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193화
펜션에서 샛별이가 해준 점심을 먹은 지왕은 차를 타고 인근 바닷가로 낚시로 하러 나갔다. 그리고 낚시 장소에 차를 세우고 내리려고 하는데 샛별이가 갑자기 지왕을 붙들었다.
“잠깐.”
지왕은 어리둥절했다.
“왜?”
“선크림 발라줄게.”
“어? 아이, 괜찮아.”
“안 돼. 그러다 피부암 걸려.”
샛별이는 그러면서 기어코 지왕의 얼굴과 팔에다 선크림을 덕지덕지 발랐다. 지왕은 원체 미끈거리는 걸 싫어해서 바르기가 싫었지만 샛별이가 걱정해서 해주는 거라 꾹 참고 바르는 대로 가만 있었다.
“휴우...”
샛별이는 선크림 다 바르고 나서 마치 잘 참았다고 상을 주듯 입술에 쪽 키스를 했다.
“다 됐다~. 잘 참았어요~. (쪽)”
“나 참. 그럼 이제 내려도 되지?”
“응.”
지왕은 차에서 내려 낚시가방을 들고 샛별이와 바닷가 암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벌써 십 수 명의 낚시꾼들이 바다에 낚시줄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들의 왠지 전문가스러운 포스에 초짜인 지왕은 살짝 주눅이 들었다.
“...”
하지만 샛별이는 생전 처음 하는 낚시에 잔뜩 설레어 있었다.
“와아, 사람들 좀 봐. 벌써 많이들 왔네? 우린 어디서 하면 되는 거야?”
하지만 생초짜인 지왕이 낚시 포인트를 알 리가 없었다. 그래서 대충 사람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구석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서 할까?”
“응.”
샛별이는 뭣도 모르고 지왕을 따라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왕은 가방에서 낚시대를 꺼내 그 중 하나를 샛별이한테 줬다. 샛별이는 낚시대를 받자마자 바로 낚시를 시작할 기세로 지왕에게 물었다.
“미끼는?”
지왕은 가방에서 미끼통을 꺼냈다.
“여기 이 새우로 하면 돼. 내가 꿰어줄까?”
“아니, 됐어. 지렁이도 아닌데 뭐.”
“그래?”
지왕은 좀 의외였다. 좀 징그러워할 줄 알았는데...
샛별이는 새우한테 잔뜩 미안해하며 낚시바늘에 꿰었다.
“으으, 미안해. 아파도 좀 참아. 익.”
그러고는 새우가 낚시바늘에 완전히 꿰어지자 언제 미안해했냐는 듯이 지왕에게 낚시줄을 흔들며 자랑했다.
“나 달았어~.”
“그래, 잘했네.”
“헤헷. 그럼...”
샛별이는 그러더니 낚시대를 번쩍 들어 줄을 던졌다.
“얍!”
낚시 바늘은 제법 멀리 날아가 물속에 퐁당 들어갔다.
“됐다!”
“잘하네?”
“헤헷.”
지왕도 미끼를 바늘에 달고 줄을 멀리 던졌다.
“이얍!”
퐁당.
샛별이는 옆에서 까불거리며 말했다.
“그럼 이제 누가 많이 잡나 시합하는 거다?”
“그래. 이기면 상 줄게.”
샛별이는 신이 났다.
“무슨 상 줄 건데?”
“글쎄... 사랑?”
샛별이는 입을 삐죽였다.
“치이, 그게 뭐야?”
“왜? 싫어?”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훗, 알았어. 소원 들어줄게.”
샛별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어. 말만 해. 하고 싶은 거라든가 받고 싶은 거.”
하지만 샛별이는 뜸만 들일 뿐 선뜻 뭐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음...”
갑자기 생각하려니 잘 안 떠오르는 것도 있었고 또 그 중에서 어떤 걸 해달라고 말할지 도무지 정할 수가 없었다. 샛별이의 뜬금없는 진지함에 지왕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정해. 어차피 뭐라도 잡아야 소원을 말하든지 할 거 아냐?”
“알았어.”
그러나 1시간이 지나도록 월척은커녕 입질도 없었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철썩거리는 소리와 간간히 갈매기가 끼룩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하아... 안 잡히네...”
“그러게...”
그때 저 쪽에서 낚시를 하던 중년의 남성 한명이 고함을 쳤다.
“왔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다른 낚시꾼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와! 큰 가 본데?”
남자는 낑낑대며 낚시줄을 감았다.
“으윽, 엄청 커! 손에 걸리는 힘이 장난이 아냐! 이익!”
샛별이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지왕을 보고 말했다.
“엄청 큰 게 걸렸나봐.”
“그러게... 좋겠다.”
“잠깐 보고 올게.”
샛별이는 그러더니 바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지왕은 한숨이 푹 나왔다.
“좋겠다...”
하지만 샛별이를 따라갈 생각은 나질 않았다. 왠지 질투가 났기 때문이었다. 샛별이 앞에서 월척을 낚아 으스대고 싶었는데...
반면 샛별이는 그 낚시꾼 옆에 딱 붙어서 마치 자기가 고기를 낚는 것처럼 긴장하며 힘을 줬다.
“힘주세요! 꼬옥!”
낚시꾼은 갑자기 주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젋고 예쁜애가 와서 응원을 해주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샛별이를 보고 말했다.
“아가씨도 손맛 느껴볼래?”
샛별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요? 그래도 돼요?”
“물론이지. 자 잡아 봐.”
남자는 그러면서 샛별이한테 낚시대를 같이 잡을 수 있게 해줬다. 샛별이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자 옆에 서서 낚시대를 잡았다. 그러자 팽팽한 물고기의 힘이 대번에 손으로 느껴졌다.
“와아! 엄청 쎄요!”
샛별이는 남자와 함께 낑낑대며 낚시대를 잡아당기고 릴을 감았다.
“끼잉!”
멀리서 그 모습을 본 지왕은 표정이 싹 굳어졌다. 중년의 남자가 샛별이를 거의 뒤에서 끌어안듯이 해서 같이 낚시대를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릴을 감고 있는 손도 서로 닿아 있었다.
더욱이 샛별이는 그런 남자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물고기를 낚는 데만 열중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 아주 기쁨과 설레임이 가득한 채.
하지만 지왕은 선뜻 달려가 샛별이를 데려오질 못했다. 1시간 넘게 입질조차 없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과거 갤낚시 폰을 얻기 전 여자들 앞에서 자신감이 없던 자신의 모습이 지금의 처지에 겹쳐졌다.
‘씨팔...’
그러나 역시 여전히 가서 샛별이를 데리고 오진 못하였다.
‘...’
그때 샛별이가 남자와 합심해 물고기를 건져올렸다.
“꺅! 올라왔어요! 뜰채! 뜰채!”
샛별이의 호들갑에 옆에 있던 다른 낚시꾼이 뜰채를 가지고 고기를 안전하게 건져 올렸다. 잡은 고기는 과장 조금 보태서 거의 쟁반만한 크기였다.
“와아! 크다! 이거 무슨 고기예요?”
“참돔이네.”
“참돔이요? 이거 맛있는 거죠?”
“물론이지. 없어서 못 먹지. 좀 줄까?”
“네!”
“기다려 봐. 회쳐서 줄게.”
그렇게 현장에선 바로 참돔 해체쇼가 벌어졌다. 샛별이는 옆에서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구경했다.
“와아...”
고기가 워낙 크다보니 회를 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남자는 회 한점을 초장에 찍어 샛별이의 입에다 가져다주었다. 샛별이는 잔뜩 설레어하며 그걸 아기새처럼 넙죽 받아먹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물오물 귀엽게 씹었다. 낚시꾼들도 다 같이 소주잔을 들고 왁자지껄 회를 나눠 먹었다. 샛별이는 회를 꿀꺽 삼키며 정말 행복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와아! 맛있어요! 저 좀 주시면 안 돼요? 저기 남자친구 있는데 맛 보여주고 싶어요.”
남자는 흔쾌히 대답했다.
“물론이지. 와서 먹으라고 해.”
“아, 그럴까요?”
샛별이는 그러더니 지왕에게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불렀다.
“지왕아~! 여기 아저씨께서 같이 와서 먹어도 된다고 하셔! 이리와 봐! 엄청 맛있어!”
그러나 지왕은 꽁해갖고 못들은 척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흥. 그러라지.’
하지만 그런 지왕의 속내를 알 리 없는 샛별이는 의아해할 뿐이었다.
“왜 저러지? 안 들리나?”
그래서 다시 한 번 낚시꾼에게 부탁했다.
“저... 그냥 조금 가져갈게요.”
“그래. 저기 접시에 담아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종이접시에 회를 옮겨담는 샛별이의 눈에 방금 회를 치고 남은 머리와 뼈가 보였다. 샛별이는 그걸 보고 넌지시 남자에게 말했다.
“저... 저기 머리랑 뼈도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이따 저녁할 때 매운탕 좀 끓이려고요.”
“응? 아가씨 완전 살림꾼이네? 원하면 반 가져가. 어차피 너무 커서 내가 가져온 냄비엔 다 들어가지도 않으니까. 아, 내가 반 잘라줄게.”
“감사합니다~.”
그렇게 샛별이는 회가 담긴 접시와 매운탕거리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신이 나서 생글생글 웃으며 지왕에게로 돌아왔다.
“지왕아~, 이거 먹어 봐. 엄청 맛있어. 아저씨가 우리 매운탕 끓여 먹으라고 이것도 주셨어. 굉장하지?”
그러나 심통이 날 대로 나 있던 지왕은 샛별이 쪽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됐어. 너나 많이 먹어.”
샛별이는 얼떨떨했다.
“지왕아...? 왜...”
지왕은 발끈해서 샛별이에게 비아냥거렸다.
“다른 남자 손 잡으니까 좋냐? 그것도 완전 품에 딱 안겨서는.”
샛별이의 눈동자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건... 그런 거 아냐! 난 단지...”
“단지 뭐? 내가 손맛 느끼게 못해주니까 딴 남자 품에 안겨서 대신 느낀 것뿐이라고?”
“그...”
“됐어. 가서 계속 애교부리면서 얻어먹고 와. 또 고기도 잡고. 난 여기서 기다려줄 테니까.”
샛별이는 대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너무 해.”
지왕은 울먹이는 샛별이를 보고 마음이 약해졌다. 아니 자책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치사하고 속 좁은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선뜻 사과를 하진 못하였다.
그러다 다시 한 번 샛별이를 쳐다봤을 때 마음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샛별이는 어느 새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 되서 흐느끼고 있었다.
“흑...”
지왕은 샛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그러다 결국 마음이 아파 먼저 사과를 하고 말았다.
“미안... 내가 말이 너무 심했어.”
그러자 샛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울음을 빵 터트리며 서럽게 울먹였다.
“고기 잡는 법 배워서 커다란 고기로 너한테 맛있는 회랑 매운탕 끓여주려고 그랬던 건데... 그치만 혹 못 잡을으면 어떡하나 걱정돼서 이렇게 매운탕거리도 얻어온 거고... 아저씨는... 아저씨는... 그냥 아빠 같아서... 나이 많은 아저씨니까...”
“알았어. 울지 마. 내가 사과할게.”
그런데 그때 갑자기 바닥에 고정시켜놨던 샛별이의 낚시대가 흔들거렸다.
“어?”
그걸 본 샛별이와 지왕은 언제 울면서 다퉜냐는 듯이 화들짝 놀라며 동시에 낚시대를 붙잡았다.
“꽉 잡아!”
“어!”
“빨리 낚시줄 감아!”
“응!”
샛별이는 아까 익혔던 감각을 본능적으로 되살려 릴을 감았다.
“천천히,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그리고 마침내 물고기가 잡혀 올라왔다.
“잡았다!”
“꺅! 내가, 아니 우리가 잡았어!”
“아! 뜰채! 뜰채”
지왕은 뜰채로 물고기를 건져 바닷물을 채운 아이스박스에 넣었다. 샛별이는 제대로 흥분을 해서 지왕에게 물었다.
“와아! 이거 우럭 맞지?”
“어, 맞는 것 같아.”
그런데 흥분이 좀 가라앉고 보니 우럭이 생각보다 그닥 크진 않은 것 같았다.
“흐음, 근데 회 치면 몇 점 안 나올 것 같은데?”
“그치?”
둘은 그러고선 서로 멋쩍게 웃었다.
“그럼 이건 매운탕으로 먹자.”
“응. 머리랑 뼈밖에 없어서 아쉬웠는데... 내가 맛있는 통우럭매운탕 끓여줄게.”
“그래.”
지왕을 바라보며 웃는 샛별이의 눈망울엔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남아 있었다. 지왕은 못내 미안해져서 손으로 눈물 자국을 닦아주었다.
“미안.”
샛별이는 배싯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내가 경솔했어. 난 임자 있는 여잔데.”
“뭐? 하하. 그래 넌 임자가 있는 여자지.”
“헤헤.”
지왕은 문득 샛별이가 리나와 지혜에게 질투하지 않고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것이 새삼 더 대단하게 보였다. 그리고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있지만 속으론 분명 많이 인내하고 있을 거란 생각에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 이만 접고 돌아갈까? 너 예쁜 얼굴 타면 안 되니까. 세수도 좀 하고.”
“응. 난 이걸로 충분해.”
“그래, 가자.”
“응! 아, 그 전에 이 회 먹구 가.”
“알았어.”
그렇게 둘은 새별이가 얻어온 회를 마저 먹고 낚시 도구들을 정리해 다시 펜션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