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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58화 (58/99)

〈 58화 〉 22. 마법사 길드(2)

* * *

벨라트릭스 그리고 그녀의 호위 무사들과 함께 비명 숲 안으로 들어섰다.

“이쯤이면 되겠네.”

조금 걷자 적당한 장소가 있었다.

주변은 나무로 가려져 있는 적당한 공터. 여기라면 용이 사체를 꺼낸다고 해도 마을 사람들이나 모험자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왜 부인과 저희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셨는지,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저번에 본 기사단장이 말을 걸었다. 왠지 조금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

인적이 드문 곳에 왔으니 내가 무슨 짓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음, 아무리 봐도 그런 거 같다.

묘하게 벨라트릭스와 내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기다려봐.”

나로서는 웃긴 이야기지만.

만약 내가 벨라트릭스를 처리할 마음이었다면 굳이 여기까지 데리고 올 필요도 없다.

“어디 보자.”

아공간을 뒤져 요전번에 챙겨놨던 용의 시체를 꺼냈다.

시체의 상태는 여전히 신선했다.

역시 아공간이야.

성능 확실하구먼.

“꺄악!”

뭐야, 갑자기 왜 저래?

“부인 물러나십시오!”

“위험합니다!”

아니 왜 그래?

시체를 보고 뭘 그렇게 쫄아서 다들 호들갑이야.

“시체야, 시체. 죽어 있다고. 아공간에 살아있는 생물을 못 넣는 건 상식이잖아.”

“아…….”

그제야 벨라트릭스가 호들갑 떠는 것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본다.

확실히 마법으로 죽인 덕에 시체가 거의 훼손되지 않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설마 살아있는 용이라고 착각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거 봐.”

그래도 아직 겁을 먹고 있는 벨라트릭스에게 확인이라도 시켜주겠다는 마냥, 시체를 툭 건드렸다.

“지, 진짜? 진짜였어요?”

뭐가?

“용을 토벌한 게 진짜였었던 거예요?”

“이렇게 증거까지 보여줬는데도 못 믿으면 나도 할 말 없는데.”

용의 시체를 보여줬다. 이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을까.

“세상에 이런 커다란 용을 토벌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사람 말고 또 있었다니.”

그 사람이라는 건 아마, 오스빈 국왕을 말하는 걸 거다.

요전번에 내가 벨라트릭스를 겁박할 때 언급했던 오스빈 국왕은 혼자서 국경에 자리 잡은 용을 사냥한 것으로 유명했다.

“맙소사.”

“허억.”

그제야 기사들도 상황을 이해하고 하나둘 놀라기 시작한다.

“이제 용을 토벌한 사실도 확인됐지?”

“……증거가 필요해요.”

“또 무슨 증거.”

이렇게 증거를 보여줬는데 도대체 무슨 증거가 필요하다는 거야.

“저는 용의 시체를 봤지만, 다른 사람들도 본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을 납득하게끔 만들 증거가 필요해요.”

“아하. 그런 증거라면야.”

어디 보자. 날개를 잘라줄까? 아니면 발톱?

아니야, 그런 건 결국 용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용이 날개가 잘린 채 도망쳤을 수도 있고, 발톱은 용의 생사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

그럼 역시 심장이 좋으려나?

드래곤 하트는 용의 생사와도 관련이 있고, 게임에서도 굉장히 희귀한 재료였다.

마법사 길드에 가져다주면 상당한 보상을 주기도 했었지.

확실히 드래곤 하트라면 충분히 증거로 삼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냥 심장만 보여주는 건 이펙트가 없어.

그럼 역시.

“검 좀 뽑는다.”

혹시 내가 발검을 했을 때 기사들이 경기를 일으킬 수도 있어 미리 말을 했다.

검을 뽑은 후 용의 목 부근으로 향한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 없이.

검을 내리 베었다.

허무하리만큼 간단하게 용의 목이 베여, 그 머리가 땅에 떨어진다.

“이거면 증거로 충분하지.”

역시 증거로 제시하기에는 수급이 제격이지.

머리가 잘린 용이라면 죽었다는 것도 증명되고, 용의 머리를 떡하니 보이면 그만큼 이펙트가 크잖아.

“……네.”

벨라트릭스가 주춤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살아있는 것 같은 용의 머리가 부담스러운 것 같다.

저 여자가 반응을 보면 역시 이쪽이 정답이었던 것 같아.

그런데.

“너희는 왜 무릎을 꿇고 있어.”

왜인지 기사단 전원이 내게 무릎을 꿇고 있다.

공작부인이 바로 옆에 있는데 나한테 무릎을 꿇다니, 무릎이 너무 싸지 않아?

“용을 토벌하실 정도로 고상하신 실력자신 줄 몰라뵀습니다!”

아, 하긴.

오스빈의 국왕도 과거 혼자서 용을 토벌하여 제 실력을 알렸다.

그리고 그를 선망한 많은 무인이 오스빈 왕국으로 향했다.

그렇게 오스빈에 수많은 무인이 모여 지금의 기사 강국이 됐다는 설정이다.

그걸 생각하면 무인에게 있어 용을 토벌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수 있기는 하다.

“이 증거를 어떻게 써먹을까요? 혹시 어떤 식으로 홍보되기를 원하는 방향이 있어요? 그쪽이 유명해지게끔 홍보한다든가.”

“나는 별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고.”

유명 인사는 귀찮아.

게임 내에서 가장 유명한 NPC 중에서는 만나고 싶어도 먼저 온 선객들 때문에 일주일 후에나 만날 수 있는 NPC도 있었다.

그것도 무려 현실 시간으로 일주일이다.

게임 시간으로 치면 적어도 몇 달은 흘렀으리라 장담한다.

그런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럼 용이 토벌됐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 될까요?”

“그렇게 해. 그러면 모험가 외에 사람들이 오지 않겠어? 너는 지금 그게 불만인 거잖아.”

모험가 외에도 다른 목적을 지닌 사람이 마을에 들러야, 마을의 발전 속도가 빨라진다.

그렇게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 마법사 길드에서 포탈 설치 비용을 깎아줄 테고.

이게 벨라트릭스의 주장이었다.

생각해보니까 그냥 이 사체를 마법사 길드에 주면 되는 거 아닐까?

이 정도로 온전히 보관된 용의 시체면 포탈을 설치해주고도 남을 것 같은데.

“그렇죠, 그런데요.”

“또 뭔데.”

“마법사 길드에서 귀찮게 할 수도 있어요. 다른 건 몰라도 드래곤 하트에는 집착이 심하거든요.”

그거야 그렇겠지. 시체를 아예 넘기는 것도 고려 중이기는 해.

솔직히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한테 용의 시체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

용의 부산물로 만든 장비보다 아포디미아에서 만든 장비가 훨씬 좋으니까.

한 마디로 내가 이 사체에 집착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그래도 그냥 넘겨주는 건 조금 그렇지?

포탈 설치를 비롯해 이것저것 이득을 취할 수 있으면 넘겨주도록 하자.

* * *

본디 길드라는 것은 국가와 국가를 초월해, 같은 직업끼리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전부 각 나라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과거 전쟁의 시기.

국가는 마법사, 장인, 모험가 너나 할 것 없이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하려고 들었었다.

귀족도 아니고 평민도 아니고, 어디에나 속하지 않은 이라도 예외는 없어.

단지 그 나라에 있다는 것만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당시의 수모를 겪었기에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만들어진 것이 바로 길드였다.

그렇기에 길드는 국가가 떨어져 있다고 해도, 서로 협력했다.

적어도 과거에는 그랬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라고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고 부패하기 마련이다.

마법사 길드 역시 그랬다.

길드 간의 협력은 과거의 이야기가 됐고 이제는 각 국가의 마법사 길드끼리 서로 단절하고, 시기하며 경쟁하는 사이가 돼버렸다.

어느 나라의 마법사 길드가 훨씬 강력한 마법을 개발하는가.

어느 마법사가 가장 뛰어난가.

대마법사이자, 아라엘 왕국 마법사 길드의 수장인 비비안도 이 경쟁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하아.”

피곤에 찌들어 퇴폐미를 발산하는 미모의 대마법사, 비비안 모바레크가 한숨을 내쉰다.

바이올렛 빛 머리카락과 종이 쪼가리들이 바닥에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주홍빛 눈동자는 제 한계를 체감이라도 한 듯 절망이 깃들어 있었다.

“빌어먹을.”

누가 가장 뛰어난 마법사인가.

그 질문에 수많은 마법사의 이름이 거론되겠지만, 비비안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을 것이다.

뛰어난 마법사의 기준은 애매모호하다.

대중적인 마법을 개발한 마법사도 뛰어난 마법사다.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한 마법사 역시 뛰어난 마법사였다.

오직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복잡하지만, 효과가 뛰어난 마법을 개발한 마법사도 뛰어난 마법사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비비안은 그 모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단순히 경지가 높은 대마법사일 뿐이었다.

일반적인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비비안도 선망의 대상임은 분명해.

하지만 대마법사들 사이에서 비비안은 항상 무시당했다.

비비안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갖은 연구와 노력을 했지만, 결과는 보는 대로 실패, 실패, 또 실패다.

“빌어먹을 영감탱이들.”

사실 그녀 역시 젊은 나이가 아니기는 하다.

이 미모도 마력을 이용해 억지로 외모를 젊어 보이게끔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비비안에게 있어 자신을 무시하는 다른 대마법사들이 꼰대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비비안님!”

“갑자기 들어오는 거 실례야!”

비비안은 노크도 없이 갑작스레 들이닥친 마법사를 노려보았다.

“우리 왕국에서 드래곤이 토벌됐다고 합니다!”

“뭐?”

그러나 마법사가 들고 온 정보가 너무나도 놀라운 것이었기에 비비안은 그의 실례를 잊어버렸다.

드래곤이 토벌됐다.

그렇다는 것은 용의 심장을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력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용의 심장을 구할 수 있다면 마법사는 한단계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 왕국에서 토벌됐다.

다른 마법사 길드보다, 이쪽이 먼저 드래곤 하트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어디서 토벌됐는데.”

“비명 숲 근처라고 합니다.”

“그 고룡이 토벌당했다고?”

아라엘 왕국의 마법사들 사이에서 비명 숲 근처의 용은 유명했다.

그냥 용이 토벌당했다고 해도 놀라운 일인데, 수천 년을 살아온 용이 토벌당했다니.

그 고룡의 심장은 얼마나 많은 마력을 담고 있을까.

비비안의 눈가에 욕망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당장 가자.”

비비안은 조금 전까지 몸을 짓누르던 피로는 온데간데없다는 듯 가뿐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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