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7화 〉127화 (127/270)



〈 127화 〉127화

지왕과 샛별이가 탄 KTX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린 샛별이는 지왕의 부모님을 만난다는 생각에 새삼 긴장이 됐다. 지왕은 긴장한 샛별이를 다독거렸다.


“긴장 풀어.”


“그치만... 아, 뭘 사가지? 과일 사갈까? 뭐 좋아하셔?”

“어제 선물 샀잖아? 그거 드리면 되지.”

“그건 그거구.”

“나 참.  그러면 딸기 사가. 엄마가 좋아하니까.”

“응.”

그런데 샛별이는 과일 가게에서 또 고민에 빠졌다.

“딸기만 사면  그렇지 않을까?”


“뭐가?”

“너무 평범하잖아? 망고도 살까? 음, 그리고 또...”

지왕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래절래 절었다.

“어휴, 정말...”

하지만 샛별이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기에 다정하게 말을 해주었다.


“알았어, 맘대로 해. 대신 너 자체가 제일 큰 선물이란  잊지 마.”

샛별이는 얼굴이 빨개졌다.

“지왕아...”


너무 기뻤다. 그리고 용기도 새삼 샘솟았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말했다.

“알았어. 니가 시키는 대로 할게.”


지왕은 착하다고 샛별이의 머리를 쓰담쓰담해줬다.


“후후.”

샛별이는 수줍어하며 생긋 눈웃음을 지었다.

‘헤헷.’

그렇게 샛별이와 지왕은 딸기를 사들고 지왕의 부모님이 사는 집으로 향했다.


“이제 좀 긴장이 풀려?”


“응, 덕분에. 고마워.”

“녀석.”

하지만 샛별이는 집앞에 도착하자 다시 긴장이 돼서 지왕에게 꼈던 팔짱을 풀었다.


“...”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스읍, 후...”


지왕은 웃으며 샛별이에게 말했다.


“니가 초인종 눌러.”

샛별이는 화들짝 놀라며 지왕을 쳐다봤다.

“내가?”


“어.”


“그치만...”

“안 누르면 내가 누르고 도망가 버린다?”


“뭐? 야~.”

“그러니까 얼른 눌러.”


“히잉, 알았어.”

샛별이는 그러고서 잠시 호흡을 고른 뒤에 떨리는 손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그러자 지왕의 엄마는 인터폰 화면에서 지왕 옆에  있는 샛별이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얼른 문을 열었다.


“얜 누구야? 여자 친구?”

샛별이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윤샛별이라고 해요. 지왕이랑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그래? 어서 와요. 여보! 지왕이가 여자앨 데리고 왔어! 얼른 나와 봐!”


그러자 지왕의 아빠가 한달음에 후다닥 달려나왔다.


“뭐라고?!”

그러곤 지왕의 옆에 서 있는 샛별이를 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못했다.

“우와! 니 녀석이 웬 일이냐?”


지왕은 멋쩍어하며 툴툴댔다.

“내가 뭘.”


“뭐긴, 평생 연애도 못하고 죽을 줄 알았더니만.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들어와요.”

“네, 실례하겠습니다. 아, 여기 딸기...”

지왕의 엄마는 딸기를 받아들며 괜한 호들갑을 떨었다.

“어휴, 뭘 이런 걸. 그냥 오지. 학생이 돈도 없을 텐데.”

“아니에요. 오히려 이것 밖에  사와서 죄송해요.”

그 말에 지왕이 말을 거들었다.

“원래  사려고 했는데 내가 이것만 사라고 했어.”

“잘했어. 들어와. 들어와요.”


“네...”

지왕은 샛별이와 함께 거실에서 지왕의 아빠와 마주보고 앉았다. 지왕의 엄마는 얼른 샛별이가 사온 딸기를 씻어 쥬스와 함께 내왔다. 그리고 아빠의 옆에 앉았다. 샛별이는 지왕의 부모가 아주 신기해하며 뚫어져라 쳐다보는 퉁에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

결국 보다못한 지왕이 부모에게 핀잔을 줬다.


“뭘 그렇게 쳐다 봐?  창피하게.”


지왕의 엄마는 호들갑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신기하니까 그렇지. 그런데 이렇게 예쁜 애는 어떻게 꼬셨대?”


“꼬시긴. 그냥 같은 과고 하니까 만나다보니 사귀게 된 거지.”


하지만 지왕의 엄마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샛별이를 보고 물었다.

“정말 그랬어요?”

샛별이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수줍게 대답했다.

“네... 뭐...”

그러자 지왕의 엄마가 샛별이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고마워요.”

샛별이는 얼떨떨했다.

“네? 뭘...”

“못난 우리 아들 구제해줘서.”

샛별이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니에요... 지왕이 멋진 아이에요.”

지왕도 괜히 투덜댔다.


“아이, 그만해. 쪽 팔리게.”

그러나 지왕의 엄마는 완전 들떠서 오히려 지왕을 타박했다.


“지금 창피한  문제냐? 평생 다시없는 기횐데, 얘 마음 바뀌기 전에 확실하게 붙잡아야지.”


샛별이는 당황해서 얼른 대꾸했다.

“아니에요. 절대 마음 안 바뀔 거예요.”

그러자 지왕의 엄마는 거듭 기뻐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휴,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냥 이참에 결혼할래? 졸업할 때까지 우리가 생활비며 학비며 다 대줄게.”


샛별이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어머니...”

지왕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엄마! 진정 좀 해!”


그러나 지왕의 엄마는 오히려 당당하게 나왔다.

“내가 뭘? 불안하니까 그렇지. 니가 언제 또 이렇게 예쁘고 착한 애랑 사귀겠냐? 안 그래?”


“어휴, 정말.”


그러나 지왕은  뭐라 하진 못했다. 솔직히 갤낚시 폰이 아니었다면 샛별이를 꼬시는 게 불가능했을 거고, 또 지금 있는 갤낚시 폰도 언제까지 쓸 수 있을 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지고 온 쇼핑백을 엄마한테 내밀며 화제를 돌렸다.


“이거, 어버이날 선물. 어제 얘랑 같이 고른 거야.”

물론 지혜도 같이 가서 고른 거긴 하지만.


지왕의 엄마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와아! 돈도 벌고 여자 친구도 생기니까 사람 됐네? 이런 선물도 할 줄 알고.”

아빠도 기쁜 표정이었다. 선물을 뜯어본 지왕의 엄마에게 샛별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마음에 드세요?”


지왕의 부모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암, 맘에 들다마다. 고마워.”


“아니에요...”


“아, 배고프지?”


“아니. 기차에서 얘가 싸온 주먹밥 먹었어. 그냥 이따 점심 먹으면 돼.”

그 말에 지왕의 엄마는 거듭 놀라워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주먹밥도 만들었어? 어휴, 참한 색시네.”


지왕은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어휴, 정말. 그만해.  창피해 하잖아?”


“어? 아, 미안해요. 내가 너무 좋아서.”

샛별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좋아해주셔서 감사해요.”

“부모님은 다 계시고?”

“네.”


“무슨 일 하세요?”

“아버지는 그냥 회사원이세요. 어머니는 가정 주부시고요.”

“아...”


“말씀 편하게 놓으세요.”

그러자 지왕의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놓았다.


“아, 그럴까? 그럼 그렇게 할게.”


“네...”


샛별이는 지왕의 부모님들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웠지만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까 지왕이 “너 자체가 제일  선물”이라고 했던 말이 실감이 돼서 기뻤다.


‘괜한 걱정을 했나? 지왕이 말 대로네?’

지왕은 샛별이가 부모의 지나친 관심에 힘들어할까봐 넌지시 물었다.

“내 방 구경할래?”

샛별이는 기뻐하며 바로 대답했다.

“응.”

그러자 지왕의 엄마가 멋쩍어하며 말했다.

“어휴, 우리가 눈치도 없이 말을 너무 많이 했네. 그래, 지왕이 방에 가서 좀 쉬어.”

“그럼, 실례할게요...”


“따라 와.”

“응.”

그렇게 샛별이는 지왕이 고딩 때까지 쓰던 방에 가서 한숨을 돌렸다.


“휴우...”


“피곤하면 거기 침대에 누워서 쉬어.”


“아냐. 그냥 앉는 걸로 충분해. 방 깨끗하네?”


“엄마가 치웠으니까 그렇지. 원래는 지저분했어. 어때? 내 말이 맞지?”

“뭐가?”


“니가 제일 큰 선물이라는 거.”


“아... 응. 정말 고마워.”

“아냐. 나야말로 고맙지. 엄마랑 아빠랑 호들갑 떠는  니가  이해해. 여잘 데려온 게 처음이거든.”

“아냐. 나야말로 좋아해주셔서 감사하지.”

샛별이는 그러면서 속으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처음이래! 헤헷.’

“점심 뭐 먹고 싶어? 말하면 엄마한테 이야기해 놓을게.”


“아냐, 그럴 필요 없어. 그냥 밥 먹으면 돼.”

샛별이는 그렇게 지왕과 부모님을 만난 소회도 나누고 지왕의 앨범도 보고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길 잘한 것 같아.’

지왕과의 관계의 깊이에 있어서도 지혜와 격차를 확실히 벌여놓은 것 같아 내심 기뻤다.

‘언니한텐 좀 미안하지만... 그래두 지금은 조금 이기적이 되고 싶어... 언니, 미안해요.’

지왕은 쩍 하품을 했다.

“하암~... 쩝... 으, 아침 일찍부터 돌아다녔더니 피곤하네...”


게다가 샛별이한테 화장실 걸레를  물을 끼얹은 애를 조교하느라 한발  영향도 있는 것 같고...


지왕은 기지개를 쫙 펴며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으, 졸려...”

그러고는 샛별이를 불렀다.


“너도 같이 잘래?”


샛별이는 얼굴이 빨개졌다.


“뭐?  돼. 부모님 보시면 어쩌려고.”

 말에 지왕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이리 와서  자면 홀랑 벗겨 버릴 거야.”


샛별이는 깜짝 놀랐다.

“뭐?! 야...”


“발가벗겨져서 먹힐래? 아니면 그냥 얌전히 와서 잘래?”


“그건...”

샛별이는 ‘설마 부모님 계신 데서 그러겠어?’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지왕이 지금껏 한다면 했던 전력을 떠올리면 안 그럴 거라 확신을 하지 못해 불안했다. 그리하여 결국 방문을 소리가  나게 살짝 잠그고 머뭇머뭇 지왕의 옆에 와서 누웠다.


“그냥 가만히 누워만 있어야 해? 알았지?”

지왕은 픽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알았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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