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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68화 (68/99)

〈 68화 〉 29. 진실(2)

* * *

어전으로 들어가는 문앞에서 레베카와 작별했다. 지금부터 바르바라와 할 이야기는 레베카가 들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레베카도 오랜만에 본 율리히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눈치였다. 율리히가 레베카와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누려고 할지는 의문이 들기는 한다만.

“바르바라.”

어전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라바라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옥좌 앞에 준비된 조그마한 탁자 앞에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뭘 그리 급하게 왔느냐, 아르켈.”

저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바르바라가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기는 하지만.

“말해.”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그녀는 마족의 정점에 선 존재다.

그런 그녀라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무언가 꾸밀 능력은 충분히 있을 터.

“무엇을 말이냐.”

“던전을 만든 목적.”

어째서 천족이 던전에 그리 집착하는지를 알아야겠다.

“정확히는 이 축제의 목적.”

“호오, 그것을 물어볼 줄은 몰랐군.”

“하는 말에 따라 지금부터 너와 적대할 수 있어.”

“너와의 적대? 그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바다만.”

“바르바라.”

경고를 담아 그 이름을 부르니, 바르바라는 여유롭게 웃더니 내게 앉으라는 듯이 손짓했다.

“하아.”

한숨과 함께 자리에 앉자 바르바라는 내게 찻잔을 넘겨줬다.

“후후.”

내가 그것을 마시지 않고 그저 노려보고 있으니, 그녀는 가볍게 웃음소리를 내고는 입을 열었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겠구나. 본디 레베카만 바라보던 멍청이가 다른 쪽에 눈을 돌리다니.”

“장난칠 기분 아니야, 바르바라.”

“내가 말해주지 않겠다면 어쩔 생각이냐.”

말해주지 않으면?

솔직히 무슨 대책이 있는 건 아니다. 아마 진실을 바르바라 말고는 모를 테니까.

그렇다고 나한테 무슨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놈의 ‘게임 클리어’를 하기 위해서는 현재 목표를 따라야 하니까.

이미 충분히 겁박도 줬다. 나와 적대할 수도 있다고. 그러나 바르바라한테는 통하지 않았다.

하긴 영겁의 세월을 살아온 자살 희망자가 내가 적대하겠다는 것이 뭐가 두렵겠어.

그러니 나한테 방법은 하나뿐이다.

“부탁한다.”

고개를 숙인다. 지금 고개를 숙이는 것은 마족인 아르켈도 아니고 인간인 아르켈도 아니다.

나는 지금 아포디미아의 왕, 아르켈 소토르프로써 고개를 숙였다.

이것의 무게는 무겁디무겁다. 바르바라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푸흡. 푸하하하하하.”

그 사실을 아는지 바르바라는 웃음을 터트렸다.

“무엇이냐, 그 패기 없는 모습은. 첫 만남 때와는 전혀 다르지 않으냐.”

첫 만남, 분명 아르켈과 바르바라의 첫 만남을 말하는 거겠지. 아르켈은 레베카의 옆에 있기 위해서 바르바라와 협상했다.

아르켈은 레베카에게 미쳐있었기에 그녀의 옆에 있기 위해서 바르바라를 협박하는 것도 불사했었다.

내가 한 것은 아니지만, 아르켈인 나로서는 부끄러운 기억이다.

“그때와 동일인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웃지 말고. 말해줄 거야, 말 안 해줄 거야.”

“아포디미아의 왕께서 그리 부탁하는데. 말해줘야지.”

바르바라는 찻물이 끓고 있는 주전자를 쓰다듬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르켈. 천족이 어떤 종족인지 알고 있느냐?”

“지상을 수호하는 종족이잖아.”

지상을 수호하며, 동시에 인간을 수호한다. 그것이 천족이다. 아니 축제의 목적이 뭔지 물으니까 왜 갑자기 천족에 대해서 물어보는 거야?

“그래, 흔히들 그렇게 알고 있지.”

바르바라 쓰디쓰게 웃었다.

“그럼 이 지상이 진즉 멸망 당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무슨 뜻이야?”

“너와 아니, 정확히는 너희 다이나토스와도 관련이 있는 이야기다.”

“다이나토스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라고?

이건 무슨 뜻이야. 축제의 목적을 물었더니 뜬금없이 천족이 어떤 종족이냐고 물어보더니, 이제는 다이나토스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다.

바르바라가 지금부터 해줄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본디 너도 들었어야 할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설명해줘야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죽은 너희의 선조가 알려줬어야 할 이야기지.”

“선조께서?”

“그래.”

거기까지 말한 바르바라는 입을 다물더니, 눈을 감았다.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기다려 보아라. 내가 태어났을 무렵의 워낙 오래된 이야기라 나도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바르바라가 태어났을 적의 이야기면 정말이지 까마득하게 오래 전의 이야기일 것이다.

사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우선. 우리의 창조주께서는 모든 종족 중 세 종족에게 막대한 힘을 주셨다.”

“세 종족?”

“그래. 세 종족이 바로 천계의 천족. 마계의 마족. 그리고 지상의 인족.”

창조주가 인족에게 힘을 줬다고? 그런 것치고 인간은 천족이나 마족에 비해서 너무 약하지 않아?

“그 막대한 힘을 받은 인족이 바로 다이나토스다.”

아하. 그러면 이해가 되지. 다이나토스는 천족이나 마족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나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나조차 모르지만, 지상의 다이나토스는 오랜 옛날에 일어난 대반란에 의해 사라졌다.”

“하.”

대반란, 바르바라의 입에서 언급된 단어에 갑자기 머릿속에서 기억이 부상한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반란에 아래 아이들과 살아남은 다이나토스가 도망치는 장면이 떠올라.

이것은 분명 아르켈의 기억이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빠졌다.

“미안하구나.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나 보군.”

“괜찮아.”

내 기억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아르켈이기에 이것은 내 기억이라고 해도 맞는 말이다.

그러니까 괜찮아. 아르켈은 이 기억 때문에 지상을 혐오하겠지만, 나는 직접 겪은 일이 아니기에 지상을 혐오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의 아르켈의 기분이 내 머릿속을 타고 흘러, 역시 기분은 나쁘다.

“이야기를 계속하마.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잠시 내가 진정하기를 기다리던 바르바라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상을 관리하던 다이나토스가 사라졌다. 그러자 천족이 지상을 탐냈지.”

“천족만?”

“물론 우리 마족도 지상을 탐냈다. 하지만 천족은 저들의 이미지를 잘 꾸몄지.”

천족은 자신들의 성스러운 모습을 잘 살려 지상에 침투했다.

본인들이 신의 사자라고 말했고, 그것은 굳이 따지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지상에 침투한 천족은 마족을 견제하기 위해 그들을 악으로 만들었다.

“결국, 지상은 천족의 관리로 들어가고 만다. 여기까지는 이해했지?”

“이해했어.”

“그럼 다음이다.”

오늘날 천족이 지상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유를 알았다. 마족이 악의 이미지를 가진 것도 천족이 모두 꾸며낸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지상은 본디 다이나토스가 관리했다. 그 흔적은 지금도 고대 제국의 유적이라는 것으로 형태가 남아있다.”

다이나토스의 제국이 멸망한 것은 너무나도 오래전의 일이다. 그러나 그 흔적은 아직도 분명히 지상에 남아있다.

“천족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고대 제국의 물건들은 본인들에게도 위협적이거든.”

본디 천족에 맞먹던 종족의 흔적이다. 분명 인간이 사용하더라도 천족에게 위협적인 물건이 있겠지.

“그래서 천족은 지상을 한번 청소하려고 했다.”

“청소?”

“말 그대로 청소다. 지상의 모든 이를 멸망시키고 새롭게 쌓아 올리려는 거지.”

“말이 안 되지 않아? 그럴 생각이면 진작 그럴 수 있었을 거 아니야.”

천족의 힘이라면 충분히 지상을 휩쓸 수 있을 거다.

“그래 그렇지. 천족은 마음만 먹으면 지상을 휩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창조주가 허락하지 않은 일이었느니라.”

“창조주가 허락하지 않아?”

“지상의 관리는 본디 인족이 하는 것이었으니까. 천족과 마족은 지상에 지나치게 간섭을 하면 안 된다. 그것이 규칙이니라.”

“지상을 탐내는 건 괜찮고?”

“지금 지상에 천족이 직접 내려와서 살고 있지는 않잖느냐.”

“그건 그렇지…….”

정작 천족의 분신이 내려와 있기는 하지만.

“던전은 괜찮고?”

심지어 마족도 던전 내에서라고는 하지만, 지상에서 생활하고 있잖아.

“그거야 당연히 천족이고 우리 마족이고 규칙을 악용하고 있느니라.”

그래도 되는 거 맞냐? 무려 창조주가 정한 규칙인데?

“나라고 규칙을 악용하고 싶어서 악용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니 바르바라는 변명이라도 하듯이 급히 입을 열었다.

“먼저 악용한 건 천족놈들이니라!”

“아, 예.”

“진짜다. 천족이 대청소만 하려고 들지 않았어도, 나도 이런 짓까지는 하지 않았을 게다!”

“대청소?”

그건 또 뭐야.

“……창조주께서 우리 세 종족에게 지상이 욕망에 빠져 타락했을 때 단 한 번, 대청소해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된다고 했다고? 잠깐만, 그렇다는 건…….

“이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 이는 나와, 다른 한 명뿐이다. 너도 알겠지?”

“천족의 왕.”

“정답이다.”

바르바라는 씁쓸하게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 멍청한 것은 창조주의 말씀을 왜곡했다. 일부러 인간의 나라를 분열시켰고, 서로 시기하고 부닥치게끔 만들었어.”

그게 진짜로 천족이 의도한 것이라면, 내가 가진 선입견이 잘못됐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과 지상은 마족이라는 악이 나타났음에도 왕국끼리 연합하지는 못할망정 서로 견제하고 있다.”

바르바라가 말한 대로 여덟 왕국은 마족이 나타났음에도 서로 협력하려고 들지 않았다.

“이 몸은 지상에 대청소가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아. 지금 인간들은 정말로 재밌거든. 그래서 정기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회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축제를 벌이는 이유구나.”

“정답이다.”

그리고 반대로 천족은 지상을 청소하고 싶으니, 인간들의 욕망을 회수하지 못하게 하려고 혈안인거고.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퍼즐이 대충 맞아 떨어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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