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28. 의문
* * *
페리드가 있다는 뜰로 나아간다.
주인공을 만난다.
그것은 내게 있어 굉장히 특별한 일이었다.
무려 만 시간 동안 플레이했다.
그 시간만큼은 주인공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토록 이입하던 주인공과 드디어 만날 수 있어. 기대되는 마음은 너무나 당연하였다.
그러나 반대로.
어째서 그 목소리가 주인공을 주의하라고 했는지 알 수가 없기에 한 편으로는 경각심도 든다.
“조금 더!”
저 멀리서 기합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이끌려 조금 더 발걸음을 재촉해 걸어간다. 그렇게 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곳에 도착한 순간.
아, 페리드다.
지금은 아직 소년의 앳된 티를 벗어나지 못한 사춘기 꼬마.
게임을 막 시작했을 때의 페리드의 모습이다.
키는 훤칠하고, 체구도 적당히 크다.
약간 치켜 올라간 눈매와 날카로운 콧매가 건방진 것 같은 인상을 더더욱 부각하는 것 같다.
차분히 가라앉은 백색의 머리카락. 그리고 은색의 눈동자까지.
진짜 페리드구나.
“페리드님, 물 좀 드세요.”
소년의 옆에 있는 것은 페리드의 첫 동료인 성녀, 에밀리다.
성녀는 페리드가 아직 성인이 되기 전부터 옆을 지켜준 명실공히 정실 히로인 포지션 캐릭터로 성능도 좋아서 나도 굉장히 애용했다.
“됐어.”
“어?”
이상함이 느껴졌다. 에밀리를 대하는 페리드의 태도가 너무 싸늘하다.
너무 건방지기 짝이 없어.
물론 이 시기에는 건방지고, 오만한 건 맞기는 하지만, 그래도 루이나 때문에…….
“하아.”
갑자기 머리가 아파졌다.
페리드는 본디 평민이다.
그러나 본인이 용사 혹은 선택받은 자라고 추켜 받자, 그는 또래 귀족 아이들이 보통 그렇듯 본인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만다.
뭐, 특별한 존재가 맞기는 하지.
하지만 문제는 도가 지나쳤다는 거다.
페리드는 소년 특유의 건방짐으로 무장하고 상급자나 나이가 더 많은 사람에게 예의조차 차리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소년 특유의 열혈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초반부의 페리드는 분명 건방지고, 오만했다.
그런 페리드의 성격이 내가 아는 진중하고 냉철한 성격으로 바뀌는 가장 큰 원인은 루이나 덕분이었다.
그것이 루이나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다.
처음 루이나가 페리드의 스승이 되었을 때 그녀는 페리드를 오만을 알고 손수 교육해줬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페리드는 아직도 건방지다.
제게 헌신적인 에밀리에게 저리 냉정하게 대할 만큼 오만해.
이건 위험하다.
물론 단순히 내가 꼰대인 것일 수도 있다.
힘들게 훈련을 하는 중인데 말을 거니까,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어.
그래 그런 거라면 차라리 다행일 듯싶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페리드가 오만함을 성격을 계속 유지한다면…….
“하.”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오고 말았다.
주인공이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싶다가도, 이것이 게임이 아닌 현실이기에 저 성격 때문에 주변을 힘들게 할 것이 그려진다.
그 오만함에 주변 이들이 얼마나 많이 피해를 받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아.
“에밀리.”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에 내 시선은 그쪽으로 돌아섰다.
그 여자다.
가장 만나고 싶었던 페리드와 만나면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던 여자까지 만나게 될 줄이야.
마르벨리아. 이 대신전의 대주교이자, 내가 아는 두 교황 중 한 명이다. 후일 하펜 교황이 암살당하고 마르벨리아가 교황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루이나가 이곳에 오지 않았으니, 마르벨리아가 직접 페리드를 가르치고 있는 건가.
“페리드를 귀찮게 하지 말고 돌아가렴.”
뭐지?
순간 마르벨리아가 의도적으로 에밀리와 페리드의 사이를 갈라놓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착각인가?
“네, 대주교님……”
에밀리는 아쉽다는 듯, 페리드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대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자 페리드. 저쪽까지 뛰어 다녀오렴.”
“응.”
마르벨리아가 페리드에게 훈련을 지시하는 모습을 얌전히 바라보고 있자니 마르벨리아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어머. 넌 누구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얌전히 고개를 숙인다.
지금은 견습 사제 아르이기에 대주교인 마르벨리아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당연했다.
“아르라고 합니다. 견습 사제로 대신전에 순례를 왔습니다.”
“그렇구나.”
마르벨리아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페리드를 가리켰다.
“용사님을 뵙고 싶었니?”
“영광입니다.”
“후후, 일생의 광명으로 생각하려무나.”
일생의 광명으로 생각하란다. 하, 나 진짜 어이가 없어서.
“마르벨리아. 저쪽은 누구야?”
어느 사이에 마르벨리아가 지시한 것을 끝낸 페리드도 나를 바라보았다.
“이름도 알 필요 없는 견습 사제란다.”
“알았어.”
“잠깐 쉬도록 하자, 페리드.”
“응.”
저 여자, 마르벨리아는 위험하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는 했지만, 직접 보니까 더더욱 절실히 알 수 있었다.
추기경도 아닌 대주교에 불과한 마르벨리아가 어떻게 교황이 될 수 있었는가.
제작진이 직접 밝힌 설정은 아니지만, 커뮤니티에서는 마르벨리아의 정체를 천족이라고 유추하고 있다.
그것도 평범한 천족이 아니다.
다섯의 대천사 중 한 명인 세피엘의 분신이라고 여긴다.
게임 중 여러 복선이 있기는 하지.
하지만 나는 그저 유추일 뿐, 그 유추를 믿지 않는 유저 중 한 명이었다.
복선이라고 할 것들도 애매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거든.
그러나 직접 보니, 내가 틀렸음을 깨달았다.
저것은 분명 인간이 아니다.
“후후.”
다른 이의 눈에는 몰라도, 내 눈에는 저 여자의 등 뒤에 날개가 있음이 보인다.
그런데 어찌 저것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세피엘의 분신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평범한 인간이 아닌 건 확실하다.
“에밀리와는 친하게 지내지 말렴. 아니, 여자는 그냥 적대하렴. 순수함을 유지해야 한단다. 알겠니?”
“응.”
조금 전 받았던 느낌이 정확했나 보다. 마르벨리아는 의도적으로 에밀리와 페리드의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
에밀리는 사제로서 굉장히 도움이 된다. 그런 에밀리 왜 배척하려고 드는 거지?
“페리드 던전은 뭐라고 했지?”
“악의 소굴이라고 했어.”
“그럼 그 악의 소굴은 어떻게 해야 해?”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부서야 해.”
지금 저 여자가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에게 저렇게 편향적인 지식을 주입해도 돼? 세뇌하는 거나 다름이 없잖아.
“그래. 전부 부수면 돼.”
그리고 엿보이는 것은 순수한 광기였다. 마르벨리아에게서 우리 다이나토스와 비슷한 순수한 광기가 보였다.
마족을 향한 적대심이 아니야.
그녀는 순수하게 던전을 부수려고 하고 있다.
어째서?
천족이 던전을 부수려고 하는 것은 적대적인 마족을 토벌하는 것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내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그들의 목적은 던전을 부수는 것이다. 마족을 토벌하는 건 던전을 부수기 위한 일환이다.
왜 천족이 마족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던전을 부수려는데 혈안인 거지?
뭔가, 이상하다.
무언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있다.
단순히 욕망을 모으는 것을 방해하는 차원이 아니야.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어.
“용사님의 존안도 뵈었으니….”
잠시 페리드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저 아이는 내가 아는 주인공이 아닌, 전혀 다른 인물이 될 것이다.
전부 나 때문인가?
루이나를 보내지 않아서 생긴 일이야?
아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마르벨리아가 하는 꼴을 보면 게임이 끝난 후에 무슨 일이 생겼을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저는 물러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물러나자.
당장 만나 봐야 할 자가 있다.
“아직 있었니? 그래 가보렴.”
마르벨리아가 내게 손짓을 한다. 그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자리에서 벗어났다.
네가 무슨 목적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페리드를 어떻게 이용하려고 들지도 사실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는 장담해주겠다. 절대로 네 마음대로 되게 두지는 않겠다.
그래야만 한다고 내 본능이 속삭여.
“빨리 나오셨네요, 아르님.”
대신전에서 나오자, 날 기다리고 있던 루이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다시 한 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널 거두지 않았으면 내가 널 죽게 내버려뒀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내가 아는 스토리대로 정상적으로 흘러갔을까?
아니 그러지는 않았을 거 같아. 루이나가 스승이 되지 못하면 다른 스승을 구했어야지, 마르벨리아가 직접 페리드를 가르칠 이유는 없다.
페리드와 천족을 주의하라고 했던 그 목소리와 겹쳐져, 상황이 굴러가는 것이 내가 아는 것과 다르다는 것쯤은 알겠어.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루이나를 씁쓸히 바라보았다.
물론 후회는 하지 않는다. 루이나가 어떻게 죽는지 안다. 그것을 수백, 수천 번을 봐왔다. 그런데 이번에도 내버려두라고?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르님?”
“돌아가자, 루이나.”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자. 당장은 이 의문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의문을 해소하고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는 확신이 서면, 그때 가서 반성하고 대책을 세워도 늦지 않는다.
“벌써 볼 일을 다 보셨어요?”
“어.”
페리드와 만났다. 마르벨리아를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봤다. 그 목소리가 내게 속삭인 것이 결코 좌시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
이 정도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다 때려 부수고 페리드를 데려오고 싶기는 해.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 천족과 정면으로 부딪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은 참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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