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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60화 (60/99)

〈 60화 〉 24. 꼴받게 하네?

* * *

이건 조금 곤란한데.

여기서 니콜라스가 등장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일단 내가 아는 한 정보를 생각해보자.

니콜라스 카빌은 프찬타 왕국의 백작이면서 동시에 대마법사이고 그쪽 마법사 길드의 수장이기도 한 인물이다.

프찬타 왕국 사람이 벨라트릭스의 외도 증거를 어떻게 잡고 있냐고?

그거야 프찬타 왕국의 상회 쪽 담당자한테 몸을 파는 걸 들켜서 그렇다.

물론 니콜라스는 벨라트릭스가 얼마나 몸을 팔았는지, 나처럼 상세히는 모른다. 그저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있을 뿐.

문제는 벨라트릭스가 외도를 한 장면을 니콜라스가 수정구로 녹화했다는 거다.

그 때문에 벨라트릭스는 주인공에게 니콜라스 역시 죽여달라고 청한다.

그 퀘스트를 수락하면 니콜라스는 벨라트릭스와 잠을 자지 않았음에도 벨라트릭스의 의뢰에 의해 주인공의 손에 죽는 유일한 NPC가 된다.

“아르켈이라고 합니다.”

백작이니만큼 정중히 고개를 숙여 나를 소개한다.

그러면서도 니콜라스를 유심히 관찰했다.

약간 곱슬끼가 섞인 금발.

그리고 그 꼬장꼬장한 성격을 대변하는 듯 곧게 자란 콧수염.

마법사치고는 풍체도 좋은 편이고, 키도 상당히 크다.

내가 아는 니콜라스의 모습 그대로였다.

게임 내에서 니콜라스는 굉장히 도움이 되는 NPC 중 하나였다.

귀족이기에 신전 쪽과도 연관이 있어서, 특유의 강직한 성격과 합쳐져 주인공이 마족을 토벌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귀족이나 그에 준하는 신분이 아니면 상대를 깔본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본인의 욕심에 굉장히 솔직하다는 거다.

주인공이 니콜라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얻으면 그걸 대놓고 달라고 말한다.

그것도 당연하다는 듯이.

물론 무상으로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물건의 시세보다 돈을 조금 덜 주는 정도지.

니콜라스의 호감도를 올려놓으면 게임 진행상 손해 볼 일이 절대 없다.

그래서 대부분 플레이어는 니콜라스의 욕심을 이해해준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불안했다.

“그쪽 이야기는 들었다네. 반로환동까지 한 무인이라면서?”

게임에서는 니콜라스가 나한테 도움이 됐으니까 그 욕심을 이해했지.

하지만 지금은?

니콜라스가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을까?

아니,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게 솔직히 제 욕심을 말하고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군다?

그럼 조금 화가 날지도 모르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지. 그쪽이 토벌한 용의 심장을 넘겨주길 바라네.”

아, 역시.

벌써 머리가 아파진다.

“값은 후하게 쳐주도록 하지.”

일단 진정하자.

주인공 때랑은 상황이 달라.

그때는 주인공한테 많은 도움을 줬으니까 시세보다 못한 돈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예 처음 보는 사람이잖아.

처음 보는 사람한테 가격을 후려치려고 하지는 않겠지.

믿고 있다고, 니콜라스!

“공작부인께서 마을에 포탈을 설치해주길 바란다고 했는데, 설치비용을 대신에 심장을 받아가면 충분하겠지?”

“니콜라스님. 그건 너무 과합니다.”

니콜라스의 말에 마법사 중 한 명이 그건 안된다는 듯이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보통 상관이 진짜로 말도 안 되는 제시를 하면 말리려는 입장에서는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 마법사의 눈에는 아무런 당황도 보이지 않는다.

“맞습니다. 아무리 용의 심장이라지만, 포탈 건설에 저희 노고를 생각하면 오히려 돈을 더 받아야죠.”

지금 말하는 마법사 역시도 마찬가지다.

마치, 허술하게 짜인 연극을 보는 것 같은 심정이 든다.

그래 지금 이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를 얕보고, 이것으로도 과하다는 마냥 연기를 하는 거다.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내가 급해.”

지랄한다. 아주 지랄을 해.

싸늘한 시선으로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어떤가. 그쪽도 손해 볼 이야기는 아니라는 건 알겠지?”

사람이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아는 건가?

최근 들어서 벨라트릭스와 처음 만난 이후에 이만큼 열 받아본 적이 없을 정도다.

어떻게 하지?

그냥 갈아엎을까?

아, 고민할 이유가 있나. 그냥 갈아엎자.

“싫은데요.”

“그래. 그쪽한테도 이득인 거래……. 뭐?”

니콜라스는 자신의 제안을 거부한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싫다고.”

뭘 그렇게 꼬라봐? 내가 싫다고 하잖아.

“무, 무례하다! 감히 백작님께 무슨 망발을 하는 거냐!”

“쩌리 새끼들은 닥치고 있어.”

순간 살기를 보여 두 마법사를 압박했다.

“허억.”

“…읏.”

그러자 두 마법사 중 한 명은 심장을 움켜쥐었다.

다른 한 명은 허물어지듯이 바닥에 주저앉아버린다.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어. 짜증 나니까.

“내가 무례하다고? 그쪽이야말로 다짜고짜 찾아와서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인지 모르겠군요, 카빌 백작.”

“내가 무례를 저질렀다는 건가?”

“틀립니까?”

“내가 평민을 직접 찾아온 것만으로도 고마운 줄 알아야지. 무례하다니, 어이가 없군.”

니콜라스의 단점 중 하나인 선민사상에 너무 찌들어 있다는 점이 여기서 튀어나오네.

게임에서는 주인공이 귀족보다 더 고귀하다고 볼 수 있는 신분이기에 저런 태도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막상 저 꼴을 보니까.

열 받네?

그냥 쥐어팰까?

아니야.

그래도 되긴 하겠지만, 그건 결과가 깔끔하지 않다.

타국의 귀족을 괜히 건드렸다가 무슨 꼴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아니, 이딴 건 핑계고 그냥 솔직하게.

니콜라스에게 무안함을 주고 싶었다.

선민사상에 찌든 놈이 평민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못 하는 굴욕을 선사해주고 싶었다.

내 힘을 보이는 것보다 그쪽이 니콜라스에게 더더욱 굴욕적일 테니까.

“저는 바르크 백작의 가신입니다.”

물론 바르크 백작도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르크 백작 영지 내의 마을을 관리하고 있으니 가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바르크 백작님께 말은 하시고 저와 거래를 하려고 하시는지요.”

내 물음에 니콜라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아무 말도 못 하겠지.

벨라트릭스를 납치하듯이 데려왔는데 바르크 백작에게 들렸을 리가 없다.

“표정을 보아하니 아니신 것 같군요.”

어딜 영주의 허락도 없이 가신과 직접 거래를 하려고 들어.

순서부터가 글러 먹었다.

이건 보는 입장에 따라 바르크 백작에게는 굉장히 굴욕적일 수도 있는 일이다.

“게다가 다른 왕국의 귀족이 절 이리 겁박해도 됩니까?”

표면상 나는 아라엘 왕국 사람이다.

다른 왕국의 귀족이 뭐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지키지 않고.

본인이 오로지 귀족이기에 평민인 내게 무례하게 굴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놈이.

감히 내게 무례하다고 말해?

물론 니콜라스가 직접 내게 무례하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의하는 기색이 보였으니까 말한 거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호케트 공작부인이 바로 앞에 계시는데, 귀족 신분 운운하는 것도 웃기지 않습니까?”

공작부인의 꼴을 봐라.

“호위 기사도 대동하지 못한 채로 공작부인을 데려왔으면서.”

무려 백작보다 두 단계나 높은 공작의 신분인데도 너한테 납치당하듯이 여기 끌려오지 않았나.

“그런 사람이 내가 무례하다고 생각하네?”

우선 너 자신을 알아라.

남을 지적하는 건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아.

“크흠.”

쏟아지는 내 말에 니콜라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 아무 말도 못 하겠지.

지가 잘한 짓이 하나도 없으니까.

아, 저 꼴을 보니까 조금 기분이 풀리네.

기분이 풀리니까 머리가 조금씩 돌아간 덕분인가?

이대로 니콜라스를 그냥 내보내면 나를 귀찮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내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겠는 걸.

물론 니콜라스에게 겁을 주려는 목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력을 끌어올린다.

“고룡을 토벌한 실력자에게 실력 행사를 하려고 들다니. 겁도 없다.”

그리고 한 걸음, 니콜라스에게 다가섰다.

“너 혼자서…!”

“너 혼자서 고룡을 토벌했을 리가 없다고 말씀하고 싶으신 거겠죠.”

“그, 그래 맞다.”

니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뻔하지.

그 정도 고룡을 사람 혼자서 토벌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분명 파티를 짰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래 보통은 그게 맞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데 이를 어쩌나.”

비릿한 웃음과 함께 또 한 걸음 니콜라스에게 다가서며.

“나 혼자서 고룡을 토벌한 게 맞는데.”

모았던 마력을 개방했다.

“건방지게 어딜 되지도 않는 사기를 치려고 하고 자빠졌어.”

짙은 마력이 방을 가득 채운다.

니콜라스가 필사적으로 내 마력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너무 짙어서 그것만으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마력이 니콜라스의 몸을 짓누른다.

그래 그렇게 고개를 숙여야지.

그게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잖아.

어딜 고개를 감히 빳빳이 들고 있어.

“포탈 건설비랑 바꾸자고? 그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부탁을 하려면 당연히 합당한 대가를 내놔야지.

어느 정도만 챙겨줬어도 니콜라스와 거래를 했을 거다.

게임 때문에 인상이 나쁜 벨라트릭스와 다르게 게임 덕분에 니콜라스에게는 친밀함을 느꼈으니까.

그러나 저런 되지도 않는 연기로, 나를 호구 취급하려고 들면 이야기가 달라.

“평범한 용의 심장이 아니라 수천 년을 산 고룡의 심장이야. 그 가치를 가장 잘 아는 너희들이 감히 이따위 사기를 치려고 해?”

오스빈 왕국의 국왕이 토벌했던 용과는 차원이 달라.

애초에 이 정도 고룡의 심장이 인간 시장에 나온 적이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질이 좋은 심장이다.

그걸 고작 포탈 건설로 퉁치자고?

하, 씨발. 어림도 없지.

“나가.”

반론은 받지 않겠다는 듯, 마력으로 더더욱 니콜라스의 몸을 짓누른다.

“나가겠네. 나갈 테니 그만두게!”

“지금까지 이 지랄을 했는데 반말이야?”

어쭈, 입 다물고 있는 거 봐라.

그래 계속 그렇게 입 다물고 있을 수 있는지 보자.

“나, 나가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조금 더 강하게 몸뚱이를 짓눌러주자, 니콜라스의 입에서 애원 비슷한 것이 나왔다.

진작 그럴 것이지.

“허억, 허억.”

마력을 치워주자 니콜라스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지금 니콜라스의 눈에 나는 어떻게 보일까.

단순히 마력만으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예를 보였다.

혼자서 고룡을 토벌할 만한 힘을 보였다.

그런 내가 도대체 어떻게 보일까.

“……가자.”

니콜라스가 마법사들과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벨라트릭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저런 쓰레기를 데려왔어?”

“평소엔 예의를 잘 차리는 분이라 저렇게 나올 줄은 제가 미처 몰랐네요.”

뭐, 예의를 잘 차리기는 하지.

귀족을 상대로는 특히 그래.

하지만 벨라트릭스에게도 예의를 차릴까?

니콜라스는 좋은 의미로도, 그리고 나쁜 의미로도 귀족다운 사람이다.

그런 그가 외도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쥐고 있는데 과연 벨라트릭스에게 예의를 차릴까?

뭐,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마법사라는 족속이 다 그렇지. 탐욕에 눈이 먼 족속들이니.”

벨라트릭스의 일을 해결해줄 마음도 없기에.

그저 적당히 그녀의 말에 동조해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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