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1화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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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1. ○○보스로 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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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클리어하세요.』

누구의 소리일까. 귓가에 똑똑히 들려오나, 어디에서 들려오는지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이 목소리는 누구의 것일까.

『비탄에 빠진 왕이시여, 부디.』

무엇도 보이지 않아. 어떠한 감각도 느껴지지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목소리를 듣는 것뿐.

『이 악몽과도 같은 게임을 끝내주세요.』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부유하던 내 의식이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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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자하드’이라는 게임이 있다.

발매된 지는 몇 년이 지났고 멀티도 되지 않는 패키지 게임이지만, 아직도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상당한 명작이다.

게임의 배경은 중세 판타지이고, 게임의 내용은 실로 타이틀 제목에 충실하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파티를 짠 후 그 파티를 이용해 던전을 공략하는 게임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간다면 ‘게임의 주인공’은 용사로서 파티 참가가 고정된다.

주인공은 트롤짓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육성하든 최상급 캐릭터로 성장하기에 파티 참가가 고정된다고 해서 딱히 문제는 없다.

그저 아쉬운 점은 지금이야 플레이어가 더더욱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끔 디폴트 이름이 없는 주인공이 흔하디흔하지만, 과거에는 이름과 외형이 정해진 주인공이 보통이었다는 것 정도일까?

아무튼, 주인공과 마음에 드는 동료 4인을 영입해 5인 파티를 구성한 후 던전을 공략해나가는 판타지 장르 게임인데.

“꿈인가.”

혹시나 싶어 볼을 꼬집어보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 뭐, 처음부터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생생한 꿈이 어딨어. 보통 꿈은 생각이 자유롭지 못하고, 몸이 자기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잖아.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상황을 곧바로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건 무리였다.

“머리 아파.”

머릿속에 이 몸의 원래 주인이던 놈의 기억이 뒤섞여서 혼란스러워.

지금 내가 전생한 존재의 이름은 ‘아르켈’이며, 이 대륙은 8개의 왕국이 있고 오크, 고블린, 드래곤 같은 이종족도 존재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재 대륙에는 상당한 숫자의 던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하자, 드디어 한 가지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아무래도 판타지 게임의 중간보스로 전생한 것 같다.

이 세계는 내가 아는 ‘던전 자하드’의 세계관과 유사하다. 아니, 유사한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똑같아.

그리고 내 이름인 아르켈, 분명 ‘던전 자하드’ 본편에서 최종 보스를 상대하기 전 무조건 만나게 되는 중간 보스의 이름이었다.

“하.”

사람은 너무 황당한 일을 겪으면 오히려 냉정해지는 건가?

분명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인데도 불구하고, 머리가 이상하리만큼 침착했다.

문뜩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상황에 부닥치기 직전 들려왔던 목소리.

게임을 클리어해달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현재 목표 : 레베카를 도와 던전을 운영해 나가십시오.」

「TIP : 현재 목표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으면 게임클리어에서 멀어집니다.」

「TIP : 게임클리어 실패 시, 플레이어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 생각과 동시에 내 앞에 조그마한 창이 나타났다.

하, 가상현실 게임 같네.

“거울이 어딨지?”

죽음이라는 단어가 깊게 와닿지 않아서 시시한 감상평을 남기고 거울을 찾는다.

우선 내 모습부터 확인해보자. ‘아르켈’의 기억을 더듬어 거울이 있는 위치로 향한 후 거울이 비친 모습을 눈에 담았다.

“맞네.”

너저분하게 자란 검은 머리, 이마에 달린 조그마한 흑색 뿔, 흰 피부, 짙고 긴 눈썹, 세상만사 귀찮음을 담은 황금색 눈동자까지.

내가 ‘던전 자하드’에서 질리도록 봐온, 중간보스 아르켈의 모습이 확실하다.

게임 내에서 ‘중간보스 아르켈’은 함정을 설치하고 도망 다닌다. 그렇게 4번 째 마주할 때야 ‘중간보스 아르켈’을 상대할 수 있다.

재밌는 건 설치하는 함정은 제법 까다롭지만 ‘중간보스 아르켈’ 본인은 굉장히 약하다는 거다. 문자 그대로 억하면 툭하고 죽는 수준이다.

“이게 말이 되나.”

그 모습을 확인한 순간 현실이 체감됐다. 내가 왜 아르켈이 돼 있는 거지? 아니, 아르켈의 기억이 남겨져 있으니 아르켈의 몸에 내 기억이 뒤섞인 건가?

그럼 원래 내 몸은? 내 기억이 여기로 넘어온 것이라면 한국에 있는 내 몸은 의식을 잃었나?

“아르켈!”

거칠게 문을 들고 온 한 여성의 목소리에 혼자만의 생각이 맥없이 끊겼다. 누구지?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본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말았다.

넘실거리는 붉은색 머리, 머리 좌우에 달린 거대한 흑색 뿔. 좌중을 자신의 아래인 듯이 바라보는 냉정한 노란색 눈동자. 날카롭고 오똑한 코. 조그마한 붉은 입술.

아름다운 여성이다.

고개를 살짝 내리자, 말도 안 되는 크기의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이건? 왜 얼굴이 가슴에 달려있어? 현실에서는 직접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크기의 가슴이다.

레베카 플락, ‘던전 자하드’ 본편의 최종 보스이자 이 던전의 던전 마스터다.

“찾으셨습니까?”

그 모습을 바라본 순간 심장이 뛴다. 아름다운 여성이기는 하지만, 한눈에 반해서 심장이 뛰는 게 아니다.

원래 몸의 주인인 아르켈의 기억 때문이다. 게임 내에서 아르켈은 자신의 상관인 레베카를 좋아한다는 설정이다.

그 기억의 잔재 때문에 심장이 이렇게 뛰는 거다, 지금 내가 처한 당혹스러운 상황 속에서 가슴이 큰 미인을 봤다는 이유로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건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찾으셨습니까?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아…….”

다짜고짜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면서 한숨을 내쉬다니 조금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됐으니까 당장 나가서 가장 가까운 도시랑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확인하고 와!”

갑자기 밀어닥치는 히스테릭한 목소리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멎었다.

이거 완전 본인 스트레스를 나한테 풀고 있는 꼴 아니야.

“……알겠습니다.”

이럴 땐 자리를 비우는 게 상책이다. 저 여자 앞에 계속 있다가는 무슨 말을 들을지 몰라.

“하아.”

방에서 나온 순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본 게임 내의 레베카는 원래 이렇지 않다. 여유롭고, 오만하며, 적어도 저런 식으로 갑자기 짜증 내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내가 아는 레베카와는 외모만 같은 다른 인물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저렇게 똑같은데 내가 아는 레베카가 아닐 리가 없다. 아직도 조금씩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아르켈의 기억 상에서도 레베카는 저런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기를 잠시, 아르켈의 기억을 되짚어본 결과 레베카가 왜 저렇게 짜증이 난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던전에 모험가들이 찾아와야 하는데 마차를 기준으로 3일 안에 도달할 수 있는 도시가 없다.

아니 애초에 근처에 도시가 있기는 한지 의문이다.

잠깐만.

이 기억이 맞다면 근처에 도시가 없는 건 이미 확인한 상태다.

이런 상황인데 이제는 가장 가까운 도시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확인하라고 하다니. 어지간히 짜증이 난 상황인가 보다.

그런데 왜 던전에 모험가가 찾아와야 하지?

내가 아는 ‘던전 자하드’에 그런 설정은 없었는데. 내가 모르는 설정이 있는 건가?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던전 자하드’ 고인물이다. 아니 고이다 못해서 썩어버린 수준이다.

본편은 물론이고 2개의 확장팩 거기에 썩은 물들을 위해 추가된 추가 컨텐츠까지 클리어했다.

게임을 많이 했어도 설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이 정도 썩으면 설정도 상세히 꿰게 된다.

그런 내가 모르는 설정이 있다고?

“머리 아파.”

아르켈의 기억을 되짚어봤지만, 당장은 머릿속이 어지러워서 쓸만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일단 시키는 대로 나가보자.

던전 밖을 나오자 어스름한 하늘이 나를 반겼다.

습관적으로 밤하늘을 바라본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오고 말았다. 도시에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다. 하늘에 수없이 많은 별이 걸려있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보는 광경이 이 정도인데 하늘을 가리는 것이 무엇도 없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인간인 내 몸이었다면 숲을 빠져나가려고 노력하거나, 아니면 나무를 올라탈 시도를 해보다가 결국 포기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르켈의 몸은 날 수 있어.

날고 싶다. 날아서, 이 세계의 하늘을 마음껏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내 바람에 응답하듯이 몸이 조금씩 하늘 위로 떠올랐다.

“어?”

공중을 부유하는 감각이 너무나도 어색해서 나도 모르게 조금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르켈의 기억 덕분이지 곧바로 익숙하다는 듯이 점점 떠올라 마침내 숲의 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

감탄이 나오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무엇 하나 가리지 않고 오롯이 모습을 보이는 밤하늘의 모습은 별이 넘실거리다 못해 흘러넘치는 것 같아, 마치 별로 이루어진 바다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 설마 그것도 실제로 볼 수 있는 건가? 고개를 내려 좌우를 둘러본 순간.

“미쳤네.”

내 시야의 반을 차지한 반구 형태의 거대한 위성이 밤을 거부하듯, 어두운 대지를 비추는 광경을 보고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던전 자하드’의 세계에는 두 개의 위성이 존재한다. 하나는 지구의 달과 같은 평범한 위성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지금 내가 바라보는, 항상 북쪽에 있는 거대한 위성, ‘아포디미아’다.

게임에서는 아포디미아 쪽을 바라보면, 밤이든 낮이든 모니터의 반을 넘게 차지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시야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보니까 완전히 다르네.”

시야를 답답하게 만든다기보다 그저 그 압도적인 위용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아름답다. 던전 자하드의 세계는 너무나 아름다워. 그저 밤하늘을 바라본 것만으로 이런 생각이 드는데 다른 풍경들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밖에 나온 이유를 상기하자. 가장 가까운 도시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 확인해봐야지.

“제일 가까운 도시라…….”

그나마 사람의 기운이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쪽은 이쪽인가? 잠깐만 이 상태로 어떻게 이동할 수 있……. 어느 사이에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게 됐네.

“오.”

내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공중을 이동할 수 있다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각이라 신기하다.

도시가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지 알아볼 겸, 이 감각을 즐기기 위해 날아다녀 볼까.

“저기가 도시인가?”

적당한 속도로 날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시야에 불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점점 불빛에 가까워지면서 가장 먼저 도시를 감싸고 있는 성벽이 보였다. 그다음 눈에 들어온 것은 출입을 통제하는 성문.

그리고 그다음에는 도시 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실제로 던전 자하드를 플레이할 때 봤던 느낌의 도시다.

뭐 느낌이 그렇다는 거지,조금 다르긴 하다.

“엄청 크네?”

게임에서는 어느 정도 도시의 규모를 축소한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는 게임에서 보는 것보다 도시의 규모가 훨씬 컸다.

하늘 위에서 중세풍의 도시 내에서 사람들이 밤의 거리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중세풍 테마파크의 관람차 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지경이다.

하지만 저곳은 테마파크 같은 장소가 아니다.

이건 현실이야.

그것을 자각한 순간 방금까지 흥미로 물들어 들떴던 기분이 가라앉았다.

“나 진짜로 던전 자하드 세계에 있구나.”

지금 내 몸은 사람이 아니다. 분명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저들과 같은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가 있는 곳이 지구가 아니라는 것이 내가 정말 다른 세계에 왔다는 것이 체감됐다.

지금이라도 눈을 감고 잠이 들면 다시 지구로 돌아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지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느껴져.

지구에서 남은 미련 같은 게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에 조금 불안함이 느껴진다.

“그래도 다행이네.”

그나마 불안함이 조금밖에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다른 누구도 아니고 아르켈로 전생했으니까.”

‘던전 자하드’ 본편의 중간보스임과 동시에 썩은 물들을 위한 추가 컨텐츠의 최후를 장식하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게 있어 명실공히 최강의 적, 히든 보스로 전생했기 때문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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