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03.또 다른 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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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여인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봤다.
그야말로 아무말도 없이.
어떻게 봐도 자매로밖엔안 보이는 둘이었지만 무려 한 쪽은 어머니다.
"모험가 활동을 하는 건 그러려니 하고 있었지."
"알고...있었어요?"
"모를 거라고 생각했니?"
"...."
유나가 고개를 숙였다.
옛날부터 이사람은 자기가 뭘 하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마치 스토커라도 되는 것처럼.
그것은흡사 감옥 같아서, 자신이 죄수복을 입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래서 세계를 돌아다니고 던전을 탐험하는 모험가가 된 것인데, 그럼에도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니.
여인, 유나의 어머니 이소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얼핏 보기에 조금의 분노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워낙 냉정하고 포커페이스 유지를 잘 하는 사람이라 유나는 불안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모험가...위험하다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자기 인생 알아서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니. 애도 아니고."
"그럼...."
"하지만 명백하게 '잘못된' 사상집단에 몸을 담고 있는 건 얘기가 달라."
"잘못이라뇨.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에 대해서 문제삼고 해결을 위해 노력할 뿐이에요!"
"그걸 왜 길드가 하고 있니? 사회 운동을 해야지."
"그,그것도 물론 하고 있어요."
"...."
소냐가 잠시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내가 맞춰볼까? 너희들은 사회 운동을 하기 위해 사상길드를 만든 게 아냐. 사상이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섞이는 게 무서워서 뭉쳤을 뿐이지."
"아니에요!"
"아니라고? 그러면 왜 여자만 받아? 길드라면 더 강해지고 더 많은 이권을 얻기 위해남자든 여자든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이 엄마가 잘못 알고 있니?"
"그거야 한남들ㅡ."
"그런 단어 쓰지마. 그렇게 가르친 적 없어."
"...."
냉정하게 딸의 말을 끊어놓은 소냐는 그야말로 차가운 눈빛으로 딸을 응시했다.
"올바른 사상은 그 사상을 따르는 사람도 올바르게 만들어 주는 법.너희가 따르는 그 '레디컬 페미니즘'이라는 게 정말로올바른 것이고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는것이라면, 그런 단어는 왜 만들었니? 누가 그걸 보고 옳다 여기겠니? 시작부터 잘못됐어."
"저쪽이 먼저 시작했다구요!"
"저쪽? 저쪽이 어딘데?"
"한국 남자들이요! 걔들이 먼저 김치녀니 뭐니 하면서 온갖 여혐들을 만들었고, 여자는 하루에 세 번 패줘야 한다는 둥 그런 소리도 마구 지껄이고 있었다고요! 그래서 미러링 차원으로 우리도 만든 거예요!"
"...."
유나의 거친 말에 소냐는 잠시 생각하다 옆 테이블을 슬쩍 바라봤다.
그곳에는 두 모녀의 대화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세 남녀가 있었다.
유은과 소라, 그리고 은주.
다시 시선을 돌려서, 그녀는 유나를쳐다봤다.
"너는 저 남자를 뭐라고 부르니?"
"한남이라고...."
"저 남자는 널 어떻게 부르는데."
"...유나씨라고...."
"그럼, 지금까지 살면서 네가 직접적으로 '김치녀'란 말을 들어본 적 있니?"
"...."
"김여사라는 말은?"
"...."
"그것도 없지?"
"하,하지만ㅡ."
"하지만이고 하치만이고, 남들은 너를 유나라고 불러주는데 너는 왜 그런 단어로 사람을 부르고 다녀? 그러고 다니면 사람들이 '우리가 잘못했구나!'하고 반성하기라도 하니?"
"...."
입술을 꾹 깨문 채 말이 없는 유나.
그런그녀를 보며 소냐가 여러 가지 서류를 꺼냈다.
거기에 출력된 것은 '매운갈비탕'사이트와, '매운갈비집' 길드의 수많은 행적들이다. 하나 같이 제대로 된 게 없다.
그것을 하나하나읽어가면서 소냐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가관이구나."
"...."
그녀는 딸이 몸담은 단체가 생각보다 더 안 좋은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제대로 된 행동이 어떻게 하나도 없을까.
그녀의 그런 반응에, 유나가 다급히말을 이었다.
"여,여자가 불리한 건 사실이잖아요!"
"뭐가?"
"아직 이 나라에는 유리천장도 존재하고 남녀차별도 있고 여혐도 분명 존재한다고요!"
"유리천장?"
소냐가고개를 들었다.
"내 앞에서 그런 말도 나오는구나."
"읏...."
확실히 그녀는 성공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맞아. 있어. 여자라서 무시당한 적도 있고, 방해받은 적도 있어. 근데 그거 아니?"
"뭐,뭘요."
"내가 여자라서 잘 나가는 점도 있다는 거. 나와 같은 수준의 남자 변호사는 별로 화제도 안 되고 이름도 덜 알려졌어. 내가 여자라서, 그리고 미녀라서 더 많은 관심을받고 더 많은 실적도 올릴 수 있는 거야. 그건 생각 안 하니?"
"그거야말로 여혐의 증거라고요!"
"어떻게?"
"여자를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고성적인 대상으로만 보니까 그저 예쁘면 좋아하는거죠. 능력을 보는 게 아니라 얼굴과 몸매를 보는 거라고요! 음흉한 생각으로 온갖 음탕한 짓들을 머릿속으로 저지르고 있을 거예요!"
"그건니 생각이고. 너 남자랑 대화는 해봤니?"
"무,물론이죠."
"하긴. 동료도 있으니까 하긴 했겠지. 연애는?"
"...."
"남자랑 대화도 제대로 안 해봤고, 연애해본 적도 없고, 몸을 맞댄 적도 없으며 토론을 해보길 했어 술대작 하며 싸우길 해봤어. 네가 뭘 해봤는데 남자는 이럴 거라며 재단을 하고 있니? 하다못해 유리천장 네가 겪었니? 겪었어도 내가 겪었어. 내 엄마 세대가 겪었고. 너는 뭘 겪었니?"
"우,우리도ㅡ."
"그리고 나 변호사야. 변호사를 얼굴과 몸매로 선임한다고? 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여자를 무시하는건 너희들이잖아."
답지 않게 꽤 흥분한 그녀는 다시 숨을 고르며 차분하게 표정을 가라앉혔다.
"나와. 그 길드."
"그,그럴 수 없어요."
"그래? 그럼 나오게 해줄게."
그녀가 유나 앞으로 서류를 내밀었다.
"소송 들어왔더라. '매운갈비탕'사이트 회원들이 '매운갈비집'길드에 대해 단체소송을 걸어왔어."
"네?!"
"매운갈비집 길드원이 사이트에 셀카 사진을 올렸고, 그걸 본 사이트 회원들이 모욕감을 느꼈대."
"그,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사이트 회원들은 대체로 두꺼운 히키코모리라며? 그런 사람들이 날씬한 길드원 셀카를 보면 그렇게 느낄 법도 하지 않니? '쟤들이 우릴 놀리고 비웃으려는 거구나' 하는 식으로."
"그건 그냥 자기 피해망상에 찌들었을 뿐이잖아요! 자기 심리문제를 가지고 소송이라니!"
"그러게. 자기 피해망상이 문제인데 왜 사회가 문제인 것처럼 얘기하고 다닐까."
"...!"
이소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사적으로 유나도 일어나고, 옆 테이블에서 지켜보던 유은들도 일어났다.
"나오기 싫다면 뭐 상관 없어. 그깟 피해망상에 찌든 길드따위, 해체시키는 거 일도 아냐."
그녀는 냉정한 눈으로 유나를 쏘아보더니, 시선을 돌려 유은을 바라봤다.
"곧 저녁인데, 함께 드시죠."
+++
"...."
"...."
이곳은 고급 레스토랑. 그 동안 나와는 별로 연이 없던 곳이다.
그리고 나는, 엄청난 미녀와 1대1 대면하고 있다.
유나씨와 닮은 이목구비를하고 있지만, 솔직히 더 예쁘다. 음...아니 유나씨도 좀 성숙함을 풍기기 시작하면 더 발전(?)하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이렇다.
"유나와 동료시라고요."
"아...네."
입술이 열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역시 어머니가 이렇게 아름다우셔서 유나씨도 예쁜 거였어.
"유나가 지금 이상한 길드에 몸담고있다는 건 알고 계신가요?"
"알고 있습니다."
"이상한 단어로 당신을 부르고 있다던데. 마음 상하시진 않았는지 걱정이네요."
엄청나게 차가운 얼굴로 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말투는 기품이 넘친다.
"하하. 이제 익숙해 졌습니다. 사실 유나씨 정도면 뭐...나은 편이죠. 공사구분은 제대로 하시는 편이고."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다행이네요. 잠시 길을 잘못 들었을 뿐,본심은 착한 아이니 너무 싫어하지 말아주세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누님! 제가 유나씨를 싫어할 리는 없습니다. 더불어 당신도.
나의 그런 표정을 어떻게받아들였는지, 그녀가 살포시 미소지었다.
아아...사방이 환해지는 이 느낌.
결심했다.
반드시, 어떻게든 내 여자로 만들 거야.
근데 변호사라며? 어설프게 건드리면 바로 개털되겠지?
흠...어떻게 해야할까.
"유나는 잘 지내나요? 외골수 같은 아이라 사교성이 떨어지거든요."
"좀 떨어지시긴 하는데 지휘는 잘 하십니다. 튜토리얼팀 때도 그랬고, 지금도 나쁘지 않아요. 무엇보다 능력이 있으시니까요."
"훗. 저를 닮아 능력 하나는 대단하죠. 이상한 생각만 안 하면 좋을 텐데."
냉정한 얼굴 속에 딸을 걱정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저 얼굴에 나를 새길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저러다 결혼은 할 수 있을지...."
"아,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죠?"
"아...."
헉. 무심코 말해버렸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뇨? 혹시...."
그녀가 눈을가늘게 뜨며 의심한다.
으. 남자친구라고 해버릴까?
음...
상관 없겠지?
다른 여자도 있다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어차피 유나씨는 다른 남자못 만나잖아.시스템적으로.
"제가 그...남자친구 비스무리한 존재입니다."
"...?"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유나씨쪽을 바라본다. 유나씨는 또 걱정스런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소라누나랑 은주는 열심히 음식을 집어먹고 있다.
"그쪽이...남자친구라고요?"
"비스무리한 존재입니다."
"...."
뭔가 맘에 안 든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린다.
...
역시 부잣집이라 나 같은 건 성에 안 찬다는 건가? 이런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 같은 클리셰 같은ㅡ.
"그럼 자기 남자친구를 한남이라고 부른다는 거에요?"
"예? 아...뭐...그렇...게 되죠?"
"생각보다 심각하네."
그런 쪽인건가. 나름 다행....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그래서, 어디까지 가셨어요?"
"그야 물론 섹...."
"...."
....
씨발...이놈의 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