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10. 독백
* * *
“네 앞에선 다 저래? 너무 과하지 않아?”
궁궐에 들어서자마자, 레베카가 내게 한 말이었다. 그래 나도 저게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고는 있다.
하지만.
그 말을 레베카의 입으로 들으니 전혀 와 닿지 않는다.
“바르바라 앞에 있던 너희 마족도 마찬가지였어.”
마족에게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받는 바르바라. 아래 아이들에게 신으로 추대받는 나. 서로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에 나는 바르바라를 혐오하고, 바르바라는 나만이 자신을 죽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것이다.
“저 정도까진 아니지 않…….”
그래 그렇게 말할 것 같더라.
“장담할 수 있어?”
걸음을 멈추고 레베카에게 묻는다.
“자신의 행동을 자신이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거야, 레베카.”
사고가 존재하는 생명체는 자신의 행동에는 어느 정도 관대한 편이다. 제 행동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이는 굉장히 드물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물어볼게. 장담할 수 있어?”
내 물음에 레베카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더니, 이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없어.”
“잘했어요.”
장담하지 못하겠다고 곧바로 인정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다. 보통은 인정하려고 들지 않거든.
“하지만 내가 그랬다고 하더라도, 이건 과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나 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 관습은 너무나 오랫동안 계속되어왔다.
지금 와서 고치려고 하자고 해도 아래 아이들이 거부하려 들 것이다.
“전부 어전으로 모이라고 해.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예, 폐하.”
안드로가 자리를 떠나자, 나는 곧바로 근처에 있는 아래 아이 중 하나를 불렀다.
“내 소중하신 손님이다. 가장 좋은 방에 잘 모셔다드려.”
“받들겠습니다, 첫 번째 신이시여.”
“그럼 난 볼 일이 있으니까 나중에 보자 레베카.”
“나도 같이…….”
고개를 젓는다.
“많이 양보해줬잖아. 원래는 여기 데려오지도 말았어야 해.”
그래 사실은 메르넬라를 생각해서라도 레베카를 여기에 데려오면 안 됐다. 하지만 레베카가 무조건 따라오겠다고 강짜를 부린 바람에 데려오게 됐다.
여기까지는 레베카의 응석을 받아준 셈이긴 하다만.
“그러니까 이번에는 레베카가 양보해줘.”
응석을 받아줄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야.
“……알았어.”
말을 들어줘서 다행이다. 레베카가 내 곁을 떠나는 것을 확인하자 다른 아래 아이가 내게로 다가왔다.
“첫 번째 신이시여, 치장 준비를 마쳤습니다.”
“됐어, 귀찮아. 이대로 간다.”
“예. 첫 번째 신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치장은 무슨 치장. 치장한다고 쓸 시간이 아깝다. 이야기만 조금하고 다시 지상으로 돌아갈 생각이기도 했고.
* * *
“첫 번째 신의 손님이시여. 필요한 게 있다면 불러주시옵소서.”
아르켈의 시종 중 한 명에게 방으로 안내된 후, 문이 닫혔다. 방 안에는 오로지 나 혼자뿐인 상황이다.
“흐응.”
화려한 방이다. 내 평생 이렇게 화려한 방은 본 적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다. 새삼스럽게도 이 방의 화려함을 목도한 순간, 아르켈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가 없게 됐다.
“아르켈 …….”
나, 레베카 플락에게 아르켈이란 어떤 존재일까?
나에게 있어 아르켈이라는 남자는 힘도 없고 계급도 한참 아래인 하급 마족에 불과했다. 얼굴이야 원래 반반했지만, 겨우 그 정도일 뿐이다.
요약하자면 내가 아는 아르켈은 차를 잘 탄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나와 같이 다닐 수 있는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던 자였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마냥 마땅히 있어야 할 배경이 되는 부모와 가문이나 직위도 없었으며, 본인 스스로 강대한 힘을 지니지도 못한 주제에 하루가 멀다고 나에게 건방지게 청혼을 남자.
“처음에는 그냥 그정도였는데.”
그래.
처음엔 주제를 모르던 강아지가 분수도 모르고 나에게 엉겨 붙는 것이 조금은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첫 청혼도, 그리고 한동안 쉴 새 없이 이어지던 장난 같은 청혼들도 모조리 거절하는 것은 내겐 당연한 일이었다.
솔직히 그가 내게 어째서 호감을 느꼈는지 그 이유도 잘 모르겠다.
사랑에는 이유가 별로 필요치 않다는 말을 어디서 듣기는 했지만, 막상 나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니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런 그를 부관으로 삼은 것은 나 레베카 플락이 동 세대 마족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차만 타도 좋으니, 자신을 데려가 달라며 간청하는 것에 마음이 조금 약해진 것도 있긴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도 그때부터 이상하긴 했구나.”
축제에서 우승하려고 하는 주제에 그 아르켈을 부관으로 삼다니. 멍청한 짓이었지.
넓은 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맡긴다. 아, 푹신푹신해. 향기까지도 좋아.
“하아아.”
나를 따르는 다른 마족들은 모두 플락가의 가신들이지만, 아르켈만은 아니기에. 플락가의 힘을 쓰지 않고 당당하게 우승을 차지해서, 아버님이 나를 봐주기를 원해서.
그리고 누굴 데려가든 결과는 똑같을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기왕이면 그냥 개인적으로 편하다고 느낀 아르켈을 데려갔다.
“다른 건 몰라도 차는 정말 기가 막히게 타거든.”
그때까지 난 그에 대해선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차만 잘 타면 그만인 하급 마족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질 않았지.
“던전 위치가 최악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화가 좀 많이 나긴 했었지.”
그리고 그때쯤, 아르켈 역시 변했다.
눈에 띄게 변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작은 흔들림이었다.
내 앞에선 항상 능글맞게 호감을 표하던 태도가 뭔가 불안하거나 딴생각이라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웃음이 아닌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르켈이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처음엔 지상으로 나왔으니 기분이 조금 싱숭생숭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
내 던전의 위치는 인간의 욕망을 모으기에 너무나 좋지 않다. 운이 엄청나게 나쁜 케이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나름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있었기에 쓸모없는 아르켈을 데려왔던 것인데, 던전의 위치는 최악이지, 욕망은 모을 수가 없지.
자존심은 갈기갈기 찢겼으며, 나 자신이 너무나 우습게 느껴졌다.
그래서 화도, 짜증도 많이 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아르켈이 완전히 변한 게.”
아르켈에게 하나를 맡기니 열의 성과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차를 잘 탄다는 것을 빼면 내 곁에 있을 이유가 없던 녀석이 생각외로 무언가 척척 성과를 거둬올 때는 표현은 않았지만, 상당히 기뻤다.
하지만 기쁨은 짧았고, 무언가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 이외에는 누구하고도 짧고 사무적으로 대화했으면서.
나한테만 웃어줬으면서.
나만을 사랑한다고, 절대로 변치 않으리라고 말했던 주제에.
물론 처음에는 의혹이었다. 하지만 그 의혹이 확신으로 바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도회 때, 나보다 리첼을 챙기는 모습을 보고 의심했다.
나와의 춤을 거절한 주제에 나디아에게 춤을 권한 모습을 보는 순간 확신했다.
아르켈이, 내가 지금까지 알던 아르켈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제 청혼을 거절하신 건 레베카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도망쳤다. 내게서 마음을 접은 거야? 내가 청혼을 거절해서? 그렇게 쉽게 마음이 바뀌어도 돼?
나도 모르게 아르켈은 변치 않으리라 생각했다.
수없이 많은 청혼을 거절했음에도 아르켈은 여전히 내 곁에서 변치 않는 사랑과 가끔 경망스러운 청혼, 장난스러운 청혼을 멈추지 않고 나에게 사랑을 표현했으니까.
그러나 아니었어. 누구나 마음은 바뀌기 마련이라는 그 간단한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었다.
아르켈이 변했어.
그런 생각이 들자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커다란 상실감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른다. 가장 오래 산, 마왕급 마족조차도 건드릴 수 없는 용을 굴복시킨 그 모습을 본 순간.
지금까지 나를 속였다는 생각이 들만도 한데.
나를 능멸했다고 느끼고 불쾌감이 들만도 한데.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넌 내가 알던 아르켈이 아닌 거야? 넌 누구야?
애초에 내가 아르켈에 대해 제대로 아는것이 뭐가 있을까? 아니 내가 그를 제대로 알긴 하는 걸까? 그가 나에게 가진 호감과 사랑이 진짜이긴 한 것일까?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아르켈이 나에게 청혼을 거절당하더라도 사랑과 호감을 표하던 것들이 전부 장난이거나,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신기루였던 게 아닐까?
불안해, 아르켈이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불안했다.
그래 그 당시 나는 그저 불안했다. 아르켈이 사라질 것 같아서, 머릿속에는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지만, 그저 그가 사라질 것 같아서 불안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넌 대체 누구야? 아르켈? 나를 좋아…. 아니, 사랑한다 말했던 건 진실이니?”
대답없는 질문이 방을 가득 메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