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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50화 (50/99)

〈 50화 〉 19. 사제 아리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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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아리아는 대사제의 명을 받아, 바르크 백작 영지에서 아르켈 마을에 왔다.

그녀의 목적은 비명 숲 던전의 규모를 조사하는 것이다.

던전의 규모가 크면 성기사단을 파견하기 위한 조사였다.

어째서 성기사단이 마족을 토벌하지 않는가.

어째서 던전에만 피해를 주는가.

그 사실은 아리아도 몰랐다. 성기사단도 몰랐다.

그래서 한때는 성기사단에서 어째서 저희에게 마족 토벌을 명하지 않느냐고 교황에게 따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교황은 그저 신의 계시라고 답했을 뿐이다.

신의 계시가 그렇다면 따르는 수밖에.

사제들은, 성기사들은, 신을 믿는 이들은, 어릴 적부터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게끔 자라왔기에.

“여기가 끝입니다.”

같이 온 모험가의 말에 아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저 안쪽에 길이 이어져 있는데 어째서 이곳이 끝이라고 하는 걸까.

“저 안쪽은요?”

“저곳부터는 들어가면 안 됩니다, 사제님. 늑대인간이 지키고 있어요.”

늑대인간.

마족을 따르는 대표적인 종족 중 하나였다.

“늑대인간이 지키고 있으면, 죽이면 되는 것 아닌가요?”

마족의 앞잡이를 죽일 기회인데 어째서 이들은 그저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는 걸까.

아리아는 진심으로 모험가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건드리면 좋을 게 없으니까요.”

“신님을 위해 봉사할 기회잖아요.”

“저희가 늑대인간을 처리한다고 신이 돈을 주지는 않지 않습니까.”

던전을 토벌하면 모를까, 늑대인간을 처리한다고 신전에서 돈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모험가들은 마족을 토벌할 실력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던전에선 돈을 주죠. 늑대인간을 건드렸다고 마족에게 보복을 당하면 저희는 죽을 거고요.”

실력이 되지 않는다면, 애초에 건드리지 않는 게 현명하다.

목숨은 누구에게나 아까운 것이었으니까.

“신은 항상 여러분을 굽어살피십니다. 그것을 갚을 기회는 흔치 않아요.”

그러나 그 목숨보다도 신실함 믿음을 중요시여기는 이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리아와 같이, 신전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바로 그런 부류였다.

“굽어살피는 거 맞아?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사는 이유가 뭔데?”

아리아의 말에 반박한 것은 여태껏 말없이 따라오던 다른 모험가였다.

“그건 신의 시련입니다.”

“시련 같은 소리 하네. 그럼 왜 시련 없이 잘 먹고 잘사는 귀족 놈들이 있는데?”

“야, 그만해.”

다른 모험가가 말렸으나, 그는 그 만류를 밀어내고 계속해서 입을 연다.

“심지어 귀족들이 더러운 짓을 해도 신은 왜 눈감아 주시지? 신전에 돈을 많이 줘서 눈감아주는 거야?”

모험가는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 들지는 않았다.

이 세계에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는 없으니까.

신의 존재는 수없이 많이 증명되기에.

당장 천족의 존재 자체가 그 증거였으며.

아포디미아라는 거대한 위성 또한 창조자의 농간이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내가 딱 말해줄게. 신은 사람한테 관심 없어.”

그러나 신이 과연 인간에게 관심이 있을까.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어찌 그런 불경한 발언을.”

신은 과연 인간에게 관심이 있나.

신전의 인간들은 분명 그렇다고 답하겠지.

천족, 그중에서도 다섯의 대천사와 모든 천족을 다스리는 왕의 기적을 본 이는 많다.

하지만 신이 직접 자신의 권능을 행하는 것을 본 이는 아무도 없다.

신이 인간에게 관심이 있는가?

이 질문은 신전에서는 금기와 같은 질문이었다.

“던전 안내는 끝난 것 같은데요. 저쪽으로 들어가시려면 혼자 들어가시죠.”

결국, 파티를 이끌던 모험가가 한숨을 내쉬었다.

적당한 보수를 받고 사제에게 던전을 안내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래서 계속 안내해주는 건 무리다.

애초에 던전 안내는 사실상 끝난 셈이었으니 이쯤에서 헤어져도 문제없을 것이다.

혼자 돌아가는 것도 문제없다.

이 던전에는 다른 모험가들도 많으니까 괴물에게 습격당할 일은 없겠지.

“그래요. 좋아요.”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약속된 보수를 지급했다.

모험가 파티는 아리아가 내민 보수를 받은 후,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사제랑 같이 오지 말자고 했잖아.”

“보수가 짭짤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으, 재수 없어.”

자기들끼리 악담을 퍼붙는다. 마치 들으라는 듯이.

아리아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신이시여, 당신을 믿지 않는 저들 역시 굽어살피소서.”

“혼자 남았네? 이런 위험한 곳에 혼자 있으면 쓰나.”

“예?”

그 순간 뒷목에 강렬한 충격과 함께 아리아는 정신을 잃었다.

아리아가 정신을 차린 건 조금 뒤였다.

‘분명 목소리가 들리고 정신을 잃었어.’

의도적으로 자신을 기절시킨 이가 있다.

도대체 누구일까.

어떤 이가 감히 사제의 몸을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

‘아직 던전 안인 것 같아요.’

주변을 살펴본 아리아는 자신이 아직 던전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읏.”

아리아는 일어나려고 했으나, 제 발목에 쇠사슬이 차여있다는 사실만 깨달았을 뿐이다.

속박당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일부러 가뒀어.

‘큰일이에요.’

비명 숲 던전은 도시와 상당히 떨어진 곳이다.

그래서 당장 아리아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문제 삼을 이는 없을 것이다.

아마 한 달 정도는 흘러야, 아리아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을 깨닫고 수색대를 보내겠지.

‘한 달…….’

그 기간을 생각한 아리아는 심장이 철렁임을 느꼈다.

너무나 긴 시간이다.

무슨 짓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었다.

“신이시여. 저를 굽어살피소서.”

무릎을 꿇고 신께 기도를 올린다.

이 또한 신이 내린 시련일 뿐.

당신을 얼마나 믿는지, 그 한계를 시험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아리아는 자신이 있었다.

더러운 마족 손에 몸이 더럽혀진다고 해도, 절대로 타락하지 않을 것이다.

모진 고문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참고 견뎌내리라.

그리 신실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을 때,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니, 이마에 뿔 하나가 달린 창백한 피부의 남자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중이었다.

저 뿔이 바로 어느 종족의 상징인지, 아리아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마족…….”

우리의 적.

신의 적이자, 천족의 적.

그 존재와 마주본 순간 아리아는 강렬한 적대감에 사로잡혔다.

“안녕. 난 아르켈이라고 해. 그쪽은 이름이 뭐지?”

아르켈.

아리아는 마을 이름인 아르케와 눈앞에 있는 마족의 이름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주 한순간이었을 뿐이다.

‘그저 우연의 일치이겠지.’

강렬한 적대감에 아리아는 마족의 질문에 그저 입을 다물었다.

대답하면 저 마족의 술수에 넘어갈 뿐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인내하자.

인내하는 것이 신이 원하는 것이니까.

“대답하기 싫은가 보네.”

마족 역시 딱히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우리 던전에 온 이유는?”

아리아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느 신전에서 왔지?”

당연히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이 시련을 견디어내겠다고 신께 기도하고 기도할 뿐.

“계속 그렇게 대답이 없으면, 재미없을 텐데.”

남자가 손을 까닥이자, 저편에서 무언가가 바닥을 기어오기 시작했다.

‘뭐, 뭐예요 저 괴물은.’

형태조차 똑바로 잡히지 않은 흐물흐물한 괴물이 바닥을 기어오고 있다.

기어올 때마다 체액이 땅바닥에 남는 것조차 기괴하게 느껴져.

징그러워, 더럽다.

불쾌하다.

“이 녀석한테 무슨 꼴을 당해도 괜찮겠어?”

남자 마족의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듯, 불쾌하기 짝이 없는 괴물에게 달린 촉수가 요동쳤다.

그 촉수를 본 순간, 아리아는 저 괴물이 어떤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저것은 여자를 더럽히는 괴물이다.

신전에서 괴물에 관해 교육을 받았을 때, 여자의 자궁에 알을 넣어 산란시키는 괴물이 있다고 들었다.

저것이 바로 그런 괴물이었다.

인간도 아니고, 마족도 아닌 형태조차 불분명한 괴물.

그 괴물에게 고이 간직해온 순결이 더럽혀진다.

그런 생각이 들자, 아리아는 몸을 떨었다.

“마음대로 하세요, 이 악독한 마족!”

공포를 느껴 소리를 지른다.

자신이 느낀 공포를 부정하기 위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다시금 굳게 마음먹는다.

이 또한 지나갈 시련이라고.

그러니 견디어내겠다고.

‘신이시여, 저를, 저를 굽어살피소서.’

아리아는 감히 신께 구원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굽어살펴달라고 빌 뿐.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음에도 그녀의 신실함은 여전히 굳건했다.

“좋아, 그럼.”

남자가 손짓하자 괴물이 아리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촉수를 꺼내 아리아의 몸을 더듬는다.

“크읏.”

촉수가 제 몸을 쓸어내리는 소름 끼치는 감각에 아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굳건한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몸은 떨고 있지만, 신을 믿는 이 마음은 흔들리지 않아.

입술에 피가 맺힐 정도로 이를 깨물면서, 아리아는 눈을 감았다.

“하아.”

남자 마족이 한숨을 내쉬는 소리와 함께 소름끼치는 감각 역시 사라졌다.

“에?”

눈을 떠보니 괴물은 아리아 곁에서 떨어져 남자 마족 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어째서?

분명 각오했는데 어째서, 남자 마족은 갑자기 저 괴물을 멈추게 한 걸까.

“거짓이라도 상관없으니까, 대답하는 척만 해줘.”

그리고 들려오는 상냥한 목소리에 아리아는 제 귀를 의심했다.

“나도 딱히 널 괴롭히고 싶지는 않아.”

“그렇다면 절 풀어주세요.”

괴롭히고 싶지 않다면 풀어주면 된다.

“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거예요. 절 고문한다고 해도, 절대로 입을 열지 않겠어요. 그러니 시간 낭비 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절 풀어주세요.”

진심이었고, 진실이었다.

아리아의 말에 남자 마족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고는, 이마에 달린 자신의 조그마한 뿔을 가리켰다.

“내 뿔을 봐. 알지 모르겠지만, 마족의 강함은 뿔의 갯수와 크기로 정해져.”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다.

남자 마족의 뿔은 하나뿐이었다.

심지어 그 뿔도 너무 작아.

“나는 이곳 던전 마스터의 부하일 뿐이야. 이것도 다 상사가 시켜서 하는 거라고.”

던전에 보통 두 명의 마족이 있다는 사실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기에 아리아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나도 사람 괴롭히고 싶지 않으니까, 거짓말이라도 해. 그래야 내가 상사한테 무슨 말이라도 하지.”

“거절하겠습니다. 마족과는 내통하지 않아요.”

그러나 그가 부하 마족이건, 뭐건 아리아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마족은 존재 자체가 부정한 종족이다.

그런 마족과 말을 맞춘다?

신을 믿는 사제에게는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곤란한데.”

남자 마족은 쓰게 웃었다.

“오늘은 갈 테니까, 잘 생각해봐. 내일 다시 올게.”

“에?”

정말로 그냥 간다고?

아리아는 눈을 껌뻑이며 남자 마족을 바라보았다.

진짜로 제 몸에 아무런 짓도 하지 않고 그냥 가겠다니.

남자 마족은 거짓이 아니라는 듯, 자리를 떠나려고 한다.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게 분명해요.’

그래 이것 역시 저 마족의 술수다.

아리아는 마족이 자신을 안심하게 하고, 나중에 무언가 할 생각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아, 여기 물하고 빵 놔두고 갈게.”

남자 마족이 자리를 떠났다.

아리아는 다음날까지 그가 놔두고 간 물과 빵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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