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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72화 (72/99)

〈 72화 〉 31. 갑자기 분위기 육성물로 흘러가는 줄 알았네(2)

* * *

게임의 주인공, 페리드는 본디 혼자다. 혼자였던 주인공은 에밀리와 루이나를 비롯한 많은 동료들과 만나면서 점점 강해진다.

그러나 나는 달라.

나는, 아르켈 소토르프는 처음부터 혼자가 아니다.

나는 아래 아이들에게는 신으로 일컬어지고, 나의 동족들에게는 왕이라고 불린다. 그런 내가 어찌 혼자일 수 있겠는가.

아르켈은 고독한 왕이었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충성심 깊고 믿을 수 있는 동족들이 있는데 내가 굳이 다른 사람을 육성할 필요가 없잖아.

문제는 내 동족이 지상에 어마어마한 증오를 가지고 있다는 점인데. 그건 어떻게 잘 컨트롤 해봐야지. 아니 오히려 이건 기회일 수도 있다.

곧바로 아포디미아에 통신을 넣었다.

[아르켈님? 아까 다 하지 못하신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메르넬라가 당황스럽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조금 전 통화를 끝냈는데 또 통신을 했으니 당황스러울만도 하다.

[혹여 제가 아르켈님이 하실 말씀이 있는 데 통화를 끊은 불충을 저지른……]

“그런 거 아니야.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

[그럼 다행이네요.]

“애들 전부 불러줄래?”

[전부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메르넬라가 모두를 불러모았다.

“자,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들어.”

[예, 폐하.]

바르바라가 했었던 이야기를 들려줘 볼까.

“대마왕에게서 들은 이야기야.”

우선 천족이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하는지를, 그리고 마족이 그것을 어째서 막고 있는지를 설명해줬다.

우리, 다이나토스가 지상에 가진 원한은 강렬하다. 그렇기에 천족과 우리의 목표는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 그렇다면 비슷한 목적을 가졌기에 우리와 천족은 서로 동맹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

[천족의 목적은 지상을 완전히 쓸어버리는 것인가요? 그럼 그것들도 적이네요. 저희는 제국을 일으켜 세워야 하니.]

우리의 최종적인 목표는 제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그 일련의 과정 중에는 분명 제국의 멸망한 잔해들을 다시 복구하는 것도 필요하겠지.

천족의 목적은 대청소로, 지상을 초기화하는 것이다. 우리와는 비슷하나 완전히 다른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지상의 모든 종족은 저희 손에 멸망해야 합니다.]

우리의 원한은 너무나도 강렬해. 그렇기에 다른 이가 우리의 복수 대상을 멸망시키는 것을 두고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천족을 적대시할 수밖에 없다. 이 적대감을 이용하면 당분간, 지상에 향하는 원한을 통제할 수 있겠지.

[그러나 대마왕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요?]

“좋은 지적이야, 아밀리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거든.”

[그런데도 폐하께서 대마왕의 말을 믿는 건 그쪽에서 믿을 법한 증거라도 제시했나요?]

“아니.”

[그렇다면…….]

“나더러 증거를 찾으라네.”

[예?]

[흠?]

[그건 무슨 뜻입니까?]

모두가 한마음으로 내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이 목소리를 낸다.

그래, 그럴 수 있어. 증거를 제시하라고 했는데 오히려 그 증거를 찾으라고 하다니. 너희도 어이가 없겠지. 나도 그래.

“우리의 첫 번째 왕께서는 대마왕이나 천족의 왕과 마찬가지로 창조주의 존재를 알고 있었나 봐.”

이 부분 역시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천족과 마족과는 다르게, 우리 다이나토스는 발전하려는 향상심이 있어서 초대 왕을 뛰어넘는 개체가 나왔다고.

그가 왕이 됐기에, 초대 왕님은 불멸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노라고.

“원래 대마왕이 해준 이야기는 우리의 첫 번째 왕께서 들려줘야 할 이야기였다고 해.”

[그럼 첫 번째 왕께서 무언가를 남기셨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정답이다, 셀피나.

“아마도 그렇겠지. 대마왕은 확실하다는 듯이 말했어.”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문제는 남긴 것이 무엇인지는 대마왕 본인도 모른다는 거야. 당연히 나도 모르고.”

[어이가 없는 이야기군요. 찾아야 할 것은 있지만,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고 위치조차 모른다니.]

내 말이.

“우선 지상에는 아직 우리 제국의 흔적들이 남아있잖아. 거기를 탐색해볼 생각이야.”

[현명하십니다. 그쪽에 남겨진 것이 있을 가능성이 크긴 하지요.]

“그래서 말인데.”

자,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우선 초대 왕님께서 남기신 것을 찾기 전까지는 당연히 지상과 전쟁은 못해. 전쟁 중에 남긴 것이 파손될 가능성도 있잖아.”

[굳이 그걸 찾아야 합니까?]

“찾아야지.”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찾아야 한다고. 아, 애들은 그걸 모르지. 그러면 저렇게 말할 법도 하구나.

그러면.

“대마왕의 말이 사실이면 우리가 제국을 다시 건국해도, 천족이 대청소를 일으키려고 들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증거를 찾아서 사실인 걸 확인하면 마족과 연합을 해서 천족을 상대하던가 할 생각이야.”

[그렇군요.]

우리의 복수 대상을 제거하려고 드는 존재가 있다. 우리가 다시 일으켜 세울 제국을 휩쓸어버리려는 존재가 있다.

그 존재의 정체는 천족. 그렇기에 지상을 향한 적개심이 지금 당장은 천족 쪽으로 향하겠지.

“그런데 혼자서는 탐색하기 힘들 것 같아서 그런데 너희도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아.”

우리 열 한 명이 전부 지상에 내려오면 좋기는 하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몇 명까지 내려올 수 있어?”

[전원 지금 당장 내려가겠습니다.]

“헛소리하지 말고.”

아니, 그건 불가능한 소리잖아. 시릴리오, 제발 정신 차려.

“아포디미아를 유지하려면 우리가 전부 내려오면 안 되잖아. 현실적으로 몇 명까지 내려올 수 있는지를 물은 거야.”

아포디미아는 본디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는 척박한 환경이다. 그런 환경을 생명이 살아갈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우리 다이나토스는 지속적으로 아포디미아에 마력을 공급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전원 내려오는 건, 아포디미아에 있는 아래 아이들까지 내려온다는 뜻과 같다.

[두 명까지는 내려갈 수 있을 거예요.]

“두 명이라.”

메르넬라의 말에 잠시 머리를 긁적였다. 두 명이면 나까지 합치면 세 명. 그럼 다섯 명이 되기 위해선 두 명이 부족한 셈인데.

한 명은 루이나, 한 명은 비비안을 넣으면 되나? 루이나와 비비안은 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된 사람인지라 조금만 키우면 금새 한 사람 몫은 할 수 있을 거다.

[그럼 두 명까지도 필요 없습니다.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폐하.]

안드로가 비장한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확실히 안드로가 내려오면 편하기는 하겠지. 그는 우리 다이나토스 중에서 유일하게 나와 견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클레안드로.”

[예, 폐하.]

“너는 안 돼.”

그렇기에 안드로는 내려와서는 안 된다.

“너도 없을 때 아포디미아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대처하려고.”

나와 안드로가 없을 때 만약 아포디미아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대처할 수가 없어. 물론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내 기우일 수도 있어.

하지만 무언가 왠지 마음에 걸린다.

“게다가 얼마나 걸릴 줄도 모른다고. 부부를 생이별시키면 아밀리아가 나중에 날 죽이려고 들걸?”

[그, 그건 아니에요, 폐하…….]

아밀리아가 어이없다는 듯 그리고 부끄럽다는 듯이 말하고는 있지만, 나중 일은 모르는 거니까.

“우선 메르넬라.”

[예, 아르켈님 아니! 예, 폐하.]

[어머머, 폐하와 메르넬라 사이에 무슨 진전이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진짜였나 보네요?]

[아밀리아 폐하께 그런 불순한 말투는 안 된다.]

[에이 뭐 어때요. 존안을 뵙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메르넬라를 놀리는 건 재밌잖아요. 봐요, 저 얼굴.]

[흠, 확실히. 새빨갛게 익었군.]

메르넬라가 말실수 한 번 한 걸 가지고 저렇게 조리돌림을 하다니. 무섭다, 저 부부. 저렇게 사이가 좋은데 생이별시키면 진짜로 날 죽이려고 들 수도 있겠네.

[비밀로 하지 말고 말 좀 해주지 그랬어요, 메르넬라. 저도 지금까지 메르넬라한테 많이 이야기해줬잖아요.]

그만 말리는 게 좋겠다.

“내 여자 그만 놀려.”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뭐야, 왜 다들 말이 없어져?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서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설마 메르넬라가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모두를 침묵시켰나?

아니 그렇다기엔 안드로까지 당했을 리는 없는데?

[가,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드디어 황후마마가 등극하시는 군요.]

[감축드립니다, 폐하. 식은 언제 올리실 생각이십니까.]

내가 메르넬라를 공인해서 다들 놀랐었던 거였나 보다.

“식은 우리의 사명을 끝내고 올릴 생각이야.”

메르넬라한테도 그렇게 말했었으니까 딱히 문제는 없겠지.

“아무튼, 메르넬라는 내려오고.”

[벌써부터 너무 총애하시는 건 아닌가요?]

“그럼 총애해야지.”

그렇지 않아도 만나러 가지 못해서 미안했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메르넬라가 직접 내려오면 된다.

아, 맞다. 아리아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네. 이건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미래의 아르켈에게 맡기도록 하자.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루이나가 내가 전위를 보면 되고, 비비안이 마법사니까. 그럼 나머지 한 명은 역시.

“이레네 엔데카토스.”

이레네 엔데카토스, 우리 중 열한 번째이자 정밀 저격에 관해서는 따라갈 자가 없는 이의 이름을 부른다.

[네, 폐하.]

“네가 내려와.”

[영광이옵니다.]

나와 루이나가 전위. 메르넬라가 힐러. 이레네가 궁수. 비비안이 마법사. 구성만 보면 훌륭한 파티라고 볼 수 있다. 아니 훌륭한 수준이 아니라, 다섯 명 중 세 명은 오버스펙이기는 하지.

자, 그럼 대충 정해졌네.

“메르넬라와 이레네 이렇게 두 명이 내려오도록 해. 이 두 명은 나와 지상의 정찰 목적을 겸하는 거로 하지. 불만 있는 사람?”

[없습니다, 폐하.]

“그럼 오늘 중에 짐 챙기고 내일쯤 내려와. 내려올 때 말하고. 마중하러 갈 테니까.”

아, 맞다. 이것도 미리 말해놔야지.

“참고로, 정찰 목적도 겸하는 거니까 멋대로 누굴 죽이거나 하지 않겠다고 맹세해. 맹세 못 하겠으면 다른 애더러 오라고 할게.”

일단 적개심을 천족 쪽으로 돌렸다고 하지만, 막상 지상의 종족을 보면 적개심이 다시금 끓어오를 수도 있으니 미리 주의를 시켜야 한다.

[매, 맹세할게요!]

[맹세하옵니다, 폐하.]

“그럼 됐어. 아, 맞다 에이글.”

[에이글 테랄로스, 폐하의 말씀을 듣고 있사옵니다.]

“니가 지상의 마법을 보고 재미로 만든 마법서 있잖아. 그거 몇 개만 줄 수 있어?”

에이글은 우리 중에서 가장 마법을 잘 다룬다. 그런 에이글이 개인적으로 지상의 마법을 연구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 그것은 좀…….]

뭐야, 왜 그래?

[흥미 위주로 만든 것뿐이라, 폐하께 보여드리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것들뿐이온지라……. 게다가 저희의 마법과 비교하면 전부 수준이 떨어지기도 하고.]

아니, 오히려 우리의 마법이 아니라서 부탁하는 거다. 비비안에게 마법을 가르쳐 줄 생각인데, 우리의 마법은 너무 난해해서 배우기 어려울 테니까.

에이글이 지상의 마법을 개량한 거라면 배우기도 쉽고, 위력도 뛰어날 테니 문제 없겠지.

“상관없어. 부탁할게.”

[예, 그렇다면 이레네 손에 들려 보내겠습니다.]

“그래.”

[폐하.]

에이글과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부르누카가 나를 불렀다.

“왜 부르누카?”

[억제기는 어떻게 합니까?]

“아.”

그걸 잊고 있었네?

“당연히 채워서 보내줘.”

나와 클레안드로는 스스로의 힘을 조절할 수 있다. 너무 강했기에 어릴 때부터 힘의 출력을 조절하는 법부터 배웠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다른 애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힘을 강제적으로 제어해야 할 때는 억제기를 차야 했다.

등 뒤에 아우라를 내뿜으면서 걸어 다니면 모든 시선이 집중될 테니 당연히 억제기가 필요하지.

이런 게 있으면 위험하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억제기라고 하지만 실상은 강제적으로 힘의 출력을 조정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그 이상의 힘을 내려고 하면 억제기는 허무하게 부서진다.

[출력은 어떻게 합니까?]

“메르넬라는 5%. 이레네는 15%면 될 거 같은데?”

당연하지만 메르넬라는 제 본신의 힘에 5%만, 이레네는 15%만 사용할 수 있게끔 하라는 뜻이다.

[알겠습니다!]

자 이걸로 동료 문제는 끝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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