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4화 (4/99)

〈 4화 〉 2. 마을을 만들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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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락은 떠나가는 아르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제 뺨을 꼬집었다.

“하. 하하……. 아프다. 진짜로 아파.”

뺨에서 명백히 느껴지는 고통에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안 순간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있다. 그것도 그냥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다시금 왕국이 부흥할 보물이 생겼다.

처음 본 마족의 행색은 무서웠다. 마족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50년간 용에게 핍박을 받았는데 이제는 마족에게 핍박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저주받을 용과는 달랐다.

“저분이 우리의 구원자시다.”

지상의 생명체들은 마족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그러나 마족이면 어떤가. 우리를 핍박하던 용을 처리해주었고, 나아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성큼 용의 둥지에 있던 보물까지 나눠주지 않았는가.

게다가 자신이 용을 처리한 것을 비밀로 하자니. 그야말로 우화 속에서나, 전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구원자였다.

“내 반드시 이 은혜를 갚으리.”

은혜를 입었다면 2배로 돌려주고, 원수를 졌다면 10배로 갚는 것이 드워프였다.

그렇다면 왕국을 구해준 저 은혜는 어떻게 2배로 갚을 수 있을까.

분명 평생을 걸쳐 나눠 갚아야 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소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무너져가는 왕국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는 것이 먼저였으니까.

* * *

던전으로 돌아오자마자 레베카에게 용의 둥지에 있던 무기 중 가장 질이 낮은 것으로 보이는 것 중 몇 개를 보여줬다.

“이런 걸 어디서 얻었어!?”

질이 가장 낮다고 하지만, 명색에 용의 둥지에 있던 무기다. 인간 기준으로는 상당한 보상이 될 것이다.

덕분에 항상 히스테릭했던 레베카의 얼굴도 오랜만에 밝아졌다.

그래 우리 이대로 같이 노력하도록 하자. 너는 우승하기 위해서, 나는 게임클리어를 위해서.

“드워프가 만든 거 같은데?”

“맞습니다. 근처에 드워프 왕국이 있길래 이야기를 좀 나누고 구했습니다.”

“그래?”

그 말에 레베카의 눈이 번뜩였다. 어라? 생각해보니까 조금 위험하지 않아? 만약 레베카가 드워프 왕국을 이용하겠다고 하면? 용의 지배에서 막 벗어났는데 이번에는 마족에게 핍박받을 수도 있잖아.

“던전이 조금 발전하면 그쪽이랑도 이야기를 해봐야겠네. 이런 식으로 무기를 교환할 수 있으면 더 좋고.”

아. 이어지는 레베카의 말에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하긴 게임 안에서의 레베카는 도도하고 오만했지만, 정정당당했다. 아르켈의 기억 속에서도 그녀는 그런 짓을 할 만한 마족이 아니었고.

내가 본 레베카는 항상 히스테릭해서 나도 모르게 불안을 느끼고 말았다.

“문제는 던전이네. 하아.”

레베카가 한숨을 내쉬면서 상체를 숙이자 거대한 가슴이 더더욱 강조되었다.

진짜 엄청나게 크네.

아니 저 가슴에 한눈을 팔 때가 아니지.

내가 던전 초기에 쓰일 보상을 구해왔음에도 레베카가 한숨을 내쉬는 것도 이해가 된다.

보상을 구해왔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게임에서야 최종 보스의 던전이니 이런 외진 곳에 있는 게 맞았지만, 지금은 게임 보정도 사라진 상태이기에 현재 던전의 위치는 그저 불리한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이 지리적 불리함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근본적인 문제다.

“좋은 방법 없을까, 아르켈?”

아니 내가 도라○몽도 아니고 좋은 방법이 이렇게 빨리 떠오를 리가 없잖아.

이 축제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욕망이 필요하다. 정확히는 인족의 욕망이 필요하다고 해야겠지.

그렇기에 던전에 인족이 방문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도시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이 근처에 있는 인족이라고 해봐야 드워프 왕국뿐일 것이다. 아, 아니지. 현실에서 직접 본 건 아니지만, 게임에서는 근처에서 본 적이 있다.

“왜 그래 아르켈?”

돈이 없어서, 혹은 개인의 사정 때문에 도시와 멀리 떨어진 곳에 텐트를 치고 자급자족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뭔가 방법이 떠오른 것 같기는 한데, 정보가 부족해. 근처에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아르켈!”

“레베카님. 저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어?”

대답은 들을 시간도 아깝다. 머릿속에 떠오른 이 해답이 정답인지 확인하기 위해 급히 던전의 바깥으로 향했다.

“우선.”

게임 상에서는 이 숲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숲의 바깥부터 도시 근처까지는 분명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들을 모두 모으면 대략 어느 정도 규모인지 알아내는 것이 먼저다.

하지만 일일이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으러 다니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럴 땐 마법을 쓸 수 있는 게 고마워진다니까.”

인기척을 탐색하는 마법을 사용하면 그만이다. 범위는 이 숲에서부터, 가장 가까운 도시 부근까지. 탐색할 인기척은 인간으로 한정하도록 하자.

“생각해보니까 어처구니가 없네.”

지금 사용하려는 마법은 고위 대마법사나 사용할 수준의 마법이지만, 아르켈의 몸은 이 정도 마법을 사용함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니.

어디 보자.

“도합 100명 정도 되는 거 같은데?”

이 정도면 사람 숫자는 충분하다. 문제는 사람 숫자가 충분하다고 하더라도,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는 거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해결 방안은 그야말로 간단하고 무식한 해결 방안이다.

사람들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던전을 찾아오기 힘든 이유는 거점이 없기 때문이다. 거점이 있어야 피로를 풀기도 용이하고, 보급도 원활하게 채울 수 있다.

그렇다면 거점을 만들어주면 된다. 이 숲 바깥에 마을을 만들고 인구를 채워 넣으면 자연스럽게 모험가의 거점이 될 거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이용해 숲에 던전이 있다는 소문을 내면 된다.

사실 생각은 간단하지만, 말이 쉽지 현실을 보자면 그리 녹록하지는 않다. 당장 마을을 짓는 것도 머리가 아파.

게다가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까지 도로를 만드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상당한 돈이 들어가겠지만, 그건 용의 둥지에 있던 보물들로 충당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역시나 마을을 짓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겠지.

“좋아.”

일단 사람들을 모아보자. 아, 마족 모습으로 다가가면 경계할 게 분명하니까 인간으로 변장하는 건 잊지 않도록 하자.

* * *

우선 가장 먼저 인간의 기척이 느껴진 장소로 순간이동을 한 후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냥 아무것도 없는 언덕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캠프. 그게 끝이다.

텃밭이 조금 보이기는 하지만, 이런 곳에서 사람이 자급자족하며 살 수 있나 싶다.

“꼼짝 마!”

어라?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장정 두 명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중 내게 말을 건 남자의 손에는 단검이 들려 있다.

설마 강도인가?

“가진 걸 전부 내놓으면 해치지 않겠다.”

역시 맞네. 순간 눈이 찌푸려진다. ‘던전 자하드’에서 필드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식으로 강도와 마주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때마다 느끼는 건 귀찮음이다. 던전이나 다른 괴물에 비해서 별 보상도 주지 않는 주제에 상당히 자주 출몰하니 귀찮음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럼 저 캠프는 이 강도들의 소굴인가? 그렇다면 처리해두는 게 맞지 않을까? 마을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선 사람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이런 놈들을 받아줄 필요는 없다.

물론 죽일 생각은 안 들고, 단순히 쫓아낼 생각이다.

“반이라도 좋다!”

그런데 다시 보니 조금 이상함이 느껴졌다. 목소리는 냉정하지만, 이상하게 급해 보였다. 그리고 하나 더 이상한 점은.

“떨리는 손 좀 어떻게 해봐. 그러다가 단검 떨어트려서 발이라도 찔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본인이 긴장했음을 나타내듯 강도의 손에 들린 단검이 미세하게나마 떨고 있다. 그리고 왠지 서 있는 것도 힘들다는 듯,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것도 마음에 걸려.

“닥치고 얌전히 형님 말 들어! 괜히 그쪽도 다치면 손해일 거 아니야!”

어떻게 할까. 꼴을 보아하니 아마도 이제 막 강도질을 시작한 것 같은데. 물론 단순 강도였다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쫓아냈겠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저 캠프 안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인기척 세 개. 그리고 손을 떨고 있는 강도.

좋아.

“허억.”

순식간에 강도들의 옆으로 이동한 후, 단검을 빼앗는다. 그 과정에서 약간 손목을 뒤틀기는 했지만, 아마 조금 있으면 괜찮아 질 거라고 확신한다.

“형님!”

“해치지 않으니까 그렇게 소란 피우지 마. ”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가 급히 내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손으로 그 행동을 제지했다.

“사정을 좀 들어보고 싶어졌는데. 우리 이거 치우고 이야기 좀 할까?

내 손에 들린 단검을 바닥에 버리자, 그제야 두 남자는 조금 안심한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두 남자가 나를 캠프 안으로 안내했다.

“여보…….”

캠프 안에 들어온 순간 눈이 찌푸려졌다. 앙상한 두 아이가 허덕이며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애들이 아픈가 보네.”

“예…….”

내 물음을 남자가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긍정했다.

“내가 좀 봐볼게.”

아르켈의 지식을 토대로 애들을 살펴본다. 그리고 애들의 상태를 살필수록 더더욱 내 눈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냥 못 먹어서 이렇게 된 거야. 딸이 이렇게 될 때까지 뭐했나. 사냥이라도 하지. 쯧.”

분명 이런 곳에 캠프를 만들고 사는 건 이유가 있어서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식을 굶기면 쓰나.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자식은 먹고살게끔 해줘야지.

“이 근처에 사냥할 곳이라고는 ‘비명 숲’뿐인데…….”

아, 그래. 던전이 있는 숲의 이름이 분명 그런 이름이었지.

“며칠 전에 비명 숲에 들어갔다가, 괴물을 만나 도망쳤습니다. 도망치는 중에 다쳐서 일주일 동안 사냥을 못 했습니다.”

남자가 제 다리를 보여주며 붕대를 풀자,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거대한 야수가 발톱으로 할퀸 듯한 상처가 아직도 선명하다.

“내가 실언을 했네.”

사냥할 수도 없는 몸 상태지만, 자식들이 허덕이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 강도질을 결정한 것일 터다.

“그 상처로는 사냥도 못 하겠으니 강도질을 하려고 한 거야?”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너무 급해서.”

아마 내가 주변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는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일 거다. 자식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부모가 이성을 유지하고 있을 수 있는 게 신기한 일이다.

“그렇겠지.”

하지만 방법이 옳지 않다. 그렇게 강도질을 하다 보면, 남의 것을 뺏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성공하다 보면 도적이 되는 거고.”

우선 애들부터 살리고 보자. 몰랐다면 모를까, 애들이 죽어가고 있는 사실을 안 이상 이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그렇게 말한 후 캠프 밖으로 나왔다. 그럼 어떻게 할까? 나라면 비명 숲에 있는 동물을 사냥해서 가져다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될까? 저렇게까지 굶은 애들이 고기를 먹으면 속에서 탈이 날 건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남자의 다리 상처도 제법 심각한 편이었다. 지금 약을 바르지 않는다면 상처가 낫기는커녕 점점 심해질 거다.

“일단 도시로 들어갈까.”

아무래도 도시에서 물건을 사 오는 쪽이 훨씬 현명해 보인다.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하면 도시까지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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