭈뼛거렸지만 샛별이가 스스럼없이 대하자 금방 마음이 열려서 즐겁게 축제를 구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슬기와 샛별이는 서로 말도 놓게 되었다. 동갑이었으니까.

그러던 중 샛별이가 불쑥 깜빡 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 리나!”


지난 번 엠티 때 새별이와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웠다가 화장실에서 지왕에게 머리를 잡힌 채 갤낚시 모텔로 끌려가 참교육성 조교를 당해 성격이 180도 바뀌었던 ‘채리나’라는 말한 것이었다. 샛별이는 지왕에게 또 반짝반짝 눈빛 애교를 부렸다.

“리나도 같이 놀아도 되지?”


지왕은 어이가 없었지만 맘대로 하라는 식으로 손짓을 했다. 그러자 샛별이는 신이 나서 리나에게 톡을 보냈다.

너도 같이 축제 구경 할래? 지왕이가 와도 된대.

리나는 안 그래도 샛별이가 자기를 잊은 채 지왕과 축제 구경을 하러 가는 것을 보고 서운해하고 있던 차에 대번에 반색하며 답톡을 보냈다.


- 응! 어딘데?

- ○○건물 앞이야. 빨리 와!

알았어! 금방 갈게!


리나는 그러곤 애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앞치마를 벗고 후다닥 지왕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헤헷!’

지왕은 그렇게 샛별이와 지혜, 슬기와 정아, 거기다 리나까지 모두 데리고 학교축제의 여러 행사와 공연, 전시회들을 둘러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해가  있었다. 이제 일반적인 축제 행사들은 대부분 철수하거나 종료되었고 캠퍼스엔 각 학과들에서 열고 있는 일일주점들이 불을 밝힌 채 사람들로 문정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지왕은 낮에 슬기와 정아를 조교한 데다 오후 내내 노느라 지쳐있었지만 주점을 오래 비운 것이 애들에게 눈치가 보여 샛별이, 지혜, 리나와 함께 일손을 거들기 시작했다.


슬기와 정아도 낮에 지왕에게 조교를 당하고서 오후 내내 같이 어울려 노느라 지쳐서 몸도 눈꺼풀도 천근만근이었지만 지왕에게 눈치가 보여서, 또 지왕에게 잘 보여서 낮에 잘못한 걸 만회하려고 일손을 도우려 하였다.


하지만 막상 그러려고 보니 외부인이라 다른 애들의 눈치가 보여 선뜻 그리할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지왕은 슬기와 정아에게 말했다.


“니들은 차라리 저기 앉아서 손님 해.”

“그렇지만...”

“괜찮아. 낮에 혼나느라 힘들었잖아. 술 먹고 안주 먹고 하면서 좀 쉬어. 나도 눈치 좀 보다가 합석할 테니까.”

“네...”


그렇게 슬기와 정아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지혜가 바로 메뉴판을 들고 주문을 받으러 왔다.

“뭐 먹을래?”


슬기는 괜히 주눅이 들어 우물쭈물 말했다.

“저 배 채울만한 걸로...”


“그럼 파전이나 제육볶음 같은 거 먹어. 햇반도 있는데 줄까?”

“네... 그렇게 해주세요...”

“술은?”


“아무거나...”


“그래? 파전엔 막걸리지. 괜찮지?”

“네...”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물은 셀프야. 저기 있으니까 갖다 먹어.”

“아, 그럼 콜라 같은 거  병 주세요.”

“알았어.”

지혜는 그러고는 콜라와 사이다  캔씩을 테이블에 갖다주고 요리를 준비하는 곳으로 돌아갔다. 슬기와 정아는 배를 채우고 막걸리를 홀짝거리다보니 어느 새 피곤이 싹 풀리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아~, 좋다... 이제 좀  것 같네.”

“그러게. 선생님한테 혼나긴 했지만 그래도 오길 잘 한 것 같아.”


“맞아요. 헤헤. 건배~!”

“건배~!”


지왕은 1시간  주점 일손을 돕다보니 피곤해서 도저히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으, 피곤해.”

거기다 자기가 쉬질 않으니 샛별이와 지혜도 쉴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먼저 슬기가 앉은 테이블에 합석을 하며 정아에게 말했다.


“휴, 피곤하다. 니가 좀 쏴라. 나랑 애들이랑 좀 쉬게.”

정아는 지왕이 드디어 합석을 해준다는 사실에 기뻐서 흔쾌히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하세요.”

기분이 좋아진 지왕은 정아의 허벅지를 톡톡 두드려주며 눈빛으로 칭찬을 해주었다. 정아는 기쁜 동시에 지왕이 허벅지를 만져주자 흥분이 되서 다리를 움찔 오므리며 행복해했다.

‘하흣.’

슬기는 그런 정아에게 샘이 나 입을 삐죽거렸다.

‘칫.’


그렇지만 드러내놓고 샘을 내면 지왕에게 혼날까봐 내색하진 못했다. 지왕은 샛별이와 지혜를 불렀다.

“야, 이리 와. 이제 좀 쉬어.”


“그치만...”

“괜찮아. 이제 새로 오는 손님도 없는데 뭐. 슬기 어머니가 쏘신 다니까 이리 와서 같이 매상이나 올려. 지금은 그게 돕는 거야.”


그 말에 샛별이는 결국  이기는 척 지왕의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그럼...”

지혜도 앞치마를 벗고 지왕의 옆에 털썩 앉았다.


“휴우~, 피곤하다.”

그러고는 일단 시원한 막걸리부터 한 사발 쭉 들이켰다.

“크으, 시원하다.”

지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야, 너만 마시냐?”


지혜는 생긋 애교를 부리며 지왕의 잔에다 막걸리를 따라줬다.


“알았어잉~. 자, 받으시오~ 받으시오~. 샛별이 너도 마셔.”

“아, 전 조금만...”

“슬기도 받고, 아 오늘의 물주이신 슬기 어머님도 받으시고~.”


“고마워요.”

“고마워요, 언니.”


“자, 그럼 건배!”

“건배~!”

“건배~!”

다섯은 그러고선 얼음이 동동 뜬 막걸리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크으, 시원하다.”

샛별이는 얼른 젓가락으로 제육볶음을 집어 지왕의 입에 넣어주었다. 지왕은 기분 좋게 안주를 받아먹고는 샛별이의 등을 톡톡 두드려주었다.


“고마워.”

샛별이는 좋아라 하며 배싯 눈웃음을 지었다.


“헤헷.”


지혜는 둘의 그런 애정 행각에 샘이 나 자기도 파전을 젓가락으로 집어 지왕의 입에 넣어줬다.


“나도~.”


지왕은 지혜의 속내가 훤히 보였지만 일단 기분이 좋았기에 그냥 받아 먹어주었다. 하지만 슬기와 정아는 샛별이와 지혜를 그저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둘은 샛별이처럼 공식적인 여친도, 또 지혜처럼 가짜 친척도 아닌 그저 과외를 받는 학생과 학부모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부럽다...’


‘좋겠다...’

그런데 그런 슬기와 정아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눈이 있었다.  아이는 바로 리나였다. 하지만 리나는 샛별이나 지왕이 불러주지 않는   자리에 합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치를 보다 메뉴판을 들고 지왕이 있는 테이블로 갔다.

“안주랑  모자라지 않아? 더 시킬래?”

샛별이는 그제야 리나를 깜빡했단 걸 깨닫고 손을 잡고 자기 옆으로 이끌었다.

“아, 깜빡했다. 너도 앉아.”

하지만 리나는 선뜻 앉지를 못하고 지왕의 눈치를 살폈다.


“그치만...”

샛별이는 지왕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물었다.


“괜찮지?”


지왕은 이제 이런 건 익숙해져서 맘대로 하라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자 샛별이는 좋아라 하며 리나에게 말했다.


“괜찮대. 앉아.”

리나는 그제야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샛별이의 옆에 낼른 앉았다.

“고마워! 아,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내가 가져올게.”


그러자 지혜가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했다.


“그럼 골뱅이 소면이랑 오뎅탕이랑 두부김치랑 좀 만들어 오라 그래. 술도  가져오고. 얘 어머님이 쏘시는 거니까.”

“응, 알았어.”

리나는 그러고선 요리를 하는 곳에 가서 지혜의 주문을 전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샛별이는 리나의 잔에 막걸리를 따라줬다.


“자, 너도 마셔.”


“고마워...”


그렇게 6명은 주점이 파장이 될 때까지 부어라 마셔라 하며 시끌벅적하게 놀았다. 특히 리나도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모처럼 유난히 밝아진 모습을 보였다.  덕에 지왕도 오늘따라 리나와 유난히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샛별이가... 너무 취해버렸다.

“하앙~... 지왕아... 너  개로 보여... 헤헤...”

“나 참, 안 되겠다. 너 이제 그만 마셔. 취했어.”

지왕이 그러면서 잔을 뺏자 샛별이는 지왕의 목을 와락 끌어안으며 매달렸다.

“샤랑해~♡”


“어? 어, 그래... 나도 사랑해.”


“어? 아직도 두 개로 보인다. 그럼 뽀뽀도 두 번~.”

샛별이는 그러더니 정말로 지왕의 입술에  번 쪽쪽 입을 맞췄다. 지왕은 얼굴이 빨개졌다.

“야, 사람들 보잖아? 그만해.”

샛별이는 불쑥 서러움이 북받쳐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제  싫어진 거야? 싫증났어? 히잉~...”

지왕은 어이가 없었다.


“얼씨구? 안 되겠다. 집에 가자. 데려다 줄게.”


그러나 샛별이는 이번엔 지왕의 사타구니에 코를 박으며 술주정을 부렸다.


“고추도 두 갠가? 헤헤.”


지왕은 깜짝 놀라 샛별이의 머리를 붙잡아 올렸다.

“우왁! 야! 정신 차려!”

그러나 샛별이는 막무가내였다.


“가만 있어! 내 꺼 내가 보겠다는데, 씨잉...”


그러더니 지왕의 사타구니에 코를 박았다. 그리고... 쿠울 잠들어 버렸다.


“헤엥.... Zzzz”


지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 참, 술주정 한 번 고약하네.”


의외의 모습에 귀엽기는 했지만 그래도 좀 난감했다. 지혜도 어이없어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나 참. 얌전한 고양이가 먼저 부뚜막에 올라간다더니, 이러다 오줌도 싸겠다? 야 조심해. 그 상태로 오바이트라도 하면 바지  버려.”

“으이구.  되겠다. 슬슬 가자.”


“할 수 없지.”

그렇게 술자리는 자연스럽게 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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