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 269화
다음 날 지왕은 학교에 갔다. 그리고 첫 번째 수업은 땡땡이 치고 좀 있다가 학과 건물 뒷편으로 갔다. 그곳엔 역시나 샛별이가 벤치에 앉아 조금 있다 같이 점심을 먹을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왕은 우연인 척 다가가 말을 걸었다.
“친구 기다려?”
샛별이는 깜짝 놀랐다.
“어? 아, 지왕이구나? 안녕?”
그때 샛별이의 머리로 뭔가 하얀 게 뚝 떨어졌다.
“앗!”
샛별인 당황하며 머리를 만졌다.
“뭐...”
뭔가 기분 나쁘게 찐득찐득한 느낌이... 지왕은 그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챘다.
“새똥?!”
샛별인 거듭 깜짝 놀라며 당황했다.
“뭐?! 히잉...”
하지만 멋모르고 머리를 만지작거린 탓에 손도 새똥 범벅이 되었다. 샛별인 완전 울상이 돼서 안절부절못했다.
“어떡해...”
지왕은 같이 당황하며 샛별이한테 물었다.
“혹시 물티슈 있어?”
“응, 가방 속에.”
“그럼 가방 좀 볼게. 그래도 되지?”
“응, 물티슈랑 휴지 좀 꺼내줘.”
“어.”
지왕은 샛별이의 가방을 뒤져 물티슈와 휴지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로 샛별이의 손에 묻은 새똥부터 닦아주었다. 샛별이의 손은 말 그대로 섬섬옥수. 가늘고 부드럽고 귀엽고 따뜻했다.
‘와아... 내가 샛별이의 손을 만지다니...’
물론 갤낚시 폰을 가졌을 땐 그보다 더 한 것도 마음껏 만졌지만 폰이 없는 지금 손이라도 만지는 건 절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손이 어느 정도 깨끗해지자 샛별이는 자기가 물티슈로 머리에 묻은 새똥을 닦았다.
“히잉...”
지왕도 같이 닦아줬지만 완전히 닦는 건 불가능했다.
“이거 안 되겠는데? 머리 감아야겠다.”
샛별이는 거의 울먹거리기 직전이었다.
“그치만...”
지왕은 용기를 내 말했다.
“우리 집에 갈래? 여기서 10분만 가면 돼.”
그러나 샛별이는 망설여졌다.
“그치만...”
“괜찮아. 나 혼자 사니까. 정 그러면 너 씻을 동안은 밖에서 기다려줄게.”
“그럼 너무 미안한잖아...”
“그럼 안 씻고 새똥 냄새 풍기면서 돌아다닐 거야?”
“아니...”
지왕은 샛별이의 팔을 불쑥 붙잡았다.
“그럼 일어나. 애들하고 점심 약속 12시지? 서두르면 그전에 씻고 올 수 있을 거야.”
샛별이는 지왕이 자기의 스케쥴을 알고 있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걸 어떻게...”
지왕은 속으로 아차 싶었지만 얼른 능청스럽게 둘러댔다.
“점심 약속이 12시 아니면 1시지. 뭔 그런 거 갖고. 아무튼 얼른 가자.”
결국 샛별이는 머뭇머뭇 일어났다.
“응... 아, 잠깐만 손 좀 씻고.”
“알았어. 얼른 다녀와.”
“응, 잠깐만 기다려!”
샛별이는 그러고는 얼른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여자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왔다.
“됐어. 얼른 가자.”
“그래, 이쪽이야.”
“응.”
그렇게 둘은 지왕의 자취집으로 빠른 걸음으로 향했다. 그러다 도중에 지혜가 일하는 편의점이 지왕의 눈에 들어왔다.
“아, 잠깐만 저기 들렀다 가자.”
샛별이는 어리둥절했다.
“왜?”
“수건이 없거든.”
물론 수건이 있긴 했지만 다 해지고 총각 냄새도 배어서 샛별이한테 닦으라고 주기가 민망해서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샛별이는 순순히 지왕을 따라갔다.
“응...”
그런데 편의점엔 지혜가 있었다.
“뭐야? 왜 또 왔어?”
“응? 아직도 있었어?”
하지만 지햬는 이미 눈이 지왕의 옆에 있는 샛별이한테 가 있었다.
“설마 여자 친구?!”
지왕은 당황해서 막 버벅댔다.
“아, 아니. 그냥 같은 과 친구...”
샛별이도 얼굴이 빨개져서 막 안절부절못했다.
“그...”
지혜는 그런 샛별이가 마음에 안 들었다.
“뭐야? 왜 부인 안 해? 설마 얘 좋아하냐?”
샛별인 얼굴이 왈칵 빨개졌다.
“아, 아니 그게...”
하지만 지왕의 눈치가 보여 뭐라 말이 나오질 않았다. 착하게도 대놓고 단박에 아니라고 하면 지왕이 무안해할까봐 걱정을 한 것이었다. 그로인해 지왕은 더욱 당황해서 버벅댔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수건 어딨어? 하나 줘.”
“수건은 왜?”
“필요하니까 그렇지.”
“샤워하게?”
지왕과 샛별인 동시에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아, 아냐! 머리 감으려고 그러는 거야. 새똥 떨어졌거든.”
“그래? 흐음...”
그러고 보니 샛별이의 머리카락 한 쪽이 뭔가 찐득찐득하게 엉겨 붙어 있는 게 보였다.
“뭐 거짓말은 아닌 것 같네. 그치만 머리만 감고 바로 나와야 해. 알았지?”
“그, 그야 당연하지!”
지왕은 그러면서 진열대를 두리번거리다 수건을 발견하고 얼른 가져와서 계산대에 놓았다.
“얼마야?”
지혜는 여전히 샛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바코드를 찍고는 말했다.
“천원.”
“여기. 그럼 간다!”
지왕은 그러고선 샛별이의 손을 잡고 허겁지겁 편의점을 나갔다. 지혜는 그걸 보고 발끈했다.
“아이씨! 손은 왜 잡아?”
그러나 지왕은 그 전에 나가버려 그 소릴 못들었다.
“에이씨, 쓸데없는 소리는 해갖곤... 미안, 쟤가 원래 성격이 이상해서.”
샛별이는 여전히 지왕에게 손이 잡힌 채 수줍게 따라가며 물었다.
“저 사람이랑 친해?”
“어? 아냐. 어제 밤에 처음 만났는데 뭐.”
“그래? 그런데 되게 친한 것 같네? 좋아하나?”
지왕은 멈칫했다.
“어엉?!”
샛별이는 그런 지왕이 이상하게 보였다.
“왜?”
“응? 아, 아냐 아무것도. 그냥 좀 사건이 있었을 뿐이야.”
“사건? 뭔데?”
계속된 추궁 아닌 추궁에 지왕은 당황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발끈해 버렸다.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
샛별이는 움찔 놀랐다. 그리고 지왕에게 잡혀 있던 손도 슬그머니 놓으며 주눅든 얼굴로 사과했다.
“미안... 난 그냥...”
지왕은 아차 싶었다. 이대로 샛별이가 도망가 버릴까봐. 그래서 얼른 샛별이의 손을 다시 잡고 말했다.
“미안. 화난 거 아냐. 그냥... 에이씨! 아무튼 얼른 가. 머리 감아야지.”
“응...”
샛별인 그렇게 다시 지왕에게 손이 잡혀 자취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온 지왕은 샛별이에게 욕실을 안내해주었다.
“저기가 욕실이야. 샴푸는 저 쪽에 있고. 아, 아무 거나 안 쓰나?”
“아냐. 그냥 새똥만 닦을 건데 뭐. 괜찮아.”
“그럼 수건은 이거 쓰고. 준비 다 되면 나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아냐... 그럼 미안해서...”
지왕은 픽 웃으며 장난을 쳤다.
“그럼 욕실에 같이 들어갈까?”
샛별이는 깜짝 놀랐다.
“어? 아니 그건...”
“농담이야.”
“아... 뭐야? 놀랬잖아? 칫.”
귀엽다!!
“아무튼 시간 없으니까 얼른 씻고 나와.”
“응. 고마워.”
지왕은 그러고선 밖으로 나왔다. 왠지 기분이 설렜다.
‘샛별이가 내 집에서 머리를...’
그냥 머리를 감는 것일 뿐인데도 머릿속에선 쓸데없이 샤워 장면이 상상되었다.
‘후후.’
그런데 갑자기 위층에서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계단에서 웬 아는 여자가 걸어내려왔다.
“아니 넌?!”
그녀는 쥬리였다! 쥬리도 지왕을 알아보고 생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지왕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된 거야? 아니 어떻게 된 거예요? 왜 위에서...”
왠지 모르게 존댓말이 나왔다. 이젠 갤낚시 모텔의 직원이 아니니까...
쥬리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갤낚시 모텔의 직원이 되기 전 제가 살던 곳이 바로 여기 위층이에요.”
“그래요?”
“편하게 말 놓으세요.”
“그치만... 아, 몇 살... 이에요?”
“21살이요.”
“아, 그럼 누나네? 이제 누나라고 부를게요.”
“흐음, 그럼 곤란한데...”
“왜요?”
“지혜 씨도 한살 위인데 그냥 말 놓잖아요?”
“그런가?”
“그럼 나중에 서로 알게 되었을 때 족보가 꼬이니까 곤란해요. 그러니 그냥 같이 말 놔요.”
“그래요, 그럼. 아, 그래. 근데 어떻게 된 거야?”
쥬리는 왜 자기가 모텔에 있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해서 거기서 나올 수 있게 된 것인지, 그리고 폰팔이와는 어떤 관계였는지를 말해주었다. 지왕은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구나... 그런 것도 모르고. 아무튼 그땐 미안했어.”
“아냐. 다 모르고 그런 건데 뭐. 그리고 솔직히 좋았어.”
“어?”
지왕은 얼굴이 빨개졌다. 그런 지왕을 보고 쥬리는 재밌어하며 거듭 놀렸다.
“그럼 그때 못해본 거 오늘 해볼까? 올라갈래?”
지왕은 쥬리와 웬만한 건 다했지만 직원은 손님과 섹스를 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정작 섹스는 하지 못했었다. 그때 불쑥 지왕의 자취집 문이 열리며 샛별이가 나왔다. 지왕은 괜히 화들짝 놀라며 버벅거렸다.
“아, 다 씻었어?”
“응... 근데 누구...”
“아, 윗집 사람.”
쥬리는 생긋 웃으며 샛별이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쥬리라고 해요.”
샛별이는 얼떨결에 인사를 받았다.
“아, 네... 전 윤샛별...”
“알고 있어요.”
“네? 어떻게...”
“지왕이가 말해줬거든요. 아주 착하고 예쁜 분이라고...”
샛별이는 괜히 얼굴이 빨개졌다.
“아니에요... 쥬리 씨가 더 예뻐요... 아, 혹시 나이가...”
지왕이 대신 대답을 해줬다.
“우리보다 한살 많아. 그치만 말 놓기로 했어. 너도 말 놔. 그래도 되지?”
지왕이 그러면서 쥬리를 쳐다보자 쥬리도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우리 편하게 지내요.”
“그치만... 그럼 그냥 언니라고 부를게요.”
“그래.”
지왕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아, 약속 시간 다 됐다. 얼른 가자.”
“응.”
지왕은 쥬리에게 인사를 했다.
“그럼 자세한 건 이따가 얘기하자.”
“그래. 다녀 와.”
“응.”
샛별이도 쥬리에게 인사를 했다.
“언니, 그럼 또 만나요.”
“그래, 잘 가.”
“네.”
지왕과 샛별이는 그러고선 허겁지겁 빠른 걸음으로 학교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