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2화 〉112화 (112/270)



〈 112화 〉112화

일일주점에서 샛별이, 지혜, 슬기, 정아, 리나와 함께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놀던 지왕은 샛별이가 술이 거나하게 취해 고추까지 보겠다고 술주정을 부리다 잠이 들어버리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그래서 자리를 정리하며 동기 애들에게 말했다.

“우린 먼저 갈게. 샛별이가 취해서.”


“그래? 아쉽네. 알았어. 조심히 데려가.”

“어. 내일 보자.”


“그래,  가.”


지왕은 일단 지혜의 도움을 받아 샛별이를 업었다.

“끄응차! 어휴, 무거워.”


샛별이의 몸무게는 45kg 안팎이었지만  늘어져 있어서 평소보다  배는 더 무겁게 느껴졌다. 지혜와 리나는 지왕의 옆에서 샛별이의 등과 엉덩이를 받치며 따라갔다. 슬기와 정아는 폰으로 택시를 불렀다.


“택시 방금 불렀어요. 3분 안에 도착한대요.”

“어, 알았어.”

지왕은 그러고서 택시가 들어올 수 있는 곳까지 샛별이를 업고 갔다.

“휴우, 힘들다.”

“아, 저기 온다. 저거 타면 돼요.”

“어.”


지왕은 일단 샛별이를 뒷자리 가운데에 태우고 지혜와 함께 샛별이의 양옆에 앉았다. 리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너도 엄마랑 들어가.”


“네, 들어가세요.”

“그래.”

지왕은 그렇게 슬기와 정아를 남겨둔  지혜, 리나와 함께 샛별이의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샛별이는 차에서는 별다른 주정을 하지 않고 지왕의 품에 안겨 얌전히 자고 있었다.


마침내 택시가 샛별이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샛별이가 차에는 내리는 과정에서 잠이  버렸다. 그러더니 또 지왕의 목을 끌어안고서 매달린 채 쪽쪽 입을 맞추며 술주정을 부렸다.


“지왕아~, 샤랑해~ (쪽 쪽) 뽀뽀해줘~, 하앙~.”

지왕은 어이없어하며 샛별이의 키스를 해주는 대로 다 받았다.

“어이구, 참. 이걸 귀엽다고 해야할 지 성가시다고 해야 할지.”


“나 귀여워? 그럼 또 뽀뽀~. (쪽 쪽) 헤헤...”

지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녀석 술버릇 되게 고약하네? 안 되겠다. 얜 나랑 리나가 데리고 들어갈테니까 넌 여기서 기다려.”


“왜? 그냥 내가 업고 들어갈게. 얘네 부모님께는 그냥 과 친구라고 하면 되지.”


지혜는 어이가 없었다.


“야, 얘 하는 짓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이대로 들어갔다간 아예 옷까지 벗어던지고 넣어 달라 앵길걸?”


리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맞아. 부모님들 앞에서 그러면 큰일이잖아?”


지왕은 그제야 자기가 무리한 생각을 했단  깨달았다.


“쩝, 알았어. 그럼 밖에서 기다릴게.”


그러면서 샛별이를 지혜와 리나에게 넘겼다. 둘은 샛별이를 양옆에서 부축하고 집 대문 쪽으로 데리고 갔다.


“어휴, 무거워. 넌 앞으로 술 금지야.”

“헤헤, 미안해요~.”


그러더니 샛별이는 또 축 늘어지며 곯아떨어졌다.

“헤응~... Zzzz”

지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 차라리 자라. 그게 낫겠다.”

하지만  때문에 더 무거워져서 힘이 부쳤다. 결국 지왕이 뒤에서 샛별이가 깨지 않도록 대문 앞까지 조심조심 같이 부축한 다음에 지혜가 초인종을 누른 뒤 말했다.


“안녕하세요? 샛별이 친구인데요. 샛별이가 많이 취해서요. 죄송하지만 좀 나와 주세요.”


그러자 잠시 후 샛별이의 엄마 아빠가 나왔다.


“이 녀석,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먹었어?”

“죄송해요. 놀다 보니 갑자기 이렇게 돼서. 술주정이 심하니까 일단 깨우지 않는  좋을 것 같아요.”


“그래. 학생들 미안해. 괜히 샛별이 때문에. 아, 돌아갈 차비는 있어? 잠깐만 기다려. 택시비 좀 가지고 나올게.”


“아니에요. 돈 있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래. 조심들 돌아가.”

“네, 안녕히계세요.”


그렇게 지혜와 리나는 샛별이를 집으로 들여보내고 나왔다. 샛별이는  아빠의 등에 업혀 집으로 들어갔다.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왕은 지혜를 보고 물었다.


“잘 들어갔어? 부모님들  안내셨어?”

“어, 괜찮았어. 잘 사는 집의 귀여운 외동딸인데 설마 혼내겠어? 오히려 걱정하겠지.”

“수고했어. 가자.”

“어.”

지혜는 그러더니 냅다 지왕에게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


“히힛, 이제 온전히 내 거다. 오늘은 우리 집 가서 자자. 내가 잘해줄게.”


“야, 니가 술집 여자냐? 잘해줄게는 무슨.”

“칫, 잘해준다는데도 난리야. 암튼 넌 오늘 내 꺼야. 안 보내줄 거라구.”


지왕의 옆에서 묵묵히 따라가던 리나는 지혜가 비록 샛별이에 비해선 구박을 좀 받더라도 지왕과 친하게 굴 수 있는 모습이 부럽기만 했다.

‘좋겠다...’

지왕은 리나에게 물었다.


“넌 집이 어디야?”

“○○동”


“그래? 그럼 괜히 샛별이 때문에 반대쪽으로 왔네?”


지왕은 그러더니 지갑에서 돈 2만원을 꺼내 리나에게 내밀었다.

“택시 타고 가.”


리나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냐. 아직 지하철 안 끊겼으니까 괜찮아.”

“받아.  번 말하게 하지 말고.”


리나는 결국 돈을 받았다.


“응... 고마워...”

그러나 표정은 전혀 고마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실망한 표정이었다. 서운한 표정인 것 같기도 했고.


지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무슨 문제 있어?”


“어? 아니 그게...”


“말해 봐. 화 안  테니까.”

 말에 리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용기를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

“어.”

“나도 잘해줄 수 있는데...”

그러곤 지레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서 고개를  숙였다. 지왕은 살짝 놀랐지만 옆에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지혜의 얼굴을 보곤 이내 픽 웃으며 리나에게 말했다.

“외박해도 집에서 안 혼나?”

“응... 그냥 잔소리  들으면 돼.”


“그래?”

지왕이 그러면서 지혜를 보고 씨익 회심의 미소를 짓자 지혜는 당황해서 리나한테 버럭 쏘아붙였다.

“저게! 잘해주니까 은혜도 모르고, 야!”


리나는 움찔 놀라며 찔끔 겁을 집어먹었다.

‘윽.’

지왕은 지혜에게 자못 엄한 목소리로 엄포를 놓았다.


“가만 있어. 집에 가서 혼자 자기 싫으면.”


지혜는 대분에 주눅이 들어 중얼거렸다.


“그치만 이럼 샛별이가...”


“방금 전엔 샛별이 없이 혼자  독차지 하게 돼서 좋다며? 그래놓고 이제 와서 샛별이 생각해주는 척 하냐?”

“그건... 칫.”

하지만 지혜는 지왕에게 낀 팔짱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꼭 팔짱을 낀 채 리나가 지왕의 반대쪽 팔에 팔짱을 끼지 못하도록 찌릿 째려보며 견제를 했다.

“씨잉.”


결국 리나는 지왕에게 가까이 오지 못한  계속 한 발짝 떨어져서 걸었다. 하지만 기분은 지왕과 팔짱을 끼고 걷는 것처럼 행복하기만 했다.


‘지왕이가 허락해줬어! 헤헷!’

그러고는 같이 택시를 타고 지왕의 집으로 향했다. 지혜의 노골적인 견제 때문에 지왕과 같이 뒷자리에 앉지 못하고 앞의 조수석에 혼자 앉아서 가고 있었지만 기분만은 오히려 지혜보다 훨씬 좋았다.


‘지왕이네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반면 지혜는 계속 리나의 뒤통수를 째려보고 있었다.


‘칫, 은혜도 모르는  같으니라구. 샛별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뒤통수를 쳐? 두고 봐. 나중에 샛별이한테 다 말해버릴 거야.’

그러자 지왕이 마치 지혜의 속을 실시간으로 읽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샛별이한텐 비밀이야.”

지혜는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뜨끔했다.

“어?”


지왕은 그런 지혜의 귀에다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샛별이가 리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면 첩 딱지 떼 줄게.”

지난  지혜가 샛별이를 능숙하게 구워삶아 자신을 지왕의 세컨드(?)로 얼떨결에 받아들이게 만들었던 능력(※. 57~61화의 내용)을 리나의 경우에도 한  발휘해보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지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너 첩 딱지 떼는 게 소원이었잖아?”


“그렇긴 하지만...”


지끔껏 지왕에게 툭하면 넌 첩일 뿐이라며 샛별이에 비해 후순위로 밀리는 일이 다반사였었다. 그때마다 샘은 났었지만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싫은 표정을 지으면 지왕이 싫어할까봐 일부러 장난스럽게 샘난 척을 하며 쓰린 속을 달래왔었다. 그런데 드디어 첩 딱지를 떼게 해준다고?

지혜는 솔깃했다. 그리고 결국 지왕의 꼬임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알았어. 대신 약속은 꼭 지켜야 해?”


“걱정 마. 샛별이만큼 예뻐해 줄 테니까.”


“샛별이보다  예뻐해 줘야지.”


“그건 하는 거 봐서. 후후.”

“칫, 맨날 그런 식이야.”


그렇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살짝 설레기까지 했다.

‘그럼 나도 이제 진짜 여친이 되는 건가? 후훗.’

지혜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벗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얼른 씻자~. 얼른 얼른.”

그러나 지왕은 피곤해서 귀찮았다.


“난 됐어. 너희나 씻어.”


그러곤 양말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후우~, 좋다~...”


지혜는 지왕을 일으키려 애쓰며 칭얼거렸다.

“야~, 그러지 말고 같이 씻자~. 내가 씻겨줄게. 응? 일어나~.”

그러나 지왕은 요지부동이었다.

“귀찮다니까. 너나 씻어.”

“칫. 그럼 나도  씻을래.”

“그래? 그럼 넌 혼자 자.”


“뭐어?! 야! 그런 게 어딨어?”

“어디 있긴. 여기 있지.”

지왕은 그러면서 지혜에게 보란듯이 리나 쪽을 힐끔 쳐다봤다. 리나는 벌써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지왕은 지혜를 보고 씩 회심을 미소를 지었다.

“훗.”

지혜는 약이 바짝 올랐다.

“씨잉...”


그렇지만 이대로 있다간 지왕이 리나만 사랑해주고 자긴 더럽다고 내칠까봐 조바심이 나 결국 툴툴대며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치사해.”


지왕은 키득 웃으며 빈정거렸다.


“깨끗이 씻어. 안 그럼 리나만 예뻐해줄 거니까.”


그 말에 리나는 속으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헤헷.’


그러나 지혜는 완전 골이 나서 욕실 문을 쾅 닫아 버렸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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