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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59화 (59/99)

〈 59화 〉 23. 꽁냥꽁냥

* * *

던전은 나날이 규모가 커지고 있다.

정확히 따지고 보면 이제야 다른 던전들과 같은 선상에 섰을 뿐이다.

우리가 이 정도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처럼, 다른 던전들도 발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오히려 위치가 좋은 던전들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고 있겠지.

“이제야 좀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좀 놓이네.”

그래도 확실히, 던전이 정상적으로 굴러가고 있음은 레베카의 말이 옳다.

“마음이 놓인다니까 저도 기쁘네요.”

“다 아르켈 덕분이야. 나 혼자였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걸?”

으음,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

내가 아닌, 그저 레베카에 미쳐있던 아르켈이라면 던전 쪽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인지 게임에서는 레베카 플락이라는 최종 보스가 있는 던전치고, 다른 던전에 비해서 단출했었다.

“왜 침묵이야. 그럴 때는 빈말이라도 좋으니까 레베카님이라면 혼자서도 해내실 수 있었을 거예요, 하고 대답해주는 게 맞지 않아?”

“빈말로도 그러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아르켈!”

“하하하하.”

레베카가 볼을 부풀리며 나를 노려보자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제 딴에는 화를 낸다고 내는 거겠지만, 누가 봐도 저건 그냥 삐진 연인의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 한 잔 더 드시죠.”

“차로 넘어갈 생각하지 마.”

그렇게 노려봐도 무섭지 않은데. 오히려 귀엽게만 느껴질 뿐이다.

“안 드실 건가요?”

“아니. 마실 거야.”

차를 따라주자, 레베카는 찻잔을 들어 올려 차의 향을 음미한 후, 한 모금 들이켰다.

“역시, 나디아는 이 맛을 못내. 오랜만에 아르켈이 타준 차를 마셔서 그런지 더 맛있어.”

바쁘게 돌아다닌지라 레베카와 티타임을 가진 것도 꽤 오래되긴 했다.

정확히는 아리아 때문에 레베카가 질투에 눈이 돌아가서 날 혹사시키려고 하다가 반대로 혹사 당한 시간이 길었지.

“그리 말씀해주시니 영광입니다.”

“아르켈.”

“예.”

“머리 쓰다듬어줘.”

그 정도쯤이야. 주전자를 놓고 레베카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부드러운 붉은 머릿결의 촉감은 마치 비단과도 같아.

쓰다듬고 있는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으응. 좋아.”

“만족하셨는지요.”

“머리는 이제 됐으니까, 키스해줘.”

레베카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한 번 더.”

바라신다면.

레베카 역시 격렬한 키스는 바라지 않는 것 같았기에 또 한 번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마치 이 시간을 자체를 즐기는 연인처럼, 가볍게.

“또 해줘.”

뭐지, 이 내 키스를 갈구하는 귀여운 생명체는.

너무 귀여워서 미칠 것 같다.

또다시 입을 맞춘다.

레베카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한 번 더, 또 한 번 더, 계속해서 키스한다.

그렇게 부드럽고 긴 키스 시간이 끝나고 난 후.

레베카는 몽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러고 있으면 축제고 뭐고 그냥 너만 내 옆에 있으면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그 말에 굉장히 공감이 가는걸.

솔직히 던전 운영이고 마을 운영이고 때려치우고 한적한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도 여러 번이다.

레베카와 메르넬라만 있으면 될 것 같다.

아차, 아리아도 이젠 내 여자니까 당연히 챙겨야지.

하지만.

「현재 목표 : 레베카를 도와 던전을 운영해 나가십시오.」

「TIP : 현재 목표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으면 게임클리어에서 멀어집니다.」

「TIP : 게임클리어 실패 시, 플레이어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나는 죽는다.

그러고 보니까 어이가 없네.

최종 목표도 알려주지 않고서는 어떻게 게임 클리어를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쯤 되면 던전 운영도 충분히 정상 궤도에 오른 것 같은데.

현재 목표 정도는 바뀔 만하지 않아?

“그러시면 안 되는데요.”

아무튼, 게임 클리어라는 목표 때문에 레베카가 지금 당장 던전 운영을 포기하면 많이 곤란하다.

더군다나 레베카가 말은 저렇게 해도 축제 우승이라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냥 해본 말이야.”

역시. 그래야 레베카답지.

“내가 힘낼 수 있게 한 번 더 키스해줄래?”

“그러지요.”

그녀의 뜻에 응해 다시 한 번 키스할 때, 갑작스레 레베카의 방문이 열렸다.

“레베카님 마계에서 연락이……. 어라?”

나디아였구나?

나디아가 당황에 물든 시선으로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지만, 그 시선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레베카와 계속해서 키스를 이어갔다.

레베카도 딱히 날 밀어내지 않았다.

그제야 나디아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기는 했지만.

나디아 너 할 거면 하나만 해. 손 사이로 다 보고 있잖아.

안 볼 거면 그냥 완전히 가리던가, 볼 거면 그냥 대놓고 보라고.

“두, 두 분! 벌써 거기까지 진도를 나가신 거예요?!”

키스가 끝나고 나서야 나디아가 깜짝 놀랐다는 듯이 말한다.

아니, 지금 와서 저런 말을 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대놓고 나디아 앞에서 키스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지만, 농염한 대화는 몇 번 나눴었다.

더군다나 내가 아침에 레베카 방에서 나오는 것도 몇 번 보지 않았어?

“알아채는 게 느려, 나디아.”

“내 말이.”

“아, 아니. 알고는 있었죠! 하지만 그렇게 농밀한 키스까지 나눌 사이인 줄은 몰랐단 말이에요!”

방금 게 농밀했어?

나는 레베카를 바라보았다.

레베카 역시 나를 바라본다.

레베카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 정도는 농밀한 축에도 못끼지.

밤마다 이것보다 훨씬 더 한 키스도 얼마나 많이 하는데.

“후후후.”

레베카도 나와 마찬가지로 웃더니 갑작스럽게 나를 껴안았다.

“아르켈은 내 연인이야, 나디아.”

내 거니까 건드리지 말라는 심보가 빤히 보이는 행동이다.

나디아한테까지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

그래도 레베카한테 뭐라고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게 전과가 있어서다.

메르넬라는 몰라도, 아리아 때는 대놓고 바람을 피우겠다는 식으로 말했으니 나는 전과범인 셈이지.

“맙소사. 자이로니아님이 던전을 봐주신 날에 키스까지 하고 오신 것 같기는 했지만…….”

“키스만 한 게 아닌데?”

“에?”

레베카는 샐쭉 웃었다.

“나디아한테는 너무 이르려나.”

“저, 저도 성인이라고요!”

아무래도 나디아를 놀리는 게 즐거운 모양이다.

어쩐다.

그냥 이대로 여기 있어야 하나?

음…. 아직 티타임이 끝난 것도 아니니까 있는 게 맞겠지?

더군다나 나디아가 갑자기 찾아온 용건도 신경 쓰이고.

“그래서 무슨 일로 왔는데?”

한참 나디아를 놀리던 레베카는 만족스럽다는 듯 찻잔을 홀짝였다.

“으으, 너무하세요.”

“마계에서 곧 이벤트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연락이 왔어요.”

“이벤트? 그건 또 뭔데?”

축제 중에 무슨 이벤트야.

“가장 먼저 공터 레벨 4 연구를 끝낸 던전에 욕망을 대신할 수 있는 보상을 준다고 하셨어요.”

아, 축제와 별개의 이벤트가 아니라, 축제 속의 이벤트인 셈이구나.

그나저나 욕망을 대신할 수 있는 보상이라.

어느 정도 재화를 줄지 모르겠지만, 얻을 수 있다면 확실히 이득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역시 우리 던전이 보상을 얻을 가능성은 낮은 편이기는 하다.

다른 던전에 비해 몇 달이나 시작이 더뎠으니까.

“보상은 어느 정도……. 아 잠시만.”

품속에 있는 조그마한 구슬이 울렸다.

이 구슬은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을 때, 혹은 나를 찾는 손님이 왔을 때 연락하기 위한 수단이다.

“무슨 일이야 에디.”

[실례하겠습니다, 아르켈님. 공작부인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벨라트릭스가? 그 여자가 찾는 거라면 분명 일이 있어서 찾는 걸 거다.

공작부인은 용의 시체를 보여준 이후로 한층 더 나를 공손하게 대하는 중이다.

그러니 시시콜콜한 이유로 나를 귀찮게 할 리가 없다.

“곧 갈게.”

에디와의 통화를 끊은 후 레베카를 바라보았다.

“저는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보상은 갔다 와서 들어도 괜찮겠지.

“그래. 다녀와.”

레베카와 인사를 나눈 후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누군가가 내 옷깃을 잡았다.

뒤를 돌아보니 레베카가 새초롬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녀오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다녀오라고 했으면서 왜 옷깃을 잡는 거야.

“가기 전에 해줄 게 있잖아.”

뭐를?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레베카가 제 입술을 내밀었다.

아, 그런 거였구나.

레베카를 껴안은 후, 이번에는 격렬히 입을 맞췄다.

이러지 않으면 내가 다른 여자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에 레베카가 질투할 게 분명하다.

“후우, 하아, 좋아.”

키스가 끝난 후 레베카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역시 이번에는 격렬히 키스를 해주는 게 맞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아주 달콤해. 다과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그렇다고는 해도 내 입술을 다과 삼아서 차를 마실 줄이야.

그 모습이 귀여워 레베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준 후.

“다녀올게요.”

던전 밖으로 향했다.

“무, 뭐에요 이 분위기는! 저만 남겨두고 가지 마세요, 아르켈님!”

뒤에서 나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당연히 무시했다.

그렇게 던전에서 나와 인간 모습으로 변장하고 마을로 향한 후 곧바로 벨라트릭스가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연 순간이었다.

“이번엔 또 무슨 일…….”

문을 열자, 마법사로 보이는 이들 몇 명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내가 벨라트릭스에게 반말을 한 걸 본 기사들이라면 모를까, 다른 사람이 같이 있으면 벨라트릭스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되지.

공작부인에게는 그만한 위신이 있으니까.

“손님도 같이 왔다고는 못 들었는데요, 공작부인.”

고개를 숙여 최대한 예를 갖춰 인사를 한다.

그러자 벨라트릭스가 맞춰줘서 감사하다는 듯 내게 눈짓을 했다.

나한테 고마워하는 건 알겠는데, 다음번에는 손님이 있으면 손님도 같이 왔다고 미리 말을 해줬으면 좋겠어.

“이쪽 분들이 너무 강경하게 당신을 보고 싶다고 말해서 급히 왔어요.”

다른 기사들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공작부인과 마법사들만 온 것 같다.

게다가 공작부인의 차림새는 여행길에 적합하지 않은 드레스 차림이다.

대충 눈치챘다.

아무래도 마법사들이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한 것 같다.

그것도 벨라트릭스에게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납치하듯이 데려왔다고 봐야겠지.

무려 공작부인인데 너무 무례한 처사가 아닌가?

이런 처사를 받고 있는데 벨라트릭스가 지랄을 하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이 분은…….”

“내 소개는 내가 하지.”

마법사 중 한 명이 로브를 벗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어째서 벨라트릭스가 이러한 무례에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굴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었다.

“니콜라스 카빌. 프찬타 왕국 마법사 길드의 총책임자다.”

니콜라스 카빌.

게임내에서 보기 드문 인간 대마법사 중 한 명이다.

그리고.

벨라트릭스의 불륜 증거를 잡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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