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게임 속 히든 보스가 되었다-76화 (76/99)

〈 76화 〉 33. 설명의 시간(3)

* * *

“여기가 던전의 관리실인가요?”

“생각해보니까 원래는 외부인이 출입하면 안 되는 곳인데…….”

레베카의 말에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그런 건 관리실에 들어오기 전에 말해야 하는 거 아니냐?

“어머 저는 외부인이 아니잖아요, 레베카양. 저희 둘 다 아르켈님의 반려이니, 자매라고 볼 수 있는 관계 아니겠어요?”

“그런 시점으로 보자면 외부인이라고 보기도 힘드네요.”

“뭘 메르넬라의 말에 동조하고 계십니까, 레베카님. 당연히 외부인이죠.”

둘 다 내 여자고 뭐고 간에 던전 관리로만 놓고 보자면 메르넬라는 외부인이 맞다. 그러니까 본래 메르넬라는 이 장소에 들어오면 안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메르넬라는 밖에 세워두고 레베카와 둘이서만 들어오는 것도 꼴이 우스워서 그냥 내버려뒀을 뿐이다.

“그럼 쫓아내야 해?”

“뭘 지금 와서.”

이미 들어왔는데 쫓아내기도 그렇다. 게다가 메르넬라가 나가기 싫다고 땡깡이라도 부리면 어쩌려고. 나야 말릴 수는 있지만, 그 땡깡의 여파로 던전이 무너질 수도 있다.

저 어마어마한 폭유를 지닌 아리따운 여성은 저렇게 얌전해보여도 나와 같은 다이나토스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줬으면 한다.

“헌데, 아르켈님.”

메르넬라는 조금 불쾌하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장소는 조금 특이하네요. 특히 저건 굉장히 특이해요.”

메르넬라가 가리킨 것은 욕망의 관이었다.

“불쾌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

메르넬라가 마법에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건 같은 다이나토스와 비교했을 때를 말하는 거다. 그녀 역시 우리와 함께 영겁의 세월을 살아왔다.

마법을 잘 다루지는 못하지만, 마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법의 지식수준만 보자면 드래곤보다 훨씬 깊다.

“……레베카양이 있어서 일부러 돌려 말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런 그녀가 보기에 ‘욕망의 관’은 그야말로 꺼림칙하게 보이겠지. 나야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메르넬라의 눈에 그리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왜 언니가 욕망의 관을 불쾌하게 느끼는 거야?”

레베카가 내게 설명을 요구한다. 자기 딴에는 욕망의 관에 위대함을 느끼면 느꼈지 불쾌함은 느끼지 않으니 이해가 되지 않겠지.

“욕망의 관은 우리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그렇습니다.”

“전혀 다른 방식?”

“예.”

여기까지 말했음에도 레베카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계속 말을 안 해!”

그 모습이 조금 귀여워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자, 어느 사이에 볼을 부풀리고 어서 계속 설명하라는 듯이 나를 재촉한다.

“다이나토스는 강함을 추구합니다.”

“그건 저번에 말해줬잖아. 나 안 까먹었어.”

그래, 아포디미아로 처음 갔던 날에 설명해줬었지.

“예. 그런데 우리의 강함과는 전혀 다른 강함이, 우리의 강함과 맞먹고 있습니다. 메르넬라는 그것에 불쾌함을 느끼는 거죠. 아니 솔직히 말하면…….”

“훨씬, 까지는 아니지만, 조금 더 뛰어나다는 점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예요.”

메르넬라가 내 말을 빼앗았다. 그녀는 왕인 내 입으로 욕망의 관이 우리의 기술보다 뛰어나다고 인정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나 보다.

“레베카양. 우리는 힘을 추구해요.”

조금 전 나와 같이 메르넬라는 힘을 강조했다. 우리에게 힘이라는 개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이나토스에게 있어 힘은 예절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그 강함은 순수한 무력뿐만이 아니에요. 그 무력을 보조하고 더욱 상승시킬 수 있는 장비의 강함도 추구하지요.”

“아, 그래서 아포디미아의 기술 수준이 그렇게 높았던 거예요?”

그래, 그렇지. 우리가 순수한 무력만을 추구했다면 오늘날 아포디미아가 그 정도로 진보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맞아요. 선조들께서 남기신 기술을 저희는 수없이 진보시켰어요. 그 기술력을 저희는 마도 공학이라고 부르고 있죠.”

“마도 공학?”

“네.”

마법과 과학을 섞어 만들어낸 기술력. 그 마도 공학이야말로 고대 제국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선조께서도 처음부터 마도 공학을 발전시키신 건 아니었어요.”

처음 다이나토스는 지금의 지상과 비슷한 아니, 그보다 못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 강철 검보다 못한 청동 검을 가지고 다녔을 정도다. 그 구리 검에 인챈트를 부여한 것이 고대 다이나토스의 무장이었다.

처음에는 그 정도로 만족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다이나토스의 평균치가 높아졌다.

“고대에는 지금 지상의 장비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장비를 썼다고 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까, 장비가 다이나토스의 힘을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 온 거죠.”

어느 시점이 지나자 단순한 장비에 인챈트를 부여하는 것만으로는 다이나토스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러질 정도가 됐다.

그때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장비에 관심을 두게 됐다. 더욱 강한 장비, 자신들의 힘을 감당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드는 것에 고심했고, 열두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마도 공학이에요. 그 정수가 바로 이런 것이고요.”

메르넬라가 아공간을 열더니 자신의 무장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겉보기에는 그저 거대한 봉이지만, 저것이 평범한 봉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당연히 알고 있고, 레베카도 한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터무니없네요.”

레베카는 멍하니 메르넬라의 봉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담긴 술식이 몇 가지인지 가늠조차 못하겠어요.”

젊은 마족 중에서는 가장 강한 레베카가 저런 말을 할 정도다. 하지만 문제는 저 봉에 담긴 것이 마법적인 술식 뿐만이 아니라는 거지.

“그 흉흉한 거 집어넣어, 메르넬라.”

저거 한 번 잘못 휘둘렀다가는 무슨 참사가 일어날지, 나는 알고 있다. 어느 관점에서 봐도 저 봉은 제노사이드보다 끔찍한 무기니까.

“네, 아르켈님.”

내 명령에 메르넬라는 곧바로 손에 쥐고 있던 봉을 다시 아공간에 넣었다.

“그런데 제 무장 중 하나를 흉흉하다고 말씀하시는 건 너무하시지 않나요? 어딜 봐도 아르켈님의 무장보다는 흉흉하지 않은데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이 없네.”

메르넬라의 봉이 흉흉한 무기인 건 맞지만, 그래도 내 무장과 비교하면 그렇게까지 흉흉한 것도 아니다.

“아르켈도 언니랑 비슷한 장비를 가지고 있어?”

“지금은 없습니다. 아포디미아에 놓고 왔거든요.”

가져오는 거야 어렵지 않다. 지금도 가져올 수도 있고. 딱히 그럴 이유를 느끼지 못해서 가져오지 않는 것뿐이지.

“끝이 보이지 않는 마력. 강인한 육체. 거기에 그 힘을 받쳐줄 장비까지. 말 그대로 결전병기 종족이네요.”

레베카의 말대로 다이나토스는 그야말로 힘에 미친 종족이다. 기본적인 스팩도 뛰어나지만, 힘을 예절이라고 생각하기에 단련을 멈추지 않는다.

살아남은 다이나토스가 11명이라 망정이지, 100명 정도였다면 침공을 막을 변명도 생각해내지 못했을 거다.

“어머, 저희의 강함은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레베카양. 저희의 진짜 힘은…….”

“거기까지.”

메르넬라가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말렸다. 아니, 멈추게 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하려나?

그 힘에 관해서는 딱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서였다.

“말이 너무 많아, 메르넬라.”

“폐하의 부인인데 숨겨야 할 이유가 있나요?”

“숨길 이유도 없지만, 딱히 말해줄 이유도 없잖아. 게다가 그건 우리의 치부이기도 하고.”

“아. 그렇네요.”

치부. 그 표현에 메르넬라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며 긍정했다.

지금 메르넬라가 레베카에게 설명해주려던 우리의 힘 중 하나는 분명 우리에게 있어서 축복과도 같지만, 반대로 치부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은 다른 종족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게 설령, 내 연인이라고 할 지라도 그래.

“죄송해요, 레베카양. 괜히 말해줄 수 없는 걸 말해주려고 해서 궁금증만 키워서요.”

“저는 괜찮아요, 언니.”

물론 레베카가 끈질기게 물어본다면 어쩔 수 없이 말해주기는 했겠지만, 그래주지 않는 걸 고맙게 생각해야겠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나중에는 말해줄 거지 아르켈?”

“아마 말하게 되겠지요. 솔직히 말해줄 상황이 오질 않기를 바라고 있기는 하지만.”

아마 오기는 하겠지. 그 힘을 보이는 날도 분명 오기는 할 거다. 적어도 천족의 왕을 상대할 때는 분명 그 힘을 보여야 할 수밖에 없어.

그때 과연 레베카가 내 옆에 있을지는 의문이기는 하다만. 레베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개 같은 상상을 한 건 아니다.

굳이 천족의 왕을 상대할 때 레베카를 옆에 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뿐이다.

“그래서 욕망의 관을 보고는 왜 기분이 나쁜 거예요?”

아, 이야기의 주제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있었구나.

“이건 저희 선조의 방향성을 깡그리 부정하는 물건이라서 그렇습니다.”

“부정?”

“마도 공학이 아니라 순수한 마법으로, 인챈트만으로 이러한 물건을 만들었어요. 마법과 기술의 양립이 아닌, 오로지 마법 만으로요.”

“그냥 방향이 다른 것 아니에요?”

그냥 방향이 다르다고? 그래 분명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도 공학이 어째서 출범하게 됐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 거다.

“선조께서는 마법만으로는 다이나토스의 힘을 감당할 장비를 만들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고 마도 공학을 창립하고, 발전시킨 거예요.”

순수한 마법으로는, 기존의 장비에 인챈트를 부여하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힘을 감당할 수 없다. 그렇게 출범한 것이 마법 공학이다.

바르바라도 말했지만, 다이나토스에게는 향상심이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다.

그런데 까마득히 먼 옛날의 선조께서 마법 공학을 만들었다. 지금의 우리보다 한참 약했을 다이나토스가 마법만으로는 자신들을 감당할 장비를 만들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마법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저희의 힘을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아요. 당장 저는 전력을 보여도 이 방에 있는 술식을 해체할 자신이 없어요.”

메르넬라가 저렇게 말했다. 그녀가 저리 말할 정도면 우리 중 누구도 이 관리실에 걸린 마법을 해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정도 마법이라면, 분명 저희의 힘을 감당할 장비도 만들 수 있겠죠. 그래서 불쾌해요.”

“그렇군요. 대마왕님이 만드신 것이니 어쩔 수 없죠. 응응.”

뭔가 위로하려고 한 말인 건 알기는 하는데. 나는 짜게 식은 시선으로 잠시 레베카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바라봐?”

“그걸 지금 위로라고 말한 거면, 굉장히 무례한 짓입니다, 레베카님.”

“에?”

“힘이 전부인 우리에게 그런 식의 위로를 해봐야 오히려 반발심만 키우게 하거든요. 그 증거로, 옆을 보세요.”

“아.”

옆에 있는 메르넬라를 바라본 순간, 레베카는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그녀의 시선으로 보기에도 메르넬라는 지금 어마어마한 분노와 반발심 그리고 대항심을 불태우는 중이겠지.

“제 항마법으로도 해체할 수 없다니. 저도 아직 멀었네요. 너무 안주하고 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예요.”

안주? 그럴 리가 있나.

우리 다이나토스 중 수련을 하지 않는 건 오로지 나뿐일 거다. 아니, 정확히 말해야지. 아르켈 역시 레베카에게 미치기 전까지는 수련을 거듭했었다.

당장 나는 수련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는 해. 정확히는 수련한다고 실력이 향상될 수 있는 한계점을 넘어섰음을 느끼고 있으니까.

하지만 다른 애들은 이야기가 틀리지. 안드로를 제외한 나머지 다이나토스는 아직 수련만으로 조금 더 올라설 수 있을 거다.

“그럼 설명도 끝났으니까.”

던전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욕망의 관에 손을 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