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7)

       

<-- 3. 비올렌 -->

                                                            

연참(2/2)

코카네스 성으로 가는 가장 큰 길에는 근 8년 사이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여기저기에서 밀지 말라며 사람들이 아우성이었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을 보고 놀란 아이들이 곳곳에서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사람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코딱지만한 영지의 주인인 코카네스 백작, 아니 이제는 거대한 영지의 주인이 된 코카네스 후작이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그냥 후작도 아니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었다.

비올렌 도련님이 그렇게 큰 인물이 될 줄 나는 알고 있었다며 곳곳에서 으스대는 목소리가 많았다. 사실 8년 전만 해도, 이 작은 영지의 영지민들 가운데 비올렌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조그마한 곳이었다.

그가 이 마을에 사는 현자 나으리와 전쟁에 나간다 했을 때, 사람들은 걱정이 많았다. 우리 도련님이 성검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는데, 그게 진짜인지도 의심스러워했고, 현자 나으리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과연 마족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되겠느냐며 두려워했다.

심지어 비올렌과 프레데리카가 전장을 향해 떠나던 날, 백작 부인이 울다 혼절했다는 소식에 영지민들은 마치 자기 자식에게 일어난 일처럼 슬퍼하기도 했다.

그랬던 비올렌이 위풍당당하게 휘하에 군사를 이끌고 후작령이 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저기, 저기 온다!”

어느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가도를 짜랑짜랑하게 울렸다. 모두의 고개가 한 곳을 향했다.

과연 그곳에는 흰 준마를 탄 한 남자가 위풍당당한 자태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뒤를 따르는 기사와 병사들은 단단히 각이 잡힌 채 오열을 맞추어 걸었다.

“비올렌 님!”

“성검의 주인이다!”

“코카네스 후작 각하 만세!”

곳곳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비올렌이 걷는 걸음 앞에 존경의 뜻으로 붉은 장미꽃잎을 던졌다. 점점 붉게 변하는 길을 걷는 비올렌의 얼굴은 8년이라는 전쟁을 겪은 이답게 날카롭고, 굳어 있었다.

사람들은 목청 높여 그의 이름을 외치고, 옷자락에 손 한 번 닿아보겠다며 발을 동동 굴러댔다. 영지의 경비병들은 사람들이 너무 앞으로 나오지 못하게 밀어내느라 정신이 없으면서도, 그들의 주인된 자의 얼굴을 흘끔거리느라 바빴다.

행렬을 보고 있던 사람들 중에 누군가가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르데트 나으리는 어디 가셨어?”

“그러게……? 그때 같이 가셨던 거 아니야?”

“헉! 설마 뭔가 나쁜 일이라도 생겼던 건…….”

“이놈, 재수 없는 소릴!”

코카네스 영지민들은 비올렌의 그림자처럼 붙어 있던 그 작은 여자를 모두 기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도련님의 스승님’이라는 칭호가 붙은 뒤에야 프레데리카가 상당히 이름 드높은 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긴 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비올렌의 스승이며 친구였으니까.

어떤 이가 한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혹시 그 머리가 비상하니까, 국왕 폐하께서 중용하신 거 아녀?”

“앗,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기 떠나기 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왔어도 비올렌 도련님 스승 한다고 한 발짝도 안 움직였잖어.”

“하긴…… 그도 그렇네.”

모두가 비올렌의 곁에 있어야 할 프레데리카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일단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 눈앞에 있으니, 그 화제는 곧 묻혀 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의 환호 속을 걷는 비올렌은 날카로운 눈으로 군중을 훑었다. 혹시나 프레데리카가 나와 자신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바람에서였다.

이렇게 돌아온 이상 그녀를 계속 마왕의 곁에 둘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여기까지 내려오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고 궁리를 했다. 프레데리카가 당연하게 마왕을 포기하게 할 만한, 그런 방법은 뭘까.

문득 그의 눈이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지점에 머물렀다. 비올렌의 눈이 잠시 날카로워졌다. 프레데리카를 닮은 여자가 군중에 섞인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프레데리카였다. 그는 고삐를 당겨 말을 천천히 걷게 했다. 일행의 속도가 약간 느려졌지만,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로브로 자신을 숨기려 한 듯했지만, 프레데리카는 비올렌의 눈을 피할 순 없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그녀의 곁에는 마왕이 없었다.

눈이 마주친 그녀가 비올렌을 향해 빙긋이 웃었다.

‘돌아왔네?’

비올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지그시 응시하다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이 자리에서 요란법석을 피울 필요는 없었다. 누구도 프레데리카가 그 더러운 마물을 곁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네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지만.

너는 내가 구할게.

비올렌은 결연한 의지를 품고 코카네스 저택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비올렌을 만난 그의 어머니는 웃다 울다, 마침내 반쯤 실신했다. 영웅이 되어 자신보다 높은 작위를 받은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는 아버지의 눈시울도 붉었다. 비올렌은 그 사이에 잔뜩 늙고 지친 부모님을 꽉 끌어안았다. 노쇠하여 자그마해진 부모님을 도닥이고, 함께 식사를 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소중했다.

기쁜 마음을 가득 안고 부모님이 잠자리에 든 늦은 밤. 비올렌은 자신의 방을 나섰다. 그는 마족들을 상대하던 경험을 살려 소리 없이 저택을 빠져나왔다.

코카네스 저택에서 르데트 저택으로 가는 길은 어둡다 해도 전혀 찾기 어렵지 않았다.

그 길을 하루 이틀 다닌 게 아니었다. 아버지의 청에 따라 비올렌이 12살일 무렵 그의 스승이 된 프레데리카는 어린 백작 영식의 수업을 자신의 집에서 행했다. 자신하건대, 두 저택 사이의 길이 단단해진 건 자신이 옮긴 걸음 덕분이라고, 비올렌은 생각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정원에 발을 들였다. 저택에는 단 한 개의 방을 제외하고는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그 하나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매우 희미했다. 그곳은 프레데리카의 방이 아니었다.

저곳이 마왕의 방일까. 비올렌은 허리춤에 찬 성검을 꽉 쥐었다.

그는 프레데리카의 집에 누구도 경비를 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주 예전부터 비올렌은 위험하다며 경비를 두어야 한다고 했지만, 그녀는 항상 그저 웃을 뿐이었다.

1층 현관의 문이라도 걸어 잠갔을까 싶은 마음에 비올렌은 아주 조심스레 문을 밀었다. 그의 걱정이 무색하게, 커다란 문은 부드럽게 입을 벌렸다. 마치 비올렌을 환영하기라도 하듯이.

입술을 한 번 꽉 깨물고, 비올렌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2층으로 올라간 비올렌은 곧장 마왕의 방 쪽으로 향했다.

그가 생각해낸 방법은 단순하고 무식하지만 확실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왕이 질책한대도, 아니 그를 벌하려 한 대도, 또 나라와 나라 사이에, 신전과의 사이에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상관 없었다.

애초에 마왕과 싸우기 시작한 건 나라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프레데리카가 그에게 권했기 때문이었다. 비올렌이 만인의 칭송을 받는 자리에 서게 된 건 전부 프레데리카 덕분이었다.

그러니 비올렌이 고려해야 할 사항은 오직 프레데리카 하나였다.

세 걸음을 남겨두고 비올렌은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쇠가 긁히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고요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복도에 새어 들어오는 달과 별의 빛에 날카로운 검날이 번뜩였다.

두 걸음을 남겨두고 비올렌은 심호흡을 했다. 심장이 빠르게 달음박질쳤다. 상대는 힘을 잃은 보잘것없는 마족이었다. 긴장할 이유가 없는데도 긴장이 됐다.

한 걸음을 남겨두고 비올렌은 손에 배어난 땀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목이 조여오는 것 같아서 셔츠의 단추도 풀었다.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을 훅 쓸어넘겼다.

문 앞에 다다른 비올렌은 손잡이에 손을 올린채로, 굳었다.

마왕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인기척이 이상했다. 마왕이 혼자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들려오는 건 분명 한 사람 이상의 것이었다. 두런두런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딘가 급박한 숨소리와, 억누른 신음과, 무언가 살결을 때리는 둔탁한 소리…….

갑자기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에 비올렌은 고개를 세차게 휘저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저 안에 있는 건 마왕과, 어쩌면 루시일 거다. 아니면 그가 모르는 사이에 이 저택에 고용된 다른 하녀거나. 프레데리카가 왜 마왕과 있단 말인가.

마왕과 접붙은 인간이라면, 베어버린다 해도 프레데리카에게 변명할 수 있을 것이다. 비올렌은 검을 다시 한번 고쳐 쥐고는 문을 열었다. 하지만 왜인지 문을 활짝 열 수가 없었다. 겨우 엿볼 만큼 문을 열고 그의 손이 멈췄다.

좁은 틈새로 새어 나오는 빛에 비올렌은 눈을 가져다 댔다.

그는 그대로 숨을 멈췄다.

그의 눈앞에, 프레데리카를 만난 열두 살 이후로 상상하지 않으려 애썼던 모습이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프레데리카가 두 다리를 벌린 채 문을 바라보고 남자의 다리 위에 앉아 있었다. 훤히 드러난 비부를 줄곧 찔러대는 검붉은 살덩어리가 험악했지만, 프레데리카는 오히려 기뻐 보였다.

그녀는 제 안을 들락거리는 마왕의 페니스를 직접 느끼고 싶은 모양인지, 그 접합부에 손을 가져다 댄 채 헐떡이는 중이었다. 중간중간 스스로의 음핵을 어루만지고 짓누르며 프레데리카는 몸을 뒤틀고 교성을 질러댔다. 그런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근육질의 팔이 얇은 허리를 단단히 휘감고 있었다.

“좀, 더……. 더, 흐아아…….”

“이만큼이나 먹여주었는데도 아직도 부족한 건가? 응?”

“으응, 좀 더, 흑, 아앗, 깊이 넣어……!”

칭얼대며 마왕의 페니스를 졸라대는 프레데리카의 얼굴에는 비올렌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저게, 프레데리카라고?

마왕의 위에서 허리를 흔들어대며 헐떡이는 저 여자가?

비올렌은 주춤 물러났다. 도무지 저 여자가 자신이 아는, ‘그’ 프레데리카라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대체 왜 프레데리카가, 마왕과 그런, 음란한 짓을 하고 있단 말인가? 비올렌은 하마터면 검을 떨어트릴 뻔했다.

허둥대며 검을 다시 붙잡고 시선을 올린 순간이었다.

그 좁은 틈새로 비올렌과 프레데리카의 눈이 마주쳤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프레데리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정신없이 마왕의 허릿짓에 치받치는 와중에도, 그녀의 눈은 단단히 비올렌에게 고정되었다.

색욕으로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프레데리카의 볼 하며, 벌어져 번들대는 입술과 박자에 맞춰 흔들리는 말랑하고 동그란 가슴이 자꾸만 그의 눈을 파고들었다.

비올렌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런 그의 상황을 알기라도 하는지 프레데리카가 입을 벙긋댔다.

‘다 봤어?’

비올렌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침 삼키는 소리가 너무 커서, 그의 귀에 들릴 정도였다. 천박한 자태로 자신을 전시하는 프레데리카의 모습에 어느새 그 역시 달아올라 버렸다. 바짓속에 숨겨둔 그의 좆이 단단하게 서서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불끈거렸다.

비올렌은 자신이, 또 프레데리카가 당혹스러웠다.

그가 있는지 모르는 듯, 카이온은 프레데리카의 몸을 탐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가 거칠게 프레데리카를 바닥에 엎어트렸다. 엉덩이만 바짝 치켜든 채 바닥에 납작 엎어진 프레데리카는 자신을 험하게 대하는 카이온에게 항의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했다.

개처럼 흘레붙기 시작한 두 남녀는 거의 막판을 향해 달려가는 듯했다. 어떤 기교도 없이 무식하게 박아대는 카이온의 얼굴도 잔뜩 찌푸려져 있었고, 그 아래에서 흔들리는 프레데리카도 정신없이 교성을 질러대기에 바빴다.

“아앙, 아, 아윽! 카이, 카이……! 더, 더해, 더 빨리……!”

“정말, 크윽…… 믿을 수 없게, 음란한 몸이야. 작작 조여대라고…….”

마왕의 손이 험하게 그녀의 볼기를 내려쳤다. 한 대, 두 대, 세 대 연신 내려칠 때마다 살이 찢어지는 듯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비올렌은 순간 자신이 그녀의 엉덩이를 때리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손바닥이 뜨거웠다.

“아아……! 하아, 아! 카이온, 아, 제발……!”

절정이 찾아온 프레데리카가 엉덩이를 움찔댔다. 타이밍 좋게 카이온 역시 절정을 맞은 모양이었다. 그가 가냘픈 프레데리카의 등에 엎어져서는 그 몸을 꽉 끌어안았다.

“흐읍…….”

“아아, 아……!”

몸 안에 마왕의 정액을 받으며 프레데리카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비올렌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프레데리카가 똑바로 비올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새빨간 혀가 천천히, 아랫입술을 핥았다. 눈이 초승달처럼 휘며 그를, 유혹했다.

비올렌은 정신없이 등을 돌려 달아났다. 그의 발소리가 분명 들렸을 테지만, 신경쓸 수가 없었다.

그는 그대로 달음박질쳐 저택을 빠져나왔다. 헉헉대는 숨소리가 거슬리게 귓가에 울려댔다.

숨이 막힐 지경이 되어서야 비올렌은 멈추어섰다. 나무를 짚고 서서 헐떡이다가 그는 이를 갈며 욕설을 내뱉었다. 나무를 짚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허리가 앞으로 잔뜩 구부려졌다.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었다.

“제기랄!”

축축해진 앞섶을 바라보며 그는 다시 한 번 욕설을 터트렸다. 눈꺼풀에 붙은 프레데리카의 벗은 몸이 사라지질 않았다.

                                                            

========== 작품 후기 ==========

어느새 유료연재분이 시작되는 편수까지 다다랐네요.

선추코 해주시고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주말이 지나고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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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도망쳐 온 비올렌은 마치 프레데리카의 집에 간 적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평범하게 자신을 찾아온 손님들을 만나고, 영지를 시찰하고, 새 영지의 업무를 보는 그의 모습에서는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서류를 보는 중에도, 사람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는 때에도 자꾸만 그 밤이 떠올랐다. 문틈 사이로 훔쳐보았던 여자의 나신이 문득문득 떠올라서 고통스러웠다. 남들 앞에서 물색없이 제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는 아랫도리를 진정시키느라 갖은 애를 다 써야 했다.

그래서 더욱 정신없이 일에 빠져들었다. 프레데리카라는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는 참을 수 없는 욕정에 휩싸이는 기분이었다. 마왕에게서 프레데리카를 구출하겠다던, 그 포부를 이룰 새도 없이 그는 오히려 프레데리카의 환상과 싸워야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프레데리카는 그날 밤 이후 비올렌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게 어찌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비올렌은 그녀가 제 눈앞에 나타나면 멀쩡하게 그녀를 대할 자신이 없었다.

여린 살을 푹푹 쑤셔대는 마왕의 페니스 위에서 쾌락에 몸부림치는 프레데리카를 떠올리는 밤이면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것은 자신이 오랜 시간 숨겨두었던 거친 욕망과, 마왕에게 몸을 내준 프레데리카에 대한 분노였다.

그 분노의 이유조차도 분명하지 않았다. 마왕에게 굴복한 프레데리카를 믿을 수 없어서 화가 나는 건지, 아니면 마왕과의 통정이 사람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그도 아니라면…….

프레데리카가 평범한 여자처럼 누군가와 몸을 섞을 수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자신에 대한 분노인지.

화가 치밀어오르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우습게도 발기를 하곤 했다. 비올렌은 야심한 밤에 제멋대로 일어선 제 분신을 두 손으로 붙들고 흔들면서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손에 끈적하게 묻은 정액의 비릿한 냄새가 역겹기 짝이 없었다.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비올렌은 그날 밤의 상황을 멋대로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그건 언제까지고 이렇게 프레데리카를 피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위기의식에서였다.

프레데리카가 마왕에게 농락당하는 건, 그녀에게 걸린 마왕의 마법이 아직도 잔존해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마왕을 데리고 숨어들 듯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거고, 마왕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프레데리카를 거칠게 탐하고 모욕하는 거라고.

결론은 마왕을 죽이고 프레데리카를 되찾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검을 들고 그녀의 집으로 향하려 하면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집무를 보고 난 후의 점심시간이었다. 비올렌의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었다. 그가 들어올 것을 명하고 보니, 집안 일을 돌보는 집사였다.

“무슨 일인가?”

“그게,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지금 응접실에서 마님과 큰주인 나으리와 만나고 계십니다. 마님께서 도련님…… 아니 각하를 모셔오라고.”

“알겠어. 지금 가지.”

비올렌은 펜을 내려두고 일어나 잉크가 묻은 손을 씻었다. 집사가 얼른 그에게 깨끗한 수건을 내밀었다. 물기를 말린 비올렌은 곧장 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에 가까워질수록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가 커졌다. 비올렌의 어머니인 백작부인의 활기 넘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분 좋은 목소리의 백작도 무어라 말이 많았다. 대체 상대가 누구기에? 비올렌은 성큼성큼 응접실로 향했다.

문을 열어젖힌 순간, 그는 그 자리에 석고상처럼 굳어버렸다.

“어머, 왔구나, 비올렌! 세상에, 누가 왔는지 좀 보렴!”

호들갑스럽게 아들을 맞이하는 백작부인의 목소리에도 비올렌은 답을 하지 못했다.

그의 부모님 앞에, 그토록 얼굴 마주하기를 두려워했던 상대가 앉아 있었다.

긴 머리를 둥글게 말아 틀어올리고 차분한 비둘기색 드레스를 입은 프레데리카가 거기에, 환상처럼 있었다. 그녀는 비올렌을 돌아보며 인사했다.

“인사가 늦었지요, 후작 각하?”

“비올렌, 앉지 않고 뭐하니? 아, 아니다. 어차피 시간도 이리되었고 같이 식당으로 가자꾸나!”

“그래. 그게 좋겠군. 르데트 님, 오실 줄 알았다면 좀 더 좋은 것을 대접하려고 준비를 했을 텐데요.”

“아닙니다, 백작님. 제가 갑자기 찾아온 것을요.”

“대체 왜 비올렌과 같이 돌아오지 않으신 걸까 궁금해했는데…… 무사하신 걸 보니 마음이 놓여요.”

“저도 두 분이 건강하신 걸 보니 기뻐요…… 비올렌?”

백작 부처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던 프레데리카는 제 곁에 와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선 비올렌을 올려다보았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순한 웃음을 띤 프레데리카를 보고 있는 그의 가슴이 꽉 조여들었다.

거칠게 프레데리카의 팔을 붙잡은 비올렌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잡힌 팔이 아픈지 프레데리카는 아야, 하고 작게 신음했다. 자식의 험한 모습에 놀란 백작 내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하는 거니!”

“세상에, 비올렌! 이게 무슨 무례야!”

“실례하겠습니다.”

부모님이 황망해 하든 말든, 비올렌은 신경도 쓰지 않고 프레데리카를 끌고 나왔다. 도리어 프레데리카가 비올렌의 부모에게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하며 끌려갔다.

두 사람은 폭풍처럼 복도를 걸었다. 비올렌이 거칠게 프레데리카를 끌고 가는 걸 본 사용인들은 놀라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그가 계단을 빠르게 올라가자, 미처 제대로 쫓아가지 못한 프레데리카가 허우적대며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비올렌은 신경도 쓰지 않고 갈 길을 재촉했다.

거의 질질 끌려가다시피 한 프레데리카를 자신의 방으로 밀어넣은 비올렌은, 방 근처에 있던 하인을 불러서는 누구도 이 층으로 오지 못하게 막으라고 명령했다. 하얗게 얼굴이 질린 하인은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둥지둥 뛰어갔다.

문을 걸어 잠근 비올렌은 불타는 눈으로 프레데리카를 돌아보았다.

잡혔던 팔을 문지르며, 프레데리카가 난처한 얼굴을 하고 웃었다.

“아프잖아, 비올렌. 부모님도 놀라셨을 거고.”

“너, 대체 뭐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못 올 데 온 것도 아니고.”

“너……! 어떻게 나한테……!”

“네가 안 오니까 올 수밖에 없잖아. 응?”

뻔뻔하리만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하는 프레데리카를 보며 비올렌은 기가 찼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가서는 프레데리카의 양 팔을 꽉 붙잡았다.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레니, 아파…….”

“대체 뭐야. 뭐냐고!”

“뭐가 뭐냐는 건데?”

“그 마물이랑, 네가, 네가……!”

동요 한 점 없는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프레데리카에게, 비올렌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네가 어떻게, 우리가 죽이려고 그 수많은 시간 싸웠던 마왕에게, 그럴 수가…….

비올렌이 말을 더 하지 못하고 입술만 부들부들 떠는 걸 가만히 보고 있던 프레데리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본 거 맞구나? 카이온이랑 내가 하는 거?”

“프레데리카!”

분노 어린 비올렌의 울부짖음에도 프레데리카는 태연하기만 했다.

“왜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어, 비올렌.”

“너……!”

“마왕이라서 화를 내는 거야? 내가 마왕이랑, 몸을 섞어서? 우리의 ‘적’이었던 자랑?”

“그건 인간이 아니야! 괴물이라고! 우릴 죽이려 했고, 널 죽이려 했고,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어! 당장 죽여버려도 시원치 않은 마물이랑, 어떻게, 그럴수가…….”

“비올렌, 솔직하게 말하면 말이야. 그러려고 데려왔어.”

담담한 고백에 비올렌은 머리를 세게 후려 맞은 듯 어지러웠다. 그의 손에서 힘이 빠지고 프레데리카는 속박에서 놓였지만, 딱히 물러서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똑바로 비올렌을 바라보고 서서, 조용히 말했다.

“어차피 아무 짓도 못하는데, 이렇게 쓰면 어떻고 저렇게 쓰면 어때? 실험을 하는 건 괜찮고, 성교하는 건 안돼?”

“프레데리카, 너 정말……!”

“아니면, 비올렌.”

그녀의 손이 비올렌의 왼쪽 가슴에 살포시 놓였다. 그 손바닥으로 격렬하게 뛰는 비올렌의 심장이 느껴졌다.

요혹하듯 웃으며 프레데리카가 은근히 물었다.

“네가, 날 따먹고 싶었던 거 아냐, 카이온보다 먼저?”

화들짝 놀라며 비올렌이 프레데리카를 밀쳐냈다. 힘을 조절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놀라 밀치는 바람에 프레데리카는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험하게 쓰러지면서 고정되어 있던 프레데리카의 머리카락이 풀려 흐트러졌다.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그녀의 얼굴을 가렸다. 비올렌은 주춤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난, 나는…… 그런 게…….”

“후우…… 아프잖아.”

천천히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프레데리카가 고개를 돌려 비올렌을 바라보았다.

비올렌은, 제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 사람이 프레데리카라고? 무람없는 얼굴로, 고상하지 못한 말을 해대는 저 사람은 그가 알던 프레데리카가 아니었다. 비올렌의 스승이며 친구인 프레데리카는 항상 고고하고 조신했다. 그런데 저렇게 막되어 먹은 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느릿느릿하게 프레데리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구겨진 드레스를 손으로 툭툭 털어 펼치고는 풀어진 머리를 대충 하나로 질끈 묶었다. 그러고는 한 걸음, 비올렌을 향해 내딛었다.

마치 맹수가 다가오기라도 하듯, 비올렌이 한 걸음 물러났다. 프레데리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도 점점 뒤로 물러섰다. 그러다가 턱, 하고 등에 닿는 무언가 때문에 그는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게 되었다.

마침내 비올렌의 앞에 선 프레데리카가 요망하게 웃으며 그의 뺨을 쓸어내렸다.

“비올렌, 솔직하게 말해 봐.”

“…….”

“그날 밤에, 나를 보고 조금도 동하지 않았어? 응?”

그녀의 몸이 바짝 다가섰다. 되도 않는 짓인 걸 알면서도, 비올렌은 허리를 뒤로 빼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미 바짝 서버린 페니스가 프레데리카의 몸에 짓눌린 뒤였다.

거짓으로 놀라는 척, 어머, 하고 탄성을 내뱉은 프레데리카가 제 몸과 맞닿은 남자의 물건을 한 번 내려다보고는, 씩 웃으며 다시 비올렌을 올려다보았다.

“솔직하네, 네 몸은.”

“이러지, 이러지 마.”

“왜, 너 하고 싶었잖아. 여기에다가 말이야…….”

작고 차가운 손이 비올렌의 손을 답싹 잡더니, 그녀의 아랫도리로 가져갔다. 그러더니만 자신의 다리 사이로 쑥 집어넣었다. 비올렌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머뭇거리며 도리질을 쳤다. 그가 어쩔 줄 몰라하는 걸 보며 프레데리카가 키득댔다. 그녀는 잡고 있는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커다랗고 단단한 손이 드레스 너머로 그녀의 하복부를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프레데리카는 아래가 젖어드는 기분이었다.

파르르 떨리는 숨이 프레데리카의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 작품 후기 ==========

과연 프레데리카는 비올렌을 자빠뜨릴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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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비올렌은 곧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얼굴과 귀, 목에다가 손까지 새빨갰다. 프레데리카의 힘이 세면 얼마나 세다고, 제 손을 붙든 그녀의 손을 냅다 뿌리치지 못하고 버벅댔다. 치맛폭에 휘감겨 상대의 다리 사이를 들락대는 자신의 손이 의식될 때마다 비올렌은 입으로 심장을 토할 것만 같았다.

천천히 프레데리카의 몸이 비올렌의 중심부를 꾹 눌렀다.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음경이 자극받자, 비올렌은 저도 모르게 욕정 어린 신음을 토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낸 소리를 믿을 수 없다는 듯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이 재미있기라도 한지, 프레데리카가 좀 더 그를 짓눌렀다. 누르고, 비비다가, 갑작스럽게 손으로 꽉 쥐었다.

비올렌은 입만 벌린 채 몸을 발발 떨었다. 그녀의 손이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자 그는 그만 울어버리고 싶어졌다.

조금만 더 자극받다가는 프레데리카의 앞에서 추한 모습을 보일지도 몰랐다. 그의 괴로운 마음을 조금도 배려할 생각이 없는지, 프레데리카는 자신의 말캉한 가슴도 그의 몸에 밀어붙였다.

열이 올라 달뜬 프레데리카의 목소리가 위험하게 울렸다.

“으응, 비올렌……. 완전 딱딱해졌어. 좋아……?”

“으윽…… 흑…….”

“그날 밤 이후에, 내 생각…… 안 했어?”

“프리, 카…… 하지 마…….”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비올렌은 프레데리카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질문이 아니라 신음성뿐이었다.

천천히, 프레데리카의 손 하나가 그의 바지속으로 뱀처럼 기어들어가려 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살결 위로 프레데리카의 손이 닿았다. 그녀의 손톱이 살살 그의 아랫배와 페니스가 이어진 민감한 부위를 긁었다. 비올렌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대로는, 안 돼. 비올렌의 머릿속에서 위험이라는 글자가 정신 나간 새처럼 사방팔방 돌아다녔다. 그는 정말 이성의 부스러기 전부를 박박 긁어모아 프레데리카를 뿌리쳤다.

그가 할딱대며 손을 밀어내자, 의외로 프레데리카는 순순히 그녀의 친구를 놓아주었다.

애처롭게 비올렌이 애원했다.

“이, 이러면 안 돼.”

“왜?”

“난, 나는…… 너한테 그럴 생각이…….”

한 글자 한 글자 짜내어 말하는 비올렌의 얼굴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프레데리카는 그 얼굴을 불쌍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물러서 주었다. 그녀가 멀어지자, 그제야 비올렌은 제대로 숨을 쉬는 것만 같았다.

불쌍하리만치 어쩔 줄 모르는 비올렌을 바라보던 프레데리카가 말했다.

“그럴 생각이 없다고?”

“……그래.”

“그래, 그렇구나. 그렇다면 이제 나한테서 신경 꺼줘.”

조금 전까지 비올렌을 유혹하던 목소리는 어느 새 싸늘하게 바뀌어 있었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마왕에게 눈이 먼 것도, 내가 정신이 나간 것도 아니니까 나를 구하려는 듯 굴지 말아 줘.”

“…….”

“그리고 네가 카이온 대신 나와 할 거 아니면, 방해하지도 말고.”

“프리카…….”

냉정하게 관계를 끊어버리는 듯한 프레데리카의 말에 비올렌의 눈가가 붉어졌다. 금방이라도 그렁그렁해진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걸 본 프레데리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널 울리려고 한 말이 아니야.”

“난…… 나는…… 네가 내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라서…….”

“그래, 고마워. 하지만 있잖아, 레니.”

다정한 목소리에 비올렌이 프레데리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예전처럼 포근했다.

그러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정하지 않았다.

“난 네가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유리인형 같은 게 아니야.”

“프리카, 그런 게 아니라……!”

“그리고 있잖아, 네게 그동안 숨겼던 사실이 있어.”

프레데리카가 다시 비올렌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녀의 체취가 훅 코를 휘감자, 비올렌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조금이라도 그녀의 향기를 더 맡으면, 이 자리에서 곧장 그녀를 바닥에 쓰러트려서는 치마를 들추고, 저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릴지도 몰랐다.

그런 비올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프레데리카는 발 끝으로 서서는 그의 귀에 자신의 입술을 가까이 댔다. 반절은 숨소리인 그녀의 목소리가 비올렌의 귀를 간질였다.

“마왕만 괴물이 아니야, 비올렌. 나도, 괴물이야.”

비올렌은 프레데리카가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칭했다는 데 심하게 충격을 받았다. 프레데리카는 그의 인생에 핀 아름다운 꽃과도 같았다. 그런 그녀가, 스스로를 그렇게나 잔인하게 칭하다니.

하지만 대체 왜 그녀가 자신을 괴물이라고 하는지 비올렌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프레데리카는 그 이유를 알려주려는 듯, 그의 턱을 단단히 잡고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게 했다. 문득 비올렌은 지금 그녀가 하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직감에 사로잡혔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자그마한 여자의 손에 잡힌 건데도, 비올렌은 도무지 달아날 수가 없었다.

붉은 입술이 나붓나붓 움직였다.

“네가 기억하는 한에서, 내가 어땠는지 떠올려 봐.”

“……그게, 무슨…….”

“너와 처음 만났던, 네 나이 열두 살 때의 나와 지금의 나…… 얼마나 다르니?”

잘 생각해 보렴, 내 사랑하는 제자. 프레데리카는 손을 떼고는 그의 옆을 돌아서 문을 열고 방을 나가버렸다. 문이 닫히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비올렌은 꼼짝도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는 문에 등을 털썩 기댔다. 천천히 그의 다리가, 무너졌다. 주르르 문을 타고 내려와서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비올렌이 열두 살이던 무렵, 스승으로 프레데리카를 처음 만났다. 그게 이미 17년 전이었다.

‘안녕하세요, 도련님.’

상냥하기 그지없던 목소리. 애정을 품은 녹색 눈동자.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 그때만 해도 프레데리카는 비올렌보다 머리 하나 반 정도 더 컸다.

그녀에게서 나는 묘한 향기가, 비올렌에게 남은 프레데리카의 첫인상이었다.

그때의 프레데리카와 지금의 그녀가 얼마나 다르냐고? 비올렌은 훌륭한 제자답게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자신의 기억을 되짚었다.

그의 기억에 또렷하게 저장된 프레데리카의 얼굴을, 그녀의 말을, 추억을 떠올리던 비올렌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왜…….”

그대로지?

비올렌의 턱이 덜덜 떨렸다. 왜 그 사실을 난 이제야 깨달은 거지?

프레데리카는 그가 열두 살에 만났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얼굴이 쉬이 늙지 않는 편이라고, 동안이라고 하기에는 과했다. 사람이 아무리 나이를 잘 먹지 않는 외모를 가졌다 한들, 그렇게 그대로일 수는 없었다.

그는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자칫하다가는 무슨 소리든 내버릴 것만 같았다. 그게 비명이든, 절규든, 프레데리카의 이름이든.

벌떡 일어서려다, 비올렌은 그대로 옆으로 넘어졌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끙끙대며 몸을 일으킨 그가 주먹으로 제 허벅지를 내리쳤다. 이를 악물고 일어난 비올렌은 급히 문을 박차고 나갔다.

당연히 복도에서는 프레데리카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정신없이 뛰었다. 식당도, 응접실에도, 1층 홀에도 그녀는 없었다.

마침 지나가던 하인 하나를 붙들고 비올렌은 목소리를 높였다.

“프레데리카는, 어디 갔지?”

“네? 아, 저, 현자님…… 좀 전에 떠나셨습니다요.”

“제기랄!”

그는 하인을 놓고 밖으로 뛰어나가려 했다.

하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외침에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비올렌 코카네스! 거기 서지 못하니!”

그는 이를 악물고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 그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어머니, 잠시 나갔다 온 뒤에 말씀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비올렌, 당장 이리 오지 못해!”

백작부인은 체신이고 뭐고 다 내팽개친 채 계단을 쾅쾅거리며 내려왔다. 잔뜩 흥분한 나머지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기까지 했다.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은 비올렌은 급히 어머니에게로 뛰어가 그녀를 부축했다.

아들이 자신의 어깨를 잡아 부축하자마자, 그녀는 비올렌의 등짝을 세게 연달아 내리쳤다. 어머니의 손이 아무리 세게 자신을 때린다 한들, 비올렌에게는 조금도 타격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이 울상이 되고 목소리마저 떨리는 걸 들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 너 어떻게…… 응? 르데트 님께 그럴 수가 있어! 그분은 네 스승님이고, 네가 전장에 가는 것도 묵묵히 따라 가신 분이야! 널 지키겠다고 내게 맹세하고 가셨던 분이라고!”

“어머니, 진정하세요. 일단 방으로 가세요.”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니! 너한테 그렇게 막되어먹게 행동하라고 했어!”

“하아…… 어머니…….”

가진 건 많이 않을지언정, 다른 이의 위에 서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옳은 태도에 대해 항상 강조했던 비올렌의 어머니였다. 자신의 가르침에 어긋남 없이 자란 비올렌이 당장 프레데리카에게 험한 짓을 하는 걸 보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당장 프레데리카를 쫓아가는 건 미룰 수밖에 없었다. 흥분한 백작부인은 조금 있으면 거의 실신할 지경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비올렌은 이를 악물고 어머니를 모시고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걷는 내내 아들에게 말을 퍼부어대던 백작부인은 마침내 자신의 방에 도착하자마자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프레데리카는 두 명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하나는 언제나와 같이, 그녀의 옷을 받아들기 위해 기다리던 루시였다. 다른 하나는.

“카이온?”

“어딜 다녀오지?”

“코카네스 백작저에. 여기 왜 나와 있어요?”

그녀가 어딜 가든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제 할 일만 하던 카이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의아한얼굴로 카이온을 바라보면서, 프레데리카는 자신이 걸쳤던 로브를 루시에게 건넸다. 루시는 그것을 받아들고는 조용히 그 자리를 떴다.

“어딜 다녀왔냐고 물었다.”

“세상에…… 내가 당신에게 어디 다녀왔는지 보고해야 해요?”

남편이야 뭐야. 프레데리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곧장 옆에 따라붙은 카이온은 프레데리카의 허리를 휘감아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그녀를 품에 끌어안은 카이온은 프레데리카의 정수리와 귓가, 목덜미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댔다.

“하지 마요, 뭐 하는 거야.”

간지럽기도 하고 약간 불쾌하기도 해서, 프레데리카는 힘껏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하지만 카이온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참 그렇게 냄새를 맡아대던 카이온이 기분이 나쁘다는 듯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 개새끼 중 하나에게 다녀온 모양이군.”

“……비올렌은 개새끼가 아닌데.”

“지독한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요. 그에게 악감정이 있는 건 알겠지만…….”

“악감정?”

어처구니없다는 듯 크게 코웃음을 친 카이온은 그대로 프레데리카를 들어 올려서는 제 어깨에 들춰 맸다. 꺄아악, 하고 그녀의 비명이 1층 홀과 복도를 울렸다. 프레데리카가 발버둥을 치고 주먹으로 카이온의 등을 마구 두들겼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내려줘!”

아무리 몸을 뒤틀어도 카이온은 그녀를 내려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는 계단을 몇 개씩 휙휙 올라가서는 곧장 프레데리카의 방 쪽으로 향했다. 세차게 문을 열어젖힌 그는 방 안에 있는 문 하나를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욕실 안에 있는 커다란 사각 욕조에 프레데리카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항상 따뜻한 물이 가득 준비된 욕조에 그녀는 저항 한 번 못하고 풍덩 빠지고 말았다. 거의 사람 둘은 너끈히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욕조였기에 프레데리카는 완전히 물에 잠기고 말았다. 허우적대며 일어난 프레데리카는 해초처럼 얼굴에 엉겨 붙은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넘기며 항의했다.

“카이온! 대체 왜 이래요!”

축축 감기는 옷과, 끊임 없이 얼굴로 흘러내리는 물을 수습하던 프레데리카는 곧 얼어붙고 말았다.

카이온이 그녀의 앞에서 옷을 하나 둘 훌러덩 벗어대고 있었다.

“뭐, 뭐야. 지금 뭐해요?”

“너한테서 그 개 냄새가 나는 게 썩 유쾌하지 않아.”

“그런데, 왜 옷을 벗어?”

“왜, 싫은가?”

어느새 홀로 나신이 된 마왕이 그녀가 들어간 욕조에 발을 들였다.

                                                            

========== 작품 후기 ==========

비올렌은 순진한 남자입니다... 이번에는( ) 잡아먹히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프레데리카에게는 카이온이 있으니까요, 괜찮아요.

선추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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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몸뚱아리가 욕조에 들어오자 순식간에 수위가 올라가면서 물이 바깥으로 넘쳐 흘렀다. 저러면 나중에 루시가 치우기 힘들 텐데, 라고 프레데리카가 걱정한 것도 잠시였다.

카이온이 바짝 몸을 붙여왔다. 그의 입술이 질척하고 진득하게 프레데리카의 가슴에 입을 맞췄다. 말캉한 살을 입안으로 흠뻑 빨아들여 한참을 쪽쪽 빨고 물었다. 금방 연약한 살에 붉은 멍이 올라왔다. 단 하나의 순흔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듯 그는 양가슴 곳곳을 연신 물고 빨았다.

그러다가 실수인 것처럼 이를 세워 바짝 일어선 유두를 물었다. 그의 이가 가슴의 가장 볼록한 부분을 건드릴 때마다 프레데리카는 느릿하게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비틀었다. 어느새 그녀가 입고 있던 다 젖은 옷은 반쯤 벗겨져서, 가슴과 배가 전부 드러나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쾌감이 점점 올라오는 걸 보며 카이온은 슬쩍 웃었다. 그는 가슴을 아래부터 천천히 핥아 올렸다. 이어 그의 입술이 쇄골 위에 올라왔다. 그곳에도 크고 붉은 도장을 찍은 그의 입술은 거침없이 위로, 위로 올라왔다. 유방도 가슴팍도 쇄골도 목덜미도, 전부 카이온이 남긴 흔적 투성이였다.

“이래서는, 옷을…… 대체 어떻게 입으라고…… 흐읏, 그만 깨물어요……!”

“어차피 누구 보여줄 예정 없잖아.”

나 말고는. 은근하게 속삭인 카이온은 자신의 굵고 단단한 허벅지를 프레데리카의 다리 사이로 밀어넣으며 몸을 밀착시켰다. 그의 손이 능수능란하게 물 안을 유영하는 옷 사이를 파고들었다. 풍성한 치맛자락들을 헤치고 들어간 손이 금방 밀지를 가린 드로어즈를 찾아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드로어즈 안으로 손을 불쑥 집어넣고는 물었다.

“여기, 그놈이 손 댔어?”

“으응, 대체 왜…… 그런 거에 집착해요?”

“손 댔어, 안 댔어?”

“옷, 옷 위로…… 아!”

카이온의 손이 우악스레 그녀의 음부를 움켜쥐었다. 그것은 프레데리카를 다치게 하려는 느낌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그보다는 카이온의 손에서 전달되는 뜨거운 열기가 그녀의 몸을 더욱 달아오르게 했다.

제 손에 잡힌 채 낑낑대며 엉덩이를 비트는 프레데리카의 귓가에 대고 카이온이 으르렁댔다.

“불쾌해, 정말.”

“뭐가…… 흐아…….”

“그 개새끼가 널 만진 게 말이지.”

“난, 난…… 이해가 안 되는데요…… 아아아!”

아무 예고도 없이 카이온의 중지가 프레데리카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갑작스럽게 내부에서 느껴지는 부피감이 불쾌하면서도 흥분되었다. 그녀는 목을 뒤로 젖히고 더운 한숨을 토해냈다. 찰랑찰랑 차오른 물이 그녀의 귓가에서 흔들렸다.

카이온의 손이 천천히 왕복했다. 질 내벽을 꼼꼼하게 훑으며 나왔다 들어가길 반복하는 그의 손가락은, 그 사이에 익숙해진 프레데리카의 취약한 부위를 간간이 자극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짜릿한 감각에 프레데리카의 몸이 거칠게 비틀렸다. 물이 있다는 것도 잊었는지 자꾸만 눕는 프레데리카가 물에 잠기지 않게, 카이온은 팔로 단단히 그녀의 상체를 받쳐 안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그녀의 몸 안을 들락거리는 손가락은 두 개로, 세 개로 늘어났다.

“흐앗! 아! 아앙, 잠깐, 아! 으아앗……!”

“나는 말이지, 프레데리카.”

“으응, 으, 아앗, 카이, 카이온, 흑…… 아!”

“내가 차지한 걸 나누는 건 딱 질색이야.”

마왕의 이가 프레데리카의 목을 물어뜯었다. 그것은 마치 맹수가 사슴의 목을 물어뜯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잇자국이 선명하게 프레데리카의 목 옆선에 남았다.

“이상, 해…… 아앙! 당, 신 지금, 질투하는…… 아앗! 아! 흐악!”

“더러운 개새끼들과 접붙은 데 내 걸 넣고 싶진 않아서.”

뜨끈한 물이 마왕의 손과 밀려 들어왔다가 흘러나가고, 점점 물에 그녀의 애액이 섞여갔다. 그럴 리 없었지만, 프레데리카는 물에서 자신에게서 비롯한 야릇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그것이 그녀의 수치심을 자극했고, 그래서 순간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카이온의 팔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손으로 안을 쑤시는 것도 좋았지만, 프레데리카는 점차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녀는 이미 카이온의 페니스가 얼마나 단단하고 뜨거운지, 그것이 자신의 질 안으로 들어와 있는 힘껏 쑤셔댈 때 얼마나 황홀한지 알고 있었다.

좀 더, 필요해. 달아오른 프레데리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물에 젖은 속눈썹이 바르르 떨렸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카이온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물 밖으로 나온 팔에 찬 기운이 훅 끼쳤지만, 자신을 안고 있는 남자의 체온이 너무나도 뜨거워서 추위를 느낄 새도 없었다.

“카이온…….”

“음?”

“이제 그만…… 아앗, 장난치지, 말고오…….”

“아하.”

카이온의 얼굴에 능글맞은 미소가 떠올랐다. 어느새 그의 손을 두고 스스로 허리를 흔들기 시작한 프레데리카가 뭘 조르는 건지는 분명했다.

“뭘 원하는지 제대로 말하지 그래.”

“하아, 아, 다른 때는…… 말 안 해도…… 알아서, 아읏, 박았으면서……!”

불평을 토해내도 카이온은 슬쩍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프레데리카는 이 마왕과 자신의 관계가 이상하게 역전된 것만 같다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분명 그의 목줄을 잡은 건 자신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하지만 그가 프레데리카를 부끄럽게 만들기 위해 이런 걸 요구할 것 같지 않았다. 자신 또한, 민망할 게 없었다. 원하는 게 있는데 또박또박 요구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랫배를 카이온의 몸에 바싹 붙였다. 이마와 이마를 맞대고, 눈을 똑바로 들여다 보았다. 나긋하게 카이온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얹은 그녀는 그 상태 그대로 입을 열었다.

“여기, 내 허벅지를 자꾸 찌르는 카이온의 자지를 넣고 싶은데…….”

“하아…….”

“안 되겠어요?”

조르는 목소리가 매혹적이었다. 프레데리카의 녹색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카이온의 손이, 일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의 입가에 기대에 가득찬 미소가 떠올랐다. 예고도 없이 그가 프레데리카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곧장 자신의 우람한 페니스 위로 그녀를 내리꽂았다.

커다란 좆이 안으로 단숨에 밀고 들어오자, 프레데리카가 숨을 멈췄다. 온몸이 찌릿찌릿하고 불타는 것만 같았다. 원했던 것을 문 은밀한 부위가 만족감에 꿈틀거리며 카이온의 것을 꽉꽉 조였다.

“흐으으…… 좋아…….”

“음란하기, 짝이 없는 몸, 같으니. 크윽…….”

“이제 닥치고, 움직여요.”

“내 주인의 명이라면, 분부대로.”

과장된 억양으로 굴종하는 척 말한 카이온은 그대로 크게 허리를 쳐올렸다. 쾅 하고 뱃속 깊은 곳을 파고든 페니스의 선명한 감각에 프레데리카가 기쁨의 교성을 내질렀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카이온은 정신없이 프레데리카의 몸을 탐했다.

두 사람의 움직임이 격해질수록 욕조에 담긴 물이 격하게 출렁였다. 물이 넘치고, 넘치고 또 넘쳐서 욕조 바닥에는 홍수가 난 듯 물이 고였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런 건 신경 쓸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프레데리카는 카이온의 목을 끌어안고 몸을 젖었다. 바르르 떨리는 등 근육을 카이온의 손이 다정스레 쓸어내렸다. 그의 손가락이 훑고 지나가는 자리마다 소름이 올라왔다. 프레데리카는 연신 좀 더, 좀 더 하며 카이온의 페니스를 졸랐다. 그에 부응하듯 카이온은 더 열렬히 허리를 놀렸다.

헐떡이는 프레데리카를 다시 번쩍 들어 올린 카이온은 그녀를 엎드리게 했다. 프레데리카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욕조를 붙들었다. 카이온은 그녀의 골반을 붙들고는 남자의 페니스를 바라며 움찔거리는 밀지에 자신의 것을 가져다댔다.

핏줄이 선 시뻘건 살덩어리가 아주 천천히 프레데리카의 몸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감질날 정도로 아주 느리게 들어가는 페니스는 그것이 닿는 질 내벽의 생김새를 모조리 기억하려는 듯 굴었다. 프레데리카가 참지 못하고 허리를 돌려 졸라보았지만, 카이온은 자신의 것을 완전히 다 물도록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아아…… 왜 이렇게, 애를 태워요…….”

“그거 알아? 지금 네 몸에서 얼마나 많은 물이 흘러나오는지?”

카이온은 한 손으로 두 사람의 성기가 접한 부분을 훑었다. 손에 잔뜩 묻어난 애액을 바라보던 그가 손을 뻗어 그것을 프레데리카의 입안에 집어넣었다.

“으읍, 응!”

그녀는 사양하지 않고 열렬히 카이온의 손가락을 빨았다. 사탕을 빨 듯 기꺼이 그의 손가락을 핥고 빠는 프레데리카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묘해졌다.

손가락 마디마디를 충실하게 핥아대는 프레데리카의 혀가 마치 자신의 성기를 빨고 있는 듯 느껴졌다. 이미 단단해질 대로 단단해진 페니스에 또다시 피가 몰리는 기분이었다. 정말 요망한 여자다. 카이온은 이를 악 물며 프레데리카의 입에서 손가락을 뺐다. 그녀의 입가에서 주르르 침이 흘렀다.

그는 단단히 프레데리카의 골반을 붙잡고 세게 찧어 눌렀다.

“흐아아……!”

배를 뚫을 듯 짓쳐들어온 커다란 살몽둥이의 느낌에 프레데리카가 벌벌 떨었다. 팔이 떨려서 금방이라도 잡고 있는 욕조를 놓칠 것만 같았다. 그랬다가는 물에 얼굴을 처박을 노릇이기에 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손에 힘을 주었다.

카이온은 그녀가 손을 놓치기라도 바라는 것처럼 굴었다. 젖은 살이 부딪치는 철썩이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의 귀두가 프레데리카의 안쪽 어느 부분을 건드린 순간, 그녀는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는 걸 느꼈다.

“아으, 아! 안, 돼! 거긴, 아! 앙! 흐앗!”

“여기가, 좋지, 그래.”

“카, 카이, 제발, 아! 아앗!”

머릿속이 곤죽이 되어 뭉개져 흘러내렸다. 프레데리카는 제 안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카이온의 페니스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좀 더 안쪽을 휘저어주길 바랐다. 좀 더, 세게, 아찔할 정도로 매섭게 그녀가 느끼는 부분을 짓눌러주길 원했다.

더는 손으로 버틸 수 없던 그녀가 욕조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했다. 자꾸만 차오르는 쾌감이 찰랑찰랑하다 넘친다고 느낄 무렵, 그녀가 숨을 들이켰다.

몸이 바르르 떨리고 발가락이 곱아 들었다. 교성조차 지르지 못하는 입은 의미 없이 벌어진 채 꺽꺽대며 숨만 들이켰다. 시야가 점멸하고 귓가가 멍해졌다. 프레데리카는 자신의 몸이 이대로 물에 녹아 사라지진 않을까 했다. 하지만 쾌감이 조금 잦아들었을 무렵, 카이온이 뒤에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쓰러지면 곤란해.”

“……으아, 앙! 카, 카……이, 아앗.”

“좀 더, 느끼라고…… 흐읏……!”

점차 카이온의 몸짓에도 여유가 사라졌다. 다급하게 프레데리카의 몸을 탐하던 카이온이 자꾸만 욕조에 몸을 부딪는 프레데리카를 번쩍 들어 올렸다. 선 채로 프레데리카의 몸을 들어올렸다 내리꽂자, 그녀가 고개를 내저으며 울부짖었다.

“너무, 아, 너무 깊, 하악, 제…… 발, 싫엇……!”

“네 안은, 좋은 모양인데? 아주…… 나를 쥐어짜는군 그래.”

“아니, 아니야앗……! 흐아아앙……!”

“크윽…… 제기랄…….”

그 어떤 때보다도 격렬하게 카이온의 음경을 조여대는 프레데리카 때문에,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이제는 둘의 헐떡이는 숨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으윽……!”

뱃속을 쥐어짜는 듯한 신음을 내뱉으며 카이온이 프레데리카의 안에서 제 것을 빼냈다. 좀 전까지 물고 있던 커다란 페니스를 잃은 그녀의 꽃잎이 벌어진 채 벌름거렸다.

두 사람의 배 사이에 끼인 카이온의 것이 백탁액을 뿜어냈다. 그것은 두 사람의 가슴과 배를 흥건히 적시고는 곧 흘러내렸다. 욕조에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진 정액은 곧 물에 섞여 제 빛을 잃었다.

프레데리카는 헐떡이며 카이온의 목을 끌어안은 채 중얼거렸다.

“힘들어…… 내려줘요…….”

“아직 곤란한데.”

“뭐…… 뭐야?”

그녀는 제 배에 닿은 남자의 물건이 꿈틀대는 걸 느끼고는 화들짝 놀랐다. 아직도 안 끝났다고? 제대로 되묻기도 전에, 카이온이 그녀를 안고 욕조를 나왔다. 그는 바닥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침실로 데리고 갔다.

잠깐, 이라고 외칠 새도 없이 프레데리카는 그대로 침대에 눕혀졌다. 맹수처럼 그녀를 덮친 카이온이 프레데리카의 오른 발목을 붙잡아 올리더니 곧장 다시 발기한 자신의 성기를 밀어넣었다.

“아아아……!”

도무지 카이온과의 교합을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프레데리카는 다시 한 번 정신없이 카이온의 밑에서 흔들리다가 결국 까무룩 정신을 놓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질투는 카이온의 힘...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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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이 되도록 프레데리카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카이온은 이불에 폭 파묻힌 채 똑바로 누워 깊은 잠에 빠져든 그녀의 옆에 누운 채로 한참 있었다. 팔을 괴어 옆으로 누운 그는 프레데리카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분명 그녀의 말대로 힘을 되찾는 데만 집중하려 했다. 확실히 프레데리카를 안을 때마다 힘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이제 제법 사소한 마법은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에게 한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에 카이온은 만족스러웠다.

프레데리카가 비올렌의 냄새를 묻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방에 있어야 할 프레데리카가 없었을 때, 카이온은 그냥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루시에게서 그녀의 행선지를 들은 때부터 심장이 불길하게 뛰었다. 심장에 박힌 검날이 유난하게도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프레데리카는 그를 배신한 전력이 있는 인간이었다. 게다가 인간인지 아닌지도 불명확한, 불쾌한 존재였다. 쓸모가 있어 몸을 취하고는 있지만 힘이 돌아오기만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런데 왜 그녀가 인간의 용사라는, 그 찌끄레기를 만나러 간 사실이 이렇게나 거슬리는지.

이 집에 끌려온 이후로 처음, 카이온은 프레데리카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낯선 자의 체취를 맡았다. 그것이 비올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울화가 치밀어 참을 수 없었다.

내키는 대로 마구 프레데리카의 몸을 쑤시고 박아댔는데도 그녀는 카이온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더욱 기분이 상했다.

비올렌과 프레데리카를 나눌 생각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그녀를 취하는 건 자신만이어야 했다. 아무리 힘을 잃었다 한들, 그는 마계와 마족 위에 오롯이 군림하는 마왕이었다. 그의 소유를 타인과 나눠본 바가 없었다.

그의 손이 조심스럽게 프레데리카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긴 머리칼에 가려진 귀가 슬쩍 드러났다. 귓바퀴가 약간 뭉그러져 있었다. 원래부터 귀가 이랬던가. 카이온은 한 번도 그녀의 귀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기에, 잠깐 갸웃했을 뿐이었다.

“으음…….”

타인의 손길이 닿아서인지 프레데리카가 몸을 움직이며 작은 소리를 냈다. 카이온은 얼른 제 손을 치웠다. 프레데리카는 다행스럽게도 잠에서 깨지 않았다.

“대체, 이깟 것이 뭐라고…….”

자조적으로 그가 중얼거렸다. 카이온은 프레데리카의 머리를 쓰다듬는 대신, 머리카락 끝을 잡고 비비 꼬았다. 약간 푸석한 머리카락이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돌돌 말렸다.

프레데리카가 몸을 뒤척이더니 카이온을 향해 누웠다. 그녀의 입이 잠시 오물거렸다. 카이온은 그 입술을 당장 탐하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괴이할 정도로 그는 자꾸만 프레데리카에게 동했다.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그의 손가락이 프레데리카의 아랫입술을 눌렀을 때였다.

“……으으…….”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했다. 무슨 꿈이라도 꾸는 건지, 용을 쓰며 낑낑대더니만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 그러더니만 금방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잠버릇이 이 모양이람. 카이온은 프레데리카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힘겨운 꿈을 꾸는 듯 계속 신음을 흘리던 프레데리카가 곧 숨을 헐떡였다. 그러더니만 곧 꺽꺽대며 숨이 막혀했다. 얼굴까지 창백해지고 목을 긁어대는 프레데리카를 보며 카이온은 적잖이 당황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카이온은 급히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이봐, 일어나라고.”

그가 아무리 흔들어도 프레데리카는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손톱에 잘못 긁혔는지 목에 길게 피가 맺힌 자국이 생겼다. 카이온은 그녀가 더는 자해하지 못하게 두 손목을 붙잡아 고정시켰다. 몸부림치던 프레데리카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끅…… 끄으…….”

숨을 멈춘 채 바들바들 떨던 프레데리카가 일순간 거칠게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그녀의 숨에서 미묘하게 피 냄새가 나서, 카이온은 얼굴을 찌푸렸다.

번쩍 하고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동공이 잔뜩 확장된 채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한 프레데리카를 마주보며 카이온이 물었다.

“괜찮나? 무슨 꿈을 꾸었길래 이렇게…….”

“……꿈.”

불안하게 눈을 이리저리 돌리던 프레데리카의 초점이 제대로 돌아왔다. 그녀는 자신의 앞에 마주 누운 카이온을 보고는 안도하며 웃었다.

“꿈이었네…….”

“너, 괜찮은 거냐?”

“으응, 괜찮아요……”

점점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녀의 눈이 다시금 스르르 감겼다. 놀랍게도, 좀 전까지 고통에 몸부림치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게 프레데리카는 순식간에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카이온은 헛웃음을 지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굴더니만, 다시 잠이 들다니.

그는 프레데리카의 이불을 고쳐 덮어주고는 침대를 빠져나왔다. 셔츠와 바지를 편하게 챙겨입고 그 위에 가운을 걸친 카이온이 소리 없이 방을 빠져나갔다. 프레데리카는 그가 나간지 어쩐지도 모르는 채 계속 잠을 잤다.

이미 해가 지고 달이 높이 걸린 밤이라, 저택은 고요하기만 했다. 카이온은 계단을 내려가 건물 밖으로 나섰다.

잔디밭에 서서 머리 위로 쏟아지는 달빛을 받으며 그는 눈을 감았다.

원치 않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카이온은 빨리 이런 평온한 시간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할 일이라고는 프레데리카와의 통정 외에는 없는, 이 지긋지긋한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한참 그렇게 서 있는데, 정원 저편에서 인기척이 났다. 카이온은 그 방향을 향해 눈을 돌렸다.

달빛에 드러난 상대의 모습은 그가 익히 아는 자의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장 8년을 보아온 자였다. 누구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더 이상했다.

상대 또한 카이온의 모습을 보았는지 그 자리에서 주춤하더니만, 곧 맹렬히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하, 이거.”

카이온의 목소리에 비아냥대는 기운이 가득했다.

“불세출의 영웅 아니신가?”

“네놈은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이 늦은 시간에 약속도 없이, 숙녀의 집에 막 찾아오다니. 예의가 없군.”

“너와는 할 이야기가 없으니 저리 비켜.”

바짝 날을 세운 비올렌이 으르렁대며 카이온을 스쳐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마왕은 한 발짝을 옮겨 비올렌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두 사람의 눈이 사납게 맞부딪쳤다.

“뭐 하는 거지? 꺼지라고!”

“그건 곤란한데. 약속은 했나? 아, 그보다 프레데리카는 자고 있어서 말이야.”

“감히…… 그 더러운 입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마!”

“프레데리카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데, 왜 네가 이래라 저래라 하지? 어쨌든 지금 그녀는 자고 있어서 널 볼 수 없을 거다.”

자신을 향해 이를 가는 비올렌을 느긋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카이온은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분명 상대가 화를 낼 만한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었다.

“오늘 낮에 더러운 냄새를 묻히고 와서, 내가 친히 깨끗이 닦아줬거든. 지쳐 곯아 떨어지도록 말이야.”

“이…… 저주받은 마물 새끼가!”

비올렌은 허리춤에 찬 검을 빼 들고자 자신의 허리춤을 더듬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프레데리카를 만나러 오는 길이었기에 무기 따위는 들고 오지 않은 때문이었다.

분한 마음으로 비올렌은 카이온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카이온은 코웃음을 쳤다.

“여기서 날 베면, 그녀가 참 좋아라 하겠군 그래.”

“닥쳐!”

정원에 비올렌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카이온은 눈살을 찌푸리며 코웃음을 쳤다. 저 목소리에 아무래도 프레데리카가 깰 것 같았다. 아까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자, 저 천둥벌거숭이가 시끄럽게 구는 게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이온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나지막하게 경고했다.

“너, 그만 떠드는 게 좋겠어.”

“너야말로 그 입……!”

“악몽에 시달리다가 다시 잠들었단 말이다. 네 녀석의 목소리에 깨길 바라는 거냐?”

마왕의 경고에 비올렌은 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순순히 목소리를 낮췄다. 그 역시 프레데리카가 잠에서 그런 식으로 깨길 원하진 않았다.

“……알았으니 비켜, 마왕.”

“무슨 일로 왔는지나 들어보지.”

“네게 알려줄 필요가 없는 이야기야!”

“아아, 나는 저 주인님의 손에 목줄이 채워진 충실한 번견이라서 말이지.”

키득키득 웃으며 카이온은 제 목을 조이는 가죽 목걸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느슨하게 풀어 헤쳐진 옷과 목에 채워진 목걸이 때문인지, 마왕은 매우 퇴폐적으로 보였다.

저런 자와 있으니, 순수한 프레데리카가 물든 거다. 비올렌은 그녀가 ‘이상한 행동’을 한 이유가 다 마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카이온과 더 이상 입씨름을 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는 비올렌이 꼭지가 도는 꼴이 보고 싶은 것뿐, 그와 진지한 대화를 할 생각이 있는 게 아니었다. 비올렌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비올렌은 거칠게 카이온을 밀치고 걸음을 옮겼다. 의외로 순순히 카이온은 옆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곧 비올렌의 뒤에 바짝 붙어 그를 따라 걸었다.

비올렌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프레데리카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방 앞에 선 비올렌은 노크를 하려다 머뭇거렸다. 뒤에서 카이온이 비웃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대체 이 밤에 잘 자는 사람을 깨워서 할 만한 중요한 이야기가 뭐야?”

빈정거리는 말에 대꾸하지 않고 비올렌은 숨을 골랐다. 그는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세 번 두드리고 나서 비올렌은 문 너머에서 들려올 허락을 기다렸다.

놀랍게도, 노크가 끝나자마자 프레데리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비올렌.”

비올렌은 흘끔 뒤를 돌아보았다. 약간 짜증이 난 듯한 얼굴의 카이온을 보며 비올렌은 빙긋 웃어 보였다. 아무리 마왕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 해도, 여전히 프레데리카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비올렌 자신이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카이온이 얼른 그 뒤에 따라붙었다.

침대에서 몸을 반쯤 일으킨 채 흐트러진 머리를 땋고 있던 프레데리카가 방으로 들어오는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신 위에 가운을 걸친 채였는데, 단단히 여며 묶지 않은 탓에 벌어진 옷깃 사이로 뽀얀 가슴이 훤히 다 드러난 채였다. 비올렌은 얼굴을 붉히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프레데리카는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카이온에게 명령했다.

“당신은 나가요, 카이온.”

“뭐?”

“비올렌과 단 둘이 이야기할 건데? 당신이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당신 방으로 돌아가요.”

대체 뭘 바랐던 거지. 카이온은 모욕감에 이를 갈며 프레데리카를 노려보다가, 몸을 홱 돌려 방을 나가버렸다. 문이 사납게 닫혔다.

마침내 단 둘이 방에 남게 되자, 프레데리카는 예쁜 미소를 지으며 비올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너무나도 여상한 인사말이 흘러나왔다.

“어서 와, 비올렌. 좋은 밤이야.”

“……늦은 밤에, 미안해. 하지만……!”

“할 얘기가 있으니 왔겠지. 와서 앉아.”

그녀는 제 옆자리를 통통 두드렸다. 거기는 프레데리카의 침대였기에, 비올렌은 눈을 굴리며 고민에 빠졌다. 결국 그는 프레데리카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진 침대 발치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작품 후기 ==========

(의외로)순진한 댕댕이가 제 발로 프레데리카를 다시 찾아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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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게 비올렌이 내외하는 이유를 알 만해서 프레데리카는 굳이 그에게 왜 그러느냐 묻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조금 더 친구 쪽으로 다가가 앉았다.

프레데리카가 다가가자 비올렌은 바짝 얼어붙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슬슬 움직여 거의 침대 끝까지 물러나 앉았다.

저러다 떨어지겠네. 프레데리카는 친구의 안전을 생각해 놀리는 짓은 그만두기로 했다. 생긋 웃으며 그녀는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겼다. 다정한 목소리로 비올렌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서 할 이야기는 뭐야?”

“으, 으응?”

“이렇게 늦은 시간에 숙녀의 방에 무작정 찾아오다니. 후작 각하께서 예의를 모르는 분은 아닐 테고……. 그럼 뭔가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하러 온 거 아니야? 아까 너도 그렇게 말했잖아.”

그러니까 어서 해보렴. 그녀는 팔을 앞으로 짚어 비올렌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열심히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었지만, 복장이 영 글러먹은 채였다. 낙낙한 가운의 앞섶은 더욱 벌어져서 이제 한쪽 가슴은 그냥 흘낏 보기만 해도 붉은빛 유두와 동그란 가슴을 충분히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비올렌은 한껏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좀 더 정돈된 분위기에서 제대로 자신의 뜻을 전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뻔뻔스럽게 굴 수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주변에 프레데리카 외에는 여성인 친구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데다가, 이제 막 그녀에 대한 감정을 자각한 터였다.

자꾸만 다리 사이가 묵직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는 그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다리를 꼬고 고개를 돌렸다. 헛기침을 하며 목을 일부러 가다듬은 비올렌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을 해봤어. 그러니까…… 어쨌든 나는, 프레데리카, 네가 이 상태로 지내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해.”

“아하. 그래. 그럼 어떡하지? 이미 마왕은 데려왔고, 그냥 죽이자니 그의 목을 노리는 각국의 왕들과 신전의 눈치도 보이고. 또 나는 나름대로 만족스럽거든.”

가장 마지막의 조건이 비올렌의 가슴을 쥐어짜듯 아프게 했다. 조금만 더 일찍 프레데리카의 생각을 알았더라면, 애초에 신전에서 그녀가 혼자 떠나지 못하게 잡기만 했더라면. 이런 불상사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비올렌은 이 모든 게 다 자신의 탓으로 느껴졌다.

눈이 가려진 프레데리카를, 친구로서, 또 연모하는 사람으로서 뭔가 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이곳까지 온 터였다. 비올렌은 그런 의무감으로 가득 차서, 프레데리카에게 폭탄을 던졌다.

“나랑, 결혼하자.”

그 말을 들은 프레데리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조차 깜빡이지 못한 채로 비올렌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비올렌이 빠르게 말을 주워섬겼다.

“네가 마왕과 어떤…… 그러니까, 관계가 있다는 걸 누군가가 알면 네 입장이 굉장히 곤란해질 거야. 하지만 적어도 내가 네 남편으로 있으면 일단 그런 의심을 하기 어려울 거고……. 그리고 너 혼자서 마왕을 감시하고, 그런 것보다는 내가 함께 하는 게 훨씬 쉬울 거라고 생각해.”

“…….”

“나는, 네가 그자와 계속 가까이 지내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게 아닌지 걱정도 되고……. 어, 그러니까……. 너와 내가 안 시간이 길고 그렇다 보니, 갑작스럽지만 혼인을 한다고 발표한다 한들,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비올렌 코카네스.”

담담하게 불린 자신의 이름에 비올렌은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며 몸을 바로 했다. 프레데리카가 그렇게 자신을 부를 때는 보통 한 가지 경우였다. 그녀가 자신의 스승으로 있으면서, 무언가 비올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프레데리카는 이제 완전히 어이가 없는 얼굴로 비올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어린 미약한 경멸과 짜증에 그는 마음에서 피가 흐르는 기분이었다.

오로지 그녀를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었는데, 이렇게 언짢아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고개를 수그리려다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자신이 못할 제안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강력한 부군의 존재만큼 여성을 안전하게 지키는 수단도 없었다.

누군가가 프레데리카가 저지른 ‘부정’을 알게 되었을 때, 비올렌이 남편으로서 그런 일은 없었다고 강변한다면 누구도 쉽게 그녀에게 손을 댈 수 없었다.

이미 저질러진 일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그만두고, 자신이 그것을 모두 덮어둔다면 앞으로 마왕의 처분이 결정날 때까지 불안할 일도 없을 것이었다. 비올렌은 그래서 자신이 한 말을 당연히, 프레데리카가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햇다. 또한 자신의 선의도 알아주리라 여겼다.

그래서 그는 똑바로 프레데리카를 바라보았다.

비올렌의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태도가 프레데리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로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말했다.

“내가 네 방에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하고 있니? 내 제자가 이렇게 기억력이 형편없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하지만 프리카, 누군가가 네가 한 일을 알게 된다고 생각해 봐. 그땐 돌이킬 수 없어!”

“상관없어. 난 네가 지켜야 할 존재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되새겨 주어야 하니?”

뾰족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그의 제안을 거절한 프레데리카는 대놓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태도에 비올렌은 마음이 아팠다. 그가 알던 프레데리카가 아닌 것만 같았다.

그녀가 마왕의 품에 안겼던 바로 그날부터, 비올렌은 가장 소중한 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자상하고 따스한 그의 스승이자 친구는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정말 내가 알던 프레데리카가 맞는 걸까?

가슴이 휑하게 뚫려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는 듯했다. 어떤 말로 설득한다 해도 프레데리카는 그의 염려를 염려로 받아들일 의지가 눈곱만큼도 없는 게 분명했다. 이러다가는 정말 완전히, 그녀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다시는 프레데리카의 얼굴을 마주하고 마음 편안하게 웃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전쟁이 끝나기만 하면, 8년 전과 마찬가지로 프레데리카와 함께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며 고통 없이 과거를 되새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피비린내 나던 전장이 이곳까지 이어질 수 있단 말인가. 코카네스에서조차, 비올렌은 마왕과 싸워야 했다. 아니, 마왕을 비호하는 프레데리카에 맞서야 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비올렌은 갑자기 눈물이 울컥 치미는 걸 느끼고 눈에 힘을 잔뜩 주었다. 턱이 자글자글해지면서 떨려 왔다. 이러다가 프레데리카의 앞에서 울어버리는 사태가 일어나 버릴지도 몰랐다. 그녀 앞에서 어린 애처럼 구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그가 고개를 홱 돌리고 벌떡 일어서는데, 프레데리카가 쿡쿡 웃더니 물었다.

“비올렌, 지금 우는 거야?”

그렇지 않다고, 나한테 상관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나도 유치한 짓거리였으니까.

그냥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에서 자신이 물러나면, 프레데리카를 붙들 기회는 영영 사라질 것만 같았으니까.

등 뒤에서 사륵사륵하고 이불이 눌리고 밟히는 소리가 들렸다. 비올렌은 자신의 등 뒤로 다가오는 여자의 인기척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의 등에 거의 붙듯 선 프레데리카의 체온이 느껴지자, 비올렌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새 주책맞은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르 뺨을 타고 흘렀다.

프레데리카는 검지로 그의 등에 작은 동그라미를 천천히 그렸다. 연신 움직이는 손가락을 따라 비올렌의 모든 감각이 이리 쏠리고 저리 쏠렸다.

“이렇게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직도 울보네, 레니.”

“…….”

비올렌의 겨드랑이 사이로 마치 뱀처럼, 프레데리카의 두 팔이 스르르 파고들었다. 그녀의 나긋한 몸이 뒤에 바싹 붙어오자, 비올렌은 또다시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꼈다. 걸친 것이 거의 없는 그녀의 부드러운 몸이 은근히 그의 몸에 부비었다.

“울지 마. 널 울리려던 건 아니었는데.”

“……나는, 정말로 프리카 널 생각해서…….”

“쉬이. 그래, 알았어. 하지만 너무 성급한 제안이야. 그리고 성급하지 않더라도 내 대답은 아니오야. 결혼 같은 거 할 생각 없으니까.”

“대체 어쩌려고 그래…….”

한숨과 떨림이 섞인 불안한 목소리로 비올렌이 물었다. 프레데리카는 그의 등에 이마와 코를 문대며 속삭였다.

“그러게. 어쩌지.”

“프레데리카, 혹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비올렌은 이를 악물고 물었다.

“너, 마왕을…… 마음에 두었어?”

“그래 보여?”

프레데리카의 손이 비올렌의 몸을 붙들고 천천히 돌렸다. 마침내 마주 보고 선 두 사람의 얼굴은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소리 없이 눈물을 떨어트리고 있는 비올렌과 달리, 프레데리카는 평온함 그 자체였다.

작은 손이 남자의 양 뺨을 쓸어내렸다. 손바닥이 축축해질 정도로, 비올렌은 울고 있었다. 프레데리카는 다시 한 번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울리려던 게 아니었는데, 정말. 그래서 상관하지 말라고 한 건데.”

“……그 마물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면, 프리카.”

“으응?”

“그럼 내가 네 연인이 되게 해줘. 아니 연인 행세를 하게 해줘.”

“하아, 비올렌…….”

“난 그렇게 해서라도 널 지키고 싶어. 네가 다치는 건, 죽어도 보고 싶지 않아.”

“…….”

“나는, 널 사랑해.”

눈물 어린 고백에 이어 강인한 두 팔이 그녀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비올렌은 프레데리카의 정수리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댔다.

친구의 가슴에 뺨을 댄 채 있으려니 심장 소리가 쿵쿵 세차게 들려왔다. 프레데리카는 한숨을 폭 쉬고 물었다.

“하지만 난 카이온이랑 계속 할 건데.”

“……그래도, 괜찮아.”

“사랑한다며. 어떻게 견디려고?”

“넌, 날 사랑하지 않겠지?”

“응.”

비올렌은 차마 프레데리카의 얼굴을 보고 그 말을 할 자신이 없어서 더 꼭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럼 사랑하지 않는 나도 똑같이 안아줘.”

“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야.”

“어차피 애정 없이 갖는 관계라면, 상대가 하나든 둘이든…… 문제없잖아.

그녀는 자신의 친구가 뻔뻔하든가 정신이 나간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미약하게 떨리는 그의 몸을 느끼고는 그런 추측을 접었다. 대체, 어떤 식으로 생각하면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걸까. 프레데리카는 정말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비올렌의 제안이 썩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고이 마음에 지닌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 사람을 더 이용할 수 있다면, 달성까지 걸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터였다.

다만 조금이나마 정을 준 비올렌을 이용하는 꼴이 되어서 조금 저어될 뿐이었다.

“비올렌, 나 좀 봐 봐.”

그녀가 살짝 밀어내며 부탁하자, 비올렌은 의외로 순순히 팔을 풀었다. 눈물에 젖은 얼굴이 처연했다. 어쩐지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프레데리카는 조금 가슴이 뛰었다. 그녀는 짐짓 매정하게 그를 얼렀다.

“나중에 가서 후회해도 난 몰라.”

“후회 같은 거 안 해.”

“그래? 그럼…….”

프레데리카의 입술이 아름다운 호선을 그렸다. 산뜻하게 열린 입이, 이제 막 프레데리카의 가짜 연인 행세를 하기로 한 남자에게 나긋하게 속삭였다.

“내 앞에 무릎 꿇을 수 있어?”

지금 당장.

                                                            

========== 작품 후기 ==========

저는 착하고 순진한 사람 괴롭히는 게 좋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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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슬픔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중이던 비올렌은 프레데리카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듯 그의 몸은 명령에 따랐다.

누구에게도 무릎 꿇은 적 없던 비올렌이었다. 하지만 그의 무릎은 털썩, 하고 곧장 바닥에 처박혔다. 쿵 하고 커다란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린 그의 시선이 단박에 프레데리카보다 아래로 내려갔다.

간헐적으로 흐느끼는 와중에도 그의 눈은 정확히 프레데리카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울음의 잔재에 바르르 떨리는 분홍빛 입술을 엄지로 천천히 훑은 그녀가 생긋 웃었다.

“착한 아이네, 비올렌.”

“……프리카.”

“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였지. 그래서 예뻤어.”

나른한 얼굴로 프레데리카는 한참 비올렌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손길을 느끼며 비올렌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 손이 닿는 곳마다 불이 이는 듯했다.

길이 잘 든 야생 늑대를 앞에 둔 기분이었다. 프레데리카는 이렇게나 순순히 제 말을 따르는 비올렌이 안쓰러웠다. 내가 뭐라고. 앞으로 살면서 네가 만날 이가 얼마나 많은데, 나 하나 때문에 뭐든 감내하겠다고 드는지.

그녀는 다시 한 번 비올렌에게 기회를 줄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곧 그만두었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얘를 배려해야 하는데? 비올렌이 온 생애 동안 겪었고 앞으로 겪어야 할 슬픔의 양보다, 그녀가 견뎌내야 했던 슬픔이 훨씬 거대했다.

어차피 나를 사랑한다고 하니, 나의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밑거름이 된다 해도 억울해하지 않을 거야. 프레데리카는 아주 빠르게 비올렌을 이용하는 자신을 합리화했다.

손가락을 머리카락 사이로 넣어 쓰다듬자, 비올렌이 낮은 소리로 신음했다. 프레데리카의 손길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프레데리카는, 비올렌을 즐겁게 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되도록 그가 좌절하고 절망해서, 마침내 그녀를 원망하고 비난하길 바랐다. 그녀가 죽기를 소망하길 바랐다.

비올렌에게서 손을 떼자,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그가 천천히 눈을 다시 떴다. 어느새 눈물의 흔적은 사라진 뒤였다. 대신 그의 눈에는 감출 수 없는 욕망의 흔적이 보였다.

그 눈에서 자신의 눈을 떼지 않은 채, 프레데리카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몇 걸음 가지 않아 그녀는 자신의 침대에 앉았다.

손을 들어 손짓하며, 다정하게 그를 불렀다.

“이리 와, 레니.”

프레데리카의 부름에 비올렌이 벌떡 일어서려 하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무릎걸음으로 오라는 뜻이었다. 잠시 머뭇대던 비올렌은 그녀의 뜻을 알아채고는 다급히 그녀의 앞까지 무릎을 끌며 기어왔다.

그녀를 바라보는 비올렌의 눈빛에는 ‘칭찬해 달라’는 메시지가 가득했다. 그것을 빤히 읽어놓고도 프레데리카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말로써 치하하지 않았다. 겨우 이 정도를 해 놓고 칭찬을 바라다니, 비올렌도 참 귀엽네. 다만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대신 그녀는 다른 방식으로 칭찬을 해 주기로 했다.

두 발과 무릎이 천천히 양쪽으로 벌어졌다. 프레데리카가 다리를 벌리자, 비올렌의 눈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런 비올렌을 보며 쿡쿡 웃은 그녀는 어설프게 다리 사이를 가리고 있던 가운을 손으로 걷어 치웠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그녀의 음부가 고스란히 비올렌의 눈앞에 전시되었다. 단박에 비올렌의 얼굴과 목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차마 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똑바로 응시하지 못하고 눈을 옆으로 돌렸다.

“내 충실한 친구, 비올렌. 내 말을 잘 들어서 참 예쁘다.”

“프, 프레데리카. 옷을…… 대체 왜…….”

“너는 똑똑한 학생이었으니까 내가 뭘 하고 싶은 건지 알 거야. 이건 말 잘 듣기로 한 네게 주는 상이야.”

안쓰러울 정도로 벌벌 떨기 시작한 비올렌의 어깨에 양손을 얹고 프레데리카는 몸을 기울였다.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비올렌의 귓가로 다가왔다.

숨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녀가 속삭였다.

“핥아, 비올렌.”

가지런한 치아가 가볍게 그의 귓불을 물었다. 비올렌의 몸이 파드득 떨었다.

“내가 만족할 때까지.”

말을 마친 프레데리카는 여유롭게 몸을 일으키고는 손을 뒤로 짚어 느긋하게 기댔다. 어디 한 번 해 보라는 듯이.

생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프레데리카의 가장 은밀한 부위와 마주하게 된 비올렌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짚고, 조심스럽게 머리를 떨어트렸다.

이미 반드르르하게 젖어 반짝이는 비부에 그는 천천히 입술을 가져다 댔다. 마치 입맞춤이라도 하듯 경건한 태도였다. 그의 뜨거운 숨이 입술보다 먼저 닿았다. 프레데리카의 허벅지가 살짝 떨렸다.

상대방이 긴장한 만큼 그녀 역시 꽤 긴장한 상태였다. 그런 곳에 남자의 뜨거운 숨이, 이어 말캉한 입술이 닿자 눈앞이 아찔했다. 그녀의 입에서 만족감이 어린 탄식이 터졌다.

아마도 자신의 행동이 마음에 든 듯한 반응이 나오자, 비올렌은 조금 더 용기를 냈다. 혀로 길게 아래에서부터 위로 주욱 핥아 올렸다. 맛본 적 없는, 약간 새큼한 프레데리카의 애액이 혀에 감겼다. 그것은 마치 미약과도 같아서, 비올렌은 자신이 단박에 흥분한 걸 느꼈다.

한 번도 제대로 여자의 아랫도리에 얼굴을 묻어본 적이 없었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만 같았다. 도톰한 살 사이로 혀가 파고들었다. 그 안에 자리 잡은 말랑하고 작은 살을 집요하게 빨고 핥았다.

“흐…… 으읏……. 좀, 더…….”

프레데리카의 충실한 종이 된 듯, 비올렌은 그녀의 명령에 따랐다. 잠시 자신의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밀지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는 그 안에 붉게 달아올라 튀어나온 가장 민감한 부위를 사탕 빨 듯 굴리고 핥았다.

저릿저릿한 전류가 그 부분에서부터 뱃속 깊은 곳으로 퍼져나갔다. 프레데리카는 할딱이며 한 손을 뻗었다. 결 좋은 초콜릿 빛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새하얀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그녀는 그것을 힘주어 쥐고는 조금 내리눌렀다.

비올렌은 기쁜 마음으로 더욱 열렬히 그녀를 탐했다.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끝부분을 이로 살살 누를 때마다, 프레데리카의 입에서는 연신 달콤한 교성이 터졌다. 비올렌이 혹시라도 그녀가 아파하는 게 아닐까 걱정한 것과 달리, 프레데리카는 쾌감으로 범벅이 되어 녹진녹진 녹아내리고 있었다.

진한 프레데리카의 향기에 비올렌은 취하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바지속에서 그의 페니스가 자신의 존재감을 아주 심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뻐근할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의 욕구를 푸는 것보다, 프레데리카가 기뻐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뾰족하게 세운 혀끝이 안으로 파고들어 연약한 속살을 헤집어대자, 프레데리카가 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아아, 읏…… 하아앗……!”

눈앞이 하얘지면서 엉덩이가 들썩였다. 그녀에게 찾아온 절정을 놓치지 않고, 비올렌은 더욱 바쁘게 혀를 움직였다. 절정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연달아 그녀의 몸을 거세게 때리는 쾌감에 프레데리카는 몸을 단단히 웅크린 채 비올렌의 머리를 양손으로 꽉 붙들었다.

바들바들 떠는 그녀의 몸 안에서 울컥하고 음란한 향 가득한 애액이 줄줄 흘러나왔다.

“하윽, 흐, 으읏…….”

미련이 남은 듯한 손길이 비올렌의 머리를 밀어냈다. 그는 순순히 프레데리카의 손이 시키는 대로 고개를 들었다. 그 자신의 타액과 프레데리카의 애액이 질척하게 묻은 입술을 보며 프레데리카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런 프레데리카를 올려다보며 비올렌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자신은 도저히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애욕에 달아 발그레해진 볼과 쾌락에 젖어 촉촉해진 눈, 얼마나 깨물었는지 붉게 부어오른 입술 모두가…… 도저히 비올렌은 그녀를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잘했다는 듯 비올렌의 뺨을 톡톡 두드린 프레데리카는 심하게 자기 과시 중인 비올렌의 하반신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부끄럽게 발기해버린 자신의 물건을 보자, 비올렌은 저도 모르게 다리를 오므렸다.

하지만 그녀의 발이 비올렌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어서는 밀어내 벌렸다. 불룩하게 튀어나온 바지춤을 만족스럽다는 듯 응시하던 프레데리카가 말했다.

“그거, 꺼내 봐.”

“아, 아니…… 프레데리카, 이건…….”

“얼른.”

내 말 들어야지. 그녀의 목소리에는 비올렌이 절대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그는 한 번도 바지를 벗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삐걱대며 옷 속에 숨겨져 있던 음경을 꺼냈다.

카이온의 것과 비교해도 큰 차이 없을 정도로 커다란 살덩어리가 툭 튀어나와 흔들렸다. 피가 몰려 검붉게 변한 그것에는 군데군데 핏줄이 서 있었다. 그 첨단에서는 투명한 물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저것을 당장에라도 안에 집어넣고 싶었다. 프레데리카는 제 아랫도리가 근질거리는 걸 느꼈다. 안에서 뜨끈한 기운이 퍼지고, 또다시 음란한 물이 꿀렁대며 나왔다. 저 커다란 양물을 안에 잔뜩 머금고 싶었다. 그가 제 안에 사납게 부딪쳐오는 걸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 그녀는 인내심과 자제력을 완전히 발휘하기로 했다.

앙증맞은 발가락이 번들거리는 귀두를 살살 쓰다듬었다. 작은 자극만으로도 단박에 흥분이 올라오는지, 비올렌이 얼굴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렸다. 마치 짐승이 으르렁대는 듯한 그 소리가 마음에 들었던 프레데리카는 아예 발로 그의 첨단을 짓눌렀다.

“크읏…… 프레, 프레데…… 이러지, 마…….”

“참을 수 있지? 우리 착한 레니.”

그녀의 발이 마치 머리를 쓰다듬듯 그의 물건을 어루만졌다. 그냥 건드리기만 해도 당장 절정에 달할 것만 같은데, 프레데리카는 잔인하게도 비올렌에게 참으라고 했다. 그는 완전히 찡그린 얼굴을 하고 숨을 헐떡였다. 커다란 손이 발발 떨며 프레데리카의 발을 붙들었다. 그것도 세게 잡지도 못하고, 거의 얹다시피 한 거였다. 하지만 그녀는 냉정하게 쏘아붙였다.

“손 치워. 내가 만지고 있잖아.”

“으윽, 앗…… 아, 안, 프레, 프리카, 나, 흐윽! 아!”

“기다려, 응?”

비올렌의 눈에서 눈물이 또다시 뚝뚝 떨어졌다. 프레데리카의 발을 붙들지 못해 갈 곳을 잃은 손이 허공에서 공기를 꽉 쥐었다가, 제 허벅지를 우악스럽게 쥐어짰다.

너무 괴로워……. 그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심장 박동에 맞춰 그의 페니스도 정신없이 꺼떡댔다. 프레데리카는 아예 양발 사이에 단단해질 대로 단단해진 것을 끼우고 문지르고 누르기 시작했다.

제 발 사이에 붙들린 채 울며 애원하는 비올렌을 보고 있자니 프레데리카는 알 수 없는 고양감이 가슴을 가득 채우는 걸 느꼈다. 그가 좀 더 애원하고, 울고, 괴로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앞에서 수치심에 몸을 떨며 그녀를 원망하길 바랐다.

이제는 투명하지만은 않은 액체마저도 양물에서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의 한계인 모양이었다. 프레데리카의 발에 묻은 비올렌의 씨물이 끈적하게 그녀의 발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일부러 힘을 주어서 비올렌의 페니스를 발로 꽉 밟았다. 아래로 잔뜩 굽어진 채 작은 발 아래에 짓뭉개지는 거대한 양물이 결국 울컥하고 참고 있던 정액을 토해냈다.

“으흐, 아! 안, 안 돼, 더…… 더는…… 흐윽!”

반쯤 흐느끼면서 비올렌은 반사적으로 프레데리카의 무릎을 짚었다. 파정하는 중에도 기세가

가라앉지 않은 그의 페니스가 프레데리카의 발 아래에서 튀어올랐다. 허연 정액이 그녀의 발과 종아리에, 그리고 바닥에 흩뿌려졌다.

“하아…… 하…… 으윽, 으, 하윽…….”

“아, 이런. 기다리라 했는데.”

“……미, 안해, 읏…….”

“닦아줘.”

프레데리카는 정액에 얼룩진 제 발을 그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는 열렬히 그녀의 발과 다리에 묻은 자신의 체액을 핥았다. 정말로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부 핥아 먹는 비올렌을 프레데리카가 환한 웃음을 띤 채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녀의 몸이 다시 깨끗해지자, 프레데리카는 천천히 자신의 침대로 꿈틀꿈틀 기어올라갔다. 아직 남아 있는 흥분감에 붉어진 얼굴로 약간 가쁘게 숨 쉬고 있는 비올렌은 그런 프레데리카에게 무언가 바라는 양 그녀를 계속 눈으로 좇았다.

이불 속으로 파고든 프레데리카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제 돌아가. 내가 부를 때까지 오지 마.”

“프레데리카…….”

“가짜 연인 놀이를 밤새 할 순 없잖아? 어서 가. 나 이제 좀 피곤해.”

한껏 처진 어깨로 주춤거리며 일어선 비올렌은 몸을 모로 돌린 채 제 아랫도리를 정리하고 바지를 제대로 입었다. 그는 미련이 남은 목소리로 “잘 자.”하고 인사를 건네고는, 그녀의 방에서 나갔다.

멀어지는 발걸음을 확인한 프레데리카는 머리 맡에 놓인 램프의 불을 후 불어 껐다. 어둠이 찾아온 방에서 그녀는 만족감 가득한 얼굴로 잠에 빠져들었다.

                                                            

========== 작품 후기 ==========

제가 비올렌을 매니 귀여워한다는 걸 알아주십시오...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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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볼세라 비올렌은 소리소문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제 몸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자신의 방에 돌아온 그는 문을 닫자마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점차 머리가 차가워지자,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깨달았다. 튀어나올 듯 커진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의 스승이며, 어릴 적부터 쭉 이어온 인연이며 친우인, 또한 우러러 존경하고 사모하는 프레데리카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완전히 흐트러진 모습의 프레데리카가 직접 다리를 벌리고 가운을 걷어내는 그 모습이 눈동자에 문신이라도 된 듯 떨어지질 않았다. 그녀가, 그럴 리가. 프레데리카가 그런 사람일 리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비올렌은 자신이 얼마나 프레데리카를 몰랐는지 깨달았다. 또 자신이 상상하는 대로 그녀를 끼워 맞춰 생각하고 계속 그러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지도 알았다. 환상이 와장창 깨져나간 이 밤이 충격적이긴 했지만, 묘하게도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 더 그녀와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아니, 실제로 가까워진 게 아닐까. 몸을 나누는 사이가 결코 피상적인 관계일 수는 없지 않은가. 적어도 저 저주받을 마왕보다는 자신이 훨씬 프레데리카에 대해 더 잘 알고 가까운 사이라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고 비올렌은 믿었다.

비록 가짜 연인 행세를 하겠다고는 했지만, 언젠가 그녀가 자신의 진심을 알아줄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프리카…….”

프레데리카의 애칭을 입에 올린 것뿐인데, 다시금 아랫도리가 빳빳하게 고개를 쳐드는 게 느껴졌다. 그는 끙, 하고 신음을 흘리며 급히 바지춤을 풀어헤쳤다. 우악스럽게 제 물건을 손으로 쥐어 감싸고는 정신없이 흔들었다.

헐떡이는 숨결 사이로 연신 프레데리카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아직도 그녀의 발가락이 페니스를 가지고 장난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 밤이 새도록 몇 번이나 혼자 절정에 달했다. 매번 절정의 끝에는, 황홀한 얼굴로 웃으며 전율하는 프레데리카의 얼굴이 있었다.

그 뒤로도 비올렌은 시도때도 없이 프레데리카를 떠올리며 혼자 흥분한 몸을 달래곤 했다. 손에 묻어나는 끈적한 정액은 싫었지만, 도무지 그녀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믿을 수 없는 밤을 보내고 닷새가 지났다.

그 사이에 비올렌은 코카네스 후작령의 새로운 후작으로서 충실히 제 할 일을 해나갔다. 그 전에는 어딘가 묘하게 그늘져 있던 얼굴이 깨끗하고 맑게 변한 채로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드디어 전쟁의 피로가 가셨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 닷새째에 프레데리카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지에 돌아온 줄도 몰랐던 현자가 갑작스럽게 나타나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녀가 마왕을 굴복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소문이 이미 영지에 파다했다. 영지민들은 프레데리카를 향해 연신 환호를 올렸고, 그녀는 수줍은 얼굴로 고개만 꾸벅꾸벅할 뿐이었다. 참으로 겸손한 분이라며 사람들은 그녀를 칭찬했다.

공식적으로 대외 활동을 시작한 프레데리카가 향한 곳은 코카네스 저택이었다. 그녀는 곧장 비올렌을 찾았다.

프레데리카가 왔다는 소식에 비올렌은 하던 일을 다 내팽개치고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뛰어나왔다. 환한 얼굴의 남자가 쏜살같이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걸 보며 프레데리카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프레데리카! 왔구나!”

그가 와락 자신을 끌어안자, 프레데리카는 어머, 하고 작게 놀라움의 탄성을 흘리더니만, 곧 까르르 웃었다. 그 웃음을 들은 비올렌은 함박웃음을 지은 채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프레데리카는 그 입맞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비올렌은 정중하게 프레데리카의 손을 잡고는 자신의 집무실로 에스코트했다. 프레데리카는 기꺼이 그가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친구와 하는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과한 감이 있어서, 두 사람을 보는 저택의 사용인들은 저마다 수군댔다. 8년이면 정분이 나기에 충분한 세월 아니냐며 더 큰 미래를 점치기도 했다. 영웅과 현자의 결합이라는 놀라운 경사를 기대하며 벌써부터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설레발을 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뒤에서 무어라 찧고 까부는지는 알지 못하는 채로, 비올렌은 그저 기쁜 마음으로 프레데리카를 안내했다. 자신의 공간에, 그녀와 단 둘이 있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여기가 내 집무실이야.”

“아아, 네 방 옆에 있던 공부방을 바꿨구나.”

워낙 코카네스 저택이 익숙한 프레데리카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둘러보았다. 칭찬받길 바라는 강아지처럼 비올렌은 그녀의 뒤를 졸졸 쫓았다.

워낙 크지 않은 방에, 집기도 단촐한 편이었기에 프레데리카는 금방 구경을 끝내고는 소파에 앉았다. 맞은 편에 앉은 비올렌이 채 입을 열기 전에, 노크소리가 들렸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한 하녀가 다과를 준비해 들어왔다. 그녀는 두 사람을 눈치껏 살피면서 차와 간식을 내려놓았다. 프레데리카는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올렸다. 가볍게 향을 맡은 그녀는 한 모금을 마시고는 상냥한 얼굴로 말했다.

“맛있네요.”

“네, 네에! 감사합니다!”

저렇게 친절하고 예쁜 현자님이 미래 우리 안주인이 되신다니! 하녀는 혼자 생각으로 흥분해서는 상기된 얼굴로 방을 나갔다.

달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 프레데리카는 곧장 잔을 내려놓았다. 아까 하녀에게 보였던 얼굴 그대로이긴 했지만 어딘가가 만들어진 것처럼 어색하게 보였다.

그런 차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비올렌은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프리카, 보고 싶었어.”

“그랬니?”

“네가 여기 와서, 내 앞에 마주 앉아 평화롭게 차를 마시는 게 너무 신기하고 꿈같아. 얼마 전만 해도 우리는 피비린내가 안 나는 곳이 없는 황무지에 있었잖아.”

“내 생각 많이 했어?”

“당연하지!”

비올렌의 목소리가 한껏 커졌다. 그의 양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자신이 너무 큰 소리를 낸 게 민망했던 그는 수줍은 얼굴로 목소리를 낮추며 고백했다.

“내가,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래?”

귀엽네, 하고 작게 속삭이는 프레데리카의 목소리에 비올렌은 거의 온몸이 불에 타듯 새빨개졌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작게 신음했다.

한 번 자각하고 나니까, 그녀를 마주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커서, 주체가 되지 않았다. 질주하는 말처럼 뛰어대는 심장소리가 프레데리카에게 들리지나 않을지,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열 내며 부끄러워하는 비올렌을 바라보던 프레데리카는 “흐응…….”하고 콧소리를 내며 웃었다. 다리를 꼬고 앉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턱을 괸 채로 첫사랑에 애달아하는 남자를 바라보던 그녀가 말했다.

“그럼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증명해 봐.”

“어, 어?”

증명이라니. 대체 어떤 방법으로……. 비올렌은 프레데리카가 뭘 원하는지 몰라서 머뭇거렸다. 그녀가 화사하게 웃으며 일어나 비올렌에게 손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그 손을 잡고 일어난 비올렌은 프레데리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그녀가 비올렌을 데리고 간 곳은 그의 집무 책상 앞이었다. 의자와 책상 사이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섰다. 곧 프레데리카는 책상 위에 훌쩍 뛰어올라 걸터앉았다. 그 앞에 비올렌은 우물쭈물하며 서 있었다.

의자에 앉아야 하나? 서 있어야 하나? 그렇게 갈등하는데, 프레데리카가 명쾌하게 답을 알려주었다.

“앞으로 나랑 둘이 있을 땐 말이야, 비올렌.”

“응…….”

“내 앞에 항상 무릎 꿇고 있는 거야. 알았어?”

그럼 어서 해 봐. 그녀의 말이 끝났는데도 비올렌은 머뭇거렸다. 왜 하지 않느냐는 듯 의아하게 바라보는 프레데리카에게 그가 말했다.

“그, 그게 문도 잠겨 있지 않고…… 혹시 누가 들어와서 보면…….”

“그렇구나, 그게 중요하구나.”

프레데리카는 안타깝다는 듯 그의 얼굴을 한 번 쓰다듬고는 홱 책상에서 내려왔다.

“말 잘 듣기로 한 건 전부 거짓말이었네.”

“프레데리카! 그게 아니라…….”

“갈래.”

“아니, 아니야! 프리카, 제발…….”

가지 마, 하고 꺼질 듯한 목소리로 비올렌이 애원했다. 입술을 비죽거린 프레데리카는 다시 책상 위에 걸터 앉았다. 비올렌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책상과, 그 위에 앉은 프레데리카에게 가려 아마도 그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참 잘했어, 레니.”

프레데리카는 비올렌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는 다정하게 수치스러운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보고 싶었던 만큼, 내 앞에서 혼자 해 보렴.”

“해…… 보라니? 뭘 어떻게……?”

“아직도 아이 같구나, 우리 레니는. 바지에서 네 좆을 꺼내서 열심히 흔들어 보란 말이야. 응?”

“프레데리카, 내가 어떻게, 아니, 그건 너무…….”

“부끄러워?”

금세 그녀의 얼굴에 실망하는 기색이 스미기 시작하자, 비올렌은 허겁지겁 바지춤을 풀었다. 반쯤 일어선 길쭉한 살덩어리가 툭 튀어나왔다.

비올렌은 제 손으로 자신의 물건을 붙잡고는 프레데리카를 올려다 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었다. 아무 말이 없는 편이 비올렌에게는 훨씬 어려웠다.

프레데리카의 앞에서 혼자, 손으로 자신의 것을 잡고 흔들어 절정에 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니……. 아까는 설렘에 얼굴이 달라올랐지만 지금은 수치심에 피가 몰렸다. 하지만 비올렌은 그녀의 말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거부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몰랐다.

그의 손이 페니스를 꽉 붙들고는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다른 어떤 자극도 없이, 오로지 프레데리카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의 물건은 순식간에 단단해졌다.

“흐읏…….”

자신의 몸에 달린 것이니만큼, 비올렌보다도 더 빠르게, 잘 자극되는 지점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엄지로 귀두 끝에서 흘러나오는 말간 액체를 훑어서는 그 끝에 고루 발랐다. 미끈미끈하게 된 첨단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비빌 때마다 그의 허리가 꿈틀거렸다.

이러다가 누군가가 문이라도 열고 들어오면 어떡하지. 불안감에 비올렌의 심장이 쿵쿵거렸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 이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프레데리카가 실망한 채 떠나는 쪽이 훨씬 절망적이었다.

그는 도저히 프레데리카의 위에 아무 것도 놓을 수가 없었다. 한 번 그녀를 향한 애정을 자각하고 나니, 그 감정의 격류를 감당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비올렌에게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건 영지 관리도, 마왕도 아니고 오로지 프레데리카가 기뻐하는가 하나였다.

누군가 미쳤다고 해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손으로는 머리 부분을 자극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기둥을 정신없이 흔들고 쓸어댔다. 손에 힘을 주어 꽉 쥐면 고환 아래의 어느 부분을 저릿한 쾌감이 때렸다. 조금 더, 조금 더 센 자극이 필요했다. 예를 들자면.

비올렌은 붉게 달아오른 눈을 들어 프레데리카를 바라보았다. 마치 어릴 적 그가 숙제해온 것을 보아주는 듯한 얼굴을 한 그녀가, 제 다리 사이의 성난 양물을 붙잡고 흔들어대고 있는 비올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참을 수 없게 수치스러우면서도 그의 몸을 더욱 달아오르게 했다.

“으윽, 읏…… 아, 아흑……. 프, 리카……!”

그녀가 만져주었으면 좋겠다. 아니, 지난번의 밤처럼 발로 밟아주었으면 좋겠다. 비올렌은 애타게 프레데리카를 찾았다. 그녀의 손길이 닿기만 해도 그대로 절정에 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프레데리카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그 순간 비올렌은 그녀가 자신을 경멸하는 듯 느꼈다. 갑작스럽게 사정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런 시선에, 흥분해버린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하지만 한 번 치솟기 시작한 쾌감은 도무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올렌은 흐느낌이 새어 나올 것만 같아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끅끅대는 그의 손이 점차 속도를 빨리했다. 거의 쥐어짜듯 제 페니스를 잡고 흔들어대던 비올렌의 숨이 일순간 멈췄다.

“……!”

울컥울컥 정액이 솟아 나와 그의 손과 바닥의 카펫을 적셨다. 뻣뻣하게 몸을 구부리며 그는 좀 더 손을 재게 놀렸다. 탁탁하고 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짜내는 것 마냥, 그는 온 힘을 다해서 사정했다.

축 늘어졌던 비올렌이 고개를 들자, 그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이 또르르 뺨과 턱을 타고 흘렀다. 절정에 물든 남자의 얼굴을 프레데리카는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잘했어, 비올렌.”

“나, 잘한 거지?”

“응. 아주 예뻐.”

그녀는 허리를 굽혀 가볍게 비올렌의 뺨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비올렌은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땀으로 촉촉해진 그의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 빗어 넘겨주며, 프레데리카가 말했다.

“이틀 뒤에, 내 집에 초대할게. 미리 머물고 갈 거라고 말하고 와야 해?”

“응, 그럴게.”

“그래, 그럼 이틀 뒤에 보자.”

비올렌이 몸과 옷을 추스를 새도 주지 않고, 프레데리카는 쌩하니 그의 집무실에서 나가버렸다. 그는 주춤거리며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제 물건을 닦고, 그것으로 바닥도 문질러 닦았다. 겨우 옷을 다시 입자 마자, 집사가 집무실 문을 노크했다.

그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노력하며 방에 들어온 집사에게서 프레데리카가 떠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혹시라도 제 정액 냄새를 그가 맡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 작품 후기 ==========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저는 크리스마스 당일이 지난 뒤에 돌아오겠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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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프레데리카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따라 들어오려는 루시를 밀치고 방문을 걸어잠근 그녀는 곧장 방에 딸린 욕조로 뛰어갔다. 욕조를 붙들고 머리를 숙이자마자 참고 있던 것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우웨엑…….”

흘러내린 머리카락에 토사물이 묻는지 어쩐지 신경을 쓸 새도 없었다. 먹은 것도 많지 않아 나오는 것도 별로 없었다. 중간중간 붉은 점액질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더 하다가 손등으로 입을 훔쳤다.

기운이 쪽 빠진 프레데리카는 몸을 돌려 욕조에 기대어 앉았다. 이마에 배어난 땀을 닦을 여유도 없었다. 널브러진 채로 쌕쌕 숨을 몰아쉬던 그녀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애매한 소리를 흘렸다.

“프레데리카 르데트는 이런 사람이 아니라고 시위하는 거지, 그래. 알아.”

점차 웃음이 커졌다. 숨까지 할딱대며 웃던 프레데리카는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욕실 바닥에 뺨을 대고 누운 채 낄낄거리고 있으니 어쩐지 즐거워졌다.

이 몸을 망가뜨리기 위해서 정말 수도 없는 짓을 해 왔건만, 드디어 제대로 된 방법을 찾은 모양이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죽음이 이렇게나 쉽고 가까운 방법으로 거머쥘 수 있는 것이었다니. 이 방법을 왜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프레데리카는 스스로를 마음껏 비웃었다.

기운이 빠진 그녀가 다시 일어나 앉은 건 거의 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녀는 자신이 토해낸 것을 손수 치우고 제 몸까지 깨끗이 닦은 뒤 욕실을 나왔다. 기운을 있는 대로 빼서 팔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어쨌든 끝끝내 해냈다.

그대로 침대에 드러눕고 싶은 걸 참고 프레데리카는 책상 앞에 앉았다. 오랜만에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적으려던 그녀는 문득 자신이 다 쓴 노트 중 한 권이 살짝 튀어나와 있는 걸 알아챘다.

누군가가 손을 댄 모양이었다. 이 집에 발을 들인 이 중 노트에 손을 댈 자는 딱 둘뿐이었다. 카이온과 비올렌. 하지만 비올렌은 이 방에 들어왔을 때 책상 근처도 가지 않았으니 남은 건 카이온이었다.

그녀의 입가에 애매한 미소가 떠올랐다.

카이온이 보았다면, 어디까지 봤을까? 손댄 건 한두 권이 아닌 듯 했다.

마왕님이 도둑고양이처럼 남의 방에 들어와서는 물건까지 손을 대다니. 프레데리카는 히죽 웃었다. 아닌 척해도 들킬까 봐 꽤 조심스러워 했을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밀을 안다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카이온이 필요한 건 프레데리카의 몸이었다. 그녀를 탐하고, 기운을 되찾아 마침내 이 세계를 사라지게 만드는 게 그의 목적 아닌가.

프레데리카의 작은 비밀쯤 안다 해서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그녀는 빈 페이지가 펼쳐진 노트에 눈을 돌렸다. 펜이 천천히 단정한 글씨를 종이에 새겨나갔다. 거의 한 바닥을 꼬박 채우고 난 뒤에야 프레데리카는 비로소 펜을 놓았다. 그녀는 노트를 덮으려다가 멈칫했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녀는 노트를 펼쳐둔 채 내버려두고 침대에 들어갔다. 머리를 대자마자 프레데리카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도록 프레데리카가 깰 생각을 하지 않자, 그녀의 방문을 열고 들어온 자가 있었다.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진 프레데리카의 옆에 앉은 카이온은 그의 인기척에도 깨지 않는 프레데리카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는 손바닥을 펼쳐 위로 향하게 했다. 마왕의 커다란 손 안에 손가락만한 인형이 나타났다.

그것은 검은 안개로 몸을 둘러싼 채로, 등에는 네 쌍의 검은 날개를 달고 있었다. 성별이 모호해 보였지만 그 모호함만큼이나 매혹적인 얼굴을 가진 존재였다. 그 검은 요물은 카이온의 얼굴을 보자마자 한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나의 왕이시여……! 다시 뵙게 되다니 이런 영광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요!]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왕께서 하명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요물은 황홀한 얼굴로 마왕을 올려다보다가, 그제야 잠들어 있는 프레데리카를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요물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이 계집은! 왕을 배신했던 그 인간 계집 아닙니까! 당장에 죽여버려도 시원찮을……!]

“너는 지금부터 이 여자의 꿈으로 들어가라.”

[네?]

“이 여자가 무슨 꿈을 꾸는지 낱낱이 보고, 내게 고해라.”

카이온의 명령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해 보였지만, 요물은 깊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의 왕. 하지만 주군의 힘을 먹고 사는 미천한 몽마인 제가, 지금 파고들 수 있는 정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외람되오나 알고자 하시는 바를 좀 더 명확히 말씀해 주시면 그 꿈으로 찾아가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이 인간이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의 꿈만 보면 된다.”

[고통스러워하는 순간……. 알겠습니다.]

“알아내는 대로 곧장 돌아와 보고해라.”

그의 손아귀에 있던 요물은 그대로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빈손을 움켜쥔 카이온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한 얼굴로 프레데리카의 어깨를 흔들었다.

“일어나라.”

“으응……. 왜…….”

“식사할 시간 아닌가.”

“……안 먹어…….”

귀찮다는 듯 카이온의 손을 치운 그녀는 아예 등을 돌려 누웠다. 다시금 코까지 골며 잠에 빠져든 프레데리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이온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나가려 하는데, 그의 눈에 펼쳐진 채 놓인 노트가 들어왔다. 그는 잠시 자고 있는 여자를 돌아보고는 책상 앞으로 다가섰다.

[……망가질 수 있는 몸이라는 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죽음은 축복이고 그 축복을 이제야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감사한다. 죽음 뒤에 남을 사람들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죽음과 세계의 끝이 함께할 거니까. 그리고 마침내 죽음을 넘어서면, 나는 확신한다, 내가 원래의 나로 다시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 오히려 그 순간을 기대할 뿐이다…….]

카이온은 손가락으로 노트를 툭툭 두드리다가 다시 프레데리카를 돌아보았다.

죽음 이후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듯 쓴 이 노트는 어떤 의미인가. 이것을 여기에 펼쳐둔 건, 그에게 보라고 일부러 한 짓인가. 조금 더 빨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자꾸만 그에게 힘을 되찾도록 종용하는 프레데리카의 속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카이온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놀아주는 것이 조금 불쾌해졌다.

힘을 되찾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프레데리카의 몸을 취할 때마다 힘이 돌아오긴 했다. 하지만 그가 강해지는 만큼 프레데리카가 죽음에 다가서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대체 왜인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토록 죽음을 원하는 이유가 뭔가? 그 죽음의 너머에는 무엇이 있어서, 그토록 이 세계를 등지고 싶어 하는 걸까?

자신이 죽게 도와달라 하며 말갛게 웃던 프레데리카의 얼굴을 떠올리자, 카이온은 주체할 수 없이 기분이 나빠졌다. 인간을 죽이는 것에 한 번도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방을 나가려던 카이온의 발걸음이 다시 침대 쪽으로 향했다.

그가 올라타자 침대가 깊게 쑥 꺼졌다. 여전히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프레데리카의 목을 마왕은 인정사정없이 물어버렸다. 놀라 깬 프레데리카가 대체 무슨 일인지 파악하고 물을 새도 없이, 카이온은 그녀의 입술을 제 입술로 막았다. 성급한 손길에 그의 셔츠가 방구석에 거칠게 날아가 박혔다.

이틀 뒤, 늦은 오후.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 한 대가 프레데리카의 집 앞에 섰다. 집 주인인 프레데리카는 평소의 편안한 차림 대신 격식 있는 드레스를 입고 머리도 틀어 올린 채였다. 잘 하지 않는 화장도 얹은 얼굴은 평소보다 빛이 났다.

마부가 마차 문을 열자, 그 안에서 코카네스 백작이 먼저 나왔다. 그는 활짝 웃는 낯으로 프레데리카의 손을 잡고 크게 흔들었다. 기운 찬 백작의 악수에 프레데리카가 까르르 웃었다.

“여전히 정정하시네요, 백작님.”

“이게 다 프레데리카 님이 우리 못난 아들을 무사히 데려와 주신 덕분 아니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비올렌이 다 한 건데요.”

“아니,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호들갑을 떨며 프레데리카를 칭찬하려던 백작의 등 뒤로 비올렌의 부루퉁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는 조금 심통이 난 얼굴로 마차에서 내려 백작 부인이 내릴 수 있게 손을 내미는 중이었다.

“아버지도 참. 너무하십니다. 저도 죽자고 싸웠거든요?”

“그래도 네가 네 스승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털 끝 하나 안 상하고 돌아올 수 있었겠느냐! 다 르데트 님이 애쓰신 덕분에……!”

“백작님, 너무 과한 칭찬이세요. 저는 정말 별로 한 게 없어요. 이러지 마시고, 들어가서 말씀 나누시죠.”

“아, 그럴까요? 하하하.”

프레데리카가 몸을 틀어 길을 열자, 코카네스 백작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저 사람이 주책맞게 굴어 미안하다며 백작 부인도 깔깔 웃으며 들어가고 나자, 그들의 뒤를 루시를 비롯한 하인과 하녀들이 따랐다.

현관에 남은 비올렌은 투덜거리며 프레데리카를 향해 작게 중얼거렸다.

“초대한다는 게, 이런 의미였어?”

“어머, 너만 부른다는 줄 알았던 거야?”

그녀는 빙긋 웃으며 비올렌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연스럽게 그 손을 잡아 에스코트하며 비올렌은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기대한 내가 잘못인 거지?”

“글쎄……. 백작 부처께는 말씀드렸어? 여기에서 하루 머물고 간다고?”

“……으응.”

자신의 집무실에서의 일이 생각났는지, 비올렌의 귀 끝이 발그레해졌다. 부끄러운 기색이 가득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프레데리카는 잘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1층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미 자리에 앉은 백작 부부에 이어, 프레데리카와 비올렌도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직 식사가 시작되지도 않았건만, 식탁 위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기 그지없었다. 백작 부부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른 사람들 마냥 만족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식사가 시작되고, 프레데리카는 앞에 놓인 잔을 들어올리며 다정하게 말했다.

“8년간 너무나 고생이 많으셨다고 꼭 말씀드리고 대접하고 싶었어요. 두 분의 기도가 아니었다면 저희가 이렇게 무사히 돌아왔을까요?”

“그건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르데트 님. 우리 하나뿐인 비올렌을 이렇게…… 무사히 돌아오게 도와주셔서…… 정말…….”

백작 부인이 울먹이자, 비올렌이 다정히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울지 말라며 부인을 달랜 백작은 유쾌한 목소리로 부인의 말을 받아 프레데리카의 말에 답했다.

“부인의 말에 나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이제 한시름 놓았으니, 우리 영지와 르데트 님 모두에게 평화만이 깃들길 기도하는 일만 남았군요! 그리고 이 모자란 아들 녀석 곁에 누구 하나 붙여놓는 일도요!”

“아버지……!”

“그러게요.”

여상하게 백작의 말에 동의하는 프레데리카를 비올렌이 원망스럽다는 듯 슬쩍 노려보았다. 항의의 뜻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비올렌을 무시하고 셋은 잔을 부딪쳤다. 억지로 거기에 합류했던 비올렌은 잔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얼른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 갑작스럽게 말씀드리게 되었지만…… 나름대로 저와 프리카가, 좋은 감정으로 서로 만나는 중입니다.”

“뭐어?”

비올렌의 폭탄 선언에 부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프레데리카는 말없이 비올렌이 하는 양을 보고만 있다가 부끄러운 듯 웃었다.

“아직, 좀 설익은 터라 말씀드리기 곤란하다 여겼는데…… 레니가 좀 급했네요.”

“하지만, 이러다가는 아버지께서 나한테 엄한 사람을 갖다 붙이실 거 같았습니다.”

“허허, 허…….”

생각하지도 못한 이야기에 백작은 조금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백작부인 역시 당혹스러운 눈치였다. 프레데리카는 두 부부의 심경을 아주 명확하게 눈치 채고는 얼른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 벌써부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마세요, 두 분 모두. 얼른 식사하시죠.”

“그러지요, 그래요.”

화기애애함 속에 섞인 미묘한 분위기는 오로지 비올렌만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프레데리카는 저것도 비올렌답다, 생각하며 앞에 놓인 생선살을 입에 넣고는 오물거렸다.

                                                            

========== 작품 후기 ==========

크리스마스는 즐겁게 보내셨나요? 저는 정말 편하게 잘 쉬었답니다.

그 사이에 하트시그널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기다리신 분들께 넘 죄송했고요...ㅠㅠ

연말연초는 가족과 함께, 라서 매일 오기가 쉽지 않네요. 대체 성실연재를 무슨 생각으로 약속한 건지...

코멘트에서 남주 후보가 몇이냐고 물어보신 분이 계셔서... 총 넷입니다. 처음에 등장한 남자 넷 전부 다예요^-^ 남자는 많으면 많을 수록 좋죠. 안 그렇습니까!

선작 추천 코멘트 모두 감사드립니다. 하트시그널 남겨주신 분들도 감사드려요!

내일 연재분부터는 또 열심히 쿵떡쿵떡해 보겠습니다*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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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약간 어색한 분위기는 곧 사라지고, 네 사람은 즐거운 식사를 즐겼다. 그들의 식사는 가벼운 술자리로 이어졌다. 해가 떨어지고, 백작이 거나하게 취한 뒤에야 자리가 겨우 파했다.

마부에게 부축받으며 마차에 겨우 올라탄 백작 대신에 백작 부인이 민망한 얼굴로 프레데리카에게 인사를 건넸다.

“너무 기분이 좋았나 봐요, 이 사람이. 오늘 영 자제를 못하네…….”

“그러실 수도 있죠.”

“하여튼,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비올렌, 너는 폐 끼치지 말고 얌전히 있다 와!”

“제가 어린 애예요?”

“밀린 이야기 좀 나누다 일찍 재울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프레데리카는 마치 보호자처럼 백작 부인을 안심시켰다. 그녀는 마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백작을 흘끔 보고는 부끄러웠는지 후다닥 마차에 올라탔다.

두 사람을 실은 마차가 떠나가자, 프레데리카는 웃으며 비올렌을 올려다 보았다.

“들어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비올렌은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데리카와 비올렌이 집 안으로 들어가자, 문이 소리 없이 닫히고는 잠겼다.

앞서 걷는 그녀의 뒤를 비올렌이 얌전히 따랐다. 그도 잘 아는 집이지만, 이상하게도 낯설었다. 너무 조용하고, 훨씬 어두웠다. 복도를 밝힌 초의 수가 적었다. 겨우 발밑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등골이 팽팽히 잡아당겨지는 기분이었다. 프레데리카와 남은 이 집에서, 그들이 백작 부인에게 말한 것처럼 단순히 대화나 할 리가 없었다. 이미 비올렌과 그녀는, ‘선’을 넘은 뒤였다. 비올렌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비록 교합을 한 게 아니었어도,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은 교합 그 이상으로 느껴졌다.

그녀의 앞에서 또다시 무릎을 꿇고 앉을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랫배가 묵직해지는 기분이었다. 비올렌은 너무 티 나지 않게 심호흡을 했다. 몇 번이나 주먹을 쥐었다 펴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프레데리카는 어느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거기에는 벽난로와 그 앞에 깔린 카펫, 그리고 나무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벽난로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그 붉은 빛이 방을 가득 채운 채였다. 그녀는 방의 한 가운데에 서서 비올렌을 보고 손짓했다.

“들어와.”

비올렌은 천천히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닫지 않았는데, 누가……. 의아함도 잠시, 그는 갑작스럽게 암전하는 시야에 놀라지도 못한 채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비올렌의 눈앞에는 여전히 불타는 벽난로가 있었다. 바뀐 게 많지 않아 보였지만, 아니, 사실은 많았다.

카펫에 엎드린 프레데리카의 깨끗한 알몸에 붉은 불꽃이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정신없이 흔들리며 연신 신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다리 사이로 벌거벗은 카이온의 좆이 사정없이 처박혔다.

“흐앙, 아, 카이, 좀…… 더! 앗, 하아앙!”

“큿, 적당히, 졸라 대. 발정 난 암캐도 아니고…….”

카이온의 커다란 손이 프레데리카의 머리를 인정사정없이 짓눌렀다. 그 압력에 헐떡대면서도 프레데리카는 엉덩이를 흔들길 주저하지 않았다. 질퍽이는 소리 요란한 접합부에서 떨어진 그녀의 애액이 카펫을 점점이 물들였다.

벌써 두 사람은 한참을 즐긴 모양이었다. 카이온의 허릿짓이 격렬해진다 싶더니, 그가 제 하반신을 프레데리카의 음부에 바짝 밀어붙였다. 그녀의 자궁이 다 받아내지 못한 정액이 틈새로 흘러나와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프레데리카가 황홀하다는 듯 달디단 숨을 토해냈다.

보고 싶지 않았고 믿을 수도 없는 광경에 비올렌은 눈을 부릅떴다. 그는 당장에라도 카이온에게 달려들고자 했지만, 그의 몸은 한 번 덜컥할 뿐 조금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당황한 얼굴로 카이온은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양 손은 의자 등받이에, 두 다리는 의자 다리에 단단히 묶인 채였다. 심지어 비올렌의 입에는 재갈까지 물려 있었다.

“우욱, 우우웁!”

고통에 찬 목소리로 비올렌이 억눌린 고함을 지르자, 그제야 프레데리카와 카이온의 눈이 그를 향했다. 그녀는 나른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카이온의 페니스가 자연스럽게 프레데리카의 몸 안에서 밀려 나왔다. 의외로 순순히 카이온은 그녀를 놓아주었다.

잔뜩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프레데리카가 상냥하게 물었다.

“비올렌, 깼어?”

“으븝, 우우! 웁!”

“너 기다리다가 지쳐서, 으음……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

프레데리카는 무릎걸음으로 비올렌에게 다가갔다. 촉촉하게 땀으로 젖은 프레데리카의 몸이 반짝였다. 그녀는 제 팔을 비올렌의 무릎 위에 걸쳐놓고는 그를 올려다 보았다.

“어때, 숨어서 보지 않는 건? 이쪽이 훨씬 낫지?”

“우우……”

“이런 내가 싫어졌을까?”

눈가가 금세 붉어진 비올렌을 보며 프레데리카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금방이라도 또 눈물을 흘릴 거 같은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녀가 속삭였다.

“또 울려고 그러는 거야? 내가 계속 울리기만 하네?”

“읍…… 우우…….”

“비올렌, 있잖아. 나는 말이야.”

그녀가 비올렌의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천천히 허리를 굽힌 프레데리카는 비올렌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네가 나를, 아주 많이 미워하면 좋겠어.”

“…….”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느냐고 원망하길 바라.”

“……우웁.”

“그러길 바라기 때문에, 이러는 거야.”

그 말만을 남긴 프레데리카는, 애타는 비올렌의 얼굴을 무시하고 몸을 돌렸다. 그녀의 발걸음은 곧장 카이온에게로 향했다.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채 두 사람을 지켜보던 마왕은, 하느작거리며 다가오는 프레데리카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아주 못되어 먹었군, 그래.”

“난 내가 착하다고 한 적 없는데.”

“저 멍청한 개는 너라는 주인을 아주 좋아하는 모양인데.”

“알아.”

프레데리카는 사뿐하게 카이온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는 남자의 양 볼을 감싸 쥐고는 가볍게 입술을 부딪쳤다. 녹아내리는 듯 달콤하게 미소지으며 프레데리카가 부탁했다.

“날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줘야 해?”

“하.”

“비올렌이 괴로워하면, 당신도 좋잖아. 응?”

애욕에 물든 프레데리카의 얼굴을 카이온은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녀는 평온하게 웃고 있었지만, 카이온은 이상하게도 그녀가 조급하게만 보였다. 카이온은 멋대로 해 보라는 듯 얌전히 두 손 놓고 기다렸다. 프레데리카는 그대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깊게 입을 맞췄다.

혀와 혀가 얽히며 나는 질척한 소리에 비올렌이 제 입에 물린 재갈을 악물었다. 도무지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프레데리카가 자신에게 왜 그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그녀를 미워하라는 건지, 그 지점부터 이해가 안 됐다.

매끈한 여자의 두 다리가 카이온의 허리를 감았다. 프레데리카는 자연스럽게 카이온의 다리를 타고 앉았다. 동그란 가슴이 그의 탄탄하고 넓은 가슴에 바짝 밀착되었다. 그녀는 스스로의 유두를 자극하려는 건지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열렬히 그의 입 안을 탐색하길 멈추지 않았다. 카이온은 기꺼이 그녀에게 호응하며 비올렌을 흘끔 바라보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분을 참지 못하는 비올렌을 보자 카이온은 저도 모르게 씩 웃어버렸다. 마왕과 눈이 마주친 비올렌은 몸을 들썩였다. 하지만 단단하게 결박된 팔다리는 도무지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커다란 남자의 두 손이 프레데리카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흐읍, 하고 프레데리카가 숨을 들이켰다. 점토를 주무르는 도공처럼, 여자의 말랑한 둔부를 손으로 감삳하던 카이온은 한 손을 그녀의 다리 사이로 뻗었다. 이미 한 번 카이온의 양물을 머금었던 프레데리카의 밀지는 손쉽게 침범할 수 있었다. 길고 굵은 카이온의 손가락이 대번에 두 개나 침범해 들어오자, 프레데리카의 입술에서는 교성이 터져 나왔다.

“아앗, 아!”

내벽을 쑤셔대는 손가락의 감각에 프레데리카는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혔다. 그녀가 몸을 뒤틀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카이온의 다른 한 손이 그녀의 등을 단단히 붙들었다. 쑤걱대며 아래를 쑤셔대는 손을 타고 말간 액체가 흘러내렸다.

“흐앙! 아, 아흐윽! 카이, 카이! 아!”

“실컷, 느끼라고. 원하던 대로 해 줄 테니.”

“아윽, 으……! 안, 안 돼애, 거긴, 하앙!”

이미 몇 번이나 안아 익숙해진 프레데리카의 질 내벽 중 가장 민감한 곳을 문질러대자, 프레데리카가 번개맞은 작은 토끼처럼 팔딱거렸다. 발끝이 꼿꼿하게 서서 파들거리는 프레데리카의 입술에서는 타액이 흘러내렸다. 정신없이 쾌감이 그녀의 몸과 머리를 때려댔다.

마왕의 손에 은밀한 속살을 유린당하면서도 절정으로 치달아가는 프레데리카를 보는 비올렌의 가슴은 돌덩어리가 얹힌 것처럼 답답했다. 프레데리카가 자신에게 고통을 주려고 했다면, 정말이지 대성공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답답한 속과는 달리 그의 양물은 이미 빳빳하게 고개를 든 뒤였다.

저런 광경을 보면서 흥분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웠지만, 비올렌은 도무지 스스로의 정욕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문득 마왕의 손에 휘둘리는 저 자그마한 몸에 자신이 닿기를 바라고는 화들짝 놀랐다.

프레데리카가, 날 만져주었으면 좋겠어. 마음속에서 들리는 속삭임을 비올렌은 무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그녀의 몸 안에 들어가고 싶어. 프레데리카의 속살은 얼마나 달콤할까. 아아, 아니 그냥 저 작은 손으로 내 것을 쥐고 흔들어 줬으면. 시키는 대로 뭐든 할 테니, 이 빌어먹을 좆을 좀, 어떻게 해 주었으면……!

그의 갈망이 부풀어 터질 것 같은 순간, 프레데리카는 카이온의 손만으로 절정에 다다랐다. 짧게 치는 몇 번의 환희가 그녀의 온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때마다 프레데리카는 몸을 떨며 카이온의 손 아래에서 바르작거렸다.

“흐앗, 아! 아앗! 으읏…… 아!”

프레데리카는 카이온의 목을 꽉 끌어안고는 몇 번이나 몰려오는 절정을 느꼈다. 겨우 손짓만으로 얻는 쾌감만으로도 이렇게 물을 흘려대는 자신의 몸은 얼마나 음란해진 건지. 프레데리카는 히끅히끅대며 웃었다.

울컥울컥 흘러나오는 애액으로 잔뜩 젖은 손을 카이온이 서서히 빼냈다. 몸에서 빠져나가는 부피감과 체온이 아쉬워서 프레데리카는 허리를 비틀었다. 카이온은 젖은 손으로 프레데리카의 유두를 꽉 잡아 비틀었다. 찌릿한 감각에 프레데리카는 또다시 고개를 흔들며 흐느꼈다.

“이걸로는 당연히, 부족하겠지?”

“으응…… 안 돼, 더…….”

“그런데 아무래도,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말이지.”

잔인한 빛을 띤 카이온의 눈이 비올렌을 향했다. 그에 따르기라도 하듯 프레데리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발갛게 달아오른 눈매로 프레데리카가 자신을 돌아보자, 비올렌은 뱀 앞의 쥐처럼 굳어버렸다.

그녀의 혀가 입맛을 다시듯 그녀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프레데리카의 두 손이 카이온을 밀어냈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프레데리카의 두 다리 사이의 음모는 이미 젖을 대로 젖어 있었다. 난로 불빛이 그녀의 몸에 일렁였다.

프레데리카가 비올렌을 향해 한 발을 내딛자, 비올렌이 애타는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레니. 내 귀여운 제자. 내 착한 친구.”

어느새 그녀는 비올렌의 벌린 두 다리 사이에 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여자의 작은 손이 거침없이 그의 바지춤을 풀어헤쳤다. 붉게 달아오른 살몽둥이가 옷 속에서 튀어나와 프레데리카의 뺨을 살짝 쳤다. 눈이 동그래진 채 그녀는 제 뺨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러더니만 환하게 웃으며 비올렌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카이온이랑 하는 거 보고, 이렇게 세우다니. 가엾은 비올렌.”

변태가 따로 없잖아. 낭랑한 목소리로 부끄러운 딱지를 붙이는 프레데리카 때문에 비올렌은 딱 그 자리에서 죽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 작품 후기 ==========

제가 유난히 비올렌에게 못되게 구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절대 착각이 아니십니다

역시 남자는 괴롭히는 맛......

선작 추천 코멘트 모두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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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리카는 터질 듯한 비올렌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카이온에게 말을 걸었다.

“카이온. 이리 와서 재갈 좀 풀어줘요.”

“……분부대로, 주인님.”

한껏 과장된 어투로 답한 카이온은 놀라울 만치 순순히 비올렌의 뒤로 돌아가서는, 그의 입에 물린 재갈을 묶은 매듭을 풀어주었다. 헐떡이는 비올렌의 입에서 미처 넘기지 못한 침이 주르르 흘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올렌은 도리질을 치며 애원했다.

“프리카, 제발! 이러지 마……. 제발…… 응?”

“내가 뭘 어떻게 했다고, 그런 얼굴로 그렇게 말을 해?”

“제발……! 아니야, 제발…… 물면 안…… 아읏!”

그가 빌거나 말거나, 프레데리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그녀는 입 한가득 비올렌의 좆을 물었다. 입을 한껏 벌린 채 잔뜩 성난 채 꺼떡대는 성기를 힘겹게 제 입 안으로 밀어넣어 보았다. 하지만 어찌나 큰지, 그의 것은 그녀의 입으로 채 반도 들어가지 않았다.

생각보다 조금 버겁네. 프레데리카는 뻐근해지는 턱을 걱정했지만 그만두는 대신 천천히 고개를 움직였다. 그녀의 이가 기둥과 귀두를 긁고 지나가자, 비올렌이 발작하듯 몸부림쳤다. 그의 뒤에 선 카이온이 힘껏 그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슬쩍 위를 올려다보며 프레데리카는 카이온을 향해 눈웃음쳤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두 사람 사이에 눈으로 대화가 오고 갔다. 그녀는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기고는 양손으로 비올렌의 허벅지 안쪽을 단단히 짚었다. 긴장해서 팽팽해진 남자의 허벅지 근육이 그녀의 손 안에서 움찔거렸다. 그때마다 프레데리카의 입 속에서 비올렌의 남근 역시 벌떡댔다.

“흐윽……!”

프레데리카는 붉게 물들다 못해 이제 곧 터질 듯한 비올렌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의 입이 천천히 깊게 안으로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그녀의 오랜 친구는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았다. 조금만 긴장을 늦추기만 하면, 비올렌의 페니스는 당장 프레데리카의 입에 제 씨물을 토해낼 것만 같았다.

벌써 몇 번이나 프레데리카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도저히 그녀의 입에…… 그런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비올렌은 다시 이를 악 물었다. 제 어깨를 파고드는 마왕의 손아귀가 주는 아픔보다도, 프레데리카의 혀가 귀두를 한 번 휘감고 가는 게 훨씬 고통스러웠다.

따듯하고 말랑한 데다 질척하기까지 한 입의 내벽이 가장 민감한 남자의 살덩어리를 감싸자, 비올렌은 차마 소리 한 마디 내지 못하고 발발 떨었다. 온몸의 근육이 잔뜩 긴장해서 팽팽히 당겨졌다. 그의 발끝이 거칠게 무두질 된 가죽 구두 안에서 잔뜩 꼬부라졌다.

“으, 하악……, 히익……!”

혀를 움직일 때마다 파르르 떠는 비올렌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프레데리카는 일부러 더욱 입을 리듬감 있게 움직였다. 입을 오므리고 펼 때마다 펄떡펄떡 물 밖에 내놓은 물고기처럼 튀어오르는 비올렌은, 그녀가 알던 남자와는 전혀 달랐다.

비올렌이 죽도록 참고 있다는 걸 프레데리카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억누르는 비올렌이 참을 수 없게 가엾고도, 사랑스러웠다.

그와 알아 온 시간이 거의 20년에 달했다. 하지만 그동안 둘 사이에 조금이라도 성적인 긴장감이 흐를 일이 있었던가, 하면 전혀 아니었다. 다시 말해 프레데리카가 그의 몸을 탐구할 시간이 조금도 없었단 뜻이었다. 프레데리카로서도 꽤 낯선 비올렌의 몸이었다. 흥분한 제자이자 친구의 몸이, 그녀를 동시에 들뜨게 했다.

“흐으응…….”

몸 안에서 주르르 흘러내리는 뜨거운 액체를 느끼면서, 프레데리카는 낮은 콧소리를 흘렸다. 그 떨림이 전해지는 것만으로도 비올렌은 또다시 발발 떨었다.

프레데리카의 고개가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어린아이가 어설프게 사탕을 빨다가 침을 흘리는 것처럼, 그녀의 입가에도 미처 다 삼키지 못한 타액이 흘러내렸다. 질퍽대는 소리가 점차 둘 사이에 흐르는 공기를 음란하게 물들여 갔다. 자꾸만 치밀어오르는 사정감에 비올렌은 연신 엉덩이를 들썩이고 힘을 주었다.

움직임이 격해지자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프레데리카의 얼굴에 흘러내렸다. 도저히 그게 방해가 되어서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에 머금고 있던 것을 빼냈다. 혀가 뿌리 쪽부터 진득하게 훑으며 올라와 마침내 첨단까지 아깝다는 듯 핥고 떨어지자, 비올렌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아흐, 으윽!”

“후우. 조금 힘드네.”

그녀는 귀 뒤로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넘기고는 다시 한 번 양손으로 비올렌의 허벅지 안쪽을 단단히 짚었다. 뜨거운 손가락이 근육의 결을 따라 짚자, 그의 다리가 파르르 떨렸다.

비올렌이 자신에게 발정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자신도 정상은 아니라는 사실에, 프레데리카는 쓰게 웃었다. 자신을 위해서는 당연하고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이런 식으로 부수는 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를 자꾸 생각하게 됐다.

후회하지 말자고 했으면서. 프레데리카는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으며 비올렌의 페니스를 괴롭히려던 순간이었다.

어느새 프레데리카의 뒤편으로 돌아온 카이온의 손이 그녀의 겨드랑이 아래로 들어왔다. 어라, 하는 순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카이온은 씩 웃으며 프레데리카의 귓가에 속삭였다.

“너무 친구를 박대하는군, 현자 나으리.”

“무슨 소리예요…… 으앗!”

그 순간이었다. 카이온이 요령 좋게 프레데리카의 등을 자신의 가슴으로 받치고는 양 무릎 아래에 손을 집어넣어서는 들어 올렸다. 가볍게 들어 올려진 프레데리카의 두 다리가 양옆으로 벌어졌다.

“이게 뭐 하는 거예요, 지금?”

“이 더러운 마물……! 프레데리카에게서 손 떼!”

“우리 주인님께서, 이 위대한 인간의 용사를 괴롭히는 게 목적인 듯 해서 내가 좀 도와주려고 그러지.”

“뭐, 잠깐…… 아아아!”

프레데리카가 버둥대며 빠져나오려 했지만, 이미 카이온은 제멋대로 움직여 버린 뒤였다. 벌겋게 달아오른 비올렌의 살몽둥이 위로 프레데리카의 하반신이 철퍼덕 내려앉았다. 나긋나긋해진 프레데리카의 속살을 단숨에 꿰뚫은 페니스가 그녀의 안에서 벌떡거렸다.

강렬한 쾌감에 그녀가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카이온은 친절하게 그녀의 어깻죽지를 들어올렸다가, 또다시 세게 내리눌렀다. 프레데리카의 아랫입이 그의 손길에 맞추어 비올렌의 음경을 빨아들였다가 놓았다.

“흐앙, 아하앙! 그, 그만! 아! 안…… 안 됏, 아!”

“크윽, 흐…… 으윽…….”

“흐윽, 앗! 아윽! 잠, 깐, 카이…… 카이! 아!”

두 사람 모두 정신없이 몰아닥치는 쾌감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비올렌의 두 손은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단단히 쥐어 있었다. 그는 제 눈앞에서 타의로 흔들리는 프레데리카의 열락 어린 얼굴을 보며 더욱 정신이 아찔해졌다.

아랫배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비올렌의 페니스가 어쩐지 부풀어오르는 듯한 느낌에 프레데리카는 도리질을 쳤다. 내벽을 긁고 쓸며 들락거리는 비올렌의 살덩어리가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다. 미묘하게 휘어진 그의 것은 절묘하게도 프레데리카가 가장 잘 느끼는 지점을 자꾸만 찔러댔다. 그녀는 카이온의 손을 뿌리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연달아 몰려오는 절정에 점점 이성을 놓았다.

카이온이 흔들어대는 것에 박자를 맞추며 프레데리카의 허리가 흔들렸다. 좀 더, 조금만 더. 더 많은 쾌감이 자신의 몸을 지배하길 원했다. 프레데리카의 헐떡이는 숨결 사이에서 자꾸만 더 원한다는 말이 잇따라 흘러나왔다.

자신을 자꾸만 졸라대는 프레데리카의 목소리에 비올렌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인정하자마자, 그토록 억눌러왔던 그의 욕망이 프레데리카의 안에 잔뜩 분출되어버렸다.

“윽, 으하아…… 아흑!”

“아, 아! 흐아앙! 아흣!”

꺼덕대며 씨물을 뱉는 비올렌의 좆을 프레데리카는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 씹고 비틀어댔다. 조금이라도 더 그의 것을 제 안에 대고 문지르고 싶었다.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돌리자, 비올렌이 입술을 꽉 깨물며 또다시 신음을 흘렸다.

마침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낸 비올렌은 붉어진 얼굴로 저를 내려다보는 카이온을 노려보았다. 쾌감과 분노가 뒤엉킨 용사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카이온의 얼굴에는 경멸과 비웃음이 어려 있었다.

“고자 새끼인 줄 알았더니, 그래도 그건 아니었나 보군.”

“으…… 으으…….”

“프레데리카, 아직 모자라나?”

비올렌에게 내뱉은 냉기 떨어지는 목소리와는 정 반대로, 카이온은 프레데리카의 귀에 다정하게 속살거렸다. 흐려진 눈으로 숨을 할딱거리던 프레데리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왕의 가슴에 천천히 머리를 기댔다.

그런 프레데리카가 기꺼운 듯, 카이온은 웃으며 그녀의 머리에 보란듯 살짝 입을 맞추었다. 그 꼴을 본 비올렌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카이온이 일부러 프레데리카를 홱 끌어당겨 안아버렸다. 단숨에 프레데리카의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온 비올렌은 또다시 꼬리뼈를 때리는 음란한 감각에 몸을 뒤틀었다.

소중하게 여자를 끌어안고 몇 걸음 떨어진 카이온은, 그녀의 머리를 비올렌 쪽으로 향하게 하고는 바닥에 바르게 눕혔다. 프레데리카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 앉은 카이온과 비올렌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카이온은 보란 듯 프레데리카의 밀지에 입을 가져갔다. 축축하고 야한 소리가 방을 가득 채워갔다.

프레데리카의 안에서 흘러나오는 두 남녀의 체액을 조금도 남겨놓지 않겠다는 듯, 카이온은 공격적으로 그것들을 핥았다. 불쾌하다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꿀을 핥는 마냥, 속살까지 파고 들어댔다. 내벽 주름 하나하나 모조리 훑어내려는 기세에 프레데리카가 허리를 들썩였다.

“흐아, 아! 카이, 이러, 지…… 하앙! 아흑!”

대답하는 대신 카이온은 그녀의 말랑한 속살을 벌리고 그 안에 비밀스레 자리잡은 작은 돌기를 깨물었다. 붉게 충혈되어 돌출된 음핵이 자극될 때마다 프레데리카의 붉은 꽃잎 새에서 울컥하고 애액이 흘러나왔다.

집요하리만치 제 아랫도리를 탐하는 카이온 때문에 프레데리카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녀의 손이 마왕의 잘린 뿔을 더듬거리다가 붙들었다. 그 거친 단면에 손이 베어 얇고 붉은 실선이 손바닥에 그어졌지만,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허리가 잔뜩 휘었다가, 다시 둥글게 굽어졌다. 도망치려는 듯 프레데리카는 카이온의 머리를 밀어내고 몸을 버둥댔지만, 마왕의 손은 그녀의 골반을 단단하게 붙든 채로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응, 흐응, 싫엇…… 아!”

“솔직하지 못하군, 주인님.”

느긋한 몸짓으로 천천히 프레데리카의 몸 위에 올라탄 카이온은 그녀의 다리를 양쪽으로 잔뜩 벌려 잡았다. 그러고는 맹수의 것처럼 흉악스럽게 일어선 제 양물의 머리 부분을 프레데리카의 질 입구에 가져다댔다. 그것이 안으로 파고들자, 프레데리카의 눈도, 입도 크게 벌어졌다. 이미 익숙해진 마왕의 페니스였지만, 오늘따라 자극이 너무나도 과했다.

그녀가 내뱉는 힉힉 대는 짧은 숨소리가 비올렌의 귓가를 때렸다.

곧 카이온이 짐승처럼 허리를 흔들어댔다.

격렬하고도 달뜬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트는 프레데리카의 모습을 보며 비올렌은 이를 악물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의 마음을 지배해버린 음심은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한 풀 꺾였다고 생각했던 그의 분신이 다시금 고개를 쳐들었다.

절정에 달해 교성을 지르는 프레데리카의 얼굴을 바라보며, 비올렌은 그 자리에서 손발이 묶인 채로 다시 한 번 사정하고 말았다.

“비올렌.”

부르는 목소리에 놀라 화들짝 깨어난 비올렌은 침대 머리맡에 앉은 프레데리카와 눈이 마주쳤다.

쾌감에 녹진녹진 녹아내린 얼굴을 했던 그녀는 어디 가고, 그곳에 앉아 있는 건 평소처럼 단정한 그의 친구뿐이었다.

비올렌은 다급히 일어나 제 몸을 살폈다. 옷도 깨끗하게 입혀져 있었고, 몸도 누군가 닦아낸 듯 보송보송했다. 그가 황망한 얼굴로 프레데리카를 바라보자,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비올렌.”

“왜…… 그랬어, 프리카.”

친구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나는 걸 듣고도 프레데리카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녀는 곧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비올렌의 뺨을 두어 번 쓸어내리고는 담담하게 답했다.

“왜냐니. 이유 같은 게 필요해? 그냥 그러고 싶었던 것뿐인걸.”

“하지만, 프레데리카…… 난……. 내게 이러는, 이유도 모르겠고……. 마왕과 대체, 왜…….”

“그러게 말이야, 레니.”

그러고는 마치 선고라도 내리듯, 프레데리카가 되물었다.

“이래도 괜찮아 정말? 이래도, 네가 내 연인 행세를 해 줄 수 있다고?”

“프레데리카…….”

“난 네가 괴로워하는 걸 보니까…….”

프레데리카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조금 핏기를 잃은 그녀의 입술이 비올렌의 귓가에 다가왔다. 숨이,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 너무 좋았는걸.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비올렌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르 흘러내렸다.

상냥하게 그 눈물을 닦아내 주며 프레데리카가 빙긋 웃었다.

“잘 생각해, 비올렌. 이제 나한테서 도망칠 기회는 이번 한 번뿐이 남지 않았어.”

“…….”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코카네스 후작님. 돌아가시는 길 평안하시길.”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린 프레데리카는 그대로 등을 돌려 방을 나가버렸다.

혼자 방에 남겨진 비올렌은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의 입에서 한숨이 떨리며 흘러나왔다.

프레데리카가 자신을 잔인하게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비올렌은 도무지 그녀를 놓을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갑작스럽게 작년 말에 여행을 가게 되어서 2일에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쓰니까 진짜 오래 전에 여행간 거 같은데 작년 말이라봐야 며칠 전이네요 ㅎㅎ

비올렌을 실컷 괴롭혀서 만족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다음 챕터로 찾아오겠습니다:D

선작 추천 코멘트, 그리고 하트시그널 모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어느새 선작이 2천을 넘었더라고요ㅠㅠ 감사합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더 열심히 쿵떡쿵떡 하겠습니다〉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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