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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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 자신을 잊으라며 장원을 향해 걸어갔다. 성운은 그저 그녀를 보내야만 했다.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 그녀가 야속했지만 어쩔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그저 눈물만을 흘렸다. 영도 뒤돌아 복받치는 설움을 참으며 달려가다가 끝내 울음을 참지못하고 목놓아 통곡한다. 하지만 성운은 그 소리를 듣고도 쫓아가지 않았다. 한번만 더 얼굴을 보게 되면 자결을 하겠다는 영의 엄포가 무섭기도 했지만 그녀의 소원이라는 데 어쩌겠는 가. 그는 아직 어린 소년에 불과했던 것이다. 

영은 장원에 돌아가 우선 목욕을 했다. 가솔들이 걱정하는 눈빛을 보이자 사정얘기를 했다. 하지만 성운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음성하마라는 마두도 말할수 없었다. 목욕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자 성운이 보고 싶어졌다. 몸이 뜨거워 진다. 성운의 자지가 떠오르고 뜨거워진 몸을 누르지 못해 영은 자신의 보지를 쓰다듬으며 자위를 한다. 성운의 자지와 그와의 뜨거웠던 정사를 되새기며 영은 절정에 올랐다. 그리고는 그의 얼굴을 그리며 잠이 들었다. 잠이 들면서도 너는 창녀야.. 어찌 그를 떠올리며 그짓을 할수 있지... 라는 외침이 들려온다. 

성운은 나무위에 앉아 자위를 마치고 잠이 드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구멍으로도 능히 멀리서 볼수 있는 그는 오히려 이 능력이 저주스러웠다. 자위를 하는 그녀를 바라보자 당장이라도 달려들어가 그녀의 보지에 자신의 뜨거운 자지를 박아넣고 싶었지만 그는 참았다. 곤하게 잠이 들어 색색거리며 숨쉬는 그녀를 바라보던 그는 몸을 솟구쳤다. 그는 그녀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맹세했다. 그는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아픈 사랑을 간직 한채.

비영은 아침 일찍 일어나 대문을 열고 빗질을 시작했다. 새벽공기를 들이마시며 간밤에 자신을 찍어 누르던 아내가 생각나기도 하면서 빗질을 하는데 옆의 나무위에서 까치가 울어댄다.

" 허어... 반가운 일이 있을려나..."

그는 싱긋 웃으며 땀을 닦아내다가 새벽안개 사이로 뭔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 누구요?"

그가 외치자 그 뭔가는 서서히 다가오더니 그에게 말을 건넨다.

" 아직도 그대가 빗질을 하는가?"

"?"

비영은 잠이 덜깬 듯 그의 앞에 선 9척장신의 사내를 바라본다.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인데... 그러다 깜짝 놀란 그는 엎드려 절을 한다.

" 도련님... 이제야 돌아오셨군요..."

사내는 그를 일으키고는 고개를 돌려 대문을 바라본다.

'마침내 돌아왔다...'

그의 머리위엔 용성장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었다. 운남의 기둥이라는 가문, 용가의 장원인 용성장. 마침내 용성운이 그의 고향집에 돌아온것이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이로써 모든 악연을 끝냈다고 여겼던 그였지만 이제 악연은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그 악연은 멀리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 저 놈이 용씨가문의 놈이였구나.."

" 저놈이냐?"

" 예. 꽤 센놈입니다. 내 80평생 저런 놈은 처음 봤소이다. 형님."

형님이라 불린 이는 검은 수염을 쓰다듬는다. 그는 야산에서 용성장으로 들어가는 용성운을 바라보며 말한다.

" 우리 음성쌍마를 건드린 놈은... 어찌 되는 지 깨닫게 해주마..."

사내는 껄껄 웃더니 아우를 끌고 가버린다. 놈을 어찌 깨닫게 해줄까 생각하며... 끌려가는 사내는 음성하마라는 명호를 갖고 있었고 끌고가는 사내는 음성상마라는 명호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 형제가 악연의 첫번째 고리였다.성운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용성장이 잠을 깼다. 5형제중 막내인 성운의 귀향은 온장원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곧장 달려들어간 비연이 안채에 소식을 전하고 첫째인 용성원이 옷을 입고 달려나오고 소식이 전해지고 전해져 마침내 3명의 형들이 달려나왔다. 성운은 제일 먼저 나온 성원에게 마중을 받았다. 용가의 형제중 첫째인 성원은 운남에서 용성자라고 불리우며 존졍을 받는 이였다. 이제 23살이지만 그 기품이 가히 성인과도 같아 많은 존경을 받으며 용성장을 이끌고 있었다. 용성운이 집을 떠나 낙양에 간지 7년째, 마침내 돌아온 동생을 맞는 맏이의 얼굴은 환하게 펴있었다.

" 운아..."

" 형님..."

나이차는 겨우 3살이지만 어려서부터 성운에게 있어 아버지와도 같은 이가 큰형이었다. 가장 어려워하는 이도 큰형이었고 자신에게 학문과 무공을 제일 처음 가르쳐 준이도 큰형이었다. 용성원은 옷을 급히 차려 입은 듯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는 새벽공기에 아랑곳없이 옷섶을 여미지도 않고 달려나와 성운을 맞았다. 성운도 이제사 집에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 고생이 많았나 보구나..."

성원은 정이 가득한 눈으로 막내동생을 바라보았다. 

" 어머... 도련님..."

성원의 뒤에서부터 들려온 소리에 성운이 고개를 들었다. 마루에 서있는 여인이 보였다. 성원보다 2살이 더 많은 형수, 조영현이였다. 어머니를 일찍 여윈 성운을 친어머니같이 보살펴 주었던 형수. 2년전에 아이를 낳았다고 들었지만 여전히 늘씬한 교구를 자랑하며 그 변치않는 미모로 자신을 바라보자 성운은 황급히 얼굴을 숙였다. 얼굴이 발개진 것이 여전히 소년같아 보여 성원은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영현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쪽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맨앞에 용성훈이 보였다. 

" 이놈!"

하하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달려오는 성훈의 뒤로 성연과 성근이 보였다. 달려오던 성운의 형들은 웃음을 입끝에 달고 돌아온 막내동생을 맞았다. 용가의 다섯형제는 용가장 안채의 뜨락에서 서로 얼싸안으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성운이 형들과 어울릴 때에 조영현이 나왔고 잠시 뒤에 다시 쪽문이 열리며 형수들이 우루루 몰려들어왔다. 

" 도련님... 이게 얼마만이에요!"

" 어머나... 키가 이렇게 크셨으니.... 이젠 장가만 가면 돼겠네요...!"

형수들이 재잘거리며 떠들어대자 성원이 나섰다.

" 자자... 먼길 오느라 피곤할텐데 우선 거처로 가서 쉬게 합시다. 제수씨들, 그리고 너희들도. 운아는 거처로 가서 쉬거라."

성운은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성원의 뜻에 따르기 위해 인사를 드리고는 물러나왔다. 둘째인 성근은 아내와 함께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지만 바로 위의 형들인 성연과 성훈이 뒤를 따라왔다. 모든 형제가 1년씩 차이가 나는 형제들이지만 성원은 가문의 장손이며 주인답게 큰형으로서의 무게있는 기품으로 다소 거리가 있었고 성근 역시 큰형과 같은 성품이라 아무래도 다가서기 힘들었다. 하지만 쌍동이형인 성연과 성근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뛰돌았던 터라 허물없는 사이였다. 셋째형수와 넷째형수는 조반을 준비하러 간듯 했고 성연과 성근은 오랜만에 만난 막내동생의 거처로 가면서 주절 주절 수다를 떨어댔다. 기품있고 격조가 있는 선원과 성근과는 달리 조금은 주책기마저 보이는 모습에 성운은 그저 웃음을 머금은 미소로 답했다.쪽문을 열고 들어가자 연못이 보였다. 형들의 혼례식에 가끔 들렸을 때 묵고 난 이후, 3년만에 돌아온 자신의 집이었다. 엄청나게 큰 느티나무가 연못에 그림자를 드리운 다리를 건너 자신의 소옥을 보자 뭔가 뭉클 한것이 느껴졌다. 

" 그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청소를 했었으니 깨끗할게다."

성운이 돌아보자 성근이 말했다.

" 큰형수님이 직접 하셨었지."

" 큰형수님이..."

다시 얼굴이 빨개지는 성운의 어깨를 두드리며 성훈이 채근했다. 툇마루에 올라서서 안으로 들어가자 자신이 떠난 후 항상 청소를 한 탓인지 먼지하나 없는 마루가 너무나 정결하다. 이곳 저곳을 아무리 살펴도 너무나 정결하다. 다시 한번 자신을 향한 형수님의 사랑이 소중히 느껴졌다. 하지만 자신은... 성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 우선 옷을 갈아입거라. 곧 식사를 할것이니..."

" 그래. 그리고 나서 사냥이나 갈까? 오랜만에 우리 3형제가 산으로 나가 호랑이나 잡아보자꾸나."

성연과 성근이 웃으며 말했다. 성운도 웃어보였다. 두형은 빨리 오라는 당부를 하고는 나갔다. 성운은 다시 한번 둘러보고 나서 봇짐을 풀고 옷을 꺼내 입었다.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서 마루로 나와 탁자에 앉았다. 정말로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눈을 감고 냄새를 맡으니 정감있는 냄새다. 자신이 떠나기 전까지 썼던 이 탁자, 의자의 나무냄새. 옆 서가에 있는 책의 오래 묵은 냄새.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섞인 고향의 냄새. 모든게 새로웠다. 

그때 문이 삐그덕 열리며 누군가 뜰에 들어왔다. 성운은 몸을 일으켜 뜰로 나갔다. 돌다리를 건너오는 것은 큰형수 조영현이었다.

" 형수님."

" 형님들이 난리에요. 어서 오시라구요."

" 예."

조영현이 앞장을 서자 성운은 그 뒤를 따랐다. 고개를 푹 숙이고 따르며 그는 눈을 들지 않으려 했다. 차마 들수 없었다. 자신이 이토록 음란한 놈이었나를 생각하면서. 큰형수인 조영현의 뒷모습에 가슴이 두근 거리면서 그는 뒤를 따라갔다. 가끔 어쩔수 없이 눈을 들때마다 큰형수의 늘씬한 교구가 보였다. 나긋한고 가늘은 허리를 중심으로 상체와 하체가 따로 움직이며 살랑거리는 것이 눈을 어지럽히자 성운은 다시 눈을 내렸다.

대청을 들어서자 길다란 식탁에 온가족이 앉아 있었다. 성원이 가운데에 앉아 성운을 맞았다.

" 어서 오너라. 자 이제 다 모였으니 먹자꾸나."

성운이 자리에 앉자 식사가 시작되었다. 모두들 왁자지껄 떠들며 먹는다. 성운은 그저 웃으며 먹는다. 문득 자신의 약혼녀가 생각났다. 들렸다가 오는 것이 운래 계획이었으나 어쩌다 보니 집으로 먼저 와버렸다. 

약혼녀인 영혜는 큰형수의 동생이었다. 성원과 영현이 결혼한 후에 둘은 약혼을 했다. 물론 가문끼리의 약혼인 성격이 더 강했지만 성운도 영혜라면 아내로서 만족했고 영혜도 성운을 좋아했다. 

" 형수님."

" 예."

영현이 고개를 들어 바라본다. 성운은 입주위를 닦으며 말했다.

" 혜아는 잘 지내겠지요?"

순간 조용해 졌다. 영현이 입을 다물었고 형들은 안절부절 못하는 듯 했다. 성운은 당황스러웠다.

" 무...슨 일이....?"

성원이 말을 한다.

" 처제는..."

성운은 긴장했다. 성원이 영혜를 처제라 부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항상 조낭자라고 불렀었다.

" 한달후에 혼례를 올린다더구나."

성원은 성운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무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성운에게 성원은 차마 할수 없는 말을 해야 한다는 괴로움을 차마 보일수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알려질 일이라 여겼다.

" 무슨 말씀이시죠? 저는 이제야 돌아왔는 데..."

" 다른 이와 혼인한다더구나. 너도 알게다. 공손기라고..."

얼마전에 운남으로 임관한 무도위장이였다. 공손가문의 앞날 창창한 젊은 호걸이라 이름 높은 이였다. 그가...

" 무슨 일이 있었나요? 어째서..."

" 네가 낙양에서 어찌 지냈는지 다 알고 있더구나. 우린 그런 일에 대해 너를 탓할 생각은 없다만."

성근이 나서서 말한다.

" 처제로서도 입장이 있었을 게다. 너만 탓할 수도 없고 처제만을 탓할 수만도 없는 일이니.... 운아야!"

성운이 몸을 일으켜 나가자 성원이 소리쳤다. 그러나 잽싸게 나가는 성운을 잡지 못했다. 아니 잡지 않았다. 용가의 막내인 성운이 깨쳐야 할 일일 뿐이었다. 용가장은 다시 침묵으로 빠져 들었다.

말을 잡아 타고 달리며 성운은 정신이 없었다. 빠르게 뒤로 사라지는 정경을 바라볼 새도 없었다. 해가 높이 뜨고 나서야 그는 정신이 들었다. 말을 늦추어 천천히 달리면서 그는 땀을 식혔다. 그렇군.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이런 것이 세상의 이치였군. 

조가장이 보였다. 그는 언덕에 말을 세웠다. 이런 곳까지 온 이유가 한심스럽지 않은가. 몇일 전에도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던 여인을 잃고 나서 뭐가 잘났다고 다시 자신을 떠난 여인을 잡으려고 왔는가. 멀리 용성장보다는 조금 작은 장원이 영혜가 있는 곳이였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데 멀리서 말한필이 다가왔다. 성운이 바라보니 훤칠한 장부였다. 옆에 칼을 차고 있는 것이 무인이었다. 그 말은 자신을 지나쳐 조가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예전에 잠깐 본 적이 있어 성운은 그가 공손기임을 알아보았다. 성운은 말을 돌렸다. 그래. 어차피 난 내자신을 밝힐 수도 없지 않은가. 그는 다시 용성장으로 말을 몰았다.

성운이 돌아오고 보름이 지났다. 장원은 여전히 활기차게 돌아갔지만 성운이 기거하는 소옥은 마치 겨울같았다. 같이 사냥을 가자고 했던 쌍동인 형들도 가끔 찾아와 외출을 하자고 했지만 성운은 그저 고개를 돌렸다. 식사도 나오지를 않자 큰헝수인 조영현이 가져다 주었다. 그녀는 죄스러운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자신의 여동생이 자신의 막내도련님을 버리다니. 남편들과 다른 시동생들에게도 죄스러울 뿐이었다. 자신이 가져다 준 음식을 겨우 입에 대고 마는 성운을 보며 그녀는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20일째 지나고 나자 첩장이 왔다. 영혜의 혼례식에 초대한다는 첩장이었다. 성원은 자신의 처제의 혼례식이었기에 아내와 같이 가야만 했다. 마음으로는 차마 갈수가 없었다. 성운을 생각하면 참석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처가의 면목도 있고 해서 참석하기로 했다. 

다음날 성운이 찾아왔다. 돌아온지 20여일만에 자신의 소옥을 나서서 찾아온 막내는 자신도 같이 가겠다고 했다.

" 같이...."

" 예. 저도 가겠습니다."

막연한 염려. 성원은 말리려고 했지만 성운은 이미 마음을 굳힌 듯 완강하게 동행을 하겠다고 한다. 더이상 말릴수도 없기에 성원은 그만 허락하고 말았다.

그날밤에 영현이 침상에 누워 말했다.

" 괜히 허락하신 것 아니세요?"

" 왜, 무슨 일이 있을까 염려하오?"

성원의 가슴에 안겨 영현이 걱정을 한다.

" 무슨 일이라기 보다... 막내 도련님이 힘들어 하시지나 않을까 해서..."

" 이미 힘들어 하고 있소. 차라리 이번 기회에 마음을 정리하게 하는 것이 좋을 지도..."

영현은 계속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 못했다. 성원은 그녀를 가슴에 끌어안으며 다독였다.

" 믿어 봅시다. 낙양에서 무공을 배우며 얼마나 성장을 했을지. 운아도 우리 용가의 아들이오. 그애라면 이겨낼테니."

그는 아내의 옷섶을 벌리며 손을 집어넣어 동그란 젖가슴을 어루만졌다. 영혜는 얼굴을 붉히며 그의 손길이 움직이기 편하도록 몸을 움직인다. 그가 가슴을 어루만지자 그녀도 더이상 성운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가슴을 만지던 그의 손이 내려가 영혜의 다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무릅을 잡아 끌어 올렸다. 영혜는 그의 몸에 달라 붙었다. 

" 오늘따라 더욱 아름답소."

" 상공..."

그녀의 호흡이 가빠지며 촛불이 꺼졌다. 그리고 남녀의 가쁜 숨소리가 방안에 가득 찼다.

밝은 달이 하늘 가운데에 떴을 무렵 성운은 자신의 정원에 서있는 느티나무위에 올라갔다. 꼭대기에 서서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성운은 눈을 감았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 매일 밤 이 곳에 올라와 밤바람을 맞으며 그는 몸의 기운을 억눌렀다. 언제나 조가장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는 참고 참았다.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 수 없는 자신을 저주하고도 싶었지만 그때마다 자신의 사부가 떠올랐다. 그저 무노인이라고만 자신을 밝혔던 사부. 자신이 6살때였던 시절부터 자신을 가르쳤던 사부. 그리고 항상 자신을 감출줄 알아야만 한다고 가르쳤던 사부. 집을 떠나던 그해에 자신에게 모든 내공을 주고 사라져 버린 사부. 그것이 용문의 장문인이 가지게 되는 비운의 운명이라고 쓸쓸히 말하던 사부. 때때로 사부가 그립기도 하다. 자신에게는 아버지와 같았던 사부. 

성운은 눈을 떴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파란 빛을 내는 달이 요요해보였다. 그는 달을 한참 바라보다 문득 소리를 들었다. 여인의 신음소리. 그리고 남자의 헐떡임. 그소리는 한둘이 아니었다. 성운은 쓴웃음을 짓는다. 원치않는 능력은 아니지만 원치않는 소리였다. 그는 몸을 돌려 내려가려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 아... 상공..."

그는 움찔 놀란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그는 안다. 그리고 그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사랑했었다. 그녀를 처음 본 날부터 그녀를 사랑했고 어서 커서 그녀와 혼인을 했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외롭고 힘든 무공수련의 나날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있음 이였다. 그는 몸을 날렸다. 자신을 부르는 듯한 느낌이였다. 나무에 내려앉아 처음 본 것은 여인의 둔부였다. 살며시 열려진 창문틈에 보이는 여인의 풍만한 둔부. 그것이 위아래로 춤을 춘다. 여인은 남자의 몸위에 걸터 앉은 듯, 사체를 사내의 몸위로 엎드린 채 엉덩이를 흔들어댔다. 

" 아... 아.... 상공...."

" 으.."

신음소리가 커져가고 여인의 움직임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두 남녀의 정욕이 폭발했다. 남녀는 나른한 몸을 눕히고 숨을 몰아쉰다. 성운은 몸을 일으켰다. 보지 말아야 할것을 보았다. 자신을 자책하며 몸을 날릴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영현..."

" 상공..."

그의 큰형이 형수를 어루만진다. 성운은 이를 꽉 깨물고 몸을 날려 자신의 소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몸에 주체할수 없는 기운에 연못으로 몸을 날렸다. 물속에 잠기자 정욕이 조금 진정된 듯 했다. 그러나 여전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몸을 날려 장원을 벗어나 산으로 날아갔다.

이른 아침, 용가장의 모든 식솔이 대문앞에 나왔다. 용가장의 주인인 성원과 그의 아내, 그리고 성운을 환송하기 위해서였다. 용성원은 장원에 남게되는 아우들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성근이 남게되는 형제중 제일 위였기에 그의 책임이 크다는 성원의 말에 성근이 염려말라고 했다. 조가장으로 가게 되는 성원들을 수행하기 위해 오랜 동안 용가장을 맡아 왔던 비연도 따라 나섰다. 10여명의 수행원들이 따라 붙은 행열은 마차 3대에 올라타고 길을 떠났다. 용가의 형제들이 용가장 앞 10길까지 말을 타고 따라 나왔다. 

마침내 돌아들어가려던 성근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 했다. 

" 저기..."

형제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놀라고 말았다. 오래전부터 보아왔던 야산 한쪽이 무너져 있었다. 나무들이 뿌리채 뽑혀 굴러다니고 크고 작던 바위들이 바스러져 모래처럼 앉아있는 광경을 바라보던 형제들은 머리를 아리송하게 흔들며 헤어졌다. 막내인 용성운만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여인들도 있기에 일행은 천천히 나아갔다. 용성운이 전일 말을 몰아 갔을 때 반나절이면 됐던 길이었지만 이번 방문은 예를 위한 것이여서 천천히 이동했다. 2일 정도의 일정으로 중간에 2번을 묵고나서 조가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예였다. 성원과 영현이 한 마차를 차지했고 성운이 2번째 마차, 마지막 마차에 나머지 인원이 탔고 몇몇 남자와 비연이 말을 타고 호위를 했다. 그 행열은 고요히 길을 따라 나아갔다. 

" 이제 시작이에요...."

여인이 말을 한다. 흰옷을 입은 여인. 그녀는 절벽에 서있었다. 마치 떨어져 내리려는 이처럼 밑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떨어져 죽고 싶지도 않았고 죽을 수도 없었다. 그녀의 눈은 멀리에서 서서히 사라져 가는 용가의 마차행열을 보고 있었다.

" 괴롭겠지만... 그것만이 그대가 태어날 수 있는 길..."

여인은 고개를 숙였다. 뭔가를 참으려는 듯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 소첩을 원망하지 말아주세요...."

다시 고개를 드는 여인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이세상 그 어떤 말로도 표현 할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모습. 얼굴 전체에 화기가 돌며 정숙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기가 세어 보이는 얼굴. 그녀의 곱게 뻗어 나간 눈썹이 움찔거린다. 그녀의 뒤에 두 사내가 나타났다.

" 놈도 떠났으니... 우리도 가겠소."

여인은 머리에 쓰고 있던 몽면을 내렸다. 그리고 돌아서자 두 사내는 침을 꿀꺽 넘긴다. 폼이 넓어 몸매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하늘거리는 사이로 굴곡 좋은 몸매가 느껴지자 두사내의 자지가 서서히 힘이 들어간다.

" ... 가세요. 저도 곧 따라가지요...."

여인은 그들을 지나쳐 숲으로 들어갔다. 남아있던 사내들은 투덜거린다.

" 저 계집... 확 먹어버립시다. 형님."

" 아직은 참아라. 저 용가놈만 없애고 나서 말이야. 저 놈이 용문의 후예라면 얘기가 쉽지는 않아."

형님이라 불린 이가 말한다. 그가 말한 것은 무림사상 최고의 기밀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용문의 후예. 그들이 누구인가. 세상이 혼란에 빠지고 악인이 판을 칠 때 홀연히 나타난 이가 있었다. 약관의 나이로 나타난 그가 그 혼란을 평정하는 데에는 단 10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온 무림이 그를 칭송했지만 의문의 이 협객은 그냥 사라졌다. 단 한마디만을 남기고... 세상이 혼란에 휩싸이고 악마가 나타나면 용문이 열릴 것이다....

그 것이 몇백년 전이었다. 그뒤 용의 문은 2번 더 열렸었다. 두번째의 문이 열린 것은 3백년전 환마가 무림에 출도했을 때였다. 당시 검의 신이라던 검제 이용후도 환마의 환천마공에 무릎을 꿇고 죽어갔다. 각 방파의 장문인들이 모여들어 대책을 마련하려 했으나 그 회장에서 환마에게 죽어갔다. 12명의 장문인, 8명의 방주들이 수하들과 함께 단 일인의 마공에 죽어나갔다. 하늘이 세상을 버리려 하는 가... 그때 용의 문이 열렸다. 역시 젊은 나이의 인물이 나타나 환마의 추종자들을 베어갔다. 공포에 떨던 무인들이 그의 뒤를 따라 일어섰고 용의 문은 25일 후에 닫혔다. 역시 그는 자신을 밝히지 않았고 무림인들의 환송에 고마워하며 사라져 갔다. 

3번째 열렸던 용의 문은 34일간 열려있었다. 용문의 후예가 약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세상을 얻기 위해서는 용의 문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에 악의 힘이 그만큼 강해진 탓이었다. 천세교는 단시일내에 성사시키려 했다. 천세교의 모든 힘을 일거에 쏟아 부어 한번에 세상을 얻으려 했으나 이번엔 12문파와 8방의 힘도 만만치가 않았었던 것이다. 130년 전의 그 싸움을 이끌었던 것은 역시 젊은 나이의 사나이였고 용문을 열고 나온 그 사내는 용문을 닫을 때 무림에서 한명의 여인을 얻고 돌아갔다. 천하제일미라 칭송 높던 여협 성은희가 그에게 애원을 하였다고 한다. 그녀의 조사인 천산검녀 은유온은 지난 2번째 용문이 열렸을 때에 용의 후예에게 청혼을 하였었지만 거절을 당했었고 일생을 처녀의 몸으로 살다가 눈을 감았다. 그녀의 그 한맺힌 혼을 이어받은 성은희는 당당하게 용의 후예에게 도전을 하였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용의 후예에게 패하였고 팔을 하나 잃었다. 이제 온전한 여인으로서 살아갈수 없게 되어 눈물 짓던 그녀를 용의 후예가 맞아들였다. 그녀의 조사,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것이였다. 그때 그녀는 용의 후예에게 이름을 물었었고 그녀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성뿐이었다.

용씨. 그것이 용의 후예의 성이었고 그때부터 용의 후예라 불리었다. 3번의 용문이 열리고 닫히며 세상의 무인들과 일반인들, 그리고 황가의 사람들, 한마디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은 것은 용문에 대한 신뢰와 전설이었다. 그것은 단지 무림만의 전설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용문이 열리는 것을 두려워 하면서도 과연 이번엔 어떤 절세적인 신공을 보일 것인가를 두고 궁금해 했다. 아쉽게도 용문이 가진 절기를 아는 이들이 없었다. 그 용의 후예들이 보인 신공을 보았던 것은 몇몇 장문인들 뿐이었다. 그들이 말한 것이라고는 단 한마디뿐이었다.

" .... 돌아가자..."

그들은 머리를 흔들 뿐이었다. 그리고는 죽는 날까지 폐관을 했다. 무림의 기둥인 소림의 무혜선사가 입적하는 날 한마디를 남겼다 한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용문은 열려서는 안된다. 만일 4번째 열린다면... 세상은 망할 것이다."

그것이 20년전의 일이었다. 용문의 신공을 보았던 몇안되는 장문인들 중 마지막으로 눈을 감으며 그가 한 말에 대해 안좋은 소문이 돌았다. 혹시라도 용의 후예가 세상을 가지려는 야심이라도 품는 다면.... 하지만 아직도 용문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심은 여전했다.

" 어쨋든 가십시다. 놈을 혼내줍시다요..."

음성하마가 말했다. 음성상마가 동생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둘은 여인이 사라진 반대방향으로 사라졌다. 

몇일후에 용성원의 일가는 조가장에 당도했다. 혼례에 초대를 받아 온 이들로 장사진이 된 대문앞에 내려선 성원은 우선 성운을 향했다. 마차에서 내리던 성운은 형이 다가오자 고개를 숙였다.

" 괴롭다면 이제라도 돌아가거라."

성원은 아우가 걱정되었다.

" 아닙니다. 저를 신경쓰지 마십시요."

덩치만 큰 아이라 생각했었지만 의외로 듬직한 성운의 모습에 성원은 안도했지만 곧 몸이 굳어졌다. 멀직이서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영혜가 보였던 것이다. 성원의 뒤에 서있던 영현의 안색도 굳어졌다. 성운은 공기의 흐름이 이상함을 느꼈고 고개를 들다가 영혜가 보이자 역시 굳어버린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던 영혜가 영현을 보고는 다가왔다. 그러다 고개를 숙인 성운을 보자 그녀의 안색이 굳어졌다. 

" 아..."

파리해지며 한숨을 내쉰 영혜는 천천히 다가와 성원과 영현에게 인사를 했다.

" 어서오세요.. 형부, 언니."

" 그... 래.. 처제. 잘 지냈는가."

" 오랜만이구나."

성원은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영현이 뒤에서 성원의 손을 잡아왔다. 꾸욱 힘이 들어가는 손에 성원은 미소를 유지할 수 있었다.

" 저는 이만..."

성운이 고개를 숙이더니 영혜를 보지 않고 저멀리 총총히 사라져 갔다. 

" 아..."

영혜의 한숨소리. 이어지는 성원과 영현의 탄식. 그렇게 첫날이 지나갔다.

밤이 되어 성운은 배정된 방을 나왔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오늘은 달이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예전에는 익히 느끼지 못했던 익숙치 못한 염들이 느껴졌다. 한참을 눈을 감고 있다가 그가 눈을 뜨자 그 앞에 여인이 서있었다. 

" 무슨 일이시오."

성운의 차가운 말소리. 아니 정이 담기지 않은 말투였다. 여인의 검미가 찌뿌려 졌다.

" 제가 미우신가요?"

여인의 말. 그 목소리는 조금 떨리기까지 했다. 성운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 내가 어찌 낭자를 미워하겠소. 옳은 결정이었으니..."

그말을 하고 그는 뒤로 돌아섰다.

" 잠깐 만이요..."

" ..."

그는 멈추어 섰다. 머리속에서는 어서 가야만 한다고 했지만 그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여인이 다가왔다.

" 이젠... 혜아라고 불러주지도 않는군요..."

" 그대와의 인연은 이제 끊어졌소. 잊어야만 하겠지요."

" 오빠..."

그의 머리가 돌았다. 여인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가라앉아 있었다.

" 어서 가시오. 누가 보면 오해를 할 것이오."

" 오라버니.."

" 조낭자. 어서 가시오."

다시 돌아선 성운은 쪽문을 열고 나갔다. 여인은 한없이 서있었다.

날이 밝아 여전히 하객들이 몰려들었다. 운남의 상권을 거머쥐고 있는 조씨일가의 힘이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성원은 성운을 찾아보았지만 보이질 않았다. 하인들을 물어봐도 보질 못했다고만 했다. 그는 비연을 불렀다. 40대의 보통사내로만 보이는 비연이 와서 아뢰었다.

" 어젯밤에 나가셔서 돌아오시질 않은 듯 합니다."

" 그런가..."

성원은 차를 마시며 영현을 바라본다. 영현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만 있다.

" 한번... 찾아..."

" 됐네. 당신은 들어가 보구려."

" 예."

조영현이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 객사의 대청을 가로질러 들어가는 그녀의 미모는 중인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성원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대청에 감도는 탄성을 흘렸다. 비연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전언을 보냈다.

' 이상한 낌새가 있습니다.'

' 이상한 낌새?'

여전히 차를 마시며 반문한다.

' 이상한 마기가 감돌고 있습니다.'

' ...'

' 알아볼까요?'

그때 큰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깨지는 소리. 성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많은 하객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뭔가가 날아올랐다.

" 이놈!"

성원의 몸이 떠오르더니 그 뭔가를 향해 날아갔다.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어떤 사내였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털이 복슬한 사내가 옆구리에 뭔가를 끼고 있었다. 

" 하아!"

그의 장력이 웅대한 소리를 내며 쪼개어져 갔다. 사내도 그것을 느끼고는 남은 손을 내밀어 그 장력을 받았다. 펑소리가 장내를 흔들고 성원은 그 반탄력에 뒤로 떨어져 갔다. 그는 장심이 아파오는 것을 느끼고는 상대의 실력이 자신보다 위임을 알았다. 그는 떨어져 가지만 사내는 옆구리에 끼고 있는 것과 함께 오히려 멀리 날아간다. 그가 내려서자 비연이 다가왔다. 

" 장주님."

" 크하하하! 네놈이 용성자라는 놈이냐!"

성원이 고개를 돌리자 아까 사내와 비슷하게 생긴 사내가 서있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은 듯할 뿐, 확실히 비슷했다.

" 그렇소만..."

" 그렇군... 네놈을 너무 가벼이 보았구나...."

" 무슨 소릴 하는 거요."

사내가 껄껄 웃는다.

" 네놈도 용의 후예냐!"

장내가 조용해졌다. 그리고는 그 사내와 성원을 가운데에 두고 사람들이 물러났다. 10여장의 공간이 생기고 두사내는 서로를 노려본다.

" 무슨 말이오."

" 그게 그말이란다. 아가야."

성원은 사내의 말에 분노를 느꼈다. 자신보다 열살정도는 많아 보이지만 아가야, 운운하자 기분이 나빠졌다.

" 큭큭... 네놈의 동생. 그놈이 필요해. 이곳에 없더군. 좀 더 운명적인 싸움을 하고 싶었지만... 뭐 이것도 좋은 것 같다. 네놈은..."

사내가 움직였다. 사내는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려 성원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 움직임은 성원의 예상을 넘는 것이였다.

" 여기서 죽는다!"

사내의 장심이 빛을 내며 성원을 향했다. 다급히 팔을 들어 그것에 맞대었지만 그는 엄청난 압력을 느끼며 날아가버렸다. 뒹구는 그의 몸을 넘어 뭔가가 뛰쳐나갔다. 

" 안돼!"

성원은 겨우 일어나 외쳤다. 사내를 향해 뛰쳐나간 것은 비연이었다. 비연의 손에는 연검이 들려있었다. 허리띠 밑에 감쳐둔 연검을 꺼낸 것은 20여년만의 일이었지만 비연은 멋진 자세로 사내를 향해 쇄도해 갔다.

" 이놈!"

" 넌 또 뭐냐!"

사내가 껄껄 웃으며 연속적으로 장세를 쪼개내자 비연은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의 눈에 사내의 엄청난 장세로 인해 땅의 모래가 들끓어 올라 모래바람이 생기는 것이 보였고 사내의 장세는 자신의 온몸 구석구석을 찔러 들어왔다. 비연은 식은 땀을 흘리며 그것을 흘리려 했지만 곧 그의 장세에 온몸을 내줄수 밖에 없었다. 쪼개지는 소리가 나면서 입에 피를 뿌리며 비연이 굴렀다.

" 멈추어라!"

성원이 몸을 일으켜 사내를 향해 쇄도해 갔다. 그의 눈에 비연이 피를 울컥 땅에 쏟는 것이 보였다. 아버님과 함께 자신을 키워주었던 그의 모습에 성원은 핏대를 세우며 장심에 힘을 주었다. 

" 크하하하!"

사내가 다시 웃었다. 성원은 소리를 높게 지르며 달려들었다.

공손기가 조가장에 왔을 때 이미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객사쪽은 한쪽이 무너져 내려 사람들이 다쳤고 용성자라 불리던 용성원이 중상으로 누워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약혼녀인 조영혜와 용성원의 아내인 조영현이 두흉한에게 납치를 당했다고 한다.

" 이를 어쩌는 가..."

조금원이 울면서 말한다.

" 걱정마십시요. 제가 가서 혜아와 처형을 찾아오겠습니다."

공손기는 장인을 달래주고 밖으로 나와 용성원을 찾아갔다. 객사의 온전한 방에 하인들에 둘러싸인 성원을 볼수 있었다. 정신을 잃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하인이 옷을 갈아 입히고 있었다. 

" 어떤가?"

" ... 오늘밤을 넘기기가 힘듭니다."

공손기는 성원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잘 아는 인물. 임관해오며 제일 처음 찾아 인사를 한 이였다. 자신도 존경해 마지 않는 젊은 무림협객이었다. 그런 그가 치명상을 입고 자리에 누워있었다.

" 성운... 그는?"

" 다섯째 도련님은..."

하인이 더듬 거릴때 누군가가 말했다.

" 어젯밤부터 보이시질 않습니다. 혹시라도 놈들에게..."

공손기가 고개를 돌리자 용성장에서 보았던 집사였다.

" 자넨..."

" 비연이라 합니다."

의자에 앉아 있던 비연이 조심스럽게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공손기가 다가갔다.

" 자네도..."

" ... 어서 가 보십시요. 그들은.."

비연은 말을 잠깐 멈추었다가 더듬거렸다.

" 음성...쌍마라 하는 대마두들입니다."

" 뭣이!"

공손기가 놀라 외쳤다. 그도 아는 이름. 올해 80이 넘어가는 대마두들. 한동안 무림인들에게 쫓겨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었는 데 그들의 이름이 혜아를 잡아간 이들의 명호라니...

" 저도 처음엔 몰랐지만 그들의 장세를 알고 있었습니다. 음영장...."

" 알았네."

공손기는 다급하게 달려나갔다. 혜아... 혜아... 그는 자신을 따라온 관군들을 이끌고 나갔다. 그는 말을 달리며 혜아를 걱정했다. 하필이면 그런 음마들이라니...

" 흐윽..."

벌써 몇번째인지 모른다. 영현은 눈을 뜰수가 없었다. 남편에게만 허락했던 자신의 보지를 엄청나게 큰 자지가 드나든다. 아플뿐이었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지만 곧 사내가 입속에 속옷을 집어넣어 버렸다. 그저 눈물을 흘리며 몸을 내줄 뿐이었다. 곧 사정을 한 사내가 자지를 꺼내더니 자신의 입속에 있던 것을 빼내고 물게 했다.

" 빨아라."

그녀는 어쩔수가 없었다. 한시진 이상 얻어맞으며 저항을 했지만 영혜를 겁간하겠다는 말에 몸을 줄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영혜가 보는 앞에서 두사내가 자신을 겁간했다. 아프다. 감정이 없는 정사. 아플뿐이었고 피를 뿌리며 넘어가던 성원을 걱정할 뿐이었다. 슬플 뿐이었다. 

자지가 입에 들어오고 나서 곧 다른 자지가 보지로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겁간이 시작되었다. 

영혜는 자신의 언니가 두사내에게 겁간을 당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너무나 잔인한 광경에 그녀는 치를 떨뿐이었다. 눈을 감고 얼굴을 돌리자 사내들이 자신의 혈을 짚어 버렸다. 눈을 감을 수도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그녀는 사내들이 십여번 만행을 저질르는 것을 볼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맘껏 욕정을 풀고 난 사내들이 일어나 자신에게 다가왔다.

" 저 계집은 사내맛을 아는 것 같다. 내 자지를 무는 것이 확실히 달라."

" 그렇소. 형님. 이 계집은 처녀라 맛이 좀 다르겠지만... 큭큭... 지 언니와 같이 맛이 좋을 것 같소. 큭큭.."

사내들의 말에 영혜는 눈물만을 흘렸다. 입도 움직일 수 없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 그러나... 너는 용가의 막내가 오면 그 앞에서 먹어주마..."

영혜의 눈이 커진다. 동생이라는 사내가 말했다.

" 큭큭... 네 년은 그놈이 형편없는 놈이라고 차버렸다며? 큭큭..."

" 그래. 그래. 이 년은 무위도관을 맞았다더구나. 큭큭... 용문의 주인을 놓아두고 말이야. 큭큭..."

" 무슨..."

정신이 든 영현이 옷을 주섬 주섬 끌어 안고 몸을 가렸다. 하지만 풍만하며 선이 농후한 나신은 제대로 가려지지 않았다.

" 네 막내 도련님이 말이야... 큭큭... 용의 후예란다."

" 그래... 나도 놈의 상대가 되지 못할 정도야. 네 남편도 나에겐 그저 손가락 하나도 당해내질 못할 약골인데 말이야...."

영현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 어지러운가? 네 막내 도련님이 어떤 인물인지... 말해 줄까?"

" 놈은 와룡회의 일인자였다. 지난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와룡회의 그 어떤 이보다도 강했지. 그런데... 와룡회가 뭔지는 아나?"

영현은 고개를 저었다. 음성하마가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음성상마는 영혜의 아름다운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 와룡회란 것은 말이야... 황실의 최고비밀조직이지. 황실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해결하는 것인데... 아주 비밀로 되어 있어. 특히나 와룡회주의 경우에는 더하지. 그의 정체를 아는 것은 단지 황제와 와룡장로, 그리고 부회주뿐이야. 그렇기에 용성운이라는 그 놈이 낙양에서 파락호 행세를 한 것이야. 뭐, 명예도 부도 가지지 못하는 자리이긴 하지... 그렇기에 이렇게..."

음성하마가 영혜를 뒤돌아 보았다. 영혜는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음성하마의 입이 샐쭉거리더니 손으로 자신의 수염을 만지작 거렸다.

" 아리따운 약혼녀를 잃었지... 큭큭... 약혼녀라는 계집은 사내의 명예를 탐하여 겨우 무위도관이라는 무인에게 도망가버리고 말이야... 놈도 속히 탔을 걸. 밝히고 싶지만 그것은 안되는 일이야. 큭큭...."

음성하마의 기분나쁜 웃음 소리가 동굴에 울려퍼졌다. 음성상마가 영현에게 다가갔다. 영현은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지만 벽에 가로 막혀 갈 곳이 없었다.

" 걱정마라. 놈이 올때까지는 가만히 놔둘테니... 놈이 오면... 네년도 그 앞에서...큭큭..... 그나저나... 어떻게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지 궁금하지 않은가?"

음성상마는 영현의 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영현은 차마 그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벌벌 떨 뿐이었다.

" 놈의... 정체와... 약점을 가르쳐 준 이가 있었지... 킬킬..."

그는 주점에 있었다. 벌써 6단지의 술이 비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여전히 말짱했다. 여섯번째의 술 단지를 아예 손에 들고 입에 붓는 모습을 본 몇몇 손님들이 황급히 돈을 치르고 나가 버리자 주인은 용성운을 째려 보았다. 어젯밤부터 먹기 시작하여 술단지 6개째를 작살내고 있는 성운을 향해 고개를 흔들고는 자리에 계산대옆 의자에 앉아 졸기 시작했다.

" 근데... 그얘길 들었는가?"

" 뭔데?"

조금 전에 들어온 세사내가 얘기를 한다. 성운은 그쪽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곧 한 단어가 그를 일깨웠다.

" 조가장에 피바람이 불었다더군."

" 조가장에?"

" 그래. 두 흉한이 나타나서는 새신부와 신부의 언니를 잡아 채갔데. 그바람에 30명정도는 다쳤고... 뭐라더라.... 그래... 용성자라는 사람이 죽었다더군."

그때 휭하는 소리가 났고 졸던 주인이 깨어났다. 세사람도 옆에서 술을 먹던 사내가 사라진 것을 알고는 의아해 했다. 주인은 성운이 없어진 것에 화가 났다. 술값을 떼먹은 파렴치한을 잡으려고 일어났을 때 묘한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뭐가가 굴러 떨어진 것이다. 주인은 그것을 줏어 들고는 황금닢인 것을 알고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 비연!"

의자에 앉아 성원을 지켜보던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수척해진 성운이 있었다. 비연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성운은 다가갔다. 자신의 큰형이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비연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 어... 어찌 된 것인가..."

" ...큭... 놈들이... 도련님을 ... 찾았었습니다..."

" 날?"

성운은 여전히 성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미약하게 숨을 쉬는 듯 했다. 정신이 든 듯 성운은 성원의 맥을 짚어보았다. 가망이 없었다. 음한 장력에 모든 오장육부가 녹은 듯 싶었다. 성운은 형의 손에 얼굴을 묻었다.

" 마님과.... 조낭자께서...."

" ....."

" 음양쌍마라는 놈들이.... 그분들을..."

성운은 고개를 들어 형의 얼굴을 보았다. 생각을 정한 그는 형의 손을 잡았다. 의아해하는 비연의 눈은 신경도 쓰지 않고 그는 자신의 양강한 정기를 흘려 넣었다. 일순 성원의 몸이 불끈 하더니 잠시후 서서히 눈을 떴다. 천장을 바라보던 성원이 고개를 돌려 비연을 보고 자신의 옆에 있던 성운을 향했다. 비연은 놀라 입을 벌리고만 있었고 성운은 고요한 눈으로 형을 바라보고만 있다.

" 후우..."

성원은 숨을 내쉬었다.

" ... 성운아."

" 말씀하십시요..."

성원의 고개가 다시 돌아가더니 천장을 바라본다.

" .... 이젠.... 너뿐이구나...."

" 형님."

" 문... 문을 열어 주지 않겠느냐...?"

충격. 비연은 알아듣지 못했다. 자신의 주인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그러나 성운은 달랐다. 그의 두눈은 크게 떠져 있었다.

" 물론... 안된다는 것은 안다. 함부로 열릴 문이 아니라는 것도... 네 형수를... 구해 주거라... 내.. 마지막 부탁이다."

알았던 것인가? 자신의 운명을. 7살의 어린 아니에 떠안고 말았던 운명. 오직 일인만이 존재하는 용문. 그 혼자 일방이요, 장문인이며 자신의 영달이 아닌 오직 세상을 위해서만 살아야 하는 운명. 그것을 알았었다는 것인가?

" 나가 있으시오."

영문모를 주인의 말을 듣다가 성운이 말을 하자 고개를 갸웃 거리며 비연이 나갔다. 성운은 형의 얼굴을 보았다. 화색이 돌지만 그것은 자신의 정기로 인해 잠시 동안 빛을 내는 촛불과 같았다.

" ...언제 아셨습니까?"

" 중요한가? 그렇군... 넌 용문의 주인이지... 네 나이 7세때... 무노인이 너를 길렀다. 난 우연히 너희 사제의 대화를 들었다. 난 무노인에게 따졌다. 어렸다. 어린 나이였지. 나... 나는 너를 질투했다. 내가 되어야만 한다고 여겼다. 그러자... 무노인이 말하더구나... 너희 5형제 중에 단 1명만이 살아남고 나머지 4명의 형제는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하리라고 했다. 그 남는 아이가 너고... 나머지 나와 성근등이 일찍 죽는 다더구나. 난... 몇달을 방황했다. 내가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그 노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를 않았지. 그러나... 너는 달랐다. 마침내 용의 후예가 되었다."

성원이 다시 고개를 돌려 고요한 성운의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 이미 성운의 눈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 네가.. 자랑스럽단다... 괴로울 것이다... 이제... 난 죽겠지. 넌 알것이다. 용의 후예로서... 너의 형수를 구해다오. 내 마지막 부탁이다."

" 형님."

" 형수를..."

갑자기 성원의 눈이 빛을 잃어갔다. 이제 마지막인 것이다. 성운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 영현을 부탁... 부탁..."

성원의 말이 끊겼다. 두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바라보며 성원이 죽었다. 성운은 그의 눈을 바라본다. 손을 들었다. 그 손이 미세하게 떨리며 성원의 눈을 감겨 주었다. 

비연과 용성장의 일행, 조가장의 식구들과 조금원이 기다리는 가운데 성운이 나왔다. 비연은 걱정스런 얼굴로 성운에게 물었다. 

" 주인께선... 어찌..."

" 운명하셨네."

고요한 성운의 음성. 비연은 놀라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성원이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잠을 자는 듯한... 그러나 그것은 죽은 것의 냄새가 감돌았다. 비연이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나오자 성운이 옷을 갈아입고 온다. 평소 입던 폼이 넓은 옷을 벗고 몸에 딱 맞는 경장이었다. 머리에 두른 띠에는 용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 이보게... 제발... 영현이와 영혜를...."

성운은 자신에게 애원하는 조금원을 흘끔 보더니 비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 칼을..."

비연은 낮에 썼던 연검을 꺼냈다. 성운은 말없이 그 검을 받아 들고는 자세히 살폈다.

" 그렇군... 자네도... 아니, 노영웅이라 해야 하는가?"

성운은 여전히 고요했다. 오히려 비연이 놀랐다.

" 어찌... 그저 비연이라 불러주십시요."

" ... 어디로 갔는가?"

비연은 고개를 숙이고는 북쪽을 가리켰다. 성운이 그쪽을 바라보더니 다시 비연을 향했다.

" 자네만이 무인이니... 의식에 참여해야 하겠네."

" 예?"

" 의식을 해야만 하네. 그래야 문을 열수 있지."

비연은 어리둥절했다. 아까부터 문... 문...문!

" 내말에 대답만 하면 돼네. 물론 아주 중요한 것이기에 따라야만 하고... 가능하겠는가?"

" ... 예....예.."

" 고맙네. 자네의 실력이라면... 그럼... 그대, 차력신검 나후은은 용문을 열린 그대로 지킬 수 있겠는가?"

" ...예."

" 그대는 용문이 열린 상태에서 나 용문주 용성운이 죽는 다면 책임을 지고 문을 닫을 수 있겠는가?"

" ...예."

" 그대는 용문을 지킬수 없을 경우 용문을 파괴해야 하네. 그럴수 있겠는가?"

" ...예."

" 좋아. 이것을 받게."

성운은 품에서 옥구슬을 하나 꺼냈다. 푸른 빛이 감도는 주먹보다는 약간 작은 옥구슬. 

" 이것이 무엇...입니까?"

" 용옥일세. 용문주의 신물이지. 그것을 보관하게."

" 허나... 음양쌍마도 상대치 못한 제가...."

비연은 여전히 용성장의 집사로 행세하고 있었다.

" ... 차력신검이라는 명호가 거짓인가?"

성운의 조용한 말에 비연은 마침내 입을 다물었다. 성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운남의 상인들, 고위관리들, 그저 조그마한 위명을 가진 무사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성운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 용문. 차력신검. 

" 자... 자네...가..."

" 형수와 영혜를 데려오지요. 허나..."

뭐라 말하려던 성운은 입을 다물었다. 다시 비연을 돌아본 성운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순간 중인들은 눈이 부셔 그저 감아버렸다. 용성운의 몸이 빛이 나면서 공중에 솟구치더니 곧 북쪽으로 길다란 빛줄기를 남기며 사라져갔다. 중인들은 경악 그자체의 표정을 짓고 북쪽으로 남겨진 빛의 흔적을 바라볼 뿐이었다.

"... 용의 문이 열렸다!"

조금원의 말소리와 함께 비연이 빠르게 뜰을 빠져 나갔다. 사람들은 갑작스런 상황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운남에서 50리 남쪽에 있던 관도에 마차 한대가 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창문의 휘장이 벗겨지더니 한사내가 고개를 내밀었다.

" 정말이냐!"

" 예."

맑은 여인의 목소리. 사내는 북쪽을 바라보며 이를 악 물었다.

" 너무 빠릅니다. 아직 용문이 열릴 때가 아니온데..."

" 막아야 한다. 용문이... 열려 버린 다면...."

사내가 다시 고개를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앞에는 흰옷을 입은 여인이 있었다. 두눈을 감은 여인은 조그마한 입술을 벌려 말했다.

" 흐름이... 길을 벗어났습니다. 무언가 강력한 힘이 용의 문을 열려합니다. 이젠... 세상의 파멸이..."

사내는 입을 다물고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여인은 그저 눈을 감고 있었다. 마차는 엄청난 속도로 운남을 향해, 그리고 북쪽을 향애 달려갔다. 

서쪽에서 운남을 향해 말이 달려가고 있었다. 총 10필의 말이 달려갔다. 그들도 운남을 향해 미친듯이 달리고 있었다. 선두에 선 사내가 북쪽을 향해 올려다 보았다. 그의 눈에 보인 빛의 줄기는 불길해 보였다. 용이 지나간 길처럼 빛이 뻗어 있었다.

" 사매!"

뒤에서 달리던 말이 다가왔다. 

" 사형. 벌써..."

" 어서... 장문인께서 하신 말씀이 맞은 듯 하다. 막아야 해. 세상이..."

" 어서요!"

10필의 말은 운남을 향해 달렸다.

여인은 나무위에 떠있었다. 글자 그대로 그녀는 떠있었다. 그녀의 눈에 빛의 자국이 보였다. 북쪽을 향해 길게 뻗은 빛의 길.

" 이제..."

여인의 몸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 그대가 눈을 뜨실 때입니다."

여인의 몸이 북쪽을 향해 움직였다. 그녀의 신형은 빠르게, 흡사 용성운처럼 북쪽을 향했다.

" 그대가... 소첩을 미워하시더라도... 용서 하소서."

빛은 화살이 되어 쏘아져갔다.

그들은 북쪽을 향했다. 

화산파의 장원은 북새통이었다. 소림과 무당, 개방, 녹림등의 방주들이 갑자기 찾아온 이유였다. 그들은 지금 화산 장문인의 방에 모여있었다. 화산 장문인인 진갑량은 둥그런 탁자의 정면에 앉아있었다. 그의 뒤에는 화산파의 문장이 커다랗게 매달려있었다. 그는 힐끔 그 문장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머리속에는 그 문장에 대한 불신만이 존재했다.

' 몇백년 동안 그저 바라만 보았었다. 이제... 저 문장의 의미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은가... 허나...'

탁자에는 소림등 방주들과 장문인들이 둘러 앉아있었다. 소리 하나 없는 침묵이 마침내 깨진 것은 올해로 52살이 되는 녹림맹의 방주 전걸충이었다.

" 어찌 해야 합니까?"

" 이미... 문은 열린 듯 합니다."

대답을 한 이는 눈썹이 하얀 노승이었다. 빨간 사리를 입고 정결한 풍도를 내뿜는 그는 현재 소림의 장문인인 성결대사였다. 좌중은 대사를 바라보며 침중한 얼굴을 내비치고야 말았다. 무혜선사가 입적하며 남겼던 말... 용의 문이 4번째 열리는 날 세상이 파멸할 것이다... 그 예언과도 같은 유언이 지금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였다.

" 무혜선사께서 남기신 말씀을... 믿을 수 있습니까?"

좌중은 뜻밖의 말에 고개를 돌려 그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무당의 장문인인 이소걸이었다. 이제 40이 되는 젊디 젊은 장문인이라 그렇군 하며 대부분의 장문인 들이 혀를 찼다. 

" 무슨 뜻이오?"

개방의 방주 호천회가 얼굴을 우락부락 들끓이며 일어서서 외쳤다. 그는 화를 못참겠다는 듯이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기 까지 했다. 올해 64세가 되는 그는 평소에도 자기 맘대로 행동해 버리는 기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이소걸을 용서치 못하겠다는 투였다. 대뜸 방안엔 무시무시한 기류가 감돌기 시작했다.

" 그만하시오. 이자리를 마련한 것은 싸우자는 의미가 아니였소이다."

마침내 진갑량이 입을 열었다. 소림의 성결대사는 승려로서 함부로 나설수가 없는 인물이기에 어쩔수 없이 자신이 나서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올해로 72세가 되는 그를 무시할 수있는 무림인이라고는 없었다. 좌중은 다시 조용해지며 침묵을 찾았다. 

" 그녀가 말했던 대로 이제 모든 일이 나타났오."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무림에서 무게있는 위치에 점한 인물들이다. 그들의 귀가 진갑량의 입술에 모여졌다.

" 그녀의 말을 처음 들었던 3년전... 믿지는 않았었지만 이제 사실로 드러났으니... 우리들로서는 운남으로 간 이들이 제대로 해주기를 바랄 뿐이요."

" 왜 우리가 가지 않습니까? 그녀의 말대로라면 이 문제는 전무림의 위기입니다. 용문이 열리고 악마가 부활하리라는 말을 믿는 다면 오히려 우리가 직접 갔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무당장문인이 분기탱천하여 말했다. 좌중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태에 자신들이 직접 참여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진갑량의 배첩을 받고 온 이들은 조금 불안하기도 한 것이다. 

" ... 무당장문인의 말은 알아듣겠소. 이제 모든 것을 얘기해야 할 듯 하오이다."

사람들의 이목이 다시 집중되었다. 진갑량은 차를 한모금마셨다. 

" 아시다시피... 3년전 한 백의여인이 우릴 찾았소. 자신을 그저 수아라고만 했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3년전에 이곳 화산에 모여 무림의 대소사를 얘기할 때 어떤 미녀가 찾아왔던 것이다. 지상의 여인같지 않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백의미녀였다.

" 그리고 무혜선사께서 유언하셨던 예언을 다시 언급했소. 3년 후에 용문이 열릴 것이라는... 우리는 그말을 믿지 않았었소. 허나, 그녀의 모든 예언이 맞아 떨어졌었소. 장강이 넘쳐 그 주변의 모든 마을이 침수되어 많은 피해가 있으리란 것도 맞아 떨어졌었고 황실에서의 반역사건 마저도 맞아떨어졌소. 그리고 1주일전에 그녀가 다시 나를 찾아왔소. 바로 오늘 용문이 열릴 것이라는 말과 함께... 용성자가 죽을 것이라는 것이였소."

사람들은 놀라고 말았다. 당금 무림의 오룡을 꼽을 때 그 서열 3위에 드는 인물이 젊은 용가의 맏이, 용성자 용성원이었다. 그가 오늘 죽었다. 아직 소식이 오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사실로 들렸고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용성자는 무림인들의 기대를 받던 이였다. 그런 이가 너무도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다니.

" 그말과 함께 이번 용문의 개문은 그저 그 첫단계에 불과하다 하였소. 수낭자의 예언으로는 악마의 부활은 3단계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했소. 오늘이 그 일단계이고 2단계는 앞으로 2년 후이고... 마지막 부활은 4년후에 완성된다고 했소. 그래서... 나로서는 우리가 직접 나선다는 것이 망설여지는 일이었소. 앞으로도 많은 일이 있을 것이오. 그렇기에..."

" 그건 어불성설입니다! 왜 두렵다고는 말을 못하십니까?!"

호천회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의 머리위에는 김이 날정도로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진갑량은 얼굴을 굳히고는 입을 열었다.

" 그럴지도 모르오. 두려울지도 모를 일입니다."

" 장문인...."

다른 이들이 그런 진갑량을 보며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진갑량은 좌중을 향해 손을 저으며 말을 이었다.

" 부활한다는 악마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수낭자는 3년전에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었소. 우리는 그저 고금 최악의 악마라는 것만을 들었소. 안그렇소이까?"

진갑량의 말에 좌중은 다시 침묵한다.

" 그렇군요. 그 악마가 누구인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것은 예언에 나와있지 않습니다. 설마... 장문인께서는 아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전걸충이 의아해 하는 말투로 물었다. 순간 진갑량의 안색이 하애졌다. 그것은 공포의 빛이었다.

" 7백년전... 황금공자라는 명호를 기억하오이까?"

" 황금공자!"

외침. 그것은 공포를 수반하고 있었다. 황금공자. 명호자체는 대가집의 호탕한 도령이 가질 명호이지만 실제로 알려진 것은 공포의 이름이었다. 700년전, 마치 전설속의 시간과도 같은 그 옛날, 천하를 피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사내가 있었다. 누구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무공인지 알수 없었다. 단지 그가 지나간 곳에는 피만이 낭자하고 그곳에 있던 황금은 모조리 사라졌던 것이다. 그래서 붙은 명호가 황금공자였다. 겨우 살아남은 이들은 그 황금공자의 외모가 굉장히 미려했으며 마치 천신이 하강한 듯한 무공신위를 보였다 했다. 그는 장장 10년동안 천하를 주유하며 세상의 황금을 모조리 모으려는 듯 했다. 그러던 것이 장산에서 무림인들과 대혈투가 벌어졌다.

사실 무림인들중 그누구도 황금공자와 1대1로 싸울수 있는 이가 없었다. 10대 고수가 모두 모여도 당할수가 없었다. 실제로 한 방파가 이름을 걸고 300명이 모여 황금공자와 싸웠지만 살아남은 이들이 겨우 30명이었고 그나마 모두 반병신이 되었다고 했다. 마침내 무림인들중 서열 100위안에 드는 호걸들이 모여 황금공자를 찾아나섰다. 그리고는 2달만에 장산에서 마주쳤다 한다. 3일에 이르는 대혈투가 벌어졌고 마침내 황금공자가 쓰러졌다 한다. 그런데 갑자기 푸른용이 나타나 그의 시신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갔다 한다. 그것은 무림에 내려오는 전설이었다. 황금공자의 전설에는 그가 모은 황금들이 장산, 어디엔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것도 포함되었지만... 끝의 용이야기로 인해 전설의 색채가 너무 진한 것이다. 어쨋든... 아직도 황금공자의 황금을 찾는 이들도 있다하니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 황금공자의 명호가 바로 진갑량의 입에서 나왔다.

" 그럼 그 악마의 부활이 황금공자의 부활이란 말입니까?"

" 그렇소. 수낭자가 그리 말했었소. 바로 그 700년전의 황금공자가 부활할 것이라는 말을 하였소. 난... 지금의 무림이 그때보다는 활발할 지는 몰라도 무공의 신위나 인재들은 뒤떨어 진다고 봅니다. 나역시... 그 당시 진우영장문인 보다는 백보나 뒤떨어 질것이요. 여러분들의 선대 장문인, 방주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할수 있는 이들은 없을 것이요. 700년전이면 마교의 백팔마공, 소림의 신야반우신공, 화산의 삼십육로검법, 무당의 태극심법등 당대의 무적신공들이 실존되기 전이었소. 그런데도, 바로 그러한 신공들을 창시하고 익히셨던 분들조차 창피하게도 단 한사람, 황금공자를 치기위해 100명이 모이고도 3일이 지나서야 겨우 이겼었고, 당시 살아남은 이가 겨우 십여명에 불과했었소. 그런데... 그런 황금공자가 부활한다면...."

" 솔직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악마의 부활이라 하여 전마두의 후예나 뭐, 그런 식의 만행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만... 장문인의 말씀은 바로 황금공자가 현세에 다시 나타난다는 말씀이시니 말입니다. 황금공자의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이 아닙니까? 물론 실제로 그런 천하일인자가 실재했었다고 하여도 그는 이미 700여년 전에 죽은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 녹림방주의 말에도 일리가 있소. 죽은 이가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하오이다. 허나... 어쨋든 이번 일은 함부로 나설수가 없지 않겠소이까?"

진갑량의 내뱉는 듯한 소리는 좌중을 어둡게 만들었다.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런 악마가 나타난다면 그들에게 희망은 없었다. 게다가 무림의 마지막 희망이라고도 할수 있는 용문이 그 악마가 부활을 하게되는 제일단계라면... 용문은 이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갑자기 문이 열리며 한사람이 뛰어들어왔다. 긴수염을 한 대장부였다. 그는 현재 화산파의 기명제자인 백충식이었다. 

" 사부님!"

" 무슨 일이기에 그리 난리냐?"

" 지금... 마인들이 장산으로 몰려든다고 합니다."

" 뭣이?"

진갑량이 일어서 외쳤다. 다른 이들도 그 말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장산. 방금 전의 대화에 언급되었던 지명이었다. 장산이라면 황금공자가 최후의 모습을 보였던 명산이었다.

" 마인들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 흑천마인, 새외오마, 천우형마, 측천외인등의 전대마두와 그 외 수십명의 마인들이..."

" 그런... 그런..."

그들은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장산. 그곳으로 몰려드는 마인들과 그곳에서부터 시작될 악마의 부활이 불길한 느낌을 주는 것에 그들은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던 것이다. 

" 이젠... 어쩔 수가 없소이다... 우리들도 가야만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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