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04.여기 우리구역인데? 응. 아냐~
오오 소냐씨라니 무슨 일이지?
유나씨 보러 온 건가?
"어,어떻게??"
유나씨는 당황하고 있다.
"아, 제가 알려드렸어요. 어머님이 변호사시니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고...."
"그걸 어떻게 알았죠?"
"미리 명함 돌렸어."
와. 설마 우릴 만난 그날 근처 경찰서에 명함 돌리고 가신 겁니까? 그게 가능한가?
"그나저나 설마 소냐씨가 어머님이시라니. 축복받으셨네요."
"축복은 무슨...."
수줍은 듯이 얼굴을 붉히는 유나씨.
마치 사춘기 소녀 같은 모습이다.
.
.
경찰서에서의 일이 끝나고, 근처 음식점.
대화도 나눌 겸 간단하게 배도 채울 겸 햄버거집에 왔다.
"엄마는...무슨 이런데까지 따라오고 그래요! 뒷바라지 같은 건 필요 없어요!"
"뒷바라지라니? 혹시라도 죄를 지은 게 있으면 더 확실하게 처벌해 달라고 명함 돌린 건데."
"...."
와... 냉정하다.
"그나저나, 저번엔 몰라봤는데 꽤나 강한 팀인 모양이네요."
소냐씨가 날 쳐다본다. 그것 만으로 그녀의 향기가 나를 감싸안는 것 같아..
"아. 예. 아마 세계 최강일 겁니다."
"그정도?"
살짝 놀란다.
"예. 제가 있는 한 틀림 없어요."
"흐음."
못믿겠다는 듯이 고심하며 고개를 갸웃하는데 순간 덮칠 뻔했다.
너무 예쁘잖아! 반칙이라고!!
"뭐, 자신감은 보기 좋네요."
"아니...자신감이 아니고 진짜 세계 최강입니다."
"정말? 무엇이 그렇게 자신을 갖게 하는지 의문이네요."
무표정한 얼굴로 그렇게 물어오니 뭔가 취조 같은데...뭐 소냐씨가 하는 취조라면 환영이지만.
"흠흠. 이건 원래 극비사항이지만 소냐씨니까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혹시 그 코스프레 같은 복장도 상관이 있는 건가요?"
나의 홍룡포를 가리키며 묻는 소냐씨.
패스트푸드점 안이지만 익선관도 그대로 쓰고 있었기에 주위의 이목이 쏠리고 있던 참이다.
"아...뭐 없진 않습니다만 미약합니다."
"딸도 한복 같은 걸 입고 있고...."
"헤헤. 이쁘죠?"
소라누나가 콜라를 한 잔 마시고 대답.
그녀의 해맑은 미소가 소냐씨 얼굴에도 번지...나 싶었지만 택도 없었다.
"모험가분들이 특이한 복장을 자주 입는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여러분은 마치 제복처럼 공통된 주제의 복장을 하고 계시네요. 뭔가 의미가 있는 건가요? 새 길드 창설이라던가. 그런 거라면 격하게 환영하며 도와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오. 길드라.
확실히 길드도 만들긴 해야하는데. 스톤에이지 흡수해버릴까? 남자 길드원은 전부 추방시켜버리고 나만의 길드, 나만의 시녀군단을 만드는 거지. 이거 좋은데?
"나 길드 있거든요."
"아직까지는."
"...."
흐...여전히 냉전중이네. 어머니와 딸인데 좀 친근하게 굴지.
소냐씨가 손목시계를 보며 살짝웃었다.
"그래, 곧 있으면 사이트 대표와 미팅인데, 같이 가보겠니?"
"제,제가왜요."
"싫으면 말고."
"...."
그 사이트라는 건 설마 매운갈비탕 말씀하시는 건가.
"저 따라가도 될까요?"
그래서 말해버렸다.
"...? 당신이요?"
소냐씨도 의외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바라보고, 한창 종이에 떨어진 양배추를 주워먹던 소라누나와 입술을 쭉 내민 채 감자튀김을 먹던 유나씨도 나를 쳐다봤다.
말하자면 시선집중.
"네. 인생 경험으로 삼고 싶습니다."
"무,무슨 소리에요!당신이 거길 왜 가!"
"흐음."
소냐씨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요. 사위면 가족이나 다름 없으니 데려가도 상관 없겠죠."
어...남자친구 비스무리한 거라고 했던거 같은데 어느새 사위가....
"상관 있어요!! 그것도 엄청 많이!!! 엄마 일 하는데 저 사람을 왜 데려가요! 게다가 그거 규율에도 어긋나는 거 아니에요? 의뢰주쪽에서 클레임 들어올 거라고요!"
"클레임? 감히? 후후. 그런 어처구니 없는 사건을 들어주는것 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할 그 인간들이 클레임이라니? 나 외에 어떤 변호사도 그런 어처구니 없는 사건은 수리하지 않아. 즉, 나밖에 없는 거란다."
"그,그래도 변호사 윤리적으로다가...."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할게. 정 걱정되면 너도 오면 되잖아?"
"크윽...."
유나씨가 입술을 꾹 깨물며 나를 바라본다.
"이거...혹시 두 사람이 짠 거에요? 날 끌어들이려고?"
"내가? 뭐하러? 오지 않겠다면 그것도 상관 없어. 사위랑 얘기좀 하지 뭐."
"...사,사위 아니에요."
"곧 될 거잖아? 그렇죠?"
"예? 아...예...뭐...."
언젠간그렇겠지. 유나씨하고만 결혼할 건 아니지만.
.
.
저녁을 다 먹은 뒤, 나는 소냐씨와 함께 만남의 장소로 향했다.
우리가 있던강남이 아닌 다른지역이라 꽤 오랫동안 그녀의 차를 타게 되었는데, 엄청 고급지다.
버튼 하나 누르니까, 지가 알아서 우리 앞으로 와서 문까지열더라니까. 자동으로.
나도 차나 사볼까...아 면허가없지.
"도착했어요."
"어...근데 좀 늦은 거 아닌가요?"
약속시간은 오후 9시. 하지만 지금은 9시 36분이다. 늦어도 한참 늦은 셈.
소냐씨가 한 차례 웃어 주었다.
아..웃는 거 너무 예쁘다.
"괜찮아요. 이 정도는해 줘야 주제를 알거든요."
"그,그렇...습니까?"
이 사람도 마냥 착한 사람은 아니네....
허겁지겁 차에서 내리자, 역시 알아서 문이 닫히더니 지 혼자 근처 주차장까지 가버렸다.
또각또각.
가방을 어깨에 매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그녀를 따라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오세요~"
밝게 인사하는 알바생.
소냐씨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카페 안을 둘러봤다.
"저분들...이죠?"
"그런 것 같네요."
의뢰인의 얼굴을 본 적도 없는 내가 척 보고 알 수 있을 정도로 특징적인 사람 세 명이 카페에 앉아 있었다.
저 정도면...소냐씨의 한...세 배?
과장 아니다. 진짜 옆으로 그 정도 된다.
"방은이씨 되시죠?"
소냐씨가 그렇게 말하자, 여자들이 홱 하고 돌아본다.
음. 어떤 생각을 하는지 훤히 읽히는군.
우선 소냐씨의 환상적인 미모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다음 질투를 비롯한 안 좋은 감정이 고개를 들고, 그 감정이 늦은 시간과 한남충인 내 얼굴을 보면서 터진다.
"이유나씨??"
"네."
"아,아니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이제 오세요?!"
"오는 길이 막혀서요."
소냐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 의자를 빼 주는 '금기'를 저질렀다.
"아. 감사합니다."
"무,무슨...!"
역시나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얼굴들.
그나저나 진짜 대단할 지경이다. 어떻게 의자에 앉았지? 그것도 셋 씩이나.
"저,저기요."
"네."
"이 사람은 누구죠?"
"남자가 온다는 얘긴 못 들었어요!"
"우린 여자 변호사를 원했던 거라구요!!"
말하면서도 지치는지 중간중간 숨을 내쉬고 얼굴에 흐르는 땀을 티슈로 닦아낸다.
지금 덥나? 에어컨 틀었을 텐데.
"변호사는 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 참, 주문은 다들 하셨어요?"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테이블을 딱 보니까 벌써 식사를 하셨는데. 대체 컵이 몇 개고 접시가 몇 개냐.
"유은씨는 뭐 드실래요?"
"예? 어...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시원할 정도로 에어컨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지만, 눈 앞의 압도적인 분들 때문에 괜시리 더운 것 같다.
"그래요? 빵 같은 건 안 드세요?"
"넵. 괜찮습니다."
소냐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직접' 주문하러 갔다.
혹시...일부러 도발하시는 건가?
무려 '여자'가 '남자'에게 의자를 빼 주고,
'여자'가 '남자'를 대신해주문을 받으러 가고. 이거 완전 매갈 도발 아니냐.
"썅. 존나 싸가지 없네."
소냐씨가 멀어지자, 세 여자가 투덜거린다.
그래도 내가 있는데 바로 쌍욕으로 들어가네.
"늦었으면 사과를 해야 할 거아냐?"
"그리고 아까 봤냐? 의자 빼주더라."
"흉자인듯."
"아 노답. 힘들게 이렇게 왔는데 소득이없노."
나를 앞에 두고 온갖 욕을 다 하면서 수근대고 있는데...솔직히 다 들린다. 아니, 들리라고 하는 건가?
아...보고싶어요 유나씨.
꽃이 지고서야 봄인 줄 알았습니다...
유나씨가 얼마나 정상적인 사람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한숨을 내쉰 그때,
갑자기 한 명이 씨익 웃더니, 내게 삿대질 하며 소리지른다.
"이봐요!! 지금 제 몸을 훑어봤죠?! 그죠!!"
"...뭐?"
무심코 반말이 나왔다.
"방금 내 가슴을 음흉한 눈으로 쳐다봤잖아요!! 어머. 진짜 별꼴이야. 이거 성희롱..아니 성폭행인 거 아시죠? 시선강간이라고요!!"
"역시 한남충!!"
"이래서 여자 변호사님을 선임한 건데!!"
...이년들이 뭐라는 거야. 내가 돼지 가슴을 왜 봐. 봐서 뭐한다고.
"와 뻔뻔하게 지금도 쳐다보고 있네. 당신 같은 사람들이 젠더권력을 갖고 있으니까 대한민국이 망해가는 거에요! 얼른 사과해요!!"
"변호사님만 아니었어도 당장고소하는 건데."
...그냥 칼로 썰어서 삼겹살을 만들어 버릴까. 그리고 몬스터한테 대접해주는 거지. 고생한다고.
"제가 뭐하러 님들을 봐요. 이상한 분들이네."
"뭐,뭐라구요? 이상한 분들? 지금 모욕까지 했어!!"
"그리고 왜 우릴 보냐니...."
"하! 그러니까 뚱뚱한 우리 몸은 볼 가치도 없다 이거에요?"
"와. 몸매강요 지린다지려."
"무슨 일이에요?"
아. 소냐씨가 돌아왔다. 뭔가 정화되는 느낌이네.
"변호사님!! 방금 이 남자가 제 몸을 음흉한 눈으로 훑어 봤다고요!! 이거 성희롱이죠!!"
"네?"
소냐씨가 잠시 멈칫하더니 살짝 미소를 걸치며 내 앞에 아메리카노를 놓아 주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유은씨는 그런 분이 아니에요."
"지,지금...비웃은 거에요?"
"비웃다뇨?"
"방금 제 말을 듣고 웃으셨잖아요!"
"아~."
소냐씨가 다시 웃었다.
잘 안 웃는 분인데이럴 때는 또 잘 웃으시네.
"진정하시라구요. 그런 일 없으니까."
"그런 일이 없다뇨!! 그럼 제가 겪은 건 뭐죠? 분명 저 남자가 절 시선강간 했다니까요!!"
"시선강간?"
"그래요! 저 음흉하고 뱀이 기어가는 듯한 그 시선! 그게 바로 시선강간이라는 거예요! 변호사씩이나 되시는 분이 그것도 모르시면 어떡해요?"
와 막나가네.
"음. 뭐 알았으니까 일단 앉죠. 그리고 목소리 좀 낮추시는 게 어때요? 다들쳐다보는데."
"남들의 시선이 중요한가요? 아니면 한 피해자의 인권이 중요한가요!"
"에티켓이 중요해요."
"그럼 제 인권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에요?!"
"거기서 왜 인권이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흥! 제가 남자였으면 당장 제 말을 믿고 경찰을 불렀겠죠! 이게 다 여권이 낮아서 그래요. 제가 여자니까 말도 안 믿어주고 무시하는 거라구요!"
이젠 소냐씨한테 삿대질까지 한다.
그리고 난 그때 볼 수 있었다.
소냐씨 입가에 그려지는 스산한 미소를.
"여권은 외교부 가서 찾으시고요, 일단 앉으세요."
"아니 이 남자가 절 성희롱 했다니까요!!"
"그럴 리 없다니까 그러시네."
소냐씨가 그렇게 부정하자, 세 돼지는 더욱 열받는지 머리에서 하얀 김이 나오고 있다.
"하!! 남자 말은 믿어도 여자 말은 못 믿겠다? 이런 게 여혐이에요!분명 성희롱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피해자를 멸시하는 듯한 그 시선! 그런 여혐이ㅡ."
"니들 같은 돼지를 왜 봐? 근처에 내가 있는데. 봤어도 내 엉덩이를 봤겠지."
오옼
세 돼지가 순간 머뭇한다.
"뭐...뭣...!"
소냐씨는 지금까지의 나긋나긋한 표정을 지워버리고 거만하게 다리를 꼬아 올렸다.
"다리도 못 꼬는 년들이 무슨 시선강간 타령이야? 너희한테 색기가 있기를 해 아니면 매력이 있길 해? 하다못해 귀엽기라도 하면 봐줄 수도 있지. 이건 뭐 귀엽지도 않은 돼지삼형제가 성희롱이라고 우기네. 유은씨, 이 사람 가슴 봤어요?"
"네?"
"정말 그랬으면 지금 당장 안과 데려가야죠. 우리 사위 시력 상하면 어떡해?"
"이,이봐요...지금...지금...모요ㅡ."
"아 미안해요. 너무 심한 모욕을 해버렸네. 돼지한테 미안해서 어떡하나."
"!!"
"돼지는 그래도 인류가 죽지 않게 식량이라도 돼 주잖아? 우리 '자칭 여자'인 돼지 삼형제는 인류에 무슨 도움이 되고 있어요?"
와...딜표 무엇...