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119화
아침 6시. 지왕의 폰에 톡이 왔다.
- 일어났어?
샛별이한테서 온 것이었다. 오늘 아침 일찍 같이 열차를 타고 지왕의 본가에 내려가기로 해서 깨우려고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지왕은 완전히 곯아떨어져서 일어나질 못했다.
“음냐... 쿠울... Zzzz”
결국 샛별이는 전화를 했다. 지왕은 벨소리를 듣고 움찔 놀라며 전화를 받았다.
“응...”
“벌써 6시야. 8시 기차 타려면 일어나서 준비해야 돼.”
“어.. 알았어... 그럼 7시 반에 역에서 봐.”
“응. 자면 안 돼. 10분 이따가 톡 보내보구 답 없으면 다시 전화할 거야.”
“알았어. 잠 다 깼어.”
지왕은 그러곤 전화를 끊고 기지개를 펴며 일어났다.
“으... 졸려. 그럼 씻어볼까나?”
지왕은 그렇게 씻고 역으로 출발했다. 도착하니 딱 7시 30분이었다. 샛별이는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왕아~!”
“어. 일찍 왔네?”
“방금 왔어.”
샛별이는 지왕의 부모님을 처음 만난다는 생각에 아주 꽃단장을 하고 나와 있었다.
“예쁜데?”
샛별이는 좋아서 뺨을 수줍게 붉히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스레 말했다.
“너무 화려한가?”
“아냐. 수수하고 예뻐. 딱 좋아. 부모님께서도 좋아하실 거야.”
샛별이는 좋아서 배싯 웃었다.
“고마워. 아, 아침 안 먹었지? 주먹밥 만들어왔는데 먹을래?”
“뭘 그런 걸 만들어왔어? 피곤하게. 그냥 사 먹으면 되는데.”
“사 먹으면 다 돈이잖아?”
“알뜰하기는.”
“헤헷.”
“그냥 열차에 타서 먹자.”
“응. 아,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어. 가방 내가 들어줄까?”
“그래줄래? 고마워.”
샛별이는 그러고는 화장품 등이 담긴 파우치와 화장지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지왕은 화장실 입구에서 살짝 떨어져서 샛별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여자화장실에선 미화원 아주머니가 청소를 하고 있어서 바닥에 물기가 좀 있었다. 그래서 샛별이는 미끄러지지 않게, 또 물이 튀지 않게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가 볼일을 봤다. 그리고 나와서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뒤에서 꽈당 소리가 나며 젊은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꺅!”
뒤를 돌아보니 20대 중반 쯤 돼 보이는 여자가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으으, 아파...”
미화원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며 여자를 부축했다.
“괜찮아요? 이를 어째...”
여자는 확 신경질을 내며 아주머니의 손을 뿌리쳤다.
“이거 놔! 청소부 주제에 어딜 만지는 거야? 더럽게.”
아주머니는 무안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샛별이는 여자가 안 돼 보여서 다가가 휴지로 물기라도 닦아주려 하다가 그녀가 아주머니한테 막말을 하는 걸 보고 놀라서 멈칫했다. 그러다 여자와 눈이 딱 마주쳐 버렸다. 여자는 신경질을 내며 샛별이를 쏘아붙였다.
“뭘 봐?”
샛별이는 놀라 버벅거렸다.
“아니 그게... 아주머니께 말씀이 너무 심하신 것 같아서... 물론 넘어져서 화는 나시겠지만...”
여자는 발끈했다.
“뭐? 야! 너 같으면 화 안 나게 생겼어? 화장실 바닥에 엎어졌는데. 남의 일이라고 착한 척은.”
“아니 그게 아니라...”
“이게! 그럼 너도 당해봐! 욕이 안 나오나!”
여자는 그러더니 옆에 있던 바케스를 집어 그 안에 담긴 화장실 대걸레 빨던 물을 샛별이한테 확 끼얹었다.
촥!
느닷없이 물벼락을 맞은 샛별이는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꺅!”
그러다 휘청 하고 중심을 잃으며 바닥에 콰당 엉덩방아를 찧었다.
“앗!”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레빤 물로 엉망진창이 돼 버렸다. 머리는 흠뻑 젖어 물이 뚝뚝 떨어졌고 하얀색과 노란색이 귀엽게 조화된 옷도 걸레물로 얼룩덜룩 얼룩이 졌다. 그리고 엉덩이도 너무 아팠다. 샛별이의 눈동자가 당혹감과 패닉으로 어지럽게 흔들렸다.
“으으, 지왕이 부모님 뵈려고 2시간이나 꾸민 건데...”
이어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흑.”
그때 지왕이 샛별이의 비명 소리를 듣고 화장실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샛별아! 무슨 일이야?”
샛별이는 지왕을 보자 서러움이 북받쳐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으앙~~!”
지왕은 흠뻑 젖은 샛별이를 보고 놀라서 다가가 달랬다.
“왜 이래? 누가 그랬어? 넘어진 거야?”
샛별이는 울먹이며 자기한테 걸레물을 끼얹은 여자를 쳐다봤다.
“그게... 흑...”
지왕은 바로 여자를 쏘아봤다. 그러나 여자가 먼저 지왕을 쏘아붙였다.
“뭐야? 안 나가? 여긴 여자화장실이야!”
“니가 이랬어?”
여자는 시치미를 잡아뗐다.
“아니. 지 혼자 착한 척 하더니 저렇게 되던데?”
지왕은 발끈했다.
“야!”
여자도 지지 않았다.
“왜!”
그러자 미화원 아주머니가 지왕을 말렸다.
“총각, 참아. 내가 잘못해서 그래. 내가 저 아가씨한테 사과할 테니까 총각은 저 처녀 데리고 나가. 여기서 이러면 총각만 불리해져.”
지왕은 생각 같아선 당장 여자를 갤낚시 모텔로 데려가 혼쭐을 내 버리고 싶었지만 아주머니가 워낙 간곡히 부탁하는데다 샛별이를 진정시키는 게 급해서 일단은 참고 샛별이를 부축해 일으켰다.
“일어나. 나가자.”
샛별이는 서럽게 울먹거리며 일어났다.
“어떡해... 너네 부모님 뵈러 가야하는데.. 흑...”
“괜찮아. 씻고 다시 꾸미면 돼.”
“그치만 시간이...”
“걱정 마. 방법이 있으니까.”
“정말?”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나 믿고 일단 나가자.”
“응...”
여자는 지왕과 샛별이가 나가자 이번엔 미화원 아주머니한테 신경질을 냈다.
“아이씨! 옷 어떡할 거야? 당신 때문에 팔도 다쳤다고!”
“미안해요... 다 물어줄게요.”
“으이씨! 재수가 없으려니까!”
화장실에서 나온 샛별이는 울먹거리며 지왕에게 말했다.
“안 되겠어. 나 혼자 집에 갈 테니까 넌 부모님 댁에 내려가.”
지왕은 그런 샛별이를 안쓰러워하며 말했다.
“괜찮아. 씻고 같이 가면 돼.”
“그치만...”
“잠깐 저리로 가자.”
“왜?”
“잠자코 따라와 봐.”
“응...”
지왕은 그러면서 인적이 없는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 샛별이한테 말했다.
“잠깐 눈 감아 봐.”
“왜?”
“그래야 나랑 같이 부모님 만나러 갈 수 있어. 그러니까 얼른 시키는 대로 해.”
“응...”
샛별이는 그러고선 눈을 감았다.
“눈 뜨면 안 돼. 그럼 진짜 화낼 거야.”
“알았어...”
지왕은 그러고선 샛별이를 돌려세운 뒤 갤낚시 폰의 포털앱을 실행시켜 벽에다 플래시를 비췄다. 그러자 모텔로 갈 수 있는 문이 생겨났다. 지왕은 문을 열고 샛별이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문이 사라지자 샛별이한테 말했다.
“이제 눈 떠도 돼.”
샛별이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러자 모텔 카운터에 있던 폰팔이와 여직원 쥬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샛별이는 얼떨떨해하며 지왕을 쳐다봤다.
“여긴...”
폰팔이가 대신 대답을 했다.
“갤낚시 미용샵입니다.”
“갤낚시 미용샵이요?”
폰팔이의 능청스런 대답에 지왕은 속으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픽 웃었다.
‘훗, 역시...’
폰팔이와 쥬리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지왕이 처한 상황에 맞게 알아서 대처를 해주었었다. 그래서 이젠 이런 것도 전혀 놀랍지가 않았다. 폰팔이는 샛별이의 모습을 보더니 짐짓 걱정스러운 척 말했다.
“이런, 흠뻑 젖으셨네요.”
“네... 좀 일이 있어서...”
“안심하세요. 저희가 원래대로, 아니 더 아름답게 꾸며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샛별이는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주눅이 들어 지왕에게 몰래 속삭였다.
“여기 비싼데 아냐?”
지왕은 픽 웃으며 안심을 시켜주었다.
“걱정 마. 다 공짜니까.”
샛별이는 깜짝 놀랐다.
“정말?”
폰팔이는 웃으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지왕 님은 저희 샵의 평생 무료 회원이시거든요.”
샛별이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아... 아, 그치만 전 회원이 아닌데...”
“상관 없어요. 지왕 님 외에 한분까지 무료거든요.”
“아... 네...”
폰팔이는 옆에 있는 쥬리한테 말했다.
“안내해 드려.”
“네. 이쪽으로 오세요.”
“네...”
샛별이는 그렇게 지왕과 함께 쥬리를 따라갔다. 샛별이는 갤낚시 모텔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왕과 사귄 초기에 이곳에 한 번 왔었다. 하지만 그때 기억 삭제 주사를 맞았던 탓에 폰팔이와 이곳 모텔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쥬리가 안내한 곳은 ‘미용샵’을 테마로 한 밝고 화사한 방이었다. 방의 크기도 100평은 족히 될 것처럼 아주 넓었다.
방 한쪽엔 아주 넓은 욕실이 있었고, 다른 쪽엔 머리도 손질할 수 있는 미용실 분위기의 화장대가 있었다. 그밖에도 방 곳곳엔 몸을 치장하는 데 쓰이는 도구들이 가득 있었다. 그리고 유니폼을 입은 모텔 여직원들도 여러 명이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쥬리는 방 한쪽에 있는 소파를 가리키며 지왕에게 말했다.
“지왕 님은 저기 앉아서 쉬고 계세요.”
“어.”
지왕은 소파에 편히 앉았다. 쥬리는 이어서 여직원들에게 말했다.
“자, 시작하세요.”
그러자 여직원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