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03.또 다른 던전.
03.또 다른 던전.
"우으음~~"
해가 쨍쩅한 아침.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일어났다.
나의 양 옆에는 유나씨와 소라누나가 잠들어 있었는데, 어제 하루종일 섹스하며 뒹굴다가 결국 잘 때도 같이 잔 거다.
이러니까 진짜 부부생활 하는 거 같다.
"오늘부터 다음 던전으로 가는 거지? 근데 어디로 갈까나."
한남동 던전 다음이라면 보통 여의도로 가겠지만...우리 팀이 너무 강하단 말이지. 솔직히 우리 팀정도면 현존 최악의 던전인 맨하탄으로 가도 먹힐 정도다.
"우음...."
물을 마시고간단히 씻자, 유나씨가 신음을 내며 뒤척이는 게 보였다.
흐흐. 생얼도 예뻐.
마음 같아서는 거의 깬 그녀를 덮치고 싶었지만, 오늘은 할 일이 많아서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편안한 장소가 있다면 할 수 있으니까.
.
.
어느새 유나씨와 소라누나 모두 깨어나고, 우리는 다같이 아침을 차려 먹었다.
참고로 여기는 유나씨의 집.
"생각해 봤는데, 일단 보호자노릇은 그만 둬야 할 것 같아요."
유나씨의 파격적인 말.
"채아와 하나씨는 이미 능숙하게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어요. 종료해도 되겠죠. 그리고 소라언니도 알아서하실 수 있고요."
"일단 스탯부터가 개념이 없어서 헤헤."
"제일 문제가 되는 게 당신이었는데...별 의미 없을 거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저, 공격력 4만이 되려면 레벨 몇 정도는 돼야 할까요?"
나의 질문에 유나씨가 살짝 신음한다.
"히든이 아닌 일반적인 직업이라면 레벨업 할 때마다 주스탯 3개 내지 5개 정도가 올라요. 그리고 그 주스탯 1마다 공격력 3~4정도 상승하고요. 중위값으로 계산해 보면 레벨이 오를 때마다 순수하게 올라가는 공격력이 16 언저리라는 뜻이에요. 나머지 공격력은 장비에 딸린 공격력과 스탯, 그리고 스킬 공격력과 크리티컬에 의존하는 편이죠.
제가 당신을 만나기 전, 제 공격력은 7천이 채 안 됐어요. 그나마도 저는 히든직업이고요. 일반 직업을 가진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겠죠. 2차 전직을 감안한다 해도...최소 레벨 500은 넘겨야 그 정도 공격력이 가능할 거예요."
"켁...오,오백이요? 그런 레벨이 있습니까?"
"없죠. 지금 최고 레벨이 70이 안 되는데요."
흐음...그,그렇구나. 우리 심각하게 강한 거구나.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그 <<황제 게임>>이라는 건 엄청난 거에요. 국가 비밀 전력으로 생각해도 무리 없을 걸요."
"그 정도??"
"생각해 봐요. 한 판에대략 2000~3000개의 스탯을얻을 수 있다고요? 스탯 대비 공/방 상승률 높은 사람들 100명 정도 모아다가 게임 한 판 벌이면 그걸로 괴물 군단이 탄생하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감이 안 잡히세요?"
드,듣고 보니....
사실 나도 어렴풋이 생각해보긴 했다.
내게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걸 광고하고 사람들을 모집하는 거지. 물론 여자만. 그것도 돈 받고. 무려 스탯 2000여개가 상승한다고? 우승하면 또 별개의 보상이 있다고? 이 말을 못 믿는 거라면 모를까, 믿는다면 엄청나게 많이 몰려들 거야.
"게다가 당신을 봐요. 모험가 된 지 일주일도 안 됐어요. 근데 공격력이 몇이라고요?"
"...4만3천입니다."
"당신이 왕초보 모험가라는 건 장부 보면 바로 나오죠. 근데 공격력이 4만이 넘어요. 사람들이 알면 당장 난리 나겠죠."
"그,근데 제 공격력을 어떻게 알아요?"
"재능이 있잖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통찰]은 직업과 그 특성을 파악하는 정도지만,세상에는 아주 세세하게, 낱낱히 파해칠 수 있는 재능도 있어요."
"그렇군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거액의 연봉을 받으며 국가급 단체에서 활동하죠. 조심해요. 인생 피곤해질 수도 있으니까."
영화같은 일이네....
"근데말야. 그런거라면 스승이나 나도 위험하지 않아? 우리도 만단위잖아."
"...."
유나씨 얼굴이 심각해진다.
본인 일은 생각못했나.
"흐,흠...어쨌든.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해 봤을 때 우리 튜토리얼 팀은 해체하고, 새로 꾸리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정식으로."
"헤에. 당연히 우리 셋은 같이 있는 거겠죠?"
"...."
유나씨가 날 보다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오. 빨개졌어.
"어,어쩔 수 없죠...당신의 빈이 돼 버렸으니...."
좋으면서 흐흐.
"우,우리 셋이면 어딜 가도 충분할 거에요."
"그럼 어디로 갈 건데요?"
"우린...."
+++
쨍그랑!
"후욱...후욱...."
한 남자가 있다.
한 여자를 너무나 사랑한.
한 남자가 있다.
그럼에도 그녀를 놓쳐버린.
"모험가...라고 했지?"
단정한 모습은 이미 없다.
지적인 모습도 없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야성과 분노 뿐.
"분명 던전 안에선 완전범죄라 했겠다."
그는 운현이라는 이름으로, 유은에게 소라를 뺏긴 남자다.
새로 바꾼 전화기를 들어 어딘가로 전화하는 그.
"어. 난데. 달러좀 준비해줘라. 살 게 있거든."
과연 그는 복수를 성공할 수 있을까.
+++
다른 던전으로의 이동이 결정됐다. 우리 스탯을 본다면 맨하탄으로 가는 게 좋겠지만, 일단은 한국 최악의 던전, D급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D급 던전은 소위 말하는 언데드 던전인데 몬스터 몰골이 심히 끔찍해서 인기가별로 없다고 한다. 대신 언데드 몬스터의 뼈를 빻으면 마나파우더가 되는데 효용이 굉장히 높아서 고가에 팔린다.
소재지는 강남. 예전에는 상당한 부자동네였다지만, 던전이 출몰하고나서 완전히 초토화가 되었고(주로 공군의 폭격 때문에....) 지금은 그냥저냥한 던전시티가 되었다.
"어머? 이동...하신다고요?"
첫날에 만났었던 가이드누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본다. 하긴. 모험가를 그만둔다는 것도 아니고 다른 던전으로 이동한다고 하니 놀랍겠지. 일주일도 안 된 녀석이.
"네...좀 기연...이라고나 할까. 더 이상 이 던전에 어울리지 않아서요."
"헤에...어디로 가실 건데요?"
"강남이요."
"가,강나암??"
두 번째로 놀란다.
"설마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D급 던전 말씀하시는거 맞아요?"
"네."
"거기 적정 공/방 5천 이상이에요. 초보자가 들어갈 곳이 아니라구요."
그녀는 걱정되는지 예쁜 얼굴을 구기며 사근사근 말한다.
후후. 하지만 걱정도 팔자! 적정 공/방 5천? 그 10배라도 전 갈 수 있습니다요.
"괜찮습니다. 그 정도쯤은."
"...호,혹시...엄청난 득템이라도...?"
"뭐...그런 셈이죠."
"그렇...군요."
왠지 쓸쓸한 얼굴을 한다.
근데 이 누나도 꽤 이쁜데, 한 번 먹고 갈까?
"그런데 누나."
"네?"
"누나는 어디까지 갔었어요? 모험가였다면서요."
"음...말하자면 길어져서...."
그렇다면....
"그럼 이따 차 한잔 할 래요? 제가 쏠 게요."
"엥?"
"선배의 모험 얘기, 듣고 싶어요."
"그...별 거 아닌데요."
"괜찮아요."
"정말 별 거 아니에요. 그냥 지루한 얘기일 뿐이라...그리고 모험가로서 성공했다면 여기서 이러고 있지 않겠죠...."
"에이. 너무 겸손 떠신다."
가이드 누나가 미약하게 웃었다. 정말 실패했다고 생각하나보네.
"그럼 이렇게 해요. 제가 누나 헌팅하는 걸로 하죠."
"헌팅??"
"네. 누나, 이쁘잖아요."
"무,무슨 소릴...."
그녀가 황급히 주위를 둘러본다.
처음 봤을 때는 대단히 여유롭고 장난스러웠는데, 오늘은 또 귀엽네.
나는 그녀의 가는 손을 살며시 잡았다.
"저 어차피 거래소도 들리고 이것저것 해야 되니까, 같이 저녁도 먹어요. 괜찮죠?"
"음...뭐...."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흐흐. 이 정도면 반쯤 넘어 온 거지.
기숙사 처리와 주소이전신청을 마친 나는 바로 거래소로 갔다.
흔히 거래소라 하면 시장 같은 곳을 떠올릴 수 있는데, 물론 같은 던전을 도는 모험가끼리 거래하는 그런 장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피시방 같은 곳이다.
엄청나게 많은 전용 컴퓨터가 구비되어 있고 한쪽에는 아이템을 보관하는 창고, 그리고 그 창고의 물품을 주기적으로 이동 및 배송하는 차량들이있다.
듣기로 저 운송업도 시장이 엄청 크다지.
"팔렸으려나~~"
내가 내놓은 아이템들의 총 가격은 대략 16,000달러. 다 팔린다면 꽤 목돈을 만질 수 있다.
하지만....
"...씨댕 하나도 안 팔렸네."
팔린 게 없다....
이럴 수가....
목돈의 꿈이....
"어머, 혹시~"
뒤에서 웬 여자가 접근한다.
마치 밤거리에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여자처럼, 가슴골이 훤히 보일 만큼 파여 있는 티셔츠와, 이게 팬티인지 바지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짧은 핫팬츠를 입고 있다.
얼굴과 몸매는 꽤 상급.
"잘 안 팔리는물건있으세요오~?"
말 끝을 늘리며 귀엽게 애교떠는 그녀.
과연. 말로만 듣던 템창이구나.
템창이라는 건 거래소에 올린 아이템이 잘 팔리지 않을 때 접근하여 몸과 얼굴로 마음을 녹이고는 헐값에 사버리는 사람들을 말한다. 개인으로 움직이는사람도 있지만 보통 뒷세계 조직을 끼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전문적으로 여성에게 '쩔'을 줘서 매력스탯만 육성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당연히 불법이며 걸리면 바로 감옥행이다. 그럼에도 거래소에서 당당하게 활개치는 이유는? 뭐겠어. 안 잡으니까 그렇지. 조직에서 거래소에 뇌물을 주는 것도 있고, 경검에서 이쪽을 건드리기 꺼려하는 것도 있다.
'진짜 다리 벌리는 사람도 있다던데....잠깐 응해볼까.'
저녁에는 약속이 있으니 진지하게 놀 생각은 없지만 일단 눈이 즐겁잖아.
"아, 네. 요놈들이 잘 안 팔리네요."
"어디~."
그녀가 내게 과도하게 밀착하며 모니터로 얼굴을 내밀었다.
짙지만 향긋한 향수냄새가 확 풍기고,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이 내 어깨를 누르며 뭉개졌다.
오오. 좋은 감촉.
"어머. 너무 비싸게 올리셨다~"
"에, 그래요?"
"우응. 차라리 저한테 파실래요?"
그녀가 더욱 밀착하며 나를 유혹한다.
"얼마에요?"
그녀가 두 손을 벌렸다.
"만 달러."
"에이. 말도 안 돼."
"어머. 이 정도도 많이 쓰는 거에요."
무슨 소리냐는 듯이 예쁘게 입을 모으며 더욱 밀착한다.
이제 가슴은 아예 푹신하게 닿아 있고, 그녀의 손은 모르는 척 내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다.
"정 그러시면...."
그러다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데....
"잠깐 나가서 얘기하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