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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을 바꿨더니 고추가 커졌다-267화 (267/270)

267화 - 267화

지왕은 폰팔이가 지난여름 쥬리가 말실수를 한 것 때문에 일반직원으로 강등돼서 공석이 된 갤낚시 모텔의 부지배인 자리에 샛별이를 앉힐 수 있도록 주지 않으면 갤낚시 폰도 회수하고 자신을 갤낚시 폰을 갖기 전의 시점으로 되돌려놓는다는 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씨팔...”

그러나 폰팔이는 그런 엄청난 말을 해놓고도 재밌다는 듯이 히죽거리고 있었다.

“후후.”

지왕은 울컥 분통이 터졌다.

“개새끼, 이러려고 갤낚시 폰을 나한테...”

“이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요.”

순간 지왕은 지난번 쥬리가 보라카이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남자친구한테 배신당했거든요.

그건 지혜가 어쩌다가 갤낚시 모텔에서 일하게 되었냐고 물었던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설마 쥬리도?”

폰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았죠.”

“그럼 그 남자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또 다른 평행 세계에서 아주 잘 살고 있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샛별 씨를 저에게 주시겠습니까?”

지왕은 선뜻 아니라고 말을 하지 못하였다.

‘샛별이를 저 자식에게 주면...’

샛별이랑은 이별하게 되겠지만 지혜랑 리나, 거기다 편의점 여사장인 수진과 그 여동생은 물론 과외를 해주고 있는 슬기와 그녀의 새엄마 정아까지... 수많은 여자들과 함께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또 다른 평행세계에서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 폰팔이가 평생 놀고 먹을 돈도 준다고 했으니까. 게다가 쥬리도 덤으로 주고.

지왕은 그러다 문득 쥬리가 자신에게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툭하면 옷을 벗고 자지도 빨고 정액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먹던 모습들...

만약 샛별이가 부지배인이 된다면... 다른 남자들에게 똑같이...

‘안 돼! 그것만은!’

샛별이가 다른 남자들에게 육변기처럼 다뤄지는 건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그렇지만...’

만약 갤낚시 폰을 뺐기고 원래의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샛별이는 물론 지혜나 리나, 그 밖의 모든 여자애들과 지금처럼 가까워질 수가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냥 원래의 찐따로 돌아가버려 여자는커녕 친구도 못 사귈 것 같았다. 예전처럼.

‘그럼 내 인생은...’

그렇게 지왕이 갈팡질팡할 때 폰팔이가 또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더는 기다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지왕은 눈이 커졌다. 목이 탔다. 가슴 속도 답답했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고 손도 땀으로 축축해졌다.

“씨팔...”

폰팔이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결정하기 어려우신가 보군요. 그럼 갤낚시 폰을 얻기 전의 모습을 떠올려보세요. 천하의 찐따 같던 모습을.”

지왕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폰팔이는 그런 지왕을 보고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 제가 깜빡했군요. 만약 샛별 씨를 저희에게 주시면 지왕 님의 외모도 싹 리뉴얼해 드릴 겁니다. 저처럼요.”

지왕은 눈이 더욱 휘둥그레졌다.

‘뭐?!’

폰팔이의 외모는 좀 얍실하게 보이긴 해도 얼굴과 몸매 자체는 30대 중반의 영화배우 못지 않았다.

‘저 정도만 돼도...’

지왕은 더욱 조바심이 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으으...’

머릿속엔 과거 찐따 시절 이름과 외모 때문에 온갖 서러움에 시달렸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으으...”

지왕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살짝 벌어졌다.

“주...”

폰팔이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훗.”

그 순간 지왕이 돌연 확 신경질을 내며 외쳤다.

“에이씨! 됐어! 안 줘! 가져가!”

그러더니 손에 들고 있던 갤낚시 폰을 폰팔이한테 확 던져버렸다. 폰은 폰팔이 옆으로 빗겨 날아가 등 뒤에 있던 벽에 탁 부딪혔다.

콱!

그리고 팟 하고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졌다.

후드드득.

순간 폰팔이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지왕은 움찔 겁이 났지만 애써 안 그런 척 허세를 부리며 낄낄 웃었다.

“왜? 예상이 빗나가서 당황했냐? 킥킥! 가져 가! 다 필요 없어! 나한텐 샛별이만 있으면 돼!”

폰팔이는 어금니를 으득 깨물며 지왕에게 달려들 기세로 쏘아붙였다.

“너 따위 찐따 새끼한테 샛별이가 관심이나 준대? 갤낚시 폰 없이 니가 사람 취급이나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지왕은 움찔 했다. 하지만 애써 안 그런 척 낄낄 웃으며 폰팔이한테 쏘아붙였다.

“상관없어. 어차피 자기 잘 먹고 잘 살자고 사랑하는 여자를 갖다 팔아먹는 진짜 찐따 새끼보단 나으니까. 너나 이 여자 저 여자 잘 따먹고 다녀라! 씨팔 새끼야!”

폰팔이는 순간 눈이 뒤집혀 지왕에게로 달려들었다.

“이 새끼가!!”

그런데...! 마치 앞에 투명한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폰팔이는 거기에 콰당 부딪히고 뒤로 나뒹굴었다.

“컥! 씨팔! 뭐야!”

그러자 옆에서 잠자코 보고만 있던 쥬리가 싸늘한 표정으로 폰팔이에게 말했다.

“잊으셨어요? 갤낚시 모텔의 직원은 어떤 상황에서도 손님을 해할 수 없어요. ‘그 분’이 그렇게 정하셨으니까요.”

폰팔이의 눈빛이 어지럽게 떨렸다.

“크흑!”

지왕은 어리둥절했다.

“그 분... 이라니?”

쥬리는 담담히 설명을 해줬다.

“이 세계, 즉 갤낚시 세계의 주인이신 분이에요. 그리고 여긴 그 분의 저주가 지배하는 세계고요.”

“그 사람의 저주가 지배하는 세계? 그게 무슨...”

그러나 쥬리는 더 설명해주지 않고 지왕의 등 뒤를 눈빛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돌아가세요. 갤낚시 폰을 얻기 전의 시간으로.”

거기엔 어느 새 포털이 열려 있었다. 지왕은 다급한 목소리로 쥬리에게 말했다.

“넌? 넌 갈 수 없어? 같이 가자?”

쥬리는 마치 초연해진 듯한 표정으로 살짝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 여기서 마무리지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어서 가세요. 늦으면 포털이 닫혀요.”

포털이 닫힌단 말에 지왕은 다급해져서 주춤주춤 뒷것음질을 쳤다.

“그럼 나갈 수 있단 얘기지? 알았어. 너도 늦지 않게 여기서 나가! 만약 나랑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 있게 되더라도 꼭 살라구! 그리고 함부로 대했던 거 미안해! 절대 니가 하찮거나 그래서 그런 거 아니었어! 좋았다구! 진짜야! 행복하게 살아! 미안해! 살아! 안녕!”

지왕은 그러고는 허겁지겁 포털로 달려 들어갔다.

“이익!”

그러자 포털이 기다렸다는 듯이 스륵 닫히며 사라졌다. 폰팔이는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분해하며 지왕이 들어간 포털이 사라진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씨팔! 다 됐는데! 나갈 수 있었는데!!”

쥬리가 그런 폰팔이를 측은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업자득이에요.”

그러나 폰팔이는 위축되긴커녕 오히려 눈물까지 왈칵 차올라선 쥬리를 쏘아붙였다.

“시끄러!”

그러다 돌연 실성한 것처럼 낄낄 거리며 말했다.

“속이 시원하냐? 복수해서?”

쥬리는 차갑게 씽긋 웃었다.

“네. 어찌됐든 이젠 전 해방이니까요. 누구와는 다르게.”

낄낄거리며 웃던 폰팔이의 얼굴이 도로 싹 굳어졌다. 그리고 다시 미친 것처럼 땅을 치며 통곡했다.

“씨팔! 씨팔!! 아악!!”

그때 또 벽에 새로운 포털이 열렸다. 그리고 쥬리의 복장도 마치 마법이 부려진 것처럼 메이드복에서 평상복으로 바뀌었다. 자신의 변한 모습을 본 쥬리는 감회가 새로웠다.

“훗.”

그 옷은 쥬리가 갤낚시 모텔의 직원이 되기 직전 현실에서 입고 있던 옷이었다. 쥬리는 포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한발만 더 디디면 포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때 문득 과거의 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폰팔이는 이전 갤낚시 모텔의 사장(지배인)인 남자로부터 아까 자신이 지왕에게 제안했던 것과 똑같은 내용의 제안을 받았었다. 다시 말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쥬리를 갤낚시 모텔에 바치면 자신은 일부다처제가 인정되는 또 다른 평행 세계에서 여자들과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

그때 폰팔이는 망설임 끝에 쥬리를 배신하는 쪽을 택했었다. 그러나 그건 전임 사장의 속임수였고, 폰팔이는 쥬리와 함께 갤낚시 세계에 갇혀 버리고 말았었다.

대신 이전 사장은 폰팔이를 속이는 데에 성공한 대가로 자유를 얻어 자기가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그가 그 이전의 사장에게 속아서 같이 이 세계로 오게 됐었던 그의 제일 사랑했던 여자는 갤낚시 모텔의 직원으로 영원히 남겨지게 되었었다.

갤낚시 세계에 걸려 있는 저주에 의해, 현재의 손님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갤낚시 모텔에 바치게 되면 현재의 사장은 그 대가로 해방되어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되고, 만약 손님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는 쪽을 선택하게 되면 사장이 배신해서 이곳에 같이 갇히게 됐던 그의 여자만이 해방되어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럼 당연히 사장은 이 세계에 영원히 갇히게 된다.

그래서 폰팔이가 지왕이 샛별이를 배신하길 바랬던 거고, 그게 실패하자 그렇게 분통을 터트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쥬리는 자유를 얻었고.

쥬리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젠 내가 당신을 버리네?”

폰팔이는 눈이 거듭 휘둥그레져서 쥬리를 쳐다봤다. 눈동자가 어지럽게 떨리고 있었다.

“으으...”

쥬리는 피식 웃으며 다시 돌아섰다. 그리고 폰팔이에게 이별을 고하며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 지왕 씨...”

그리고 잠시 후 포털은 스르륵 사라졌다.

혼자 남겨진 ‘지왕’의 눈엔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차올랐다.

“으으... 으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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