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198화
지왕은 리나와 저녁으로 시원한 막국수를 사먹으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 다가 막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지혜와 딱 마주쳐버리고 말았다. 셋은 동시에 흠칫 놀라며 멈춰섰다.
“엇?!”
“앗!”
“언니...”
지왕과 리나는 당황했고 지혜 또한 당황... 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지며 달려가 리나의 뺨을 있는 힘껏 찰싹 올려붙였다.
“익!”
찰싹!
리나는 깜짝 놀라며 뺨을 감싸쥐었다.
“꺅!”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고개가 맞은 방향으로 홱 돌아가며 머리칼이 휘날렸다. 하지만 정작 눈물은 그렁그렁하게 맺힌 쪽은 리나가 아니라 지혜였다. 리나는 단지 놀란 눈으로 눈동자만 어지럽게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지왕은 당황스러워하며 지혜를 밀쳤다.
“뭐 하는 거야?”
지혜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울먹거리며 지왕을 쏘아붙였다.
“피곤하다며? 혼자 있고 싶다며? 그래서 혹시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나싶어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먹을 것만 앞에 두고 가려고 했는데...”
그러고는 서러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지혜의 손엔 지왕에게 저녁거리로 주고 가려 했던 음식이 담긴 하얀색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지왕은 마음이 안 돼서 화를 누그러뜨리고 지혜를 다독였다.
“미안해. 내가 부른 거야.”
그러나 그 말이 위로가 될 턱이 없었다. 지혜는 또 다시 버럭 쏘아붙였다.
“지금 내 앞에서 얘 감싸는 거야?”
“아잇, 그런 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냐? 나쁜 년. 불쌍해서 받아줬더니 감히 내 자릴, 아니 샛별이랑 내 자릴 넘 봐?”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놓고도 실제론 자기의 위치만 불안해진 거지 샛별이의 위치는 여전히 확고하단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서러웠다. 리나는 잔뜩 쫄아서 사과했다.
“죄송해요... 저 이만 갈게요...”
그러면서 슬금슬금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지왕은 리나를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어디 가? 가만 있어.”
리나는 움찔 하며 멈춰섰다. 그러고는 둘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지왕은 지혜의 팔을 붙들었다.
“들어 가. 들어가서 얘기하자.”
그러나 지혜는 지왕의 팔을 확 뿌리쳤다.
“됐어! 들을 말 없어.”
지왕은 결국 발끈했다.
“그럼 앞으로 나랑 영원히 얘기 안 할 거야?”
그러자 지혜도 발끈해서 저도 모르게 빽 소리쳤다.
“그래 안 할 거야! 너도! 얘도! 샛별이도! 다신 영원히 안 볼 거라고!”
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바닥에 탁 내동댕이쳐 버렸다. 그리고 발소리를 탁탁 내며 가 버렸다.
“으으!”
지왕은 버럭 소리쳤다.
“어디 가 봐! 그랬단 진짜 영원히 안 볼 테니까!”
지혜는 멈칫했다. 겁이 났다. 진짜 지왕이 자길 안 봐줄 것 같아서. 저 목소린 진심 같았다. 그러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풀썩 쭈그려앉아 서럽게 울음틀 터트렸다.
“으앙~! 나쁜 놈! 뭘 잘했다고! 못 생긴 게! 바람둥이가! 으앙~!”
지왕은 리나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리나는 바로 지왕의 뜻을 눈치 채고 지혜의 곁으로 갔다.
“언니... 들어가요...”
지혜는 신경질을 내며 리나의 손을 확 뿌리쳤다.
“저리 가!”
하지만 곧 자기 발로 일어났다. 지왕은 그 모습을 보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어놓은 채. 지혜는 뒤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쾅 닫아 버렸다. 같이 따라 들어가려던 리나는 멈칫했다.
“...”
지왕은 리나에게 말했다.
“들어와.”
지혜는 지왕을 찌릿 째려봤다. 하지만 뭐라 하진 못했다. 그냥 화가 나서 씩씩대고 있을 뿐이었다.
“씨이...”
리나가 도어락의 비밀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그때까지 아직 신발을 벗지 않고 현관 앞에 서 있던 지혜는 리나 쪽을 확 돌아보며 눈을 부라렸다. 리나는 멈칫했다.
“...”
지왕은 리나에게 말했다.
“미안한데, 오늘은 그냥 가라. 이 녀석 너 있으면 얘기가 안 통할 것 같다.”
리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고는 다시 문을 닫고 나갔다. 문이 닫히자 지혜는 마치 쌤통이라는 듯 히죽 웃었다.
“흥!”
마치 조금이나마 리나한테 이긴 듯한 기분이었다. 리나는 잠시 닫힌 현관문을 아쉬운 듯 바라보다가 돌아갔다.
‘...’
지왕은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지혜에게 말했다.
“들어 와.”
지혜는 신발을 홱 벗어던지고 안으로 탁탁 발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그러나 앉거나 하지 않고 계속 지왕 앞에 우뚝 멈춰 서서 계속 째려봤다.
“흥.”
지왕은 짐짓 엄한 얼굴로 말했다.
“앉아.”
지혜는 지왕이 이 상황에도 자기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지금 화난 건 난덴, 그리고 잘못한 건 저 녀석인데...
하지만 지혜는 그러다 아까 밖에서 리나의 뺨을 때린 게 불쑥 생각이 났다.
‘설마 그것 때문에 화가 났나?’
그래서 저도 모르게 힐끔 지왕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그러다 자길 엄한 표정으로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지왕과 눈이 딱 마주쳤다. 지혜는 움찔 놀라 도로 눈을 내리깔았다.
‘뭐야? 잘못한 건 쟨데 왜 내가 쩔쩔 매는 거야?’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 고개를 들고 지왕을 똑바로 쳐다봤다.
“흥!”
그러나 지왕은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거듭 엄하게 말했다.
“앉으라는 말 안 들려?”
지혜는 움찔 쫄았다. 그래서 겉으론 신경질을 내면서도 시키는 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흥! 뭘 잘 했다고 큰 소리야?”
그런데 지왕은 또 말했다.
“꿇어앉아.”
지혜는 발끈해서 지왕을 쳐다봤다.
“뭐?! 내가 왜!”
“왜 그런지 가르쳐줄 테니까 꿇어앉아.”
지혜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리하여 결국 시키는 대로 다시 자세를 고쳐 꿇어앉았다. 그러나 계속 지지 않으려고 지왕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 순간 지왕이 지혜의 뺨을 제법 세게 찰싹 올려붙였다.
철썩!
지혜는 깜짝 놀라며 뺨을 감싸쥐었다.
“꺅!”
지혜의 눈동자가 당혹감으로 어지럽게 떨렸다.
“뭐...”
너무 황당스러웠다. 뺨도, 정신도 얼얼했다. 잘못한 건 자기면서 어째서 날...
그래서 발끈해 지왕에게 소리를 치려고 했는데 지왕이 먼저 선수를 쳤다.
“누가 멋대로 내 앞에서 손찌검을 하래?”
“그건... 걔가 위아래도 없이 너한테 꼬리 살살 치니까! 그래서...!”
그러나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억지란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나는 지왕이 시키지 않는 한 스스로 올 애가 아니라는 것을...
지왕은 지혜가 머뭇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바로 쏘아붙였다.
“핑계대지 마. 나한테 화난 건 걔한테 화풀이한 거잖아?”
정곡이었다. 하지만 지기 싫었던 지혜는 막무가내로 나오는 대로 쏘아붙였다.
“그래! 화풀이 좀 했다! 그게 어때서! 그럼 널 때릴까? 그럼 좋겠어?”
그리고 그 상태로 씩씩대며 지왕을 쳐다봤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슬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지왕이 어떻게 나올지 두려워서 그런 건지 자기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마치 오한이 든 것처럼, 아니 겁을 잔뜩 집어먹은 강아지처럼 몸과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으으.”
그때 지왕이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지혜는 얼떨떨했다.
“뭐?”
“화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지혜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
그리고 화도 불이 탁 커지듯 사그라들었다. 지왕을 잔뜩 노려보던 눈도 힘이 풀어져버렸다. 지왕은 타이르듯 말했다.
“오늘은 그냥 편하게 있고 싶었어. 그런데 너나 샛별이는 내가 말없이 가만히 있으면 내 눈치를 보잖아? 물론 리나도 눈치를 보긴 해. 그렇지만 너희 둘의 경우엔 니들이 내 눈치를 보면 나도 같이 부담스러워지는데, 리나는 그렇지 않아. 그래서 리나를 부른 거야.”
지혜는 입이 쑥 나와서 투덜거렸다.
“나랑 샛별이가 그렇게 불편해? 리나만 편하고?”
지왕은 한숨을 푹 쉬며 다시 설명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니들이 불편해하는 걸 보면 나도 같이 미안해져서 불편해지지만, 리나의 경우엔 미안한 마음이 별로 안 들어서 안 불편한 거라고. 그건 내가 너랑 샛별이를 더 각별히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지혜는 더 뭐라 하지 못했다. 이해가 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기뻤다. 지혜의 표정이 조금 환해진 걸 본 지왕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마음이 좀 풀려?”
속내를 들킨 지혜는 대번에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홱 돌렸다.
“누, 누가! 나 아직 화났어! 흥!”
지왕은 피식 웃었다.
“훗.”
그 소리에 지혜는 창피해서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
지왕이 지혜에게 말했다.
“리나 다시 부를까?”
지헤는 놀란 눈으로 지왕을 쳐다봤다.
“뭐?!”
지왕은 웃으며 말했다.
“사과해야지?”
지혜는 당황해서 버벅댔다.
“내, 내가 왜! 잘못한 건 걔... 아니 넌데!”
지왕은 피식 웃었다.
“그렇지? 리나는 잘못 없지? 그러니까 걔한테 때린 걸 사과해야지.”
“씨잉... 그럼 니가 맞아!”
“그래, 때려. 맞아줄게.”
지혜는 지기 싫어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손을 확 쳐들었다. 지왕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높이 쳐든 지혜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익!”
그러나 결국 때리진 못하였다. 오히려 지왕의 머리를 가슴팍으로 꼭 끌어안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바보... 멍게, 말미잘, 바람둥이, 뚱땡이, 나쁜 놈...”
“그리고 또? 뭐 더 없어?”
지혜는 발끈했다. 그래서 지기 싫어서 버럭 소리쳤다.
“그래 또 있다! 꼬추 큰 놈!”
그러고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래서 그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지왕의 머리를 가슴 쪽으로 더 꼭 끌어안았다.
“바보...”
지왕은 지혜의 가슴에 얼굴이 파묻힌 채 씩 웃으며 말했다.
“리나한테 전화할까?”
지헤는 멋쩍어하며 대답했다.
“응...”
지왕은 리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이제 지하철역이야.”
“그래? 잘 됐네. 다시 돌아와.”
“어?”
“다시 집에 오라고. 지혜가 너한테 할 말 있대.”
리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살짝 걱정이 되었다.
‘무슨...’
그러나 지왕이 오라는데 안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왕도 보고 싶었고. 그래서 시키는 대로 했다.
“알았어.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
“어.”
지왕은 전화를 끊고 말했다.
“입 맛 없어서 막국수 먹으로 가려고 했는데... 에이, 그것도 귀찮아서 못가겠다.”
그러자 지혜가 대뜸 신이 나서 말했다.
“그럼 내가 국수 끓여줄까? 뭘로 해줄까? 비빔국수? 잔치국수?”
지왕은 그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래서 웃으며 말했다.
“반반.”
지혜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그러고선 싱크대 앞으로 가서 국수를 삶기 시작했다.
“아, 찬장에 골뱅이도 있어. 그것도 쓰던가.”
“응!”
잠시 후 리나가 돌아왔다.
“저... 나 왔어...”
지왕은 씩 웃으며 지혜 쪽으로 눈짓을 했다. 그러자 지혜가 반갑게 달려와 리나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깐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줄 거지?”
리나는 얼떨떨해서 지왕을 쳐다봤다. 지왕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리나는 지혜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네...”
그러자 지혜가 아까 자기가 때렸던 리나의 뺨에 쪽 키스를 했다.
“고마워~. (쪽) 그럼 가서 지왕이랑 놀고 있어. 국수 끓이고 있으니까.”
“아니에요. 저도 도울게요.”
“그럴래?”
“그럼 국수 다 삶아졌으니까 물에 씻어줘. 난 양념이랑 육수 만들 테니까.”
“네.”
그렇게 둘은 같이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셋이 식탁에 나란히 둘러앉았다.
“먹어.”
지왕은 두 가지 국수를 한입씩 맛을 봤다.
“음, 맛있네?”
지혜는 눈빛을 반짝이며 설레는 마음으로 물었다.
“샛별이가 한 것보다 더 맛있어?”
지왕은 피식 웃으며 냉정하게 말했다.
“아니.”
지혜는 입을 삐죽였다.
“칫. 나쁜 놈. 샛별이도 없는데 더 맛있다고 하면 어디 덧나냐?”
“그럼 너 없을 때 샛별이 앞에서 너보다 샛별이가 더 낫다고 하면 좋겠어?”
지혜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건... 아이씨, 몰라! 먹기나 해!”
“후후.”
“칫.”
셋은 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밤에도 둘은 돌아가지 않고 침대에 대자로 누워있는 지왕의 자지를 팬티 차림으로 젖을 출렁거리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같이 맛있게 빨았다.
“하흥~... 우움. (츄릅 쪽 쪽)”
“하앙~... 우움. (츄릅 할짝)”
그러나 지왕은 여전히 샛별이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혼이라... 흐음...’
그때 지왕의 갤낚시 폰이 조용히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지왕이 폰을 켰을 때 폰 화면엔 메시지가 떠 있었다.
- 앞으로는 여자를 단번에 육변기로 만들 수 있는 흥분 자극을 줄 수 있습니다. 방식은 기존과 동일하며 옵션으로 ‘육변기 모드’를 켜면 해당 기능이 작동됩니다.
지왕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육변기 모드?! 오~!’
그와 함께 어제 계속 머릿속을 괴롭히던 결혼에 대한 생각은 잠시 잊혀져버렸다. 폰팔이의 배려였을까? 아님 농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