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잔 걸까.
눈을 뜨자마자 갈증이 났다.
고개를 들려는데 머리까지 아팠다.
겨우 정신을 차려 일어나려다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잠을 어떻게 잔 건지 가슴이 훤히 드러나 있고
치마는 배꼽 위까지 올라와 있었다.
이건 원피스가 아니라 가슴 밑에서 배꼽 위로
천 조각만 걸친 것과 다름없었다.
설마 누가 들어오진 않았겠지 하며 옷을 바로 하려는데
안방 욕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벌컥 문이 열렸다.
욕실에서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금목걸이였다.
나는 옷 내리는 걸 포기하고 자는 척 눈을 감았다.
그가 안방 문이 아닌 욕실 문에서 나온다는 건
이미 이런 내 몸을 다 봤다는 의미였고
나는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된건지 알고 싶었다.
그가 다가와 침대 위로 조심스럽게 걸터앉았다.
뭘 하려는 걸까.
그리고 그전엔 뭘 한 걸까.
내 몸을 본 건 분명한데 그냥 보기만 한 건지
아니면 다른 짓도 한 건지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이번엔 안방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들어 온 게 분명했다.
빨리 안 나오고 뭐해.
목소리를 들으니 고기집을 한다는 분 같았고
두 사람은 나를 깨우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속닥거렸다.
뭐 하긴. 볼 일 봤지.
야~ 너 미쳤어?
아깐 분명 엉덩이만 보였는데 니가 이렇게 해 논거야?
그러다 깨면 어쩌려 그래?
내가 그런 거 아니야.
들어올 때 부터 이러고 있었다고.
니 앞에 누가 들어 왔었는데.
부동산 형님 나오는 거 보고 들어 왔는데 그 형님이 그랬나?
그 형님이 좀 오래 있다 나오긴 했는데 말이야.
변비랬나 설사랬나.
아무렴 어때.
멍하게 서 있지 말고 가까이 와서 봐요.
아직 안 깬 거 맞지?
그렇다니까.
가슴 참 예쁘지 않수?
형님, 한 번 만져봐요.
무슨 소리야.
그러다 깨면 어쩌려 그래.
싫으면 관두슈.
나 혼자 만질라니까.
나는 조금이라도 내 몸에 손 대면 가만 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예뻐서 보는 것 까진 이해하지만
술취해 자는 사람을 만지는 건 추행이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머리에서 금방이라도 기름이 뚝 떨어질 것 같이 느끼한 노인이
내 몸을 만진다고 생각하자 소름이 돋았다.
그것도 화장실에서 씻지도 않고 나온 손으로 말이다.
손 끝이라도 닿으면 소리질러야지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고기집 영감님이 다시 말렸다.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마.
깨면 서로 무슨 망신이야.
뭔 사람이 그리 겁이 많수.
난 좀 전에 만져봤는데 완전 뻗어서 조물락 거려도 모릅디다.
말랑하니 감촉이 아주 끝내준다니까.
벌써 만졌다는 소리에 심장이 내려 앉는 것 같았다.
만지는 것도 모르고 자고 있던 내가 싫었고
남의 집 안방에 들어와 유부녀를 희롱한 저 노인이 너무 미웠다.
바로 그 때 누군가의 손이 내 가슴을 움켜 쥐었다.
곧 이어 또 다른 손이 반대 쪽 가슴 위로 올랐왔다.
머리는 어서 일어나 소리치라 하는데
몸은 꽁꽁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저항해야겠단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 깨어있는 걸 들키지 않을까 걱정했다.
지금 일어나면 늙은 노인에게 추행당한 사실이 현실로 드러나 버리고
모르는 척 이 순간만 넘기면
그리고 이 불쾌함만 참아 낸다면
두 노인에게 불장난 같은 추억 정도로 마무리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내가 희롱당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술에 취해 꿈 꾼거라 여기고 싶었다.
사실 그 때 나는 눈을 뜨고 그들을 볼 자신이 없었었다.
그들에게 당신들이 잘 못 했다고 말 할 용기가 없었다.
이번에도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내가 깨어 있는 걸 모르게 빨리 만지고 나가 주기만 바랐다.
아이고 형님, 소심하게 쓰다듬지만 말고 나 처럼 만져봐요.
말랑한게 간난장이 피부 같다니까.
그러네.
아직 애를 안 나서 그런지 꼭지도 탐스럽게 여물었네.
정말 자는 거 맞겠지?
순간 깜짝 놀라 어깨를 움추렸다.
민감한 젖꼭지가 누군가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갔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눈도 뜰 번 했다.
내가 움직이자 꼭지를 문 범인은 얼른 입을 떼었고
두 사람은 조용히 내 반응을 살피는 듯 했다.
나는 잠결에 움직이듯 입술이 닿았던 꼭지 주변을 손바닥으로 몇 번 문지른 뒤
원래대로 팔을 내렸다.
마음같아선 가슴을 가리고 옆으로 돌아 눕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깨어 있는 걸 들킬 거 같았다.
내가 다시 가만히 있자 금목걸이가 속삭였다.
형님 때문에 큰 일 날 뻔 했네.
그걸 덥썩 물면 어떡해요.
미안해.
나도 모르게 그만.
심장 떨려서 혼났네.
다행이 깨진 않은 거 같으니까 이제 그만 나갑시다.
그래. 먼저 나가 있어.
형님은요.
나는 오줌 좀 누고.
빨리 싸고 나와요.
자.잠깐. 근데 이렇게 놔둬도 되나?
다음 사람이 들어오면 우리가 이래 논 줄 알 거 아니야.
우리가 안 했으면 됐지 뭔 걱정이슈.
잠결에 자기 혼자 그랬을 수도 있는 거잖소.
아무튼 난 나갈테니 가려준답시고 괜히 건드리지 마쇼.
그러다 깨면 난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 뗄라니까.
혼자 독박 쓰고 싶으면 그리 하던가.
알았어 안 건드릴게.
안방 문이 먼저 열렸다 닫혔고
뒤 이어 욕실로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며 이렇게 누워 있는 내 자신을 한탄했다.
빨리 나와주면 좋으련만 그는 욕실에 들어가고 한참이 지나서야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그것도 조르륵, 조르륵, 몇 번에 나눠서.
변기 물 내리는 소리에 다시 눈을 감았다.
노인들은 원래 손을 잘 안 씻는건지
그도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욕실에서 나왔다.
빨리 나가주면 좋으련만 그는 침대 옆으로 와 한 참을 서 있었다.
다시 내 몸에 손 댈까 걱정되기도 하고
이러다간 누가 또 들어 올 거 같아
잠에서 깰 것 처럼 몸을 뒤척여 봤다.
그러자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뭉기적대던 그가 밖으로 나간 것이다.
그제야 옷을 바로 입을 수 있었지만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지금 나간다는 건 내가 깨어 있었음을 의미하니까.
나는 여전히 방에 남아 아무도 들어 오지 않길 바라야만 했다.
하지만 내 바람은 애초에 통할 수가 없었다.
거실 화장실 보다 내가 누워 있는 안방 화장실이
남자들에겐 호기심의 대상이었으니까.
문 열리는 소리에 다시 눈을 감았고
아까보다 나은 상황이라곤
내가 옷을 똑바로 입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누군지 궁금했지만 모험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그는 내게 다가오더니
과감하게 침대로 올라 와 내 옆에 누웠다.
그리곤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 것도 모자라
팬티 안까지 들어와 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를 제지하지 않았고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뒀다.
그에게서 친숙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나는 눈을 뜨고 그를 바라 봤다.
안 자고 있었네.
오늘 수고 많았어.
손님들 간다니까 나가서 인사하자.
싫어요.
그냥 가라 그래.
니 얼굴 보여줘야 갈 거 같은데.
어서 일어나.
빨리 보내야 단 둘이 있지.
나 지금 너랑 무지 하고 싶어.
몇 몇 사람의 얼굴은 볼 자신이 없었지만
나랑 하고 싶다는 아버님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방을 나섰다.
그들을 보낸 뒤
아버님은 날 미친 듯이 사랑해 줬다.
그것으로 오늘 겪은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지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